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1화 (21/50)

<키아라 검투대회 & 애무 포상>

4월 8일

“안녕히 주무셨어요?”

“앗! 네.. 안녕히 주무셨어요.”

키아라는 자신을 깨운 남자의 손길에 깜짝 놀라며 일어났다. 

“죄송해요. 제 침대에서 주무셔도 되는데..”

“아닙니다! 어떻게 감히 그런 무례를 범하겠습니까.”

“그래도 키아라님도 여자니까 맨 바닥에서 주무시는 건..”

“전 여자이기 이전에 자랑스러운 기사입니다.”

단호하게 거절을 하는 모습에 레인은 졌다는 듯 어깨를 으쓱거리곤 래티샤의 방으로 향했다. 한평생을 기사로 살아왔고 전장에서 침낭에 몸을 웅크리고 잤던 경험이 있기에 오히려 이정도가 딱 편안했다.

‘정말 지극정성이군.. 아침 일찍 일어나 먼저 하는 일은 자신의 노예를 돌보는 것... 아니, 둘은 사랑하는 사이 같으니 연인이라고 해도 좋은 건가?’

키아라가 살던 세계에서도 신분을 초월한 사랑 이야기는 흔하지는 않아도 간혹 생기는 일이기도 했다. 처음 기사가 되던 시절, 그런 철없는 젊은 남녀를 잡기 위해서 출동한 적도 있었다. 항상 그런 자들을 한심하게 여기며 살아왔는데, 지금은 자신이 그런 남녀에게 도움을 받고 살아가고 있다는 아이러니함에 씁쓸한 미소가 지어졌다.

“다행히 별일 없었네요. 그럼 식사할까요?”

“앗! 제가 준비하겠습니다.”

“아니에요. 어차피 사료와 물을 준비하는 게 끝인 일이라..”

“아닙니다! 이곳에 머무는 동안은 적어도 제가 할 일은 해야죠. 어젠 정말 감사했습니다. 경황이 없어서 그만..”

“찾았으면 좋았을 텐데.. 아직 안 나왔나 봐요. 아니면 찾은 녀석이 좋다고 쓰고 있는지도..”

“사실 목숨을 구해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인데, 제 물건까지 찾아달라고 한 건 지나친 일이었겠지요.”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고맙네요. 하지만 찾을 수 있을 때까진 노력해 볼게요. 그럼 식사부터 할까요?”

마주 앉아 사료를 씹어 먹는 것이 전부인 식사지만 키아라의 눈은 엉뚱한 곳에 가 있었다.

‘어젠.. 정말 이상한 기분이 들었어..’

레인의 작고 귀여운 입술이 오물오물 거리며 사료를 먹는 모습에 눈을 떼지 못했다. 생의 첫 키스를 정말 예상치 못한 사람에게, 정말 예상치 못한 곳에서,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하게 되었다. 그녀는 항상 기사로서 엄격함을 유지하며 살아왔지만, 항상 마음속 한 구석으로는 여자아이로서의 삶을 동경해왔다. 그러나 어릴 적 항상 아버지는 자신에게 여자가 아닌 남자의 인생을 살아갈 것을 강요했다. 죽어버린 오빠를 대신해서 그런 인생을 살아왔다. 그리고 스스로도 ‘기사 키아라’로서 평생을 바쳐왔다. 그것을 불만스럽게 생각해 온 것은 아니다. 하지만 소녀의 처음을 빼앗아간 일생일대의 사건이 어제 터져버렸고 자연스럽게 상대 남자에 대한 호기심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이었다.

“저기, 키아라님?”

“... 네?!”

“혹시 몸이 편찮으세요? 멍하게 계시고...”

“아닙니다!! 하하하!! 아... 죄송합니다.”

화들짝 놀라 사료 그릇을 손에 들고는 허겁지겁 씹어 삼켰다. 이건 자신다운 행동이 아니다. 아무리 이런 곳에 떨어졌다고 해도 스스로의 긍지를 잃어선 안 된다. 모두가 존경하는 기사로서의 모습을 잃어버리는 순간 그녀는 그녀가 아니게 된다. 

‘그래, 어제 일은.. 사고야.. 앞으로 그런 일은 없어. 절대로. 절대로 없어. 신경 쓰지 말자. 바보 같이.’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 듯 강요와 강요를 거듭하곤 비로소 평소처럼 표정을 지을 수 있었다. 

레인은 오늘도 바깥에 할 일이 있다며 나갔고, 키아라는 집에 남아 레인이 준 종이와 연필로 열심히 자신의 검과 갑옷을 그리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쉬운 일은 아니었다.

