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모 있는 년과 쓸모없는 년>
4월 2일
“주인님, 일어나셨어요?”
“으음.. 오늘도 아주 잘 했어.”
알람시계의 역할을 충실하게 해준 레이첼은 환하게 웃으며 진심으로 행복해했다. 일주일 동안 그녀는 엄청나게 빠르게 변화하고 있었다. 스스로의 능동적으로 레인에게 빠지고 나서부터 배우는 것이 정말 빨랐다. 불과 열흘도 되기 전, 그녀가 처녀였다는 사실은 아무도 믿지 않을 만큼, 눈빛은 음란해져 있고 몸은 그 이상으로 뜨거워져있다.
“오늘 식사는 제가 했어요. 감히 주인님의 입맛에 맞으실지 모르지만..”
“맛이 없으면 레이첼을 따먹어주면 되는 건가?”
“아잉.. 참... 주인님..”
살포시 안겨 자신에게 사랑을 쏟아줄 것을 요구하는 귀여운 노예에게 작은 포상의 의미로 꽃잎 사이로 손가락을 집어넣어 흔들어 주었다.
“하앙!! 주인님.. 손가락.. 마구 ... 들어와요.. 기뻐요.. 부디 제 보지를.. 마음껏 농락해 주세요.. 음란한 눈물을 흘리게 해주세요!! 하아앙!!!!”
레이첼 덕분에 레인도 얻은 것이 꽤 많았다. 이젠 제법 섹스라는 것에 능숙해졌다. 처음엔 쓸모없는 고깃덩어리고 생각했는데, 지금 와서 보니 꽤 제 몸값 이상의 물건이었다. 역시 노예는 조교하기 나름이고 주인이 그 가치를 높이기 나름이라는 사실을 재확인했다. 아무리 쓸모없는 노예라고 해도 쓸모 있게 만든다. 그게 레인이 해야 하는 일인 것이다.
“그럼 나가볼까?”
“네, 정말 감사합니다. 주인님.”
레인에게 팔짱을 끼고 자연스럽게 엉덩이를 흔드는 모습에 래티샤는 이젠 반응하기도 지쳤다.
“어서 오십시오, 주인님.”
“잘 잤어? 오늘 아침은 우리 예쁜 레이첼이 만든 음식이니 어디 한 번 먹어볼까?”
계란프라이에 바삭하게 구운 식빵, 안에는 약간의 소스와 양배추를 잘게 썬 것이 전부인 샌드위치였다. 군데군데 조금 탄 곳도 있지만 나름 정성을 들인 티가 났고, 무엇보다도 고작 일주일도 되지 않은 시점에서 이 정도만 배운 것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음! 역시 맛있네. 정말 잘 했어.”
“헤헤헤.. 주인님이 기뻐해주셔서 저도 기뻐요.”
‘어이구.. 아주 깨가 쏟아지네..’
래티샤는 아주 죽을 맛이었다. 처음엔 멍청하고 떼쓰는 꼬맹이로만 봤더니, 하루가 다르게 요물이 되어가고 있었다. 처음에는 그렇게 싫다고만 하더니 이제는 오히려 자신이 레인을 유혹해 그의 정액을 독차지하고 있다. 더 화가 나는 건, 레인도 이 상황을 즐기고 있다는 점이다. 점점 더 자신의 입지가 집에서 좁아지고 있다는 것이 실감이 되었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이거 나 혼자 먹는 건 미안한 걸? 앞으로 레이첼에게 신선한 통조림으로 식사를 바꿔줄까 하는데 넌 어떻게 생각해?”
“네.. 네?! 아.. 그렇게 하셔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잠시 딴 생각을 하는 사이 레인이 질문을 해버렸고 그냥 적당히 얼버무리고 말았다.
“주인니임~ 전 주인님이 주시는 거라면 사료라도 상관없어요. 항상 주인님 곁에만 있게 해주세요..”
자신의 가슴에 새겨진 브랜드 타투를 자랑스럽게 보이며 그의 마음을 사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에 레인은 슬슬 때가 되었음을 직감했다.
‘좋아, 여기서 선택을 해야겠지. 발전이 더딘 래티샤를 끌고 갈 것이냐? 아니면 레이첼을 키워서 쓸 것이냐?’
결국 래티샤는 점점 가면 갈수록 실망스러운 모습만 보이고 있었다. 정확하게는 자신의 일은 정말 잘해낸다. 하지만 레인이 바라는 것은 그 이상의 자신에게 어떤 도움이 되는 무언가를 해주길 바라는 것이다. 그러지 못한다면 이젠 팔아치워도 상관없다. 돈이 딱히 부족한 것도 아니고, 자신의 아우라도 아티펙트와 레이첼의 조교의 경험으로 완벽하게 한 단계 성장했다. 모든 노예를 굴복시킬 수는 없다고 해도, 적어도 조교시킬 자신감이 붙었으니 이젠 굳이 그녀에게 목을 맬 이유는 더더욱 없다.
“정말 상관없겠어? 넌 아직도 사료잖아.”
