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8화 (28/50)

4월 16일

“잘 할 수 있지?”

“네, 주인님.”

콜로세움에 들어선 키아라는 어느 때보다도 밝은 표정이었다. 이길 수 있다. 자신에겐 성검 에스텔의 가호가 함께하고 있으니까.

“좋아, 저번 싸움은 무기도 없었고 힘들었을 거야. 하지만 이젠 상황이 다르지. 아마 네게 상대는 꽤 쉬울 거야. 그래서 말인데 너무 쉽게 죽이지 말았으면 좋겠어.”

“네?! 그럼...”

“키아라, 잘 들어. 검투경기는 단순히 누가 누구를 죽이고 끝나는 그런 게 전부가 아니야. 내가 죽지 않으면서 누군가가 죽는 걸 단순히 구경할 생각으로 여기에 왔겠어? 그럴 거라면 차라리 안개숲이 보이는 성벽위에 서서 기다리다보면 뒤지는 놈들을 구경하는 게 빨라.”

“즉.. 이건 즐거움을 주기 위한 놀이라는 것이군요.”

“그렇지. 물론 네가 볼 때 전력을 다해야 하는 적이라면 최선을 다해서 싸워. 네가 다치거나 죽는 걸 난 보고 싶지 않아. 하지만 지금은 네 상대가 안 되는 초보들이 대부분이야. 그래서 적당히 관객들이 여흥을 즐기도록 해보란 말이야. 예를 들면..”

레인이 귓가로 무언가를 속삭이자 조금 찝찝한 표정을 짓다가도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요?”

“선택은 네 자유야. 하지만 명심해. 검투사가 자유를 향해 나아가기 위해서는 관객들의 마음을 훔쳐야 해. 승리가 전부가 아니야.”

“알겠습니다. 그렇게 해보겠습니다.”

“좋아! 그럼 잘 다녀와. 나도 경기장에서 구경하고 있을 테니까. 하지만 기억해 둬. 지더라도 죽어선 안 돼! 넌 내게 소중하니까.”

“알겠습니다, 주인님.”

키아라는 스스로 레인에게 경기를 나가기 전 마지막 키스를 했다. 그리고 이 키스가 마지막이 될 줄은 몰랐다.

와아아아아아!!!

오늘도 콜로세움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다. 이들은 피를 원한다. 아니다, 레인의 말대로 놀이를 원한다. 흥미 있는 이야기를 콜로세움이 남겨주길 바란다. 

“다음 경기는 두 번째 출전인 아리따운 트리스테인의 기사! 키아라입니다!!”

우우우-!!

와아아-!!

사람들은 환호와 야유를 반반씩 보냈다. 야유는 저번 경기가 그만큼 재미없었다는 뜻이고, 환호는 마지막 관객에게 집어던진 머리 때문에 조금 호감으로 돌아선 여론이었다.

‘관객들을 네 편으로 만들어. 그래야 네가 자유에 한 발자국 나아갈 수 있어!’

“알겠습니다, 주인님.”

레인의 충고를 상기한 키아라는 자신의 검을 치켜들고 다소 도발적으로 야유를 보내는 관객들을 주의를 주는 퍼포먼스를 했다.

“저 건방진 년, 꽤 재미있지 않냐?”

“노예새끼가 큭큭큭... 아직 길이 덜 들여진 모양이군. 어이 이번엔 재미없게 하지 말라고!!!”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키아라는 저들이 원하는 것을 이해했다. 저들은 승패는 관심이 없다. 재미있으면 그만인 것이다.

“상대는 오늘이 5번째 출전입니다! 챔피언을 향한 마지막 관문!! 과연 승부는 어떻게 될까요? 추운 얼음의 나라에서 온 여전사 로드니입니다!”

와아아아아!!!

문이 열리고 반대쪽에서 문이 열리며 상대가 나왔다. 감정이 없는 듯 차가운 얼굴과 잘 어울리는 사슬에 달린 날카로운 추는 관객들에게 인상적인 무기였다.

“한 명이 죽거나 항복하기 전까지 경기는 끝나지 않는다.”

심판의 간단한 설명과 함께 곧 싸움이 시작되었다.

부웅~! 부웅~! 쉬익!!

가시가 박힌 추가 날아온다. 

채앵!!

