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짹짹-
맑은 하늘이 아름답다.
비가 개인 후라서 한점 티없이 맑고 깨끗한 날씨..
약간 스산한 기운은 있지만,
세탁기에 돌린 빨래를 발코니 창문을 열어두고 말리고 있다.
달콤한 비프 스튜 끓이는 냄새가 집안에 진동한다.
음~ 맛있겠다..
주연은 남편이 출근한 뒤, 콧노래를 부르며 빨래를 널고 있는 중이다.
하얀색으로 뒤덮인 귀여운 앞치마를 둘렀다.
따스한 햇살이 쨍쨍-
약간 눈이 부실 정도로 시야를 가린다.
손등을 이마에 마주 대고 손바닥으로 자외선을 가리는 모습이다.
깟똑~!
톡이 오는 소리에, 에이프런 앞주머니에 넣어둔 폰을 금새 꺼낸다.
아앗..
모처럼 반가운 친동생 주희의 메시지였다.
[언니! 뭐해~
동생이 살았는지 죽었는지 통 연락도 업꼬~ 사람이 모 그르냐?]
쿡쿡.. 귀여운 것.
슬그머니 장난끼 어린 표정으로 또닥 또닥~
주연도 바로 답장을 보내준다.
[빨래 넌다~ 바뻐~
근데 너야말로 머하고 사는데.. 올만이네]
하나 보내두고 소리를 무음으로 해버린다.
지금은 빨래 마저 널고 어서 식사준비를 해야하니까.
한가지에 집중하면 다른 것에는 신경을 잘 못쓰는 편이라서..
즐겁게 노래를 부르는 와중에도,
저녁에 돌아올 남편을 위해 맛있게 음식을 준비한다.
항상 부지런히 집안일에 열심이다.
성실하고 한눈 팔지 않는 성격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그러다보니 본의 아니게 깜빡 잊다가,
두시간 반쯤 뒤에야 혹시 톡이 또 왔나.. 확인해본다.
쿡쿡.
기집애, 오랜만에 언니랑 얘기하고 싶은데 뾰루퉁 삐졌나보다.
[어머, 이 언니봐~ 웃긴당..
칫 누가 울 언니 아니랄까봐 냉랭하기는~ㅎㅎ
맨날 내가 연락하는데~ 치~]
[이봐욧?~~]
[모하길래 바쁜가...ㅠㅠ 나 심심하다고 오늘 언냐]
[아띠..=.= 놀아줘 빨랑.. 나 버려두면 삐질건데..]
무뚝뚝한 표정으로 물끄러미 액정만 보는 주연.
푸하하-
귀여운 동생의 애교에 환하게 웃는다.
짜식~ 전화를 하면 되지..
꼭 카톡으로만 보내놓고 답장 없다고 투정 부리더라~
은은한 미소를 띄우며, 사랑하는 동생에게 톡을 보냈다.
[바빴으니까 그렇지, 내가 너처럼 한가하게 노는줄 아니?
형부 곧 오시니까 밥 준비해놔야해.
너는 뭐하고 살길래? 니 근황이나 먼저 말해봐 ㅋ]
주연은 본래 성격이 조용하고 말수가 적은 편이다.
학창시절에는 몸가짐을 늘 단정히 하라는 부모님의 가르침에 따라,
그리고 본인도 늘 여성스럽고 조신하자는 마음으로 고교시절을 보냈다.
또한 얌전한 행실도 몸에 잘 맞는 옷이었다.
타고난 천성이 참하지 못한 사람이 억지로 행한다해서 잘 되겠는가.
여하튼 그런 학생이었는데,
대학에 입학하고 나서 많은 부분에서 시야가 트이고
다양한 사람들과 여러 인간관계를 맺으면서 한결 성숙해졌다.
사고방식은 여전히 조금 고루한 면이 있지만..
어릴적부터 말수가 적고, 낯을 심하게 가리는 내성적인 성향은-
대학교 4년을 보내는 사이 상당부분 나아진 것 같다.
남편과의 사이도 그렇다.
한참 나이차가 나서 대하기 불편한 대선배인데,
인물은 비록 썩 잘생기지는 않았어도 늘 자상하게 자신을 처음부터 챙겼다.
주변 선배들의 들리는 소문으로는 학교 다닐 때 꽤 놀았단다.
현서에 대한 소식이 그렇게 좋은 이야기들은 아니었지만,
주연은 어릴적부터의 신념대로 생각했다.
사람을 먼저 겪어보고 내가 직접 판단해야지,
주변에서 누가 뭐라한다고 휘둘리지 말자-
여전히 말수가 적은 편이지만
신랑 현서와 같이 있을 때만은, 본인도 다른 사람이라고 느낄 정도로 말수가 많아진다.
