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4화 (24/50)

4월 11일

“하앗!!!”

“좋아! 잘하고 있어. 조금 더 강하게 밀어붙여! 그래가지곤 아무것도 못해!”

“네!!”

이른 아침부터 조교는 시작되었다. 레인의 잠을 깨우지 않기 위해 새벽에 일어나 윗몸일으키기와 같은 운동을 시키고 레인이 일어난 이후엔 본격적으로 목검을 들고 훈련을 시작했다. 어제와 달리 나나의 눈에는 약간의 적극성이 보이기 시작했다. 

“앗?!”

또 넘어졌다. 하지만 곧바로 일어섰다.

“아픈가?”

“아닙니다!”

쩌렁쩌렁하게 외치는 각 잡힌 모습은 마치 걸음마를 뗀 군인 같았다.

“이게 아프다면 앞으로 있을 일들은 기대할 것도 없을 거다. 여기서 아픈 건 우리들의 주인님께서 보살펴주시겠지만 실전에서의 실수는 곧 너의 목이 날아간다는 걸 명심해라. 검은 장난감이 아니다. 지금까지 무슨 일을 했고, 무슨 짓을 하며 살아왔는지 나는 관심이 없다. 분명한 건, 내 주인님께서 내게 명령을 주셨고 널 쓸모 있는 노예로 키워내는 것이 내 임무다. 그럼 넌 뭘 해야 하지?”

“최선을 다해서 키아라님을 실망시키지 않는 것입니다!”

“틀렸어. 너를 키워주신 나의 주인님께 감사하고, 그보다 더 감사해야 하는 건 너를 가르치기 위해 비용을 지불하고 이 자리에 오게 만든 너의 주인님을 실망시키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다. 틀린 대답이 나왔으니 벌로 팔굽혀펴기를 실시한다.”

“네!!”

‘호오.. 약간의 어드바이스로 완전히 교관이 되었군. 노예가 노예를 조교를 시키며 반대로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더 배우게 만드는 것도 하나의 좋은 교육이라는 건가.’

“잘 했다! 오전은 여기까지 하도록 하지.”

“감사합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공손하게 머리를 숙이며 감사를 하는 모습이 뿌듯했다. 아마 내일쯤까지 열심히 배운다면 검투사스킬이 B+급 정도가 될 것이고, 충분히 복종심을 가지게 되었기에 D+급 노예로 다시 돌려줄 수 있을 것이다. 

“둘 다 고생 많았어. 힘들지?”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괜찮다는 말은 힘들긴 하다는 뜻으로 들리는군.”

“아.. 그게..”

나나는 키아라의 눈치를 보았다. 어제까지만 해도 괄괄하게 욕을 하고 침을 뱉던 건방진 노예는 완전히 사라졌다. 하지만 너무 강하게 밀어붙인다면 역효과가 날 수도 있다. 무력감이 들게 해서는 안 된다. 특히 검투노예로 쓰인다면 더욱 스스로 자부심을 어느 정도 가져야만 한다. 그래서 레인은 나나에게 휴식을 선물할 것이다.

“둘 다 씻고 나서 두 시간 동안 편안하게 쉬도록. 서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해도 좋고 피곤하다면 자도 상관없어.”

“가.. 감사합니다!”

키아라가 반문을 하기 전에 가로채듯 나나는 머리를 숙이며 진심으로 감사하는 자세를 보였다. 어차피 하루 혹은 이틀 정도 더 데리고 있는다고 해도 큰 상관은 없기에 이왕 검투사 스킬을 A+랭크에 근접하도록 가르쳐둘까 생각했다. 사실 이틀 정도 더 데리고 있고 싶은 이유는 따로 있었다. 레인은 두 여인이 함께 욕실로 들어가는 것을 보며 래티샤가 있는 방으로 갔다.

“주인님, 일은 잘 되가시나요?”

“그럼. 잘 잤어?”

“헤헤.. 사실 너무 시끄러워서 잠을 자긴 좀..”

래티샤는 순조롭게 회복을 하였고 이제 걸을 수 있는 수준까지 왔다. 하지만 지금 멀쩡하게 돌아다니게 해서는 안 된다.

“이제 걸을 순 있어요. 아마 제 감각으론 이틀이면 완전히 회복이 될 것 같아요.”

“잘 이겨 내줘서 고맙구나. 하지만 조금 더 아파줘.”

“네?”

레인은 사악한 미소를 짓고 래티샤의 귀에 작게 속삭였다.

“후후후.. 알겠습니다, 필요하신 일이 있으시면 언제든 말씀해 주세요.”

