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6일 저녁..
“마음의 준비는 되었나? 자유인 키아라여.”
“네.. 되었습니다.”
그녀의 몸은 아주 깨끗하게 치료되어 있었다. 테크노스피어의 기술력으로 망가져버린 뼈와 근육들을 원래대로 복구시켰고, 체력 또한 회복시켰다. 이 대가로 약간의 수명을 잃었겠지만, 어차피 그대로 뒀으면 죽는 것이기에 손해본 장사는 아니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럼 저 안으로 들어가시게. 눈을 감았다 뜨면 다시 그리운 트리스테인에 도착해 있을 것이네.”
도시의 유명인사들은 그녀에게 모두 찬사를 보내고 있었다. 이곳은 콜로세움에 위치한 챔피언의 명예의 전당. 이곳에 기록된 여전사는 역사가 되어 영광스럽게 회자될 것이다. 그리고 그 챔피언의 주인에게도 마찬가지다.
‘저 이상한 빛이 나오는 기계라는 상자 안으로 들어가면 모든 것이 끝이라는 거구나...’
긴장이 되었다. 그토록 바라고 원했던 일... 그녀는 자신의 소중한 대검을 바라보았다. 성검 에스텔, 실상은 풍압을 일으키는 마검의 하나이지만 그조차도 귀중한 트리스테인에선 이 검이 정의와 힘을 상징하는 물건이었다.
“뭘 망설이고 있나? 어서 들어가시게.”
“그분은... 제 주인님은 여기 안계십니까?”
“그는 더 이상 자네의 주인이 아니네. 자넨 자유인이야. 어서 들어가래도.”
키아라는 잠깐 눈을 감고 그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리고 망설이지 않고 자신의 검을 빛이 나는 기계 안으로 자신의 검을 던졌다.
파지지직-!!! 슈웅!!!!!!
전당에 모인 자들은 모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키아라를 바라보았다. 키아라는 스스로 미소를 지었다.
“주인님...”
“시끄러... 말 걸지 마.”
“흑흑... 너무 상심하지 마세요..”
짝-!!
“빌어먹을... 막판에 이런... 씨발!!!”
집에 돌아온 레인은 화가 나서 래티샤의 뺨을 때리며 발로 찼다. 무언가 분풀이를 하고 싶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노예새끼는 역시 노예새끼다. 인간취급을 해주니 개돼지가 진짜 인간이 된 줄 착각을 한다.
아니다. 과정은 아주 훌륭했고, 계획대로 착착 잘 맞아 떨어지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한 곳에서 완벽하게 어그러지고 말았다. 그 소대가리가 모든 걸 망쳤다. 빌어먹게도.
“주인님.. 더 때려주세요. 으윽... 감사합니다..”
래티샤는 스스로 레인의 주먹과 발길질을 받으며 더 때려줄 것을 요구했다. 자신의 주인이 스스로를 무능하게 여기며 자책하는 모습을 보느니 차라리 자신을 두들겨 팸으로서 기분이 풀리길 간절히 바라며..
“하아..하아아.. 괜찮나?”
“네.. 주인님.. 아직 괜찮습니다. 마음껏 때려주세요.”
“그럴 생각이야. 다물고 있어. 이빨이 나가면 치료비가 깨지니까.”
손바닥으로 주먹으로 발로 보이는 곳을 무차별하게 지칠 때까지 후려갈기고 나니 기분이 조금 풀리는 것 같았다. 머리가 차가워지고 조금 제 정신이 돌아왔다. 역시 노예는 때려야 제 맛이다.
“미안하다. 네가 잘못한 건 아닌데.”
“아니에요. 당치도 않으세요. 주인님은 절 새롭게 만들어 주신 분이세요. 그러니 제 몸.. 아니 제 목숨이라고 해도 주인님께서 기꺼이 이용해주신다면 전 받아드릴 수 있어요.”
“그래, 넌 나의 최고의 작품이지.”
레인은 엘릭셔 포션을 래티샤에게 건넸다. 아무리 화풀이를 했다고 해도 이런 상처자국이 남게 두고 싶진 않았으니까. 그건 앞으로 조교할 새로운 노예를 위해서도 좋지 않다. 곧 약효가 돌며 사라지는 래티샤의 상처와 함께 레인의 분노도 가라앉았다.
“앞으로 이런 실수는 다시는 없을 거야!”
“목숨을 바쳐서 주인님의 뜻을 이루도록 돕겠습니다.”