“네, 주인님께서 결정하신 일이라면 따르겠습니다.”
속으로는 화가 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귀족 집 아이답게 예쁘장한 얼굴에 어느새 갖춘 색기까지 자신이 이길 구석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래, 네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렇게 해도 되는 거겠지. 좋아! 오늘 볼 일이 있어서 잠시 나갔다 올 때, 레이첼에겐 신선한 통조림을 사다줄게.”
“와아!! 감사합니다!! 주인님!! 사랑해요!!”
마구 기뻐하는 레이첼과 달리 래티샤는 슬픈 기색도 보일 수 없었다. 그저 딱딱하고 구역질 나는 사료를 씹어서 잘게 더 잘게 부숴 먹었다.
“래티샤 언니, 청소하면 되죠?”
“응.”
레이첼은 여전히 조금 어설픈 느낌은 있어도 제법 능숙하게 청소를 해내었다. 아무래도 귀하게만 자란 탓에 일 자체를 하는 능력은 어설플 수밖에 없는 것이다.
“주인님이 오시면~~ 섹스 해달라고 졸라 볼까나~~.”
‘저 썩을 년이..’
이젠 아주 기고만장하다. 레인의 총애를 등에 업고 있으니, 대놓고 자신을 무시하는 발언은 하지 않아도 은근히 놀리거나 기분 나쁠 듯한 느낌으로 살살 건드는 것 같은 인상을 지울 수 없다. 하지만 딱히 예의가 없는 행동을 하는 것도 아니니 굳이 뭐라고 말하기도 어렵고, 레인이 어떻게 생각할지가 걱정 되어 어떤 행동을 하는 건 더더욱 멀게만 느껴졌다.
“청소 다 했어요!”
“그래, 수고했어. 주인님이 오실 때까지 쉬어. 점심 때 오신다고 했으니까.”
“네.”
둘은 넓디넓은 집에 덩그러니 놓인 큰 테이블의 반대편에 앉았다. 딱히 읽을 물건이 있는 것도 아니고, 가지고 놀 물건도 없다. 결국 둘만 남게 되면 이렇게 어색한 시간이 흐른다. 잠을 자는 것도 괜찮은 선택이지만 레인이 언제 들어올지 모르기에 잠을 자기도 어려웠다. 설령 레인이 그것에 관해 나쁘게 말하지 않더라도 서로가 서로를 견제하는 상황에서 그런 속편한 짓을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언니는 여기에 오기 전에 무슨 일을 했어요?”
“여관의 메이드..”
“아하! 역시 그렇구나~.”
“무슨 뜻으로 말하는 거니?”
“네? 무슨 뜻이라뇨? 청소와 요리가 너무 완벽해서 그렇게 생각한 건데요?”
예쁜 눈을 깜빡거리며 반박하자 말문이 턱 막혔다. 이번에도 자신이 진 것이다. 스스로 자신의 출생이 눈앞의 계집보다 낮다는 것에 대한 낮은 자존감이 스스로 패배를 하는 구렁텅이로 빠진 것이다.
“우리 심심한데 옛날이야기나 할까요? 어차피 주인님이 오시기 전엔 아무것도 할 일이 없잖아요.”
“그러자. 넌 어떻게 지냈어?”
“전 자랑스러운 바인가문의 첫 번째 딸이에요. 위로는 오빠가 하나 있고요. 정말 자상하고 좋은 오빠였죠. 사실 저희집안은 흔히들 말하는 정계에서 밀려난 집안이에요. 증조할아버님의 실각으로 우리 집안은 작은 마을 두 개를 관리하는 영주가 되었죠. 처음엔 모든 게 어려웠다고 하더라고요. 하지만 제 아버님의 피나는 노력 끝에 작은 시골마을은 풍년이 들고, 또 들고 그렇게 사람이 사는 곳으로 바뀌어 갔죠.”
“그런 것치곤 넌 처음 봤을 땐, 너무 귀족티가 나는 것 같던데?”
“아버님이 쉰이 되셨을 때, 제가 태어났어요. 그땐 작은 두 개의 마을이 아닌 제법 규모가 갖춰진 작은 성을 가진 어엿한 영주가 되셨죠. 아버지는 우리 집안이 다시 일어날 날이 올 거라고 믿었어요. 그리고 절 철저하게 귀족의 영예로서 갖출 덕목들을 가르치셨죠. 어렵지만 열심히 배웠어요. 아버지는 정말 엄격했으니까요. 그러다 어쩌다보니 여기에 떨어져 있더라고요. 솔직히 무슨 일인지 아직도 어리둥절해요. 언니는요?”
“난 고아였고, 수도원에서 자랐어. 나이가 차니까 수도원에서 적당한 도시 외곽에 있는 여관으로 취직을 시켜줬고 거기서 일했어. 열심히 일하고 왠지 피곤해서 침대에 쓰러지듯 눈을 감았는데 다시 뜨니까...”