레인은 래티샤에게 작은 포상의 의미로 키스를 해주곤 밖으로 나왔다. 서로 여러 이야기를 주고받은 두 노예에게 식사를 주기 위해..

오후가 되고 레인은 래티샤의 방에서 그녀를 간병하고 있었다. 휴식을 명령받은 두 여인은 서로의 침낭 안에 들어갔다.

“저기..”

“뭐지?”

“혹시요.. 키아라님은 마스터를 좋아하시는 건가요?”

“뭐..뭣?!”

완벽하게 허를 찔렸다. 자신도 모르게 목소리가 떨렸다. 심장이 콩닥콩닥 뛰는 것 같다. 짧은 시간이지만 너무나 많은 것을 겪게 해준 남자의 이야기가 나와 키아라는 당황하고 말았다.

“앗! 맞죠?”

“그.. 그....”

“엄격하신 것과는 반대로 무척 귀여우세요. 혹시 남자가 처음이에요?”

“....”

대답하지 않는 건 긍정의 표시, 나나는 키아라에게 계속 질문을 던졌다.

“혹시 키스 해보셨어요? 아니면 그 이상도??”

“지금 떠드는 걸 보니 나중엔 힘이 넘치겠군. 미안하지만 밤이 되었다고 훈련이 끝날 거란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거다.”

짐짓 엄하게 엄포를 놓고 몸을 뒤로 돌렸다. 누군가에게 이 이야기를 들키고 싶지 않았다. 

“에이.. 재미없으시네요... 제가 남자들이 좋아하는 건 좀 많이 아는데..”

‘뭐? 남자들이 좋아하는 거?’

솔깃한 주제가 나왔지만 응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고 아예 미동도 하지 않았다.

“이 집에 지금 아픈 노예가 있으니 이 틈을 타서 완벽하게 주인님을 사로잡을 기회도 없을 건데.. 뭐, 관심이 없다면 이야기하진 않을게요.”

“... 사로잡다니...”

“앗! 관심 있으신 거 맞죠? 남자들은 여자가 하기 나름이에요. 그건 이 빌어먹을 도시라고 해도 마찬가지죠. 하지만 아마 키아라님은 그런 분야에선 어떻게 해야 하는 지 잘 모르시는 것 같아요. 그렇죠?”

키아라는 고민하다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남자와 연애? 상상도 하지 못했다. 기사로서 태어나 기사로서 죽는 날까지 국가와 백성을 위해 충성을 다하는 것이 자신의 전부였다. 하지만 지금은 사정이 조금 달라졌다. 처음으로 접한 남자의 관심을 끌고 싶었다. 하지만 어떻게 다가서야 할지 잘 몰랐다. 

“뭘.. 하면 되는 거지?”

“일단 웃으세요.”

“이.. 이렇게?”

“아니요, 조금 더 환하게요. 음.. 조금 낫네요. 그리고 말투도 조금 바꾸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너무 애교가 없어요.”

“애교라니...”

“여자의 최고의 무기는 애교에요. 그리고 그 다음엔 몸이죠. 남자들은 기본적으로 여자를 범하는 걸 좋아해요. 저도 수없이 험한 꼴을 많이 당했었죠. 그때 깨달았어요. 아~ 강한 남자에게 붙어야 살 수 있겠구나하고 말이에요. 그래서 그 남자를 유혹했어요. 그리고 작은 산적단이긴 해도 아무도 절 함부로 대하지 못하게 되었죠.”

“유혹...”

생각지도 못한 단어에 키아라는 당황했다. 그런 천박한 걸 해야만 하는 건가? 아마 레인은 그러지 않더라도 자신을 아껴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가 조금 더 애정을 자신에게 쏟아줄 수 있다면 못할 것도 없다는 생각도 잠시 했다. 그러나 이내 키아라의 얼굴에는 수심이 드리워졌다.

“왜 그러세요?”

‘난 돌아가야만 해.. 그리고 레인님껜 래티샤라고 하는 사랑하는 애인이 있으니.. 어쩔 수 없는 것이 아닌가? 아픈 환자를 두고 나의 욕심을 위해 그를 가로챈다면 그건 기사로서가 아니라 인간으로서 실격일 것이다.’

“키아라님은 참 솔직하지 못하시네요. 제가 언제까지 이 집에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떠나고 나면 가르쳐드리고 싶어도 어렵다는 걸 명심하세요.”

그리곤 곧바로 피곤한지 나나는 잠이 들었다. 키아라는 결국 한숨도 자지 못했다. 트리스테인의 기사와 사랑받고 싶은 소녀의 싸움은 너무나 조용하지만 격렬했다. 결국 승자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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