키아라는 침착하게 칼등을 이용해 막아내었다. 저런 물건은 변칙적이기 때문에 까다로울 수 있지만 상대 또한 저 무기를 쓰는 것이 쉽지 않기에 이런 목숨이 걸린 상황에서 쓸 수 있는 동작은 한정적이다. 

쉬익!!! 채앵!!!

적은 멀리서 추를 맞을 때까지 던지려는 심산 같았다. 하지만 곧장 키아라는 그게 전부가 아닐 것이라고 단정할 수 있었다. 그런 지루한 경기는 관객이 싫어할 것이고 분명 나올 때의 환호를 받지는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 뭔가 다른 변수들이 있어. 관객들이 좋아할만한 것.’

쉬익!!!

적은 어느새 5m 간격으로 좁혀와 압박을 가하기 시작했다. 키아라는 침착하게 날아오는 추를 쳐내면서도 적의 또 다른 변수에 집중했다.

슝!!

‘저거였군!’

키아라는 추를 칼로 쳐내며 연달아 날아오는 단검을 몸을 비틀어 가까스로 피했다. 곧바로 적은 자신을 향해 근접전을 시도할 목적으로 빠르게 달려들었다.

“하앗!!”

키아라는 기합을 실어 검을 횡으로 베면서 옆으로 굴러서 피했다. 검격. 그것은 에스텔이 가지고 있는 능력이기도 했다. 집중된 정신력을 검을 통해서 충격을 가하는 풍압으로 낼 수 있는 것이 이 검이 성검이라고 불리는 이유였다.

“뭐야? 저거?!”

“방금 바람이 튀었지?”

“아티펙트인가? 그런 걸 챔피언도 아닌데 준거야?”

“지독한 놈이네.”

관객들의 반응은 키아라에게 싸늘하게 바뀌었다. 트리스테인에선 귀한 물건일지 몰라도 슬레인에선 돈만 있다면 의외로 에스텔과 비슷한 류의 무기를 찾는 건 그렇게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할 수 없지.’

풍압으로 살짝 당황하는 틈을 타 달려가 상대의 허벅지를 베자 곧바로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그 기세를 놓치지 않고 반격의 의지를 꺾기 위해 키아라는 무릎으로 상대의 턱을 가격했다. 적은 뒤로 고꾸라졌고 싱겁게 경기가 끝났다. 

우우우우우-!!

관객들의 반응은 싸늘했다. 기교가 있던 챔피언의 반열에 오를 노예의 패배, 그것을 이긴 것은 눈요기는 된다고 해도 너무나 딱딱하고 재미없는 경기를 보여준 건방진 노예였다. 

‘이래선 안 되겠어.’

키아라는 성검을 땅에 박고 추에 달린 쇠사슬을 적의 목에 칭칭 감았다. 

“크윽..”

“개처럼 엎드려.”

“죽여라...”

“누구 맘대로? 관객들이 그런 싸구려 결말을 바라진 않아.”

목줄을 잡아당겨 몇 번을 무릎으로 가슴팍에 꽂아 넣으며 협박했다. 

“개처럼 엎드려. 더 추한 꼴로 죽기 싫으면.”

“으으...”

하지만 적은 프라이드가 넘쳤고 그럴 생각이 없었다. 

‘이럴 땐 어떻게 관객을 즐겁게 해야 하지?’

키아라는 최선을 다해 머리를 썼다. 이곳 슬레인의 저급함을 떠올리며 저들이 즐길 놀이를... 그때 그녀의 눈에 들어온 물건은 손잡이가 긴 나이프였다.

‘기사답지 못한 일이다. 하지만 이건.. 그를 위한 일... 그리고 나를 위한 일... 아주 잠깐.. 나는 기사로서의 나를 버리겠다.’

결심을 한 키아라는 단검을 들어 상대의 보지에 찔러 넣었다.

“꺄악!!!!!!!”

고통에 비명을 지르며 발버둥을 치려고 하자 곧장 목줄을 잡아당겨 제지시켰다.

“저건 뭐하는 거지?”

“고문을 즐기는 년인가? 하긴 저번 경기 땐 상대의 머리를 뽑아서 객석으로 집어던지더군. 신선하긴 했어. 그런 미친 짓을 하는 년은 근래에 없었으니까.”

관객들의 반응을 살피며 키아라는 조용히 적에게 사과를 구했다.

“미안하다. 이건... 어쩔 수 없다. 원망해라. 마음껏..”

“아..아...아파... 그만... 그만..”

키아라는 멈출 생각이 없었다. 오히려 크게 경기장이 울리도록 소리쳤다.

