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누나, 오늘 쇼핑갈까?"
"왜, 너 뭐 살꺼 있니?"
"아니 뭐 꼭 살게 있어서가 아니라, 누나도 집에만 있으면 답답하잖아."
"하긴 그래.."
"그리고 누나도 멋좀 부리고 그래. 매일 아줌마처럼 그러지 말고..."
"치, 내가 멋 부려서 뭐하니? 봐줄 사람도 없는데. 호호호"
"나는 뭐 사람 아닌가? 난, 누나가 옛날 처럼 자신을 가꾸고 당당해 졌으면 좋겠어"
"내가 그렇게 아줌마 같았니?"
"아..아니야...그런게...아니구..."
수연은 무엇을 입어도 아름다웠다. 월남 치마를 입었어도 결코 그녀의 아름다움을 깍아 낼 수는 없을 것이다.
깍아낸 듯한 용모에 늘씬한 몸매는 무엇을 입든, 어디에 있든 그녀는 빛이 났다.
점심을 먹고 쇼핑하러 방을 나온 상준은 깜짝 놀랐다.
"치, 왜그렇게 놀래니?"
드라이를 했는지 한쪽으로 비스듬히 빗겨진 머리에는 윤기가 흘렀고 검정 정장에 받쳐입은 하늘색 브라우스는 고상하면서도 신비로운 아름다움을 자아냈다.
특히 무릎 위까지 올라 간 짧은 치마에서 뻗어 나온 각선미는 그녀의 섹시함을 더욱 두드러지게 만들었다.
"굳, 엑셀런트"
"치, 아부는....."
"잠깐만 기다려 누나"
상준은 부리나케 방에 들어 가더니 말쑥하게 차려 입고 나왔다.
"에이 누나가 그렇게 이쁜데 나는 반바지 입고 나갈 수 없잖아...헤헤"
수연은 동생이 말쑥하게 정장 차림으로 나오자 너무나 멋져 보였다.
"자, 가실까요 아가씨"
"에는 또 까분다. 호호호"
신혼 때도 이렇게 기분 좋은 적이 없었다.
수연이 차를 주차장에서 꺼내려 하자 상준이 말렸다.
"우리 그냥 걸으면 안될까?"
"에는, 너무 멀어.."
"아니 걷다가 택시도 타고, 지하철도 타고. 또 올때 술한잔 하려면 차는 좀....."
하늘을 보니 날이 너무 좋았다.
수연은 상준과 함께라면 무엇이든 좋았다.
"그래. 그럼"
"자, 끼시지요"
"피, 장난은"
그러나 이제 수연은 상준의 팔에 팔짱을 끼는게 자연스러웠다.
지나치는 사람들은 이 선남선녀의 행복한 모습을 넋을 읽고 쳐다 보았다.
백화점은 세일 때문인지 사람들로 붐볐다.
"상준아, 거긴....여자 속옷 매장이잖아..."
"아이 참, 빨리 들어 오라니까"
단정하게 유니폼을 차려 입은 매장 아가씨가 맞았다.
상준이 그녀에게 귀에 말로 소곤거리니 매장 아가씨가 웃었다.
둘이 따라간 곳은 속옷 중에서도 가장 야한 속옷을 파는 곳이었다.
수연은 얼굴이 붉어졌다.
"아이, 아가씨 왜 그렇게 부끄럼타세요. 요즘엔 커플끼리 이런거 자주 선물하고 그래요. 근데 이번에 결혼하시나봐요. 너무 잘 어울리세요...호호호"
말쑥하게 차려 입은 것이 혼수를 준비하러 나온 예비 부부처럼 보였나 보다.
"아, 아니에요...아가씨...결혼이라니요"
수연이 당황해서 입을 열었지만 상준이 더 빨랐다.
"아니에요. 이번에 결혼하는게 아니고 아마 내년쯤 할거 같애요. 하하하"
상준은 수연을 쳐다 보며 크게 웃었다.
수연은 얼굴이 더욱 붉어졌다.
