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4화 (44/50)

4월 25일 밤...

“여어? 기다렸어?”

“....”

경멸에 찬 시선으로 속옷을 벗은 채로 서 있는 캐서린은 레인을 흘겨보았다. 오줌 때문에 더럽혀진 속옷은 빨아야 하고, 레인이 허락한 속옷은 한 벌이 전부다. 그러므로 지금은 싫어도 벗고 있어야 한다. 

‘고작 옷 하나에 비참해...’

캐서린은 서서히 우울해져가고 있었다. 자신이 살던 세계에서 자신은 여신과도 같은 존재였다. 물론 모든 사람에게 그런 것은 아니었고, 자신을 착취하고 학대하고 유린한 사람도 있었지만, 적어도 밝은 곳에서 만큼은 그녀는 모두에게 사랑받는 존재였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옷 하나에 구걸을 해야 하는 처지다. 그런 사실들이 쉽게 바뀔 거라고 믿어온 낙관론이 무너지자 마음이 약해지기 시작하고 있었다.

“에이, 딱딱하게 왜 그래?”

“....”

“대답 안 할 거야?”

“.... 변태..”

짧지만 굵은 한 마디였다. 경멸, 분노, 수치스러움, 역겨움 등의 감정이 아주 깔끔하게 얼굴에 드러나 있었다.

“왜?”

진심으로 모르겠다는 순진무구한 표정으로 미소를 짓는 레인의 행동에 캐서린은 조금 헷갈렸다.

‘뭐야? 진짜로 자기가 한 짓이 이상한 짓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거야?’

그녀 역시 극단과 같은 곳에서 연기를 한 경력이 있었다. 연기를 하는 것은 경력이 없다면 상당히 부자연스럽고 어색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소년의 저 순진무구한 표정은 정말로 왜 자신이 이 상황을 싫어하는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것으로 비칠 정도로 깨끗했다. 

‘연기가 아니라면 진짜 문제 있는 거고, 연기라면 정말 감쪽같다는 건데..’

요약하면 어느 쪽이든 그다지 좋은 상황은 아닌 것이다.

“이리 와서 앉아. 서 있으면 불편하잖아.”

“뭘 하려고...”

“너 키아라 옆에서 잘 거야? 아마 걔가 널 그냥 두진 않을 텐데?”

“....”

낮과는 달리 노예는 주인의 허락이 있지 않는 한, 노예들은 한 곳에서 잔다. 물론 예외적으로 마법을 쓰는 마녀는 자신의 개인 방이 있다. 아마 이 소년에게 가장 총애를 받는 건 그 노예일 것이다. 그 사실이 캐서린을 더 곤혹스럽게 만들었다. 오줌을 아무렇지 않게 마시면서도 가장 주인에게 신뢰받는 노예가 아니라면? 래티샤가 얼마나 무서운 짓을 할 수 있을지 상상하기 어려웠다.

“이리 와서 앉아.”

“명령입니까?”

“그냥 편하게 말해. 너까지 딱딱하게 말하니까 답답해서 그런다.”

결국 고집을 꺾은 캐서린은 레인의 침대 앞에 놓인 의자에 앉았다.

“자 받아.”

“!!!”

레인이 건넨 것은 허름한 옷이었다. 척 봐도 싸구려, 대놓고 이건 걸레라고 표현해도 좋은 수준이다. 

“받아.”

“받으면.. 뭘 시킬 건가요?”

“아! 거참!! 받으라면 받아! 무슨 말이 그렇게 많아!”

“.... 싫어요. 무슨 짓을 할지 모르는 사람이 주는 호의를 받는 건.. 위험하니까요.”

“진짜 위험한 게 뭔지 알아?”

레인은 옷을 칼을 꺼내 찢어서 땅에 내던지고 창문을 연 다음 밖을 보도록 귀를 잡고 끌었다.

“!!!”

“살려주세요!!!”