“처녀였구나!!! 보지에서 빨간액이 흐르고 있군!! 질질 싸는 걸 보니 더 원하는 모양이지? 그럼 더 줘야겠네?”

푹푹푹푹-!!

“끄아... 그만.. 죽여.. 죽여!!!”

사실 그녀는 전쟁에서 적의 밀정을 고문한 전력도 있었다. 유쾌한 일이 아니지만 명령에는 따라야만 한다. 그것이 기사니까.

“미안하다... 날 용서하지 마라.”

“뭐야.. 미친 거야??”

적은 키아라의 이런 마음을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어차피 죽일 생각이니까. 관객들에게 여흥을 즐기도록 하면 그만이다. 키아라는 스스로 사슬 비키니에서 자신의 음부를 가리고 있는 부분을 치웠다. 주저앉아 피를 흘리는 적의 보지 반대편에 길쭉한 모양의 나이프 손잡이에 자신의 꽃잎을 바쳤다.

“저게 뭐야?!!”

“강간인가?!”

관객들은 그제야 흥미를 보이기 시작했다. 단순한 고문이 아닌 흥미를 더해줘야만 한다.

‘이건 주인님의 자지다. 그렇게 생각해라...’

푹푹푹푹-!!

“아억!!! 아억!!!!!!! 아어어억!!!”

박으면 박을수록 상대는 피를 쏟고 고통스러워 머리를 흔들 수도 없었다. 스스로 수많은 사람 앞에서 음란한 짓을 하면서도 레인이 말한 노예가 되기 위해서 그녀는 최선을 다했다. 이건 사랑하는 레인이 자신에게 지시를 한 것이다. 자신은 이곳을 떠나기 전까진 레인의 노예이며 이것을 따라야만 한다. 그녀는 훌륭한 규칙지킴이인 것이다. 명령을 어기는 것이 태생적으로 불편한 성격이다. 그래서 최악의 짓까지도 서슴없이 할 수 있다.

“아응!! 좋아!! 더 박아 줄께!!! 하아앙!!”

“미쳤어!! 저 년 완전히 미쳤다고!!!!”

“이거 물건인데?!! 도대체 저런 미친년을 누가 만든 거지???”

RAPE!!!! RAPE!!!! RAPE!!!! RAPE!!!! RAPE!!!! 

사람들은 이제 이 경기의 피날레를 장식하는 미친 짓거리에 반응하기 시작했다. 죽음을 담보로 한 마지막 섹스를 즐기는 두 노예에 대한, 아니 온전히 키아라에 대한 찬사인 것이다. 그녀는 사람들의 바람대로 마구 쑤셨다.

“으으으..”

적은 거의 정신을 잃었다. 키아라는 검 손잡이에서 자신의 보지를 빼내었다. 축축했다. 이런 걸로 느끼고 싶진 않았다. 레인은 그녀에게 관객이 흥미를 느끼도록 쉽게 이기게 되면 적의 무기로 성적인 학대를 조금만 가할 것을 지시했다. 하지만 처음이라 미숙했고 그것을 덮기 위해 더 잔인한 짓을 해버리고 말았다. 이미 적의 보지에서는 하혈을 한 것처럼 피가 엄청나게 쏟아져 나와 있었다.

“미안하다. 정말로. 날 원망해라.”

키아라는 쇠사슬을 잡아당겨 쓰러져 있는 노예를 모두가 보도록 경기장을 한 바퀴 돌았다. 사람들은 그런 그녀에게 환호했다. 역대급으로 미쳐있는 위험한 검투사의 등장에 그들은 온몸으로 열광하며 기뻐했다. 

툭-!

흥미를 느낀 관객이 집어던진 물건 중에 그녀의 눈에 띈 것은 유리병이었다. 레인은 그녀에게 주변에 있는 물건을 잘 써줄 것을 명령받았다. 이걸로 뭘 할 수 있을까? 

“우웁....”

키아라는 병을 상대의 입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고개를 옆으로 돌리게 만든 다음 힘차게 밟았다.

부러진 이빨조각들이 입 밖으로 쏟아져 나오고 몸을 움찔거리며 완벽하게 의식을 잃어버리자 사람들은 미친 듯이 열광했다. 뭐든 손에 쥐어만 주면 전부 쓰는 저 잔혹한 노예를 진심으로 마음에 들어 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세 번만 더 하면.. 자유의 몸이 된다..’