“하아....”

12년 전, 그녀가 7살이던 해에 그녀는 처음으로 검을 잡았다. 무겁고 힘들지만 아버지의 칭찬을 듣기 위해 노력하고 또 노력했다. 그림 따위를 그린 건 언제인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여러 번 그리다 지우기를 반복하다보니 몇 년을 함께 한 자신의 물건마저도 어떻게 생겼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 것처럼 갑갑하게만 되어간다.

“이게 뭐하는 짓이람..”

지금까지 수많은 훈련과 수련을 하며 느껴온 무력감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절망감이 덮쳐 오는 것 같아 마음을 다시 스스로 잡았다. 트리스테인에서 최고의 검사로서 이름을 날렸다고는 하지만 이곳에서 자신은 아무것도 아니다. 그냥 흔해빠진 노예인 것이다. 어제의 사람들의 반응들을 보면 자신의 몸값은 제법 비싸게 책정될 수 있는 모양이었다. 그런 건 당연히 전혀 위안이나 도움과는 거리가 먼 이야기다.

“저기...”

방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키아라는 곧장 뛰어갔다.

“화장실이...”

“도와드리겠습니다.”

래티샤를 안아 화장실의 변기에 앉히곤 문을 닫아주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집주인을 대신해 환자를 돌보는 것이다. 

“저.. 끝났어요...”

이곳의 화장실은 전에는 보지 못한 물건이라 참 신기했다. 버튼이라는 것을 눌리면 물이 엄청난 속도로 오물과 함께 사라지고 깨끗한 물이 차오른다. 이런 물건들의 원리를 안다면 트리스테인에 돌아가 왕실의 수석기술자에게 전해주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저.. 잠시만 창가로 가도 될까요?”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창가로 래티샤를 안고 가 의자에 앉혀주고 자신은 그 옆에 섰다. 

“어때요? 지낼만 해요?”

“... 솔직히 어떻게 앞으로 살아나갈지 잘 모르겠습니다.”

“헤헤... 그렇죠? 여자들이 전부 노예인 도시라니.. 이건 이상하지 않나요?”

“도대체 누가 이런 이상한 세상을 만든 것인지...”

“여긴 아마 지옥일 거예요. 우리 같이 죄가 많은 사람들이 떨어지는 곳... 키아라님은 무슨 죄를 지었어요?”

죄? 그런 것을 지을 틈이나 있었을까? 그녀는 열심히 명령에 따라 충실하게 살아온 기사의 삶에 부끄럼이 없었다.

“저도 당신도 죄를 지은 것은 없습니다. 운이 나빴던 것이겠죠. 지옥이라고 하기엔 이곳은 이상한 구석도 많습니다. 마치 누군가가 일부러 세계를 이렇게 구축한 듯한...”

“그럴지도 모르죠. 어쨌든 저희가 돌아갈 곳은 없다는 건 분명하잖아요?”

“... 래티샤님은 돌아가실 수 있다면 어떻게 할 생각입니까?”

“저요? 전 주인님 곁에 있고 싶어요.. 돌아가서 자유롭게 사는 것도 아니니까요.”

“원래 이곳에 오시기 전에도 혹시..”

“노예는 아니었어요. 하지만 자유로운 것과는 거리가 멀었죠.”

“자유라... 그런 건 사치입니다. 의무와 봉사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입니다.”

“헤에.. 대단하시네요... 역시 기사님들은 달라요.”

“... 당신에게 주인님이란 어떤 존재입니까?”

“제가 사랑하는 분이세요. 세상에서 가장 중요하신 분이시죠. 저보다도요.. 전 주인님에게 최고의 노예가 되어드리고 싶어요. 저로 인해 주인님의 명성이 더욱 높아지셨으면 좋겠어요.. 하지만 그런 건 너무 어렵다는 걸 저도 잘 알고 있어요..”

“당신은 이미 그에게 충분히 행복을 주는 존재입니다. 너무 스스로를 낮추진 마십시오.”

“주인님은 참 바보 같으세요. 원하는 여자는 뭐든 돈만 있으면 살 수 있고, 조교시킬 수도 있는 이런 도시에서 노예를 사랑하는 남자라니.. 그것도 저만 사랑해주셨죠. 다른 여자에겐 눈길 한 번도 주지 않으시고요. 그분의 입술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탐한 것도 저에요. 그렇게까지 절 아껴주시는데 전 아무것도 하지 못하죠..”

