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 시간을 이용해서, 깔깔거리며 복도를 오가는
여직원들이 그를 보고.. 어려워하며 고개를 숙인다.
조금 어색하게 인사를 받아주는 현서.
다른 때 같으면 오고 가며 한마디씩 아랫사람들도 챙겨주는데
오늘은 고민이 많은지라, 사람을 별로 마주하기 싫었다.
20대 초중반 저런 쌩쌩한 년들도~
그렇고 그런.. 지 애인 말고도, 딴 남자의 품에 안겨보고 싶단 생각을 할까?
하하. 그럴 수도 있겠지, 변태 남친만나서 잘못 꿰이면..
꼭 여자 입장 말고..
저 밑에 팔팔거리며 돌아댕기는 멍청한 사내놈들도 마찬가지일겨.
지 앤이나 와입을 딴 놈한테 대주고 싶어할지도..
소싯적의 나처럼 말야.
네토라레~ 요즘 말로는 그렇게 표현하지, 일본식 신조어라나 뭐래나..
참 좆같은 것만 기가 막히게 잘 들여온단 말야..
피식~ 하기야..
나도 싱싱한 여직원들 보면 절로 군침이 동하고,
애인이 있든 없든 데리고 자보고 싶을 때가 많으니까.
아니야, 애인이나 남친이 있는 여자가 더 정복하고픈 드는 법~
그게 수컷의 자연스러운 본능이니까..
서른 되기 전까지 내가 바로 산 증인이잖어.
그래도 37이 된 이제는...
이따금씩 쭉쭉빵빵한 여직원들을 보면 군침이 동하지만~
상상으로만 그치고 직접 행동으로 나서지는 않았다.
인간 강현서의 진면목을 알고 있는 예전 지인들이라면 놀랠 거다.
철부지 시절 망나니같은 짓을 워낙 많이 하고 다녔으니..
한 집안의 가장으로서 성숙해지고 어른이 되었다고 자부하면서~
스스로 생각해도 더러운 행위들을 멀리했던 것이다.
그날 퇴근 시간.
째깍 째깍...
정시 퇴근은 바라지도 않는다.
부장 개늠이 얼른 자리를 비워주기만 바랄뿐..
가슴 졸이며 사무실을 빠져나온뒤,
드디어-
저장해두었던 번호를.. 떨리는 손가락으로 꾹- 꾹- 누른다.
몇 번이나 전화를 걸기에 앞서서 망설여지더니,
한번 마음 굳히고 버튼을 누르자 일사천리다.
뚜르르르..
신호가 간다.
“어, 그래.. 성민이냐? 나 현서다..”
오랜만에 들어보는 각자의 목소리.
반가운 안부인사를 서로 건넨다.
건강은 어떠냐, 차도는 있느냐..
자잘한 겉치레 인사와 마음에 없는 신변에 대해 묻고..
조심스럽게 그의 기색을 살피며 천천히.. 아내의 이야기를 성민에게 던져본다.
꿀꺽..
“........
정말로, 경훈이가 너한테 그런 이야길, 꺼냈어..?”
“그래.. 내가 들은대로 너한테 전하는거다..”
“........
나는, 수, 술먹고 술김에.. 후니한테 그냥 바라는 점을.. 이야기한건데..”
큭, 이놈 봐라.
“하하~ 바랬다는 거는, 성미니 너도 간절히 원했다는 말이잖아”
“...... 그게.. 그, 그렇게 되지..”
“뭐가 말이 부실해, 확실히 말해봐”
“어, 응...?”
“너! .....
내.. 와이프하고.. 만나길 원한다면서?”
흥분했는지 현서의 목소리가 높아진다.
무척 조심스러워하는 성민의 허스키한 음성과는 대조적이다.
성민은 폐암 말기라는 말 답게,
원래의 목소리보다 한층~ 마치 가래낀 것처럼 탁한 음색이었다.
잠깐의 통화를 하면서 듣기 불편할 정도였다.
여하튼 전화를 걸기 전까지 초조하고 두려웠던 현서가
지금은 오히려 성민을 다그치고 있다.
“무슨 말인지 알지?
내가 경훈이 새끼한테 오늘 까지는 늦어도 답을 줘야한다.. 이 말이야”
“....... 갑자기.. 그렇다고 해도..
나는 지나가는 말로 내비친 의사고, 이렇게 급하게.. 당황스럽네..”
아, 이 능구렁이같은 짜식. 솔직하지 못하네.
마음 같아서는 외치고 싶었다.
