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화 (1/21)

나의 아내를 돌려줘

1부

초가을이지만 바람이 제법 차다.

며칠 전까지도 그런대로 날이 따듯했는데,

어제부터 이틀 내내 비가 내려서 궂은 날씨다.

인적이 드문 지방의 작은 병원 입구.

장례식장 주변에 여러대의 차가 줄지어 들어서고 있다.

주차장 면적도 협소한 편이지만, 방문객이 많지 않아 크게 붐비지 않았다.

저녁 시간 익숙한 얼굴들이 하나둘씩 식장으로 들어서고..

거구의 남자 둘이서, 검은 양복을 입고 식장 한켠에서

사람들의 이목을 피해 조용히 대화중이다.

“사람이 그래도 제법 왔어, 생각보다는..”

“그런 것 같아.. 진태 녀석이 인맥이 나름 좋잖아~

다 이런 경조사 때 그 사람의 평소 인간관계가 드러나는 셈이지”

“풋... 그런가~ 그나저나 너 할 얘기가 있다며..”

“아아, 다른게 아니고.. 성민이 때문에 말이야”

“성민.. 성민.. 진성민??”

“그래~ 용케 기억은 하고 있냐?”

“...... 기억하고 말고!..”

둘다 짙은 올 블랙차림이어서 분위기도 칙칙한데다,

두 사람 모두 거구의 운동선수 타입이라는 공통점이 있었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사이좋은 어깨들의 동창회로 혼동할지도 모른다.

한 사람은 머리가 조금 웨이브진 퍼머로 중간 정도 길이.

얼굴이 까무잡잡하고 얼굴 인상은 대체로 시원한 호남형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짧은 스포츠 컷에 안경을 썼다.

얼굴은 하얀데 자잘한 피부 트러블이 숨어 있다.

갈색 피부를 가진 남자, 임경훈.

그가 현서의 얼굴에 난 여드름을 힐끗- 보며 말한다.

오랜 시간 잊혀진 기억이었던..

성민이라는 이름을 듣고 현서도 매우 놀라는 얼굴이다.

“.........

어떻게 지낸데? 별일은 없고?”

“하하~ 궁금할 것 같았어.

오늘 장례식장에 안그래도 니가 오면 말 꺼내려했는데..

성민이 녀석이 좀 좋지 않은 상황이거든”

“오랜만에 얘기하면서 대뜸 좋지 않기는, 무슨 얘길 하려고~”

“궁금하지, 계속 얘기해줄까?”

“궁금하지 임마. 너 답지 않게 이런 분위기에서 무게를 잡는데”

“클클...”

넉살 좋은 웃음의 경훈이, 초조해하는 현서에게 털어놓는다.

지금 두 사람은 친구 진태의 부친상에 참석해 있었다.

대화를 나누는 둘 외에, 또 한사람의 일행은 

장례식장 식당에서 지인들과 대화중이었다.

상주를 포함해서, 네 명의 절친 모두는 스무살 재수시절에 처음 만난 사이다.

서른 일곱 살 동갑의 네 남자.

'4명'이라는 테두리에 속하지 않은, 성민이라는 이름...

반갑고도 다소 껄끄러운 주제가 나오자~ 현서는 썩 달갑지 않은 눈빛이다.

속 마음을 숨기며, 경훈에게 꼬치꼬치 관심을 갖고 묻는다.

“...... 불치병이라니? 

뭐 암이나 그런거야?”

“암이겠지. 나한테도 정확히 말을 안해 얘가~

자기 말로는 이미 세포가 거진 전이되서 손을 쓰기 어렵다 그러네”

“그게.. 무슨 소리야.. 이제 와서 말기라고?”

“어~어~ 쉬잇, 흥분하지마라.

심각한 상황이니까 나도 너한테 말을 꺼내지..

말기라서 성민이 놈도 오래 못살거 같대.. 길어야 6개월 정도”

“하아~! 이거야 원 미치겠군...

무거운 자리에서 또 한사람 곧 떠날지도 모른다는 소식이라니..”