눈을 질끈 감고 불의랑 타협하자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기사란 고결한 마음을 가진 자들이지만, 그들이 하는 일은 더없이 추접하다. 누군가를 죽이고, 때론 고문하고, 명령이라는 이유로 더 추악한 짓도 서슴없이 할 수 있다. 그녀는 훌륭한 성기사였고, 그렇게 수많은 사람들을 고문하는 일을 수행해왔다. 바로 종교재판에 회부될 마녀분별사가 그녀가 본래 하던 일이었다. 자백을 받아낼 때까지, 원하는 답이 나올 때까지 온갖 방법과 수단을 가리지 말 것을 명령받았다. 

이곳도 자신이 살던 곳과 그리 다르지 않다. 오히려 본질적으로 닮아있다. 그녀는 노예를 제공한 인사들이 있는 자리에서 주변 사람들에게 찬사를 듣는 모습을 보며 미소 지었다. 그를 기쁘게 했다. 트리스테인에서는 신을 위해서 모든 일을 행했다면, 이곳에서는 그를 위해서 모든 일을 하면 되는 것이다. 

“만족하셨습니까, 여러분?!!”

와아아아아!!!

“최고다!!!!!”

“대단했어!!!! 목숨 줄만 붙어있는 겁쟁이들보단 훨 낫다!!!”

저런 미친 노예를 올바르게 조교시켜 콜로세움에 세웠다는 건, 주인의 기량을 의심하는 것이 얼마나 바보 같은 일일지 상상도 할 수 없다는 뜻이 된다. 노예의 영광은 온전히 주인의 것, 하지만 노예에게도 찬사가 쏟아진다. 검투사, 그들은 그저 흔해빠진 메이드나 창부와 같은 노예가 아니다. 그들은 이 경기장에서 여신이 된다. 쓸모없는 노예들이 스스로의 가치를 증명해 보이는 얼마 되지 않는 기회이자 죽음에 한발자국 다가가는 계단인 것이다.

“또 다른 죽음이 우리를 기쁘게 해주었습니다. 보십시오! 저 우아한 자태를! 보십시오!! 죽음 앞에서 쾌락을 느끼는 음란함을!!! 보십시오! 어떠한 일도 눈 하나 꿈쩍하지 않고 수행하는 광기를!! 그리고 그 주인에게 바치는 충성심을!!! 여러분은 이런 노예를 위해 골드를 기꺼이 써야합니다. 신사라면 당연한 것입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1골드 주화를 경기장 안으로 던져주기 시작했다. 성기사와 노예검투사의 차이점을 문득 키아라는 깨달았다. 트리스테인에서는 자신이 하는 일은 옳지 않았고, 언제나 비밀리에 해야만 했다. 누군가에게 그 사실을 발설할 수도 없었다. 반면 이곳은 자유롭다. 죽이라는 명령만 떨어지면 뭐든 죽여도 된다. 아무도 자신을 비난하지 않는다. 오히려 기뻐한다.

‘나는.. 포식자...’

스스로의 새로운 정체성을 발견한 것 같았다. 자신은 그럴싸한 포장지에 싸여있던 거짓된 삶을 살아온 것이다. 자신이 이곳에 떨어진 이유를 키아라는 비로소 이해했다. 자신과 이 세계는 추악함에 있어서 매우 닮아있다. 

‘내가 이곳에 있는 건 나에게 내려진 천벌일까? 아니면 포상일까?’

고고한 척, 착한 척 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그에게만큼은 착하고 귀여운 여자아이이고 싶다. 자신의 소중한 주인님.. 그녀는 스스로 자신의 주인의 이름을 계속 부르며 승리를 만끽하고 있었는데..

쿵-!!!

“쿡쿡쿡... 빌어먹을 년.. 네 년을 죽이러 왔다.”

키아라는 경악했다. 자신이 경기를 위해 들어왔던 입구의 철망이 부서져 나가며 등장한 것은 미노타우르스였다. 그녀는 한 눈에 이 괴물이 누구인지 알아봤다. 애꾸눈, 가슴팍에 있는 상처. 자신의 주인에게 무례한 짓을 한 괴물.. 그리고 자신의 주인님이 죽인 괴물의 동생이 입에 사람의 팔을 질근질끈 씹으며 난입했다.

“아앗!!! 갑작스러운 난입!!! 이게 무슨 상황일까요?!!!”