"야 이 새끼야, 너 내 마누라랑 자고 싶잖아!"라고.
꾸욱~ 핸드폰을 말아 쥐었다.
콩닥 콩닥...
한마디 한마디 건네기가 두근거리고 설렌다.
깊게 한숨을 크게 들이쉰 뒤에, 결론을 말했다.
“야, 쓸데없이 말 끌지말자 우리.
그냥 시원하게 말해, 나 걱정하지 말고.. 진짜 괜찮거든.
생각을 수도 없이 했고, 결정하고 하는 말이다.
성민아.
너 언제 우리 곁을 떠날지 모르는 판인데..
나도 너한테 진 마음의 빛도 많고.
마지막이 될지 모르는, 작은 선물이라고 생각하자”
성민은 잠시 말을 잇지 않았다.
오히려 의연한 척 말을 건네며, 마음을 굳혔다는 현서 목소리를 듣고
수화기 너머에서 조용히 생각을 하는 느낌이다.
후~
두근 두근...
그 십여초의 시간들이.. 억겁의 시간처럼 느껴졌다.
“그런가.. 너희 부부가 괜찮다면..
나같이 어리석고 모자란 사람에게..
작은 친절을..
미안하다.. 그런 거창한 표현 안쓸게.
어쨌든 내 오랜 바람을 들어주고 싶어한다는 걸.. 나도 이제 알겠어..”
“.... 응..”
대화 짬짬이 성민의 말을 들으며,
‘오랜 바람’이라고 하는 말에 뭔가 미심쩍은 기분도 들었다.
풋~ 나도 신경 과민이 지나치군..
“그래 알았어, 성민아.
만나서 할 이야긴데.. 나도 모르게 마음이 너무 앞섰다.
우리 일단 만나자, 너 음식 뭐 좋아하냐?”
“오늘..?
오늘은 내가 시간내기가 좀 그런데..
아니 오늘이 아니어도, 나는 너 알다시피 병상에 있는 몸이라..”
아 그렇군.. 이 녀석은 아픈 몸이지..
그런 겔겔대는 몸으로 어찌 내 마누라를?
참나~
잠시 머리를 굴리는 현서,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럼... 중간 과정 다 끊고, 니가 우리 집으로 와”
“내가??....”
“어~ 나도 마음의 준비는 더 해야하고..
우리 와이프 주연이한테도 이런 저런 얘길 꺼내야하니까..”
“......아!.... 아직 말하진 않은...”
“신경쓰지마, 니가 신경쓸 필요 없어.
그러니까, 일단은..
대략적으로 일주일 후 오늘이라고 알고 있어”
“뭘 말이야?”
“일주일 뒤, 다음주 금요일 저녁에.. 우리 집으로 니가 직접 오도록해”
“너, 너희 집으로, 내가 직접..???”
“그래. 다른 디테일은 내가, 차후에 톡으로 다시 통보해줄테니까..”
기타 몇가지만 이야기하고, 그렇게 전화를 끊는다.
후, 이제 된건가..
한고비는 넘긴 거야?
임경훈 이 새끼야..
그래.. 한번 너희들 미친 척하는 것 뻔히 알지만, 어디 나도 한번 맞장구쳐보마.
모를 일이었다.
이쯤 되면 분노에 몸이 휩싸이고 막막해야 정상일텐데..
집으로 향하는 핸들을 돌리는 현서의 가슴은~
야릇한 흥분감과 불안함이 동시에 차오르고 있었다.
=
프롤로그 격에 해당하는 1부입니다.
한참 전부터 생각해왔던 소재입니다..
예전에도 후기에 남겼습니다만, 가끔씩 컴퓨터가 고장나는 통에-
몇번이나 시놉시스와 줄거리를 기록해놓은게 날아가서, 눈물을 삼켰습니다.
어쨌든 다시 쓰게 되어, 저도 기쁘게 생각합니다.
색엄 10부와 이 글 둘중에 무얼 쓸까, 고민하다가 여론을 보고 먼저 올립니다.
댓글에 전부 네토를 원하셔서(!?!) 놀랐네요;;
미리 안내드린대로 이 글은 최대한 길지 않도록, 10부 안팎으로 끝내려 합니다.
제목이... 좀 유치하고 오글거리는 감이 있죠. 별별 생각을 하다가 요걸로 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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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고.. 첫회고 하니 추천은 상관없습니다만
댓글 좀~ 얘기안해도~ 적고 가십쇼~나의 아내를 돌려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