키아라는 그 순간 몸이 굳는 것 같았다. 어제 오후에 있었던 생애 첫 키스는 너무나 달콤하고 황홀했다. 레인이 자신을 사랑해서 한 키스가 아니라는 건 잘 알고 있다. 딱히 숨길 이유도 없지만 눈앞의 아픈 소녀의 말에 엄청난 죄책감이 느껴졌다.

“정말 자상하시고 좋은 분이세요. 그러니까...”

그 다음부터는 래티샤가 어떤 말을 하는지 키아라는 전혀 들리지 않았다. 그냥 적당히 고개만 끄덕이고 수긍하는 것이 전부였다.

“어? 래티샤?!”

“앗! 주인님!!”

“다녀오셨습니까.”

레인은 돌아와 래티샤에게 다가가선 손가락으로 이마를 튕겼다.

“히잉...”

“쉬어야 한다니까 왜 말을 안 들어?”

“죄송해요.. 하지만 너무 방안에만 있으니 심심했는걸요..”

“조금 있다가 씻겨 줄 테니까 방에 일단 가 있어.”

“네~ 감사합니다, 주인님.”

쪽-!

레인의 입술에 뽀뽀를 하는 래티샤의 귀여운 모습에 키아라는 흐뭇한 감정을 느꼈다. 풋풋한 사랑을 하는 두 사람을 진심으로 응원해 주고 싶다. 어제 있었던 일을 굳이 꺼내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으음...”

늦은 밤, 키아라는 목마름에 잠이 깨었다. 살짝 열려있는 커튼 사이로 달빛이 새어들어와 자신의 얼굴을 비추고 있었다. 

‘물이라도 마시고 잘까..’

침낭에서 나오자 따뜻한 온기가 사라지며 서늘한 기분에 잠이 완전히 깨고 말았다. 이 집은 정말 쓸데없이 넓다. 자신이 자고 있던 침낭에서 물병이 있는 부엌까지 대략 스무 걸음은 걸어야 한다. 평소 무예를 갈고 닦으며 거리에 민감했던 그녀에겐 모든 기준이 이렇듯 발걸음에 기초한다.

“두 분 다 주무시겠지?”

오늘 하루 동안 래티샤와 여러 이야기를 하며 이곳의 상식들을 거의 다 들을 수 있었다. 너무나 충격적인 내용이었지만 이젠 어느 정도 담담하게 현실을 직시할 수 있었다.

‘몬스터 놈들이 사냥을 나가는군.. 새벽에도 이곳으로 떨어지는 불쌍한 여자들이 있다는 건가?’

밖을 배회하는 몬스터들은 가지각색이었다. 자신이 살고 있던 곳에서 봤던 몬스터들도 있었지만 아닌 것도 존재했다. 신기한 건 몬스터들도 수컷만 존재할 뿐, 암컷은 없다는 사실이었다. 그러니 몬스터들이 인간 여자에게 욕정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키아라는 추측했다. 우스운 말이지만 노예로서 도시 안에 있는 여자들은 어떤 의미로 운이 아주 좋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자신조차도 스스로를 지킬 능력이 있었다고 자부했으나 결국 죽을 뻔했던 경험으로 봐서도 저 사냥꾼들에게 잡히지 않은 여자들의 운명이 어떤지는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최고의 검사라고 해도.. 노예의 도시에서는 한낱 노예일 뿐이다...’

다른 여자들이었다면 자신의 처지를 비관했겠지만, 그녀는 오히려 정신을 차리기 위해 노력했다. 어떠한 역경이라도 정신만 차리면 이길 수 있다. 그녀는 그런 인생을 살아왔다. 정신이 꺾이지 않으면 패배한 것이 아니라는 기본적인 마음가짐을 되새겼다.

“주인님...”

‘응?!’

깜짝 놀라 키아라는 자신도 모르게 몸을 숨겼다. 

“아잉... 주인님.. 더.. 만져 주세요...”

‘무슨 소리지?’

호기심에 그녀는 살금살금 조심해 소리가 나는 곳, 래티샤의 방으로 향했다. 문이 살짝 열려있는 틈으로 조심스럽게 보이는 것은..

“아앙.. 주인님.. 손길이 너무 좋아요..”

둘이 침대에서 엉겨 붙어 키스를 하고 있었다. 자신도 모르게 얼굴이 화끈거려지는 것을 느낀 키아라는 고개를 돌렸다. 

‘이건 옳지 않아. 정신 차려라!’