“ㅋㅋ 그런가. 아픈 사람 두고 할 말은 아니지”

“뭐 암튼, 지금 그놈은 어디에 있어?”

“지금 수원에서 지내지”

“살아, 거기서? 부모님이랑 같이 있나”

“어~ 차차 얘기해줄게.. 

쉬잇, 저기 석준이 온다.

야야, 현서야”

“응..?”

“석준이나 진태한테는 내가 한 얘기, 아직은 하지 말아라”

“...... 그럴게”

자리가 자리인지라 더 많은 대화를 나누기가 불편했다.

껄렁 껄렁한 걸음걸이로 다가오는 구릿빛 피부의 남자.

훤칠한 키에 겉멋부리기 좋아하는, 영락없는 제비 스타일이다.

만면에 웃음을 띄우며, 두 친구에게 외치는 석준.

“여어~ 어서 와서 밥들 먹어~ 식당 밥이 맛있다 얘들아”

“새끼야 니는 밥도 잘 쳐묵는다.. 낄낄”

“밥은 먹고 살아야지~ 가실 분은 가시더라도..

산 사람들은 악착같이 먹고 버텨야지 않겄냐!..”

“모처럼 입바른 소리하네.. 색기~

사람들 안에 많이 왔든?”

“몰라, 나도 모르는 얼굴들이 태반이라.. 좀 껄쩍지근하다, 자! 어서 일루와”

석준은 나머지 둘에 비해 야윈 체형이다.

머리 숱은 많지 않은 편이고 광대뼈가 약간 돌출되어 있다.

장례식보다는 하객패션과 더 어울릴 것 같은.. 

세련된 곤색 정장을 빼입었다.

껄껄껄~ 특유의 너털 웃음을 지으며

자못 심각하고 진지한 분위기의 두 친구에게 어깨동무를 한다.

시간이 많이 지나 저녁 열한시경.

상주 진태를 위해 내내 자리를 지키던 세 사람도 피로를 느꼈다.

하품이 나오는 걸 어렵게 억누르며, 옆의 셋 눈치를 보는 석준.

피곤한 안색의 진태와, 나머지 두 사람도 대화를 나누다가 화젯거리가 떨어진 상황이다.

무거운 분위기에 슬슬 자리를 파하자는 이야길 꺼내본다.

[진태] “이제 어서 들어들가라.. 이 시간까지 남아있는다고 고생했어..”

[현서] “아냐, 니가 제일 고생인데 우리 신경쓸게 뭐있어..”

[경훈] “그래.. 진태야, 잘 챙겨먹어라”

[진태] “응 알았으니까 어서들 가. 

괜히 눈치보이게 더 있으면 나만 미안해진다”

[석준] “그럴까.. 미안하다.. 

걸음이 무겁다만.. 발인은 내일 아침이지?”

[진태] “어.. 오전 일곱시..”

[경훈] “장지 어디로 간다고?”

[진태] “광주 쪽으로.. 엄마가 천주교식으로 절차를 밟고 싶어하셔서,

광주에 있는 교구? 공원묘지 쪽으로 갈거같아”

[현서] “그러냐.. 먼길 가는데 많이 힘들겠구마”

[경훈] “멀리 떠나야하니까, 조금이라도 더 먹어두고 숙면해라”

[진태] “그래 니들 말대로 할게. 

그러니까, 얼른 날 도와주는 길은~ 후딱 어여들 가는게 최고야.. 알제?”

[경훈] “야 진짜 미안하다 장지까지 같이 못가서..”

[현서] “그래..”

[진태] “쓸데없는 소리들 하지말고”

세 사람 모두 그 다음날 아침 출근해야해서 자리를 뜬다.

마침 그렇잖아도 발인은 진태와 가족 친지들끼리 떠나기로 되어 있었다.

좀체 발이 떨어지지 않는 걸음으로 셋은 서울로 향한다.

올라오는 차 안에서도 별다른 대화 없이 고요했다.

경훈만 suv 차량을 끌고 왔고, 나머지 둘은 서울서부터 같이 타고 온 것이다.