자신이 생각해도 깜짝 놀랄 정도로 애교도 늘었고~
워낙 현서가 주연을 이뻐하고 잘 대해주다보니..
그녀의 철옹성과도 같았던 마음에도 훈풍이 불어오고 있었다.
후릅-
집안일을 착실히 다 마무리 지어놓고,
부엌 탁자에 앉아 여유롭게 허브티를 마시고 있다.
찌이잉~~
때마침 동생의 전화가 울린다.
“응~ 그래...”
“언닛!!”
“아휴... 귀청 떨어져, 조용히 말해~”
“왜 답을 빨리 빨리 안주는 거얏~~ 감질나게~ 엉?
착한 동생 데꼬 밀당하는 고야~? 우히힝힝~”
“풋~ 밀당같은 소리하네..
너는 한가하지~ 집안일하는 주부가 너랑 같은줄 아니”
“히잉... 그래두.. 나는 언니랑 얘기못하면 마음이 허전하고 섭섭해..”
“호호호~ 오늘 왜 또 기분이 센치해?
남자친구가 잘 안놀아줘서 우리 동생 삐졌어?”
“치잇 언니는.. 그럴 남자라도 있으면 좋겠다”
“어머, 얘봐~?
니가 마음만 먹으면 남친 만드는거야 식은죽 먹기잖아.
맨날 외롭다고 말만 늘어놓고 사귀지도 않으면서 ㅎㅎ”
“내, 내가 언제? 히잉~
언제 누구라도 소개시켜주고 그런 말해 언냐는~!”
“쿡쿡.. 웃기고 있어”
주연은 주희가 아무리 투정을 부려도 그저 귀여웠다.
어릴 적부터 매일 붙어살면서 언니 말이라면 꺼뻑 죽는 착한 동생.
주희는 나이가 25세로 언니보다 두 살 어리다.
171cm의 키에 60kg의 늘씬한 체형이며
가슴둘레가 언니만큼 제법 탐스러운 글래머다.
주연은 객관적으로 봐도 풍만하구나.. 하는 느낌을 주는 편이고
주희는 그것보다는 작지만, 평균적인 한국인의 가슴 사이즈에 비교하면
탐스럽고 예쁜 가슴을 지니고 있었다.
허리는 언니보다 동생쪽이 조금 더 잘록하고 늘씬한 것 같다.
히프는 언니나 동생이나 적당하게 살이 올라 도톰하니 예뻤다.
풋~ 그러면 뭘하냐고..
보이는 겉모습은 도도하고 냉랭해보여도, 내 앞에선 철부지고 어린애인걸..
그 누구보다도 친동생의 실체를 익히 아는 언니는
자꾸만 앵앵거리면서 언니에게 애교 떠는 동생의 말에 웃었다.
어둑어둑해질 저녁, 현서가 돌아온다.
현서가 친구 성민과 몇 년만에 전화를 주고 받은 바로 그날이다.
뭔가 수심이 가득해보이는 얼굴...
주연은 얼른 다가가 남편의 안색을 살폈다.
“여보, 오늘.. 무슨 일 있어요?”
“아니.. 특별히 별 일은.. 왜 그래?”
“힘들어 보여서요.. 근심어린 뭐가 있는 거 같고..”
“핫핫~ 그런거 아니야~ 오늘 일이 많아서 그러지”
좌우지간 내가 뭘 숨길 수가 없다니까..
아무일 없는 척 태연한 얼굴로 위장한 그였기에
아내가 건네는 말은 흔한 인사말이니, 티를 내지 말자고 생각한다.
대충 저녁을 먹은 후, 홀로 쓰는 서재에 틀어박혀 있다.
혼자 사용하는 데스크탑 pc와 큰 대형 모니터.
서재라고 부르기엔 과분할 정도로
책장들과 어울려 한 쪽 구석에는 작은 홈시어터를 구현해 놓았다.
예전부터 영화를 많이 좋아해서 설치해놓곤 했었는데..
지금 이사온 아파트는 평수가 썩 넉넉하지 않아서
그런대로 작은 자기만의 영화감상 공간으로 만족하고 있었다.
푹신한 사무용 검은 의자에 앉아 생각에 잠긴다.
빙글~ 빙글~
뭔가 생각에 몰두하다가, 가만히 있지 못하고 의자를 정신없게 돌린다.
답이 나오지 않는 진지한 고민에 빠질 때..
현서가 가지는 버릇이다.
하아.. 어찌하면 좋냐고..
자신만만한 척, 성민에게 큰소리치던 것은 좋았다.