매장 아가씨가 이것저것 권하자 상준은 실크 팬티,브라 세트와 T자형 팬티를 샀다.
쇼핑백을 받아 든 수연은 난감하였다.
매장에서 떨어지자 수연이 상준의 팔을 꼬집었다.
"어떻게 이런 걸 입으라고.."
"피, 어때. 그게 뭐 보이나? 헤헤헤."
"너어, 자꾸 놀릴래?"
"여자의 아름다움은 속옷에서 완성된다. 뭐 그런 광고도 못봤어? 나는 이쁘고 좋기만하던데. 내가 입을 수도 없고. 하하하"
상준이 큰 소리로 이야기하자 수연은 말도 못하고 걸음만 재촉하였다.
둘은 선글라스와 몇가지 용품을 더 산후 백화점을 나섰다.
그냥 들어가기 아쉬웠던지 상준이 이끄는대로 수연은 젊은이들이 많이 몰리는 호프집에서 생맥주를 마셨다.
왁자한 분위기가 젊음이 넘쳐 나고 있었다.
사람들은 둘이 맥주집으로 들어서자 자신들이 알고 있는 연예인 리스트를 떠 올리며 혹시 연예인이 아닐까 한참을 쳐다 보았다.
남자 손님들은 상준을, 여자 손님들은 수연을 부러워하며 힐끔힐끔 쳐다 보았다.
맥주 집을 나서자 어둠이 몰려 오기 시작했다.
"자, 이제 어디로 뫼실까요 마님..."
"이젠 가야지, 너무 늦었다."
상준은 '집에 가봐야 기다리는 매형도 없는데 뭐'하는 말이 목구멍까지 나왔다.
상준은 집에 들어가기 전에 비디오 가게에 들렀다.
"상준이 뭐 보고 싶은 영화라도 있니?"
"아니 그냥. 뭐 재미있는거 있나 해서 보는거지 뭐"
이리저리 매장을 둘러 보던 상준이 비디오를 꺼내 들었다.
쟈켓에는 벌거벗은 여인들이 자극적 포즈를 취하고 남정네들을 유혹하고 있었다.
"아이 애는....그런걸..빌리구 그래"
수연은 남들이 볼까 주변을 살폈다.
"에이 뭐 어때. 이것도 다 사람들 보라고 열심히 만든건데. 그리고 음식도 편식하면 안좋듯이 영화도 마찬가지야. 안그래?"
"치, 하여튼 말은 잘해요."
계산을 치루자 주인 아저씨가 사람좋은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그래요. 이것도 다 신혼때 뜨끈하게 보는 거지요. 하하하. 하여튼 재밌게 보세?quot;
상준은 비디오 가게 주인도 둘을 부부처럼 말하니 기분이 너무 좋았다.
"누나, 우리 둘이 꼭 부부 같은가봐. 보는 사람마다 그러네....헤헤"
수연은 그 말 다음에 이어진, 혼자말처럼 상준이 조용히 내뱉는 말을 또렷이 들었다.
"나도 그랬으면 참 좋겠는데....."
앞서 걸어가는 상준의 어깨가 외로워 보였다.
"바보..."
상준이 옷을 갈아 입고 거실에 앉아 있자 수연이 나왔다.
"누나 입었어?"
"뭘 입어?"
잠시 생각하던 수연은 아까 그 속옷이 생각났다.
"에이 이쪼끄만게 누날 놀려"
수연은 장난치듯 어깨를 때렸다.
"놀래긴? 입었구나?"
'너, 진짜"
"알았어. 이제 장난 안칠게"
"근데 불은 왜 끄고 그래?"
"아 참. 이런 영화는 원래 분위기 탁 잡아 가면서 봐야 한다니까"
"에구 못말리겠다 우리 상준이"
수연은 오전에 상준이 외모에 신경 쓰라는 말에 자주 입었던 긴 원피스 대신에 민소매 티에 무릎 정도 까지 오는 줄치마를 곱게 차려 입고 옆에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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