사회자도 관객들도 그리고 주최자들도 영문을 몰라 서로를 바라보며 까닭을 물었다.

“이 노예년은 내 형을 죽였다!!!!! 나는 슬레인에서 자유를 가진 자로서 저 노예를 죽이겠다!!! 하지만 공평하지 않으니 나도 뭔가를 걸어야겠군!! 내가 만약 진다면 내 자유를 저 노예에게 주겠다!!!!!”

‘주인님..’

보르트의 외침에 주최 측과 레인이 긴급하게 여러 말을 나누는 모습이 보였다. 레인은 필사적으로 이 싸움을 말리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모두 정숙해주십시오!!! 주최 측과 노예의 주인인 레인님의 상의결과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총 9:1로 대결을 허락할 것이 선언되었습니다.”

“이봐!! 노예가 무슨 수로 미노타우르스를 이겨!!!”

“장난이 도가 지나치다!!!!”

“저 년은 여기서 죽기엔 아까워!!!! 차라리 챔피언을 부르라고!!!! 교황성하의 그 잘난 팔라딘이라도 붙여봐란 말이다!!!!”

관객들에서는 욕이 쏟아지며 쓰레기가 던져지고 있었다. 주최측은 이 돌발적인 상황을 관객들이 즐길 것이라 생각하고 내린 결정이었지만, 관객들은 반대로 흥분하여 역정을 내고 있었다. 주최 측은 당황한 표정이 역력했고, 레인의 안도하는 모습이 키아라의 눈에 비쳤다. 

하지만 보르트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어차피 그에게 관객들의 항의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어쨌든 주최 측이 허락을 했고, 싸움을 공식적으로 허락했기 때문에 물러설 이유는 없다.

부웅-!!

거대한 나무망치가 휘둘려지고 키아라는 잽싸게 몸을 낮춰 피했다. 저 괴물이 자신보다 크고 힘도 강하며 칼을 박아 넣는 것도 어렵다는 건 사실이다. 저번과는 사정이 다르다. 배도 고프지 않고, 오히려 정서적으로도 고독하지 않다. 그녀에겐 사랑하는 남자가 생겼다. 사랑이라는 감정은 누군가를 약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더 강하게 만들기도 한다.

“네년의 팔과 다리부터 씹어주지. 숨이 끊어지기 전까지 말이다!!!!”

관객들의 야유와 욕에도 불구하고 보르트는 위협적인 공격을 감행하며 소리쳤다.

“어쩌다 형이 네년 같은 년에게 죽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오늘 내가 그 뼈를 잘게 부숴주마!!”

쿵!!!

망치가 땅에 내리꽂히며 땅이 일순간 흔들렸고 서 있던 관객들이 잠시 휘청거렸다. 

‘엄청난 힘이야. 그때 그놈이랑은 달라.’

죽은 형인 보르그는 노예를 수집하기 위해 힘 조절을 한 것이고, 동생은 반대로 상대를 죽일 생각으로 달려드는 것이다. 키아라는 가까스로 손으로 땅을 짚고 옆으로 굴러 충격파를 피했다. 노련한 검사인 그녀도 이런 적을 1:1로 상대한 적은 없었다. 압도적인 힘과 위용 앞에 자신은 초라한 개미새끼가 된 것 같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전의까지 꺾일 수는 없었다.

‘침착해야 해. 어설픈 짓을 했다간 끝이야.’

부웅~! 부웅~!!! 쿵!! 쿵!!!

그가 내려친 바닥에는 어느새 망치도장이 찍혀있었다. 맞으면 100% 죽는다. 하지만 다행인 것은 공격패턴이 비교적 단순하고 느리다. 그리고 어째서인지 걷는 자세가 조금 이상해보였다.

‘다리를 다쳤나? 방금도 달려들 거라 생각했는데.. 그러고 보면 저놈이 곧바로 달려올 줄 알았는데 냅다 망치질부터 했지.’

요리조리 피하며 적을 적당히 자극한다. 거대한 망치가 허공을 가르고, 키아라는 몸을 꺾거나 구르는 재주를 보이며 여러 차례 공격을 피해나갔다. 서서히 패턴이 읽히자 여유가 생기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녀는 잘 알고 있다. 아주 작은 실수 하나로 틀림없이 죽는다. 작은 방심이 확실하게 자신을 죽일 것이다. 

“잘한다!!!!”

“저 머저리 소대가리를 죽여!!!”

