소설리스트

7화 (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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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낮의 사무실.

아직 가을이지만 오늘은 좀 쌀쌀하다.

많은 남녀직원들은 알아서 가벼운 가디건과 가운을 걸치고 있었다.

그런 아래 직원들을 살피며 현서는 조용히 혀를 찬다.

짜식들, 아직 젊은데 뭐가 춥다고 몸살들이야..

문득 커피가 땡겨서, 탕비실 쪽을 향해 걸어가는 여직원을 부른다.

“저기~ 미스 김~ 커피타러 가?”

“네..? 그런데요”

“미안한데~ 나도 커피 한잔만 부탁할게”

“아~ 예 알겠습니다.

과장님, 연아로~ 아니면 태희 언니루요?”

짐작하기 쉬운 멘트지만, 김연아와 김태희가 각각 광고하는 커피를 말했다.

현서도 씨익~ 웃으면서 장난스럽게 대꾸한다.

연아가 먹고 싶다고.

언뜻 들으면 성희롱이 명백한데, 그런 뉘앙스를 주지 않으려했다는 듯

말하는 어감과 속도를 조절해서 천연덕스레 얘기한다.

그러자 여직원도 피식~ 웃으며 걸어간다.

“아, 고마워”

“뭘요, 오랜만에 시키신 커피 심부름인데”

“ㅎㅎ 미스김은 예전에 만난다던 사람은 어떻게 됐어?”

“저요~? 제가 저번에.. 아, 맞아..”

“김인애씨~ 여기 이것좀 와서 도와줘요~”

“.... 아, 네! 지금 갈게요. 잠시만요.”

“뭐야.. 저 멍청한게 저보다 상사가 얘기하는 중인데..”

“키득~ 그러지 마세요 과장님, 차대리님도 못봤나봐요.

저 그럼 일단 가볼테니까, 또 천천히 얘기 나눠요?”

“.... 그래 뭐~ 기대할게~”

김인애라는 이름의 경리 아가씨가 사라지고 난뒤,

현서는 손깍지를 끼고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하아, 어디까지 아까 생각하다 말았었더라..

성민이 자식...

생각해볼수록 골치가 아파 이마에 손을 짚고 살살 문질렀다.

어떻게 용케 주연이한테 얘기는 했는데..

이제 내일 모레 이틀 뒤면 올 녀석에게 따로 준비해올 것을 말해줘야했다.

그런데 카톡 창을 유심히 바라보는 순간~

때마침 성민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하~ 이 자식이... 톡보내라니까 전화하고 있네..

목을 가다듬으며 긴장한 톤으로 받는다.

“어.. 나 지금 일하는데 성민아..”

“잠깐만 얘기할게, 방해해서 미안해”

“그래 얘기해봐 그럼”

“응.. 너 있잖아, 오늘.. 저녁에 나좀 볼수 있어?”

“오늘...?”

왠일이지..

오늘은 아직 수요일.

녀석이 집에 오기로 한 것은 이틀이 남았다.

지난주에 통보한 뒤, 성민이 이렇게 불쑥~ 보자는 것도 처음이다. 

이 짜식이~ 무슨 생각으로 이제 와서..

“안되는 건 아닌데.. 무슨 일로?”

“그게 저.. 큰 일이 있는거는 아니고 말야..

내가.. 아무래도 너희 집에 그냥 찾아가려고 하니까 너무 떨리고..”

“아아~ 그런 얘기라면 됐어, 걱정말고 그냥 와”

“아니 그래도 만나서 좀 하고 싶은 얘기가 있는데..”

“됐다니까.. 내가 너한테 톡으로 보내준 것만 잘 지키면 돼.

정 그렇게 마음에 걸리면~ 보자..

금요일날 좀 일찍 와. 밤 말고 저녁 여덟시 쯤 해서”

대강 톡으로 일러줬던 내용을 재확인해주면서, 전화를 끊었다.

짜식이.. 장난치나?

존나 새가슴인거는 알고 있지만, 뭘 또 따로 보자고 지랄이야..

그냥 그날 안 늦게 좀 일찍 와서, 따로 나랑 얘기하면 되는 것이지.

그렇지 않아도 초조하게 생각중이던 현서는

덜덜 떨고 있는 성민의 모습을 상상하며 화가 치솟았다.

에이.. 병신같은 새끼..

이쪽은 그렇지 않아도 한창 예민해져 있을 아내 때문에 신경이 곤두서 있는데..

등받이에 머리를 턱~ 기대고 잠깐 휴식을 취한다.

후아.....

생각에 잠겨본다.

어제도 아내가, 침대에서 조용히 어깨를 기대며 말했다.

