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서는 처제 주희에 대한 이야기를 듣자 흥미가 동했다.
잠깐이나마 머릿속에 심각하게 자리한 성민을 잊은 상태다.
누구나 인정하는 미인 아내의 동생답게,
한 핏줄로 이어진 주희 역시도 대단한 미인이었다.
같은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두 살 터울의 여성이지만
형부인 현서가 볼 때, 언니와는 많이 다른 매력을 지니고 있었다.
꿀꺽..
이야길 하면서 자연스럽게 처제의 외모를 떠올려본다.
본지도 오래됐는데.. 한번 봤으면 싶네..
언니 주연도 장신인데 그보다 더 훤칠한 주희.
키보다도 형부인 현서의 마음을 때로 설레게 하는 것은-
여러 가지 면에서 주연과 대비되는 주희만의 독특한 매력이었다.
살색은 주연이 주희보다 더 하얀 편이다.
다만 지금은 앞서도 말했지만 살을 태워서 오히려 주희가 하얗게 보일 정도.
자매가 공통으로 찰랑 찰랑~ 좋은 머릿결을 가졌는데
언니 주연이 날 때부터 약간 부드러운 갈색의 화사한 머리카락이라면
동생 주희는 칠흙처럼 검고 윤기나는 머릿결이 특징이었다.
이런 저런 두 자매간의 특징을,
아내 몰래 가만히 떠올리며.. 조금 야릇한 상상을 해보는 현서다.
아마도 주연이 그걸 안다면 퍽 기분 나빠할 지도.
어쨌든 현서는 본의 아니게 처제의 이목구비와 몸매를 잠시 떠올리며
슬며시 가슴이 두근~ 설레고 있었다.
“쇼호스트..?”
“네. 자기는 원래 어릴 적부터 그쪽이 꿈이었다고..”
“쇼호스트면 홈쇼핑에서 상품 홍보하는 MC 말하는 거네”
“그렇죠~”
“흐음..”
“우습죠? 본인 이미지에 맞지 않는 대담한 꿈을 꾸고.. 풋~”
“하하. 너무 하잖아 주연아..”
“아뇨.. 사실이예요.. 히힛, 얘도 그렇게 말하는걸요”
“처제도 그렇게 말은? 하고 싶긴 한데 목표가 너무 어렵다고 생각하나?”
“으응~ 어렵다고 생각하기보다는...
장기적으로 내다보고 도전할 각오는 되어있는데,
단지.. 지금의 익숙해진 패턴을 접고,
멋모르는 새로운 세계에 뛰어들려 하니까.. 그게 겁이 난다는 것 같아요”
“그렇구나..”
현서는 알아서 술술 설명해주는 주연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누가 골랐는지 말도 막힘없이 잘하고 머리좋은 아내다.
주연은 싱긋~ 가벼운 눈웃음을 지으며 남편을 응시한다.
“어떻게 하면 좋겠어요, 당신은?”
“잉~ 대뜸 나한테 뭘~?
이미 여보가 상황에 대해서 파악도 잘 하고 있고,
나같은 구경꾼.. 보다는 훨 그 입장에 대해 잘 코치해줄 것 같은데, 동생한테..”
“호호호~ 그건 걔를 몰라서 하는 말씀이예요..”
“무슨 말이야?”
“흠~~ 주희는요~ 뭐라고 할까..
제가 아무리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좋은 이야기를 해주어도
곧이 곧대로 잘 받아들이는 걸 좀 어려워해요”
“으잉~? 좀 더 쉽게.. 주연아..”
“키득~ 별것 아니예요..
음, 뭐 딱히 제가 자매라서, 객관적으로 하는 말도 잘 인정하지 않는다~”
“인정하지 않는다..? 형제라서 좀 우습게 여기나?”
“아뇨, 말을 끝까지 여보.. 호호~
인정하지 않는다~는게 아니고.. 음~
같은 여자끼리고 하니까.. 기왕이면 남자에게 조언 받는걸 원하는 것 같아요”
“에이~ 그건 넘 지나친 자기 생각 아니야?”
“맞아요! 얘는 못되 먹은 팥쥐 마인드가 있어서..”
“하하하하”
“호호, 정말이예요. 같은 동성보다 이성이 더 믿음직하다고.. 막 그래요”
그래서 주연이 말하려는 결론은,
형부된 입장에서 간만에 처제를 한번 둘이 만나서
진로에 대해서 이런 저런 조언을 해주고 밥도 한번 먹으란 이야기였다.
아니.. 그럼 나야 좋지..
오랜만에 이쁜 처제 얼굴도 보고.
아무튼 간에, 동생에 관한 일이라면
그 무엇보다도 진심으로 걱정하고 챙겨주고 싶어하는..
그런 자상한 언니의 모습을 다시 보는 것 같아, 현서도 보기 좋았다.
-
주연과 주희 이야기를 했던 그 날은 결국, 아내에게 아무 내색도 하지 못했다.
후~ 아직은 일러.. 아직은..
성민이놈에게 선전포고를 뱉은 당일인데 너무 이르기도 하고,
처제에 대한 이야기를 하러 온 티없이 맑은 아이한테..
대뜸 충격적인 말을 꺼내기도 타이밍이 애매했다.
쳇, 그런 식이면..
1년 365일중에 어떤 날도 타이밍 잡기가 어렵겠네..
후~ 그래도 오늘은 일단 넘기자.