예나 지금이나 그 녀석에게는 늘 강한 모습만 보이고 싶으니까.
그런 이미지 연출이야 괜찮았는데, 그 다음 풀어갈 일이 태산이다.
당장에 저기 거실에 앉아 있을 이쁜 와이프한테는
어떻게 어디서부터.. 말을 꺼내야할지,
정말 앞이 캄캄했다.
나도 참 배짱 좋구나..
대책없이 경훈에게 약한 모습 보여주기 싫어서 일을 추진해버렸는데,
아니야. 약한 모습, 이런 차원이 아니잖아 이건?
상식적인 사람이라면 이런 위험한 제안 따위를 수락하지 않겠지..
그냥 지금에라도 없던 일로 물리고, 다시 성민에게 전화를 할까?
주연이에게는 한마디 말조차 꺼내지 못했는데..
그런 여러 가지 생각으로 머릿속이 괴로웠다.
똑똑~
책상에 붙어 앉아 두 팔꿈치로 기댄채 머리를 숙이고 있는데, 노크가 들렸다.
달칵...
“여보, 뭐해요?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응~ 아니야.. 아무 일도”
“에이~ 아니기는 뭐가 아니야?
지금 막 문열어보니까 머리 싸매고 있는거 딱 보였는데요 호호”
“하핫.. 그런가? 딱 그 타이밍에 들킨거야?”
“키킥, 그래요, 참~ 요거 드세요”
살살 기분 좋게 남편을 달래주는 아내의 편안한 미소.
그 온화한 얼굴에 현서도 순간적으로 피로를 잊었다.
주연은 후식으로 제철 과일인 단감과 배를 깎아서 접시에 담아왔다.
감도 좋지만 시원한 배는 현서가 정말 좋아한다.
키야...
머리도 띵했던 판에 차갑게 입안에 베이는 배 맛이 일품이었다.
“후후..”
“흐흣, 왜 웃냐”
“아니예요. 배 먹으면서 짓는 표정이 웃겨서”
“하하 그랬어? 너무 맛있어서”
“귀여워요, 그런 얼굴이.. 가끔 장난꾸러기 아이 같을 때가 있어요”
“ㅎㅎ 좋은 의미야~ 뭐야~”
“글쎄요.. 딱히 좋은 의미만을 담고 있진 않을 지도요? 호호호~”
“뭐야앗~? 요 명랑한 녀석~”
주연이 앙탈부리는게 귀여워서 볼을 살짝 꼬집었다.
그러자 아프다고 칭얼댄다.
태닝을 전에 했다더니 피부가 여전히 하얗고 곱다.
현서가 장난스럽게 꼬집은 뺨이 슬쩍, 발갛게 부풀어오른다.
히잉~
아내 주연은 남편의 얼굴을 조금 원망스러운 눈으로 흘겼다.
“아프잖아요오~... 미웟”
“킥킥. 미안.. 너무 세게 손에 힘이 들어갔나봐, 장난치려던 건데..”
“쿡~ 못 믿겠어,
아까 손에 감정 제대로 실린 것 같은데요?”
“에이.. 그건 아니야, 쪼금~ 오버하긴 했지만..”
“거봐요~ 좀 아프라고 힘준 거 맞네 뭐..”
“하하하, 미안해~ 아이구 귀여워라”
주연도 장난으로 한 얘기다.
남편이 미안하다고 슬쩍 빨개진 뺨을 톡톡- 어루만져주자
괜찮다고 팔을 슥- 밀어내며 웃었다.
“여보, 저기..”
“응”
“주희가 오늘 전화가 왔어요”
“처제가? 오랜만에 통화했나보네?”
“네~ 한동안 마니 바쁘다던 애가 오늘 한가했나봐요”
“응.. 그런데?”
말 그대로 오랜만에 듣는 처제의 이름이다.
현서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반가운 이름에 관심을 보였다.
“이런 저런 고민같은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앞으로의 진로에 대해서 생각이 많더라구요 요즘”
“진로에 대해서라..
처제가 최근까지 했던게 어떤 쪽 일이었었지?”
“일이라기보다~ 음..
무슨 게임방송이었나~? VJ.. 그걸 잠깐 파트타임으로 한다고 했었어요”
“게임방송 브이제이?
그런걸 알바삼아 할 수도 있나.. 그건 그런 직종이 아닐텐데 말야”
“.... 그래요? 몰라~ 걔는 그렇게 말하던데..”
“음 암튼 그래서~ 지금은 하다가 그만둔거야?”
“아뇨, 아직 하고 있는 상태예요.
그런데.. 계속 그 일을 할 자신이 없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