“금요일이.. 아주 빨리 다가오네요, 여보..”

“..... 이제 3일 남았지..”

“녜..”

“잠이 안와? 심호흡 한번 가볍게 하고..

내가 어깨 좀 주물러줄게”

“아, 아니예요 괜찮아요.. 그런 것보다..”

“응..”

“꿀꺽.. 

당신이 며칠전에 직접 이야기했잖아요..

그 뒤로도 저, 잠도 제대로 못 이루고 고민에 빠졌었어요”

“그랬던 거 알아 나도.. 옆에서 모르는 척 했지만,

여러번 네가 뒤척거리는게 보이더라..”

꿈틀 꿈틀, 떨리는 몸으로 조용히 속삭이는 아내가..

정말 짠하고 안쓰럽다는 생각을 했지만

왠지 모르게 그 떨고 있는 모습이 귀엽기도 했다.

“... 당신 친구분, 성민씨..

몸도 거의 병 때문에 회복될 가망도 없다하시고,

여보야도 전에 친구에게 했던 못된 행동...”

“그냥 얘기해, 편안하게”

“...... 나쁜 행실들도 있었다고 하니까..

지금까지 살면서, 마음이 편치 않았을거라 이해는 해요..”

그 얘기는 지난 밤에, 다 부둥켜 안고 했던 이야기잖아..

현서는 아내가 뭐라 말하려는지.. 이어서 가만히 들었다.

“........

그래도, 그래도.. 당신 기억하고 있는 거죠..?

저는 당신을 정말 사랑하고, 어떤 상황에서라도..

현서 씨를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 조금 무리가 가더라도 기꺼이, 

힘이 될수 있도록 노력해보겠다고.. 다짐하던 이야기를 말이예요”

“알고 있어, 주연아... 그래서 내가 더욱 미안해..”

“저.. 그리고 앞으로도..

몸가짐이 헤픈 여자라고.. 생각지도 마세요..”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헤픈 여자라는 생각을 내가 감히 어떻게..”

“....... 알아요.. 그렇지만..

사람 앞일은 모르는 법이니까, 지금 생각과.. 나중 생각은 또 다를 수가 있어요..

어쨌든 여보, 제가 드리고픈 결론은..

사정이 어떻게 변하더라도.. 저를.. 변치말고, 이해해주세요..”

“그래.. 알겠어.. 고맙다..”

-

그리고 남은 이틀도 빠르게 흘러,

드디어... 기다리던 D 데이가 되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 종일 비가 추적추적 온다.

때마침 궂은 날씨도..

현서 주연 부부의 걱정스럽고 한편 또 설레이는 마음을 

대신 읊어주는 것 같았다.

두근 두근..

이번주 내내 손에 일이 제대로 잡히지 않을때가 많았지만

특히나 당일이 되니, 아침부터 앉아 있는 내내 온 몸이 부르르 떨린다.

긴장을 하지 않으려 심호흡도 해보고

릴렉스~ 릴렉스~를 중얼거리며 기지개를 키고 몸을 이완시켜본다.

그래도 긴장이 풀리지 않았다.

꿀꺽...

정말 잘하는 짓일까, 이거..

이제 불과 몇시간 남지 않았다.

성민에게는 어제도 카톡으로 집까지 찾아오는 길을 상세히 알려줬다.

딱히 별다른 유의사항은 없었다.

몸이 안좋은 환자고 하니까 특히 청결에 신경쓰고 와라.

혹시나 아내가 불편함을 느낄 만한 요소들을 시시콜콜 잔소리한다.

수염은 단정하게, 양치후 구강청결제, 몸도 깨끗이 샤워하고 등등.

일은 하지 않고 따다닥- 따다닥-

책상을 여러번 두드리면서, 성민에게 카톡을 또 보내고 있다.

그리고 저녁.

밥은 알아서 챙겨먹고 오도록 시켰다.

따라서 시간은 자연히 저녁 8시 정각으로 정해졌고,

두근 두근...

시간이 가까워질수록 굉장히 초조해지는 현서와 주연은

떨리는 마음과 긴장을 견디기 위해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여보..”

“응, 주연아”

“오빠, 우리 정말.. 이래도 되는 거예요?”

“...... 뭐 이제와서.. 

시간 다 임박했는데 무슨 말 하려는 거야”

“아니.. 그런건 아닌데...

나 정말, 이래도 괜찮나.. 자꾸 불안한 마음이 들어요..”

그런 감정이 들지 않는다면 그게 정상이 아니지..

분명 아내 주연은 자신보다 훨씬 더 많은 두려움으로 떨고 있을게 분명했다.