일단 경훈에게는 카톡으로-
간략하게 일정을 잡아놨다...는 이야기만 보내놓았다.
주말이 가기 전에는 주연에게 어떻게든, 이야길 꺼내야한다.
그런 중압감이 토요일 저녁에도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일요일 오후를 넘기는 시각.
같이 거실에 편히 앉아 예능프로를 보며 낄낄 웃으면서도,
현서는 옆에 앉아 즐거이 웃는 주연을 계속 힐끔거렸다.
어떻게 한다?
오늘은 꼭 말해야해...
잠자리에 들 시간.
침대에 드러누워 아내 주연의 젖가슴을 깨문다.
아얏-
아파하는 주연이 눈을 찡그리며 현서를 노려보는데..
그 눈이 너무 귀엽고 예뻐서, “쪽...”
부드럽게 입술에 입술을 포개었다.
“쫍... 쫍.. 우음... 여보..”
“하아.. 하아.. 주연아..”
“응... 입술 기분 좋아요.. 오늘 되게 달달해..”
“쫍... 그런가? 흐흐..”
“호호.. 오늘 자기 좀 섹시한 것 같아요, 여보..”
“무슨~ 평소랑 다를바 없는데~? ㅎㅎ”
“아닐껄요~? 평상시랑 달라요.. 오늘의 분위기가”
“... 그래.. 내가?”
“응~ 뭐라고 해야하나.. 우수와 근심에 차 있는 눈빛..
고독한 분위기가 왠지 다르다구요.. 무슨 의민지 알아요?”
아~ 이것 참..
내가 이래서 우리 마누라 속이고 어떻게 사나..
휴...
그래, 눈치 챘을 때~ 보따리 지금 풀어버리자.
“사실은 말야, 주연아..
오늘이 가기전에 꼭 할 얘기가 있었어..”
“쿳... 그랬어요?
그렇게 떠듬 떠듬 이야기하지 않으셔도 되는데.. 뭔데요”
“그게 쉽게 나올 이야기가 아니라.. 뭐냐면..”
멍석이 깔린 마당에 풀어야했다.
꿀꺽~
이게 무슨 짓인가... 싶어 떨리고 부끄럽지만,
현서는 아까 자리에 들기전 마신 소줏잔의 힘을 빌어
주연에게 힘겹게, 성민과의 이야기를 천천히 얘기했다.
...............
이야기를 들은 주연은 아무런 말을 하지 않는다.
현서는 이야기를 힘들게 다 해놓고, 술이 비로소 깬 상태였다.
콩닥 콩닥.....
가만히 아무 말이 없는 아내의 작은 입술만 쳐다본다.
주연은 알 듯 말 듯, 의미를 알 수 없는 고요한 미소만 지었다.
현서를 바라보는 것이 아닌..
허공을 바라보며 처연한 표정으로 숨을 뱉는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일단 일을 저질러놓은 현서 입장에서는,
아내의 의중을 파악할 수 없고.. 파악하기도 두려웠다.
그저 눈치만 보고 있는다.
주연은 그런 남편을 힐끗- 고개를 돌려 바라보았다.
마침내 천천히.. 앵두빛 입술이 열린다.
“..........
그래서, 당신은 무어라 했어요?”
“응...?”
“그 친구한테, 뭐라고 답변을 하셨냐구요..”
차분하게 말하는 어조에 현서가 오히려 놀란다.
10분 정도를 가만히 침묵을 지키던 주연.
담담하게 입을 열고 말하는 모습은 의외였다.
현서는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침착한 아내의 모습에..
막연한 이질감과 함께 약간의 오한을 느꼈다.
이런 모습도 가지고 있었나..?
“꿀꺽... 그게..
일단 고려는 해보겠다고.. 말을 했지..”
“생각을 해보겠다고요..?”
“으응, 전적으로 결정은 너한테 달려있어, 주연아..”
“...... 그래요..”
“어, 어떻게.. 좀 생각을 해봐야겠지..?
역시 쉽게 바로 말해서 결정할 문제는 아니겠..”
“아뇨, 저 할게요”
“.......?! 뭐...??”
현서는 아내의 주저함 없는 결연한 태도에, 아연실색했다.
저 표정은..
내가 아는 주연이가 맞는거야..?
“........ 하겠어요..
물론 쉽지는 않은 결정이지만..
당신이 궁지에 몰려서.. 난처할 만큼 괴로운 상황이니까..”
“주연아...”
“.... 근데 있잖아요 여보, 저..”
“응.. 편하게 말해..”
주연은 처음에 애써 담담하게 말하더니,
조금씩 말할수록 덜덜 떨고 있었다.
“당신이, 앞으로 생각을 더 해볼 수도 있다고 하니까..
일단 동의하는.. 거구요.. 알죠?
그리고.. 나라고.. 이런 결론을 내기가 결코.. 쉬운 건 아니예요..
이상한 여자라고.. 생각하지도... 마세요..”
“... 알아, 내가 왜 모르겠니”
떠듬 떠듬.. 한구절 한구절을 어렵게 말하는 주연이 안쓰러웠다.
거기까지만 말하게 하고는,
깊게 한숨을 내쉬며 현서는 주연을 와락, 끌어안았다.
됐구나.
걱정 근심이 짧은 한 순간이지만, 눈 녹듯이 사라지는 느낌.
신기하게도 짜릿한 기분.
그리고 현서의 가슴을 그간 콱 짓누르던..
무거운 납덩어리의 압제에서 해방되는 착각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