래티샤는 굴종적인 자세로 스스로 개처럼 엎드려 자신의 코피가 묻었던 그의 발을 깨끗하게 핥았다. 자신의 더러운 피로 사랑하는 주인님의 몸을 더럽혔다는 죄책감이 느껴졌다.
“됐어. 밥이나 먹자. 젠장.. 이럴 줄 알았으면 그 성검도 안 사는 건데.. 괜히 비싸게 주고 사서..”
자그마치 2000골드였다. 그 돈만 있었어도 손해는 적었을 것이다. 물론 완전히 손해만 있는 건 아니었다. 그는 어느 정도의 입소문을 탄 명성을 얻었고, 관객들이 던진 골드로 그 손해도 조금은 메웠으니 긍정적인 방향으로 검토하기로 결심했다. 그때..
똑똑-
누군가가 문을 두들겼다. 노예상인의 집에 문을 두들기는 것은 개인적인 의뢰를 할 때 밖에 없다. 하지만 레인에게 스스로 찾아와 의뢰를 할 만큼의 인지도는 없다.
“제가 나가볼게요!”
“아냐, 됐어. 내가 나가보지.”
래티샤를 저지하고 레인은 문을 열었다. 아무도 없다. 장난?
“주인님의 노예가 주인님 곁으로 돌아왔습니다.”
고개를 숙여보니 보인 것은 무릎을 꿇고 환하게 미소 짓고 있는 키아라였다. 그제야 레인은 환하게 웃을 수 있었다. 그리고 결심했다. 멍청하게 일이 끝나기 전까지 성급하게 판단해 화풀이를 하는 어리석은 짓은 다시하지 않기로..
“갑자기 왜 마음을 바꾼 거야?”
레인은 키아라를 집으로 들여 돌아온 까닭을 물었다.
“전 당신의 노예입니다. 당신의 곁에서 있는 것이 자연스럽지 않은 것입니까?”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바보 같은 질문이었다. 레인은 어깨를 으쓱거렸다.
“난 네가..”
“트리스테인에 돌아갈 것이라고 생각하셨습니까?”
“음.. 사실.. 그랬지. 넌 스스로 기사로서 사명감이 투철하니까.”
“네, 사실은 그랬습니다. 하지만 어제 그 몬스터에게 맞으며 의식이 희미해질 때, 당신만이 눈에 보였습니다. 전 계속 고민했습니다. 주인님의 곁에 남아야 할지.. 아니면 돌아갈지.. 하지만 제가 죽음 앞에 선 순간 진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보였고, 그건 당신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주인님..”
키아라는 눈물을 흘리며 레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이로서 완벽하게 키아라의 조교에 성공했다. 우여곡절이 많았고, 거의 실패하기도 했지만 결국 마지막에 운이 따라주었다. 하지만 그 운의 밑바탕에는 레인의 인내와 치밀함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키아라님, 그럼 왜 자유를 선택 하신거죠?”
래티샤의 질문은 레인도 궁금한 점이었다.
“그건... 기사로서의 저는 죽었습니다. 주인님께서 저를 주인님만의 노예로 조교시켜 주셨습니다. 여자로서의 행복을 깨우쳐주셨고, 제게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끼도록 해주셨습니다. 전 영원히 주인님의 곁에 남고 싶습니다. 하지만 제 검은.. 제 물건이 아닙니다. 제가 사랑하는 조국 트리스테인의 것입니다. 그래서 원래 있던 자리로 돌려보내고 싶었습니다. 트리스테인으로 보내준다고 하는 기계라는 물건 안에 제 검을 집어넣었습니다. 아마 지금쯤 트리스테인에선 제 시체를 찾지는 못하더라도 제 검은 찾았겠지요. 예전의 저는 그 검과 함께 죽었습니다.”
“그게 다야?”
“네, 그렇습니다. 주인님. 제가 없더라도 트리스테인은 괜찮을 것입니다. 그곳엔 강하고 신념이 강한 분들이 많습니다. 전 그들을 믿고 싶습니다. 그리고.. 제 행복.. 주인님에게 사랑받는 노예로서 살아가는 것만 집중하고 싶습니다.”
“풋... 큭큭큭...... 크하하하하하하!!!!!”
레인은 참다못해 웃음이 터지며 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 두 노예는 자신보다 소중한 주인님의 이상한 행동에 서로를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돌아와 줘서 고맙다. 내 귀여운 키아라.”
키아라의 머리를 쓰다듬자 그녀는 곧 황홀한 표정으로 그의 애정을 받아들였다.
“주인님의 애인은 래티샤님.. 전 주인님의 노예로 만족합니다.”