협조해달라고 간청하니까,

말도 안되는 남편의 황당한 부탁에 마지못해 응해주긴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녀도 무겁게 짓누르는 부담감이 점점 커졌고

지금 순간이 다가오자 심장이 더 무서울 정도로 쿵쾅쿵쾅- 

거칠게 뛰는 것이다.

빌어먹을...

정말 이런 짓거리를 해도 괜찮은 걸까..

나, 오늘을 넘기고 나서도 후회하지 않을 자신은 있을까?

현서는 욕지거리를 나지막히 내뱉으며,

지금 이곳으로 오고 있을 성민을 그냥 돌아가라고 말할까..

오만 잡생각으로 머리가 복잡해졌다.

시간을 보니 7시 30분이다.

깊게 한숨을 쉬며, 거실 유리 찬장에 넣어두었던 발렌타인을 꺼내었다.

술이 약한 아내를 위해, 그리고 본인도 긴장을 풀려고 유리잔에 나눠 마신다.

띵-

잔과 잔을 부딪치며 와인을 마시고.. 

취기로 뺨과 얼굴이 발그레해지는 주연을 보았다.

긴장을 풀어주려고 일부러 조금 취하게 하려했는데

오히려 수줍게 물드는 그녀의 살결을 보자, 불끈- 욕정이 치밀어오른다.

아... 제길...

이제 곧 있으면 녀석이 오는데..

지금 이 순간에 내가 끌어안고 싶어지면 어쩌자는 거야?

현서는 질끈, 눈을 감고 머리를 도리도리 젓는다.

그리고는 땀에 젖어 떨리는 손으로..

사랑스러운 아내의 머리카락을 조심히 매만져주었다.

“... 주연아, 큰 걱정하지 않아도 괜찮을 거야.

무엇보다도, 진행하는 동안...

너 혼자가 아니잖아. 내가 계속 옆에 붙어 있을 거니까.. 알고 있지?”

주연은 부끄러운 기색으로, 가만히 고개를 끄덕거린다.

아무 말을 하지 않는다.

조금 마셨다고 와인에 취한 것인지..

아니면 극도의 수줍음과 불안함에 긴장한 건지..

찬찬히 달래주며 어깨를 만져주어도, 별 말을 하지 않았다.

7시 50분.

10분 남은 시계를 보고, 현서는 아내를 바삐 안방으로 들여보낸다.

후흡....

깊게 심호흡을 한다.

그리고 곧이어 7시 58분을 가리킬 때..

띵~동... 조심스럽게 벨소리가 울렸다.

“........ 

어.. 들어와..”

“오랜만이야...”

“그래, 일단 어서 들어와서..”

“...... 잘 지냈어, 현서야?”

성민은 마치 여성스러운 고양이를 연상시킬 만큼,

무척 조심스럽게 발걸음 소리를 안 내며 조용히 집으로 들어왔다.

현서는 그런 행동을 하나 하나 보며 딱딱히 굳은 표정이다.

꿀꺽......

소파에 성민이 눈치를 보며 앉을 때까지,

현서가 잔뜩 긴장해서 경직된 표정은 이어졌다.

“..... 어려운 걸음했지.. 비오는 날인데, 오느라 대단히 수고 많았어..”

“뭘.. 아니야.. 나야말로.. 이렇게 좋은 집에 오는데..”

“오는데 막히지 않고.. 금방 왔어?”

“어.. 버스 타고 오니까 25분 정도 걸리더라..”

“그래...”

몇 년만에 전화통화만 며칠 하고 본 것인데도,

반갑다는 생각이 들기는커녕.. 극도로 마음이 불편했다.

당연한 현상이리라.

현서는 꿀꺽, 침을 삼키며 마음을 다스리려 애쓴다.

성민도 눈치를 보아하니 마찬가지다.

간단한 안부를 서로 묻고 근황에 대해서 얘기가 이어졌다.

초대받은 손님보다 초대한 주인이 훨씬 긴장해서 어쩔줄 몰랐는데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현서는 조금씩 마음이 편해짐을 느꼈다.

그리고 대화하는 내내..

성민의 일거수일투족과 입고 온 복장을 유심히 살폈다.

이야기하는 내내 현서가 자신을 기웃거리자

성민도 눈치를 채고는, 스스로의 몸에 뭐 묻은 것이 있나 하고 살핀다.

현서가 성민을 바라보는 이유는 아픈 환자라 궁금하기도 했지만~

의외로, 암 환자치고는..

놀라울 정도로 단정하고 깨끗한 그의 두발과 복장, 그리고 용모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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