“이왕 이렇게 되었으니 자유를 쟁취하라고!!!!”

키아라!!! 키아라!!!! 키아라!!!!

사람들은 일방적으로 키아라를 응원하기 시작했다. 이런 불합리한 조건에서도 몸을 사리지 않고 아슬아슬하게 묘기를 하듯 피해나가는 그녀에 대한 찬사였다. 그리고 그들은 그녀의 승리를 보고 싶었다. 다섯 번을 이겨야 챔피언의 반열에 오를 수 있지만, 그녀가 보르트를 잡는다면 역사상 두 번째 검투 경기로 챔피언이 되는 노예가 탄생하는 것이다. 

“큭큭큭... 머저리들...”

‘정말 다리가 불편한 모양이군.’

혼자 열심히 떠드는 보르트를 무시하며 키아라는 그의 상태에 집중했다. 왼쪽 다리가 불편한 것 같았다. 무릎? 그렇다고 보이엔 무리가 있어 보인다. 겉으로 드러나는 피부에는 상처가 보이지 않았다. 그럼 남은 결론은..

‘아킬레스건이군.’

본래 그곳에 상처가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중요한 것은 지금 바로 여기에 그의 약점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녀는 모험을 강행하기로 했다. 자신의 성검 에스텔을 휘둘러 풍압을 일으키고 거리를 좁혀 순식간에 팔을 베었다.

“소용없다!!!”

부웅!!!

어차피 이렇게 될 줄 알고 있었고 그녀는 여유롭게 피하며 일부러 그가 몸을 뒤로 돌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었다. 확실히 느리다. 

‘좋아. 이런 식으로 몇 번 더 하면..’

상대를 자극하듯 피하며 의미 없는 공격을 펼치며 상대를 자극한다. 성에 뻗쳐서 몸을 더욱 과감하게 쓰기 시작한다. 하지만 자신도 스스로 움직이는 게 불편하다고 여겼는지 점점 느려지고 있다.

쉬잉-!!

마침내 보르트의 등으로 키아라는 에스텔을 힘차게 휘둘러 베었다.

“크윽!!! 이 건방진 년이!!!!”

‘등도 딱딱해? 에스텔이 아무리 윈드계열의 마법이 걸려있는 걸 빼면 평범한 검이라고는 하지만...’

겉으로 드러나는 피부조직은 아주 단단하다는 결론이 나왔다. 

‘좋아, 그럼 더 빠르게!!’

이리저리 빙글빙글 돌며 보르트의 시선을 괴롭혔다. 한쪽 눈 밖에 없기 때문에 그는 기본적으로 시각적인 반응이 느리다. 슬슬 그가 짜증내는 모습이 보였다. 결국 몸을 비틀다가

쿵!!!

발이 꼬여 넘어지고 말았다. 

“크훅!!!! 이 빌어먹을 년이!!!”

‘이때다!!!’

키아라는 팔을 땅에 집고 엎드린 괴물의 등을 타고 목을 자신의 다리로 감쌌다. 

콱-!!

뚜두두둑!!!!!!

“꺗!!!!!”

보르트의 팔이 그녀의 팔을 나무스틱을 부러뜨리듯 망가뜨렸고 손에 들려있던 검은 땅에 떨어졌다. 관객들은 탄식을 질렀다. 

“죽어!!!”

키아라는 자신의 남은 왼손을 보르트의 멀쩡한 한쪽 눈에 찔러 넣었다.

“크아아아악!!!!!!!!!!”

보르트는 비명을 지르며 키아라의 몸을 잡아 멀리 던졌다.

“커헉....”

멀리 날아가 벽에 부딪치고 등뼈가 나간 충격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쿨럭!!”

입에서 피가 쏟아져 나왔다. 내장이 망가진 것이다. 서 있는 것도 너무 힘들었다. 이미 부러진 팔은 완전히 망가져 축 쳐져 있었다. 감각조차 느껴지지 않는다. 처음부터 팔이 없었던 것 같다.

‘주인님... 죄송합니다... 여기까지인가 봅니다.’