뜬금없는 소리에 레인은 갸웃거렸다. 그러고 보니 아직 자신을 래티샤를 사랑하는 특이한 노예상인이라고 착각하는 모양이다. 그는 키아라를 놀리고 싶어졌다.
“맞아. 내가 어쩌다보니 널 안은 건 실수야. 난 죽을 때까지 널 안지 않을 거야.”
“네... 상관없습니다. 주인님의 곁에만 있을 수 있다면..”
하지만 사랑에 빠진 노예의 눈에서는 눈물이 고여 있었다. 어떠한 잔인한 짓도 서슴지 않고 할 수 있지만, 그에게 한없이 약한 첫사랑을 느끼는 소녀의 순수함이 남아있었다.
“정말 내가 너에게 애정을 주지 않아도 날 따르겠다는 거야?”
“네.. 흑...주인님..”
레인은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이런 귀엽고 순종적인 노예를 범하지 않는 건 그의 철학에서 벗어난 행동이다. 곧바로 그는 키아라의 어깨를 잡고 거칠게 넘어뜨렸다. 동그랗게 눈이 커진 그녀의 입술을 깨물고 키스를 퍼부으며 두 팔로 그녀의 다리를 벌려 급하게 밀어 넣었다.
“하응!!”
감격스럽다는 눈으로 레인을 안으며 교성을 지르는 키아라를 레인은 오늘 재울 생각이 없었다.
“래티샤.”
“네, 주인님.”
“오늘은 키아라의 3P조교를 한다. 너도 붙어.”
“알겠습니다.”
래티샤는 그의 바람대로 자신의 음부를 들어내어 키아라의 입술에 비볐다. 키아라는 곧바로 그 의미를 이해하고 입술과 혀를 이용해 레인이 바라는 것을 하기 시작했다. 그 만족스러운 모습에 레인은 허리를 흔들어 키아라를 칭찬했다. 크고 탄력이 넘치는 동글동글한 가슴을 만지며 이 노예의 뼛속까지도 정복하겠다고 스스로에게 선언했다.
- 같은 시각 콜로세움 경기장의 챔피언의 명예의 전당 안 -
“빌어먹을!! 완전히 망가졌잖아!!!”
“미친년.. 큭큭큭.... 또라이인 건 진즉에 알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저럴 줄은 또 몰랐지.”
“크하하하하!! 보면 볼수록 재미있지 않습니까? 큭큭큭큭......”
경기를 주최한 자들은 저마다 감상을 늘어놓으며 망가진 기계를 수리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꽤 심각한 상황이지만 단 한사람, 기계 주인을 제외하곤 모두 배를 잡고 웃고 있었다.
“이게 웃겨?! 몇 골드짜린지 알아? 자그마치 5만 골드라고!!”
“이봐, 돈이 뭐 그리 중하나? 재미있는 경험을 했으니 된 거 아닌가? 참 탐나는 노예야. 나에게 납품한다면 좋으련만..”
“오랜만에 꽤 재미있는 노예상인이 나온 것 같군. 아주 흥미로워.”
“아쉽군. 하얀 살결에서 느껴지는 맛은 어느 년보다도 좋았을 건데..”
자유를 쟁취하고 원래의 세계로 돌아간다는 것은 사실은 거짓말이었다. 이 기계는 트리스테인으로 돌려보내 준다고 말한 기계는 사실은 도축기계였다.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
“자유와 자신의 주인을 사이에 두고 선택하는 것의 진실을 아는 것은 우리 밖에 모르지 않는가? 어차피 우매한 놈들은 이곳에서 일어나는 일은 알 방법은 없지. 겨우 기계하나 망가진 거로 징징대지 말게. 덕분에 좋은 걸 보지 않았나?”
“뭐.. 그렇긴 하지. 독특한 년... 그 년이 언젠가 뒈져서 그 고기를 씹는 날이 오면 좋겠군. 흐흐흐흐...”
기계실에 모인 자들은 모두 비열한 웃음을 흘렸다. 그들은 최고의 고기를 원한다. 챔피언의 고기. 그리고 챔피언의 피. 이 두 음식을 맛볼 수 있는 건 도시의 최고층에 위치한 그들만의 특권이다. 도축업자를 마주하고 죽음을 직감한 노예들의 살은 그 본래의 가치보다 맛이 떨어지게 변한다. 하지만 이 기계는 그런 판단조차 하기 전에 빠르고 깔끔하게 고기와 피를 분리시켜버린다. 일단 저 기계 안에 들어가게 되면 일순간에 몸 전체가 부위별로 스캔이 되며 곧바로 수십, 수백조각으로 잘게 토막이 되어 썰리게 되니 고통도 없고 알아챌 수도 없이 깔끔하게 죽는다. 그래서 고기는 더욱 부드럽고 고급스러운 품질로 거듭나 구워먹으면 최고의 맛을 내게 된다.