“키케케케케!!!”

우두두둑-!!

달빛 아래로 거대한 오우거가 여자의 두 팔을 잡아 부러뜨리는 끔찍한 소리가 났다.

아드득-! 아드득-!!

뼈가 씹히는 소리, 그렇게 저 노예는 죽어간다.

“봤지?”

“....”

캐서린은 두려움에 눈물이 차오르며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상상 이상으로 이곳은 무섭고 끔찍한 곳이다. 그리고 자신의 생사여탈권을 쥔 소년이 이제야 먹이사슬의 위에 있는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널! 저 운명에서 벗어나게 해주겠다 이거야! 저렇게 죽고 싶어?”

“아니요... 싫어요.. 그건...”

“그럼 적어도 이럴 땐 내 호의를 받아들여! 내가 너랑 심심해서 하루 종일 장난치고 논 것 같아? 미안하지만 난 할 일이 태산이야! 넌 내 귀중한 시간을 빼앗았으면서도 아직도 이해하지 못했어? 멍청한 거야? 난 적어도 네가 사리분별이 빠르고 똑똑하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널 잘못 봤나?”

“.... 무서워요.. 어떻게 해야 해요...”

“날 믿어. 그리고 마음껏 까불어.”

“네?!”

캐서린은 이 상황이 잘 이해가지 않았다. 보통 이런 상황으로 자신을 끌고 간 것이라면 복종시키고 겁박하고 원하는 것을 하기 위해서 괴롭힐 텐데, 이 남자는 반대로 지금까지 보여 온 건방진 행태를 계속하라고 말했다.

“내가 허락하는 한도 내에선 네 마음대로 하라고.”

“저기..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어요.”

“그건 네가 알아서 해결할 문제지.”

“정말.. 절... 저렇게 죽게 만들지 않을 거죠?”

“그럼!”

“전.. 그럼 어떻게 해야 하죠?”

“그냥 지금처럼 지내. 아! 그렇다고 날 너무 경계하진 말아줬으면 좋겠어. 너랑 투닥거리며 지내는 건 지금 내 인생에 가장 재미있는 일 중 하나니까.”

이건 사실이었다. 그는 무척 교활하다. 거짓과 진실을 섞고 마구 뒤흔들면 상대가 그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게 된다. 

“정말.. 그게 단 가요?”

“그럼! 내가 널 진짜로 미워했다면 키아라 옆에 자도록 뒀을 걸? 아마 걘 지금쯤 널 두들겨 패고 싶어서 이를 갈고 있을 거라고?”

“... 저.. 이제 어쩌죠?”

“걱정 마. 내 명령이 떨어지기 전엔 절대로 손가락하나 건들지 못할 테니까.”

레인은 작은 상자를 꺼내 캐서린에게 건네었다. 상자를 열자 보인 것은 은발에 잘 어울리는 연분홍빛 드레스였다. 

“예뻐요..”

사실 자신이 살던 세계에서 이런 드레스는 귀한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럼에도 뭔가 제대로 된 물건을 받았다는 사실 자체가 감격스러워서 옷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입어도.. 되죠?”

“내가 입혀줄게. 일어나.”

레인은 꼼꼼하게 옷을 입히며 핏이 잘 살도록 신경 써 주었다. 캐서린은 방에 있는 전신거울에 비친 자신을 보며 표정이 밝아지기 시작했다.

“잘 어울려.”

“헤헤.. 감사합니다.”

“에이! 그게 아니지! 하던 대로 하라니까?!”

“하나도 안 고맙거든요?!”

“그래! 그래야 너 답지!”

레인은 그녀의 볼기짝을 두들겨주며 격려해 주었다. 캐서린의 조교는 본격적으로 이제부터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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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소지금: 807골드

지출내역: 

도축용 하급 노예 구입: 5골드

노예 캐서린 구입: 300골드

D+하인 조교 선금: +100골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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