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7일 밤..
똑똑-
“들어와.”
늦은 밤, 잠을 자기 위해서 채비중인 레인의 방을 들어온 것은 키아라였다.
“부르셨습니까?”
“여기 앉아.”
레인이 가리킨 침대의 모서리에 그녀는 앉아 고개를 숙였다.
“많이 아팠지?”
“아닙니다.. 제 실수로 인해.. 흑... 죄송합니다, 주인님.. 제가 실망시켜서...”
“아휴.. 키아라는 어쩜 이렇게 마음이 착하니?”
레인은 부드럽게 그녀의 볼을 쓰다듬어 주었다. 일전에 노예 조교를 위한 모든 수단과 방법들은 래티샤를 포함한 3인의 각본이라고 일러두었건만 이 진지한 노예는 진심으로 자신에게 미움 받았다는 생각에 슬퍼하고 있는 것이다. 래티샤와 달리 키아라는 애정이라는 뿌리위에 자라난 복종심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에 때론 달래줘야 한다. 하지만 레인은 그다지 그런 그녀가 싫증나지는 않았다. 어쨌든 진심으로 자신을 따르려고 노력하는 노예에게 사랑이라는 독을 먹이는 것은 그가 좋아하는 방식 중에 하나니까.
“흑흑... 주인님..”
“그래.. 하아.. 역시 키아라에겐 이 일이 무리인 걸까? 아무리 날 위해서라곤 해도 누군가를 속여야 하고.. 그런 모든 것들이 말이야.”
“아닙니다! 결코 그런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제 판단의 착오로 주인님께 폐를 끼쳤다는 생각에.. 주인님이 때리신 것은 아프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제 마음은 찢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정말 주인님께 버림받는다면... 저는 오늘에야말로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얼마나 주인님께서 제게 애정과 배려를 해주시는지..”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거지?”
“오늘.. 농장에 있던 노예들을 보며 깨달았습니다. 아마 그 가축들은 주인에게 쓸모가 없어진 노예일 것입니다.. 어쩌면 큰 실수를 했을지도 모르고 단순히 필요 없어서 버린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주인님께서는 다르십니다. 제가 주인님을 바라보도록 기다려주셨고 참아 주셨습니다. 돌이켜보니 제가 얼마나 주인님께 불손하게 굴었는지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주인님을 만난 것은 행운입니다.”
“이런.. 키아라는 언제나 내 자신보다도 날 더 아껴주는구나. 정말 착해. 이리 와서 안겨봐.”
“네..”
떨리는 목소리로 키아라는 레인에게 파고들어 그를 세게 안았다. 그런 그녀의 귓속에 레인은 조용히 속삭였다.
“괜찮아. 오늘 내가 널 때린 건 네가 미워서가 아니었어. 그 상황에서 저 밖에 있는 어리석은 노예에게 이 상황이 얼마나 진지한지를 상기시켜주고 싶었어. 널 때린 건.. 내 마음이 더 아파. 오히려 사과는 내가 해야겠지. 하지만 그렇게까지 진지하게 하지 않았더라면 알비나는 아마 이 상황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못했을 거야. 오늘 넌 정말 잘해 주었어. 난 오히려 키아라가 날 원망하고 있지 않을까 걱정 했는걸?”
그녀의 볼을 가볍게 꼬집고 흔들자 그제야 환하게 웃었다. 이런 보물이 또 있을까? 래티샤의 충성심은 광기라고 표현할 수 있다. 매우 잔혹하며 지독하고 끔찍한 일면들이 있다. 그녀는 자신과 닮은 구석이 많다. 반면 키아라는 순종적이며 자신의 뒤에서 머리를 숙이고 따라올 자세가 되어있는 사랑스러운 소녀다. 오늘은 무척 피곤했지만 레인은 그녀에게 작은 포상을 주기로 결심했다. 최대한 사랑스럽게 이 노예를 키워야 한다. 레인은 자신에게 종속될 노예들을 결코 일관성 있는 모습으로 조교하고 싶지 않다. 각각의 색을 유지한 채, 아름답게 스스로를 표현할 수 있어야만 한다. 키아라의 지금과 같은 모습을 유지하는 것은 수고스러운 작업이지만 이 또한 그에게는 즐겁다.
“주인님..”
하지만 오늘은 그녀에게 피학조교를 하는 것은 옳지 않은 것 같았다. 키아라는 이미 충분히 헌신하는 마음이 있는 노예이고, 굳이 지금의 황홀한 기분을 망칠 필요는 없다. 레인은 오늘 그녀에게 쾌락을 선물해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