“이런 일이 생긴 김에 확실히 해두기로 하지. 슬레인들의 모든 노예와 그 주인들은 검투 노예가 자유를 얻어 자기 세계로 돌아갈 수 있다고 믿게 해야 할 것이오. 쓸데없는 소리가 간간히 나오던데 제대로 입단속을 하시오. 이건 절대로 지켜져야 하는 것이오!”
모두는 그의 말에 동의했다. 노예가 자유를 얻으면 자기 세계로 돌아간다고 알려놓은 이유는 간단하다. 모든 검투노예가 키아라와 같은 충성심을 가진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이들은 싸움에 소극적으로 임하게 될 수 있다. 어차피 싸움의 끝은 죽음이고, 언젠가 누군가의 칼에 목이 베어진다는 운명을 알며 이 미친 짓거리를 계속 할 수 있는 검투사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설령 싸움의 처절함을 볼 수는 있더라도 관객들은 노예들의 자발적이고 격렬한 죽음을 원한다. 흥행을 위해서는 검투사들은 최고의 쇼를 보여주기 위해 더 격렬하고 과격하고 미친 짓거리를 해야만 한다. 그러기 위해선 이들에게 목적의식을 심어줘야 한다. 검투경기에 출전하는 모든 노예들에게 바로 자유를 선사해준다는 달콤한 유혹을 던지는 것이다. 그럼 주인에게 충성심이 적은 노예라고 할지라도 스스로 검투노예로서의 삶을 받아들이고 싸움에 최선을 다하게 된다. 상상 이상으로 잔인한 짓도 경기장에서 서슴없이 벌일 수 있는 건, 그런 그들의 욕망을 이용하였기 때문이다.
그들은 비싼 기계를 부순지도 모르고 자신들의 앞에 공손하게 몸을 낮추고 자신의 주인님께 돌려보내 줄 것을 간곡히 요청한 검투노예를 원래의 주인에게 돌려주기로 했다. 일단 흥미가 생겼다. 저 노예의 마지막 모습이 어떨지, 또 어떤 재미있는 이야기를 던져줄지 말이다.
-검투 경기가 있기 30분 전..-
레인은 콜로세움의 대기실에 키아라를 두고 빠르게 달려간 곳은 콜로세움에서 조금 떨어져있는 화이트타운의 중심지에 위치한 퀸트의 옷가게로 향했다.
“오셨어요?”
반갑게 맞이하는 다이나에게 레인은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물건이 잘 있는지 물었다.
“준비는 잘 했지?”
“네. 옷만 벗지 않으면 남자처럼 보일 거예요.”
“흠, 나와 봐.”
“이건 무슨 짓이지? 내가 이대로 도망이라도 가 달라는 건가?”
반항심이 읽히는 노예는 레인이 오늘 새벽시장에서 사둔 것이었다. 이름도 물어보지 않았다. 사실 궁금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 노예는 아주 중요하다.
“그래, 맞아. 하지만 너 혼자 이 도시를 빠져나가는 건 어렵지.”
“무슨 꿍꿍이지? 돈을 주고 날 사놓고 그냥 보내 주겠다고?”
“이건 거래야. 난 내가 원하는 일이 네게 있고, 넌 자유를 얻고 싶어 하지. 그 소망을 내가 이뤄주겠다고. 적어도 난 네게 못 믿을 짓을 하진 않았다.”
“저.. 사정은 모르겠지만, 이분은 정말 좋은 분이세요. 제 전 주인님이셨고요, 어떠한 부당한 명령도 제게 내리신 적이 없어요. 대신 저를 이렇게 안전하고 좋은 곳에서 지내도록 해주셨죠. 여기는 우리 같은 여자에게 지옥인건 사실이에요. 하지만 이분은 그 지옥에서도 얼마 되지 않는, 어쩌면 유일한 희망의 동아줄 같은 분이세요.”
다이나의 진지한 눈빛은 반항적인 노예의 의심을 조금이나마 걷었다. 시간이 없었다.
“자, 이걸 받아.”
레인은 옷깃에 숨겨지는 작은 메스를 꺼냈다.