키아라는 서러워 눈물이 났다. 죽음이 목전에 닥치자 그는 트리스테인보단 레인을 생각했다. 그와 함께한 즐거운 기억들, 그의 격려와 보살핌.. 여자로서의 자신을 발견하게 해준 고마운 남자... 하지만 이젠 그를 선택할 수도 없다. 이미 망가져버린 몸은 흉측해 노예로서 가치가 없다. 설령 그가 이런 자신을 보살펴준다고 하더라도 그녀가 거부하고 싶었다. 그에게 언제까지나 사랑스러운 모습으로 남고 싶었다. 그래서 그냥 이 자리에서 죽을 생각도 있다. 그 전에.. 마지막으로 해야할 일이 있다.

“보이지 않아!! 테크노스피어!!! 날 테크노스피어로 데려가 다오!!!!”

관객들은 코웃음을 치며 야유를 보냈다. 멋대로 난입한 주제에 노예에게 당해 자유인으로서의 체통을 완벽히 구겨놓은 함량미달의 괴물 따위에게 보내는 것은 동정이 아닌 야유와 멸시다. 

“으으.. 이리 와!!! 죽지 않았다면 이리 와라!!!”

최후의 발악으로 보르트는 손을 휘둘러 그녀를 잡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죽음이 담보된 게임은 둘 중 하나가 죽여야만이 끝난다. 키아라는 비틀거리며 보르트를 향해 걸었다. 

“하아... 하아.....”

땅에 떨어진 검을 왼팔로 주워 지팡이처럼 질질 끌며 앞으로 나아갔다. 괴물의 넓은 등판이 보인다. 마지막 힘을 다해 검을 들어 그대로 심장을 향해 밀어 넣었다.

“컥!”

길고 더러운 혀에서 침을 흘리며 보르트는 숨을 거두고 앞으로 고꾸라졌고 뒤따라 키아라도 그의 시체 위로 쓰러졌다. 경기장은 적막으로 휩싸였다. 모두가 숨죽여 이 순간 단 한 명의 노예를 바라본다.

짝짝짝-!!

사람들은 질서정연하게 박수를 치며 진심으로 만족하였음을 인정하였다. 불가능한 대결, 감히 노예가 저 거대하고 강력한 미노타우르스 일족을 죽인 것이다. 그것도 하나가 아닌 둘을. 사실은 레인이 하나는 죽인 것이지만, 보르트의 증언에 따라 그녀가 보르트와 그의 형을 죽인 노예로서 사람들에게 기억될 것이다.

“키아라는 스스로의 능력으로 자유를 쟁취하였습니다!! 여러분 그녀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내주십시오!!!!”

하지만 그 소리가 키아라에겐 들리지 않았다. 서서히 멀어져가는 의식 속에서 레인만을 찾고 또 찾았다.

“헉?!”

키아라가 눈을 다시 뜨자 보인 곳은 낯선 곳이었다.

“정말 죽은 건가?”

“쯧쯧, 죽긴 누가 죽는다는 거지?”

“당신은...?”

“난 테크노스피어의 주인 휘케바인이다. 일단 팔부터 움직여 봐.”

팔? 그녀는 순간적으로 자신의 팔이 완벽히 망가져 곤죽이 되었다는 사실을 상기했다. 그런데..

“어... 내 팔이...”

원래의 모습 그대로 붙어 있었다. 가슴에서 느껴지던 통증도 없었다. 마치 아프지 않았던 것처럼...

“죽어도 마음만 먹으면 살릴 순 있으니 걱정하지 마라. 물론 너무 늦게 데려오면 뇌가 손상된 만큼 기억이 날아가 버리겠지만. 그보다 손님이 와 있으니 만나봐라.”

‘손님? 혹시 주인님?!’

키아라는 기쁜 마음에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작고 귀여운 소년은 보이지 않았다. 가지각색의 처음 보는 사람들.. 아니다, 경기장에서 그들을 봤었다. 관객석에 레인의 곁에 있던 자들이다.

“축하하네, 챔피언. 그대는 더 이상 노예가 아니야. 트리스테인이라는 곳에서 왔다고 했나?”

“그렇습니다..”

“자네는 스스로를 증명했고, 단 한 번의 기회를 얻었네. 원한다면 자네를 원래 살던 곳으로 돌려보내주지.”

그토록 듣고 싶은 말이었다. 키아라는 어느 쪽도 포기하고 싶지 않았지만, 그것이 욕심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아주 잠깐의 고민 끝에 그녀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저는 트리스테인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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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소지금: 1349골드

지출내역: 

생활비: 10골드

콜로세움 관객들이 던져준 골드: +895골드

경기 승리 보상: +100골드

소유 중인 노예: 래티샤

자유를 선택한 노예: 키아라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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