“들어가.. 내가 나머지 얘긴 따로 전화로 할테니까”

“어~ 알았어, 천천히 줘도 되고”

“짜식~ 그래..”

각자 뿔뿔이 헤어진 세 사람.

현서도 지친 몸을 이끌고 아파트 초인종을 누른다.

띵~동~~

누구세요~?~ 라는 밝은 기운의 목소리가 안에서 들려왔다.

“아! 여보~ 오셨어요?”

“응.. 조금 늦게 왔어..”

“그렇게 늦은 시간도 아닌데요. 호호..

식은 잘 마치고 오신 거예요?”

“어~ 진태 혼자 안쓰러워서 봐줄 수가 있어야지..

속상하기도 하고.. 발걸음도 잘 안떨어지고..

휴~ 당신한테 할 말도 있는데.. 지금은 피곤하니까 나중에 하자”

“그러세요.. 일단 얼른 목욕부터..”

현서의 옷을 받아주며 싹싹하게 챙겨주는 여인.

아름답고 단아한 외모의 아내다.

귀엽게 생긋~ 웃으며 주위를 환히 밝혀준다.

밝은 씩씩한 그 모습에, 심신이 무척 지쳐있던 현서도 웃었다.

이름은 설주연.

현서의 대학 후배로, 무려 남편과 열 살이나 차이가 난다.

물론 현서가 재학중일 당시에 만난 사이는 아니고

졸업후 동문회 모임에 처음 참석하며 우연히 그녀를 알게 되었다.

싹싹하고 선배들을 따듯하게 잘 챙기는 모습에, 홀딱 반해버린 현서.

둘은 주연이 25살일 때 처음 만나 바로 이듬해에 결혼했다.

아이는 아직 없고, 이제 결혼 2년차이니..

스물 일곱의 젊은 아내 주연과 한창 달콤한 신혼 분위기에 젖어 있는 중이다.

아내는 천상 여자라고 불리는 타입이다.

은은하게 흘러내리는 갈색 머리카락이 아주 잘 어울리며

타고난 피부색이 원래 하얗지만, 최근 태닝을 해서 조금 살이 탔다.

167cm의 키에 57kg의 몸무게.

본인은 살이 조금 쪘다고 귀엽게 불평하지만

남편은 거기서 더 빠지면 뼈만 남는다고 놀리며~ 다이어트를 굳이 말린다.

얼굴과 몸매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무척 여성스럽고, 

여고생 시절을 그리워하는.. 여전한 소녀 감성을 간직하고 있다.

몸의 밸런스도 전반적으로 잘 잡혀있는 깨끗한 이미지.

그리고 청초한 분위기를 가장 잘 이끌어주는 것은~

역시 때묻지 않고, 순수함이 가득한 얼굴이다.

눈, 코, 입 모두가 오밀조밀하니 조그맣다.

얼굴 자체가 작아서 매우 조화롭게 잘 가꾸어진 미모다.

가끔 현서는 어떻게 저 작은 얼굴에..

이목구비가 질서정연하게 붙어 있느냐고 감탄하며 놀리곤 한다.

동양적인 차분함과 단아함이 녹아있는 예쁜 얼굴에..

학창시절부터 꽤나 많은 남자들을 설레게 했을 것이다.

그런가 하면.. 순하게 생긴 외모에 걸맞게(?)

약간의 백치미도 지니고 있는 여자다.

중고등학교를 거쳐 대학시절에도 성적이 괜찮았고 머리가 좋았지만

그 실체는~ 완벽해 보이는 느낌과는 다르게..

의외로 허당끼가 많은 여자였다.

여간한 일은 뭐든 잘 웃어넘기고, 낙천적인 마인드를 가지고 있어서

아내의 그런 허당스러운 모습도 남편은 그저 이쁘고 사랑스럽다.

남편과는 10살이나 나이차가 나다보니..

처음 사귈때는 그래도 장난을 많이 치고, 큰 오빠 뻘에게 대들기도 했는데..

지금은 결혼 후 최대한 남편의 의견을 존중하고 따른다.

본래 타고난 순종적인 성향이, 천상 가정주부와 잘 어울리는 여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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