스스로에게 명령을 했지만 곧이어 들리는 달콤한 소녀의 목소리가 텅텅 빈 집에선 너무도 잘 들렸다.

“아앗! 주인님.. 거길 만지시면.. 아흑.....”

‘만져? 어딜?’

호기심과 죄책감 두 개의 저울추가 왔다 갔다 수없이 반복했다. 아무리 저들이 자신이 보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고 해도 스스로 해서는 안 되는 하고 있다는 건 달라지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다시 돌아가려고 했다. 

“하아... 하아.. 주인님...의 손가락이.. 너무.. 뜨거워요.. 하아앙!!”

아까와는 달리 숨소리가 거칠어져 있었다. 도대체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키아라는 궁금해 미칠 지경이었다. 결국 조심스럽게 다시 문의 틈새로 방안을 보았다.

‘앗?!’

키아라는 깜짝 놀라 소리를 지를 뻔 했다. 침대의 위치 때문에 방안에서 하는 일들이 문틈으로 너무나 여과 없이 보이고 있었는데, 침대 위에는 래티샤가 나신으로 다리를 벌리고 있었고 그 뒤에서 레인이 한 손으로는 그녀의 가슴을 한 손으로는 그녀의 꽃잎을 만져주고 있었다. 

‘저게.. 뭐하는 거지?’

레인의 손이 이리저리 움직이며 바쁜 것 같고, 소녀는 그런 손길을 거부하지 않으며 스스로 자신의 주인에게 키스를 했다. 혀와 혀가 마주치는 와중에도 레인은 쉬지 않고 열심히 그녀의 몸을 이리저리 만지고 있었고, 잠시라도 키스가 멈출 때면 래티샤의 입에서는 교성이 흘러나왔다.

‘저게.. 남자와 여자가 하는 그건가?’

뭔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어쨌든 그런 게 있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직접 본 적은 없었다. 그래서 더욱 충격적이었다. 그 얌전하고 귀여운 소녀가 저렇게 야한 소리를 내다니.. 

“하앙.. 주인님.. 거기.. 더 좋아요... 네.. 감사합니다.. 하읏!! 하앙.. 주인님.. 저 가요오오옷!!!”

그 순간 래티샤의 몸이 활처럼 휘더니 부르르 떨기 시작했다. 황홀함에 저절로 미소가 걸리는 모습을 보며 키아라는 궁금증이 치솟았다. 

‘왜.. 저러는 거지? 갑자기 몸을 떨더니..’

“주인님.. 저 주인님과 하나가 되고 싶어요오...”

애교를 부리며 자신의 몸을 남자에게 비비는 래티샤의 모습을 보며 키아라는 자신은 저런 것을 절대로 하지 못한다고 단언했다. 부끄럽고 이상하니까!

“안 돼. 조금만 무리해도 몸이 아프잖아..”

거절을 하는 레인의 목소리엔 힘이 없어보였다. 

“힝... 주인님.. 그럼 같이 자요...”

“아직 아프잖아. 쉬어야 할 때 제대로 못 쉬면 안 되니까 조금만 참아. 사실 오늘도 이런 건 하면 안 되는 건데.. 네가 고집을 피워서 그런 거잖아.”

“헤헤.. 죄송해요.. 하지만 주인님의 손길이 너무 그리워서요.”

‘앗?! 나온다!!’

어느새 대화가 끝나고 레인이 방문을 향해 걸어오는 것을 보곤 깜짝 놀라 키아라는 얼른 자신의 침낭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호기심에 래티샤의 방을 멀리서 조심스럽게 실눈을 지켜보았다.

‘!!!’

레인과 눈이 마주쳤다. 아니다, 그건 자신의 생각일 뿐이다. 레인이 자신이 있는 곳을 슬쩍 살펴보더니 들키지 않았음을 안도하는 듯, 다시 자기 방으로 돌아가는 것을 보며 조용히 한숨을 쉬었다.

‘휴... 정말 몹쓸 짓을 해버렸군.. 은인들에게 이 무슨...’

하지만 자신도 모르게 허벅지를 비비며 뭔가 야릇한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뭘 한 걸까...?’

결국 궁금증에 스스로 손을 뻗어 자신의 소중한 곳을 슬쩍 만져보았다.

“?!”

축축했다. 키아라는 당황스러웠다. 자신의 속옷이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오줌이라도 싼 건가?! 뭐야?!! 도대체!!’

그녀는 혼란스러워 얼른 속옷을 벗어 화장실로 달려갔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을 전혀 눈치 채지 못한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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