“단분자 커터야. 뭐든 그어버리면 베여. 설령 그것이 쇠라고 해도 말이야.”
“이대로 네 목을 따줄까?”
이내 노예는 레인의 목에 칼을 들이밀었다. 다이나는 놀라 소리를 지를 뻔 했지만 레인이 그녀의 협박이 귀엽게만 보였다.
“왜? 찔러. 네게 몹쓸 짓을 한 건 내가 아니지. 난 오히려 네게 은인이야. 널 그 지옥에서 꺼내서 도망까지 치게 해주겠다고 하는데 왜 이런 짓을 하는지 모르겠군. 그렇게 상황파악이 되지 않고 멍청한가?”
“... 좋아. 하지만 거짓말이라면 진짜 네 목을 따버리겠어.”
“거래성립인가?”
“...그렇다.”
“그럼 무슨 일을 해야 할지 설명해주지. 실패하면 넌 죽는다. 하지만 성공하면 내가 어떤 수단과 방법을 강구해서라도 널 이 도시에서 안전하게 빠져나가게 해준다.”
- 키아라의 경기 시작 10분 전.. -
“빌어먹을 년.. 쿡쿡쿡.. 오늘 네 제삿날이다.”
보르트는 경기장에 난입하기 위해 싸구려 노예를 사서 콜로세움의 검투사 대기실에 검투사의 주인의 자격으로서 들어와 있었다.
“저.. 주인님... 제가 뭘 해야 할지...”
“쿡쿡쿡... 넌 필요 없다. 나가서 죽고 싶다면 죽어라. 살고 싶다면 싸워라. 운이 좋다면 살겠지.”
“전.. 싸워본 적이 없어요...”
“다시 한 번 건방진 소리를 지껄이면 지금 내가 널 씹어 삼켜주지.”
“사.. 살려주세요....”
쪼르르르...
결국 보르트의 노예는 오줌을 지리고 말았다. 그녀로서는 미칠 노릇이었다. 이상한 세계에 떨어져 노예가 되더니, 자신의 주인이라고 자신을 산 게 인간이 아니라 괴물. 그런데 그 괴물이 자신이 칼에 맞아 죽을 곳으로 아무런 준비도 없이 보냈으니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하지만 그 전에 너무 무서웠다.
“쿡쿡쿡... 결과는 볼 것도 없군.”
어차피 이 노예는 이 안으로 들어오기 위한 구실이었을 뿐이었다.
‘저 괴물이구나.’
남장을 한 레인의 노예는 멀리서 그를 봤다.
‘저 괴물의 다리에 상처만 내면 난 자유다. 시선이 쏠려 있을 때.. 해야 해. 잡히면 죽는 거니까...’
그녀는 침을 꿀꺽 삼키고 조심스럽게 괴물에게 다가갔다. 딱 한 번이면 된다. 가까이 다가갔지만 자신의 존재를 눈치 채지 못했다. 그럴 만도 했다. 여긴 사람이 너무 많다.
스윽-!!
“큭!!!!! 뭐냐?!!!”
보르트는 자신의 한쪽 다리에 오금이 끊어지는 고통을 느끼며 몸을 돌려 범인의 팔을 잡았다.
우드득-!!
“끄윽!!!! 끄아아아악!!!”
한쪽 팔을 망가뜨리자 비명을 지르며 몸을 마구 비틀었다. 그토록 조심했건만 몸을 미쳐 빼기도 전에 잡혀버렸다.
“암컷인데 생긴 건 수컷이군. 넌 뭐지?”
“컥..... 크윽...”
챙그랑...
“말해라! 고통을 느끼고 싶지 않다면.”
콱-!
“끄아아아악!!!!!”
보르트는 말하지 않아도 누가 이런 짓을 했는지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그 건방진 꼬마다. 이런 잔꾀로 자신을 건들다니 도저히 용서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이곳에 온 이유, 그 건방진 꼬마놈의 노예년부터 잡아 족칠 생각이었다. 그가 보는 앞에서, 애지중지하는 예쁘장한 노예의 팔다리를 뽑아서 던져줄 생각이었다. 그런데 뒤통수를 제대로 맞았다. 결국 어떤 대답을 듣기 전에 레인이 보낸 노예는 죽어버리고 말았다.
“큭큭큭큭... 죽여주마... 꼭...”
마침 밖에서는 그토록 죽이고 싶은 노예의 이름이 호명되었다. 보르트는 레인이 보낸 노예의 한쪽 팔을 뽑아 씹으며 아픈 다리를 질질 끈 채 무대 위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