래티샤는 그날의 기억을 떠올리며 몸을 떨었다. 거대한 늑대가 자신을 강간하던 그 때를.. 죽음이 임박한 상황에서도 자신의 몸은 늑대의 자지를 빨아먹듯 쪼아주고 있었던 그 때를..
“헤에.. 언니도 그럼 주인님이 시장에서 사신 거예요?”
“아니, 난 숲에 떨어진 걸 주인님이 구해주셨어.”
“우와~ 나보다 로맨틱하네요? 부러워라. 나도 그렇게 만났으면 더 좋았을 텐데..”
“넌 이제 옛날 생각은 별로 나지 않는 모양이구나? 잘 적응한 거 같네?”
“그런가요? 사실 이젠 예전 일은 그다지 신경 쓰이지 않아요. 그냥 주인님만 보면 되는 걸요. 분명히 예전이 더 대접받았던 건 사실이에요. 하지만 언제나 집이라는 새장에 갇힌 것처럼 불편했죠. 드레스를 입어야만 하고, 도도한 척 해야 하고.. 하지만 여기선 그러지 않아도 되잖아요? 주인님 앞에선 뭐든 솔직할 수 있어서 즐거워요. 내 마음에 있는 쾌락을 주인님은 기쁘게 받아주세요. 사실 노예라는 말을 들었을 땐, 차라리 죽고 싶었는데 지금은 오히려 노예라서 기뻐요. 언니는 그렇지 않나요?”
“사실 난 예전의 삶이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아서 잘 모르겠는 걸?”
래티샤는 레이첼이 그다지 탐탁지 않지만, 누군가와 길게 대화를 한 것이 거의 없었기에 자신도 모르게 속마음을 조금씩 말했다.
“언니는 여기 오기 전에 남자랑 해봤어요?”
“... 해봤어.”
“헤헤, 전 주인님이 처음이에요.”
‘자랑하고 싶은 건가?’
“그럼 그 사람이랑 사귄 거예요? 아니면 결혼했었어요?”
“그냥.. 스쳐지나가는 인연이란 거지.”
“그 남자 잘 생겼어요? 아니면 몸이 막 멋지다던지?!”
“음...”
솔직히 대답하기 곤란했다. 첫 경험, 그건 말 그대로 어쩌다보니 어느새 당했다고 설명이 되는 이야기니까. 상대는 뱃살이 나온 뚱뚱한 대머리 상인이었다. 그냥 편안하게 대화를 하다 보니 어느새 그의 방에 들어와 있었고 술을 조금 마시니 몸이 나른해졌고 그렇게 첫 남자를 받아들였던 기억이 전부다. 하지만 그런 이야기를 소상하게 해줄 필요는 없었기에 적당히 둘러대었다.
“꽤 미남이었어. 키도 많이 컸고 금발이었지. 푸른색 눈은 호수처럼 예뻤고, 모닥불 앞에서 사랑을 나눴어. 그리곤 말없이 떠났지.”
나름 레이첼이 말하는 것처럼 자신의 사연을 그럴싸하게 포장해서 시적으로 표현해보곤 괜히 뿌듯한 감정을 느꼈다. 하지만 곧바로 그런 생각은 싹 사라지고 말았다.
“아하하! 그럼 그냥 한 번 대준거네요?”
“뭐?!”
“왜요?”
“그렇게 말하는 건 예의가 아니지 싶은데?”
“아.. 그런 건가요.. 죄송해요... 제가 여기서 경험한 게 전부 처음이라.. 이렇게 말하면 안 되는 거군요..”
“그래, 그렇게 말하는 건 실례야. 그리고 어차피 옛날 일은 아무래도 상관없잖아? 이젠 주인님만 바라보고 살면 그만인걸.”
“아하하 그렇죠? 역시 래티샤 언니는 대단하네요. 언제나 변함없이 충성하는 모습이요.”
“아.. 응...”
왠지 껄끄럽다. 최근 레인은 집 안에서는 이 소녀와 수많은 섹스를 했고, 집 밖에서도 이 소녀와 산책을 다녔다. 나갔다 들어올 때만 값어치가 나가는 건 아니더라도 작은 선물도 받을 때도 있었다. 부러웠지만 표현할 수는 없다. 그러면 안 된다고 생각하니까.
“음.. 심심하네요. 역시.. 집은 너무 넓고.. 아! 여기에 예쁜 장식물을 두는 건 어떨까요? 커튼도 나무색에 맞춰서 살짝 밝은 갈색으로 하면 괜찮을 것 같고요.”
“이 집이 확실히 넓긴 하지. 꾸미려면 꽤 돈이 많이 필요할 걸?”
“아하하.. 그렇겠네요. 그래도 하다못해 주인님의 침대는 조금 더 고급스러웠으면 좋겠어요. 너무 등이 딱딱해서 불편하니까요. 그렇지 않아요? 언니도 저 침대에 누워봤죠?”
“음.. 확실히 딱딱하긴 하지..”
“어땠어요?”
“뭐가?”
“주인님이랑 하는 거요.”
“그런 걸 주인님이 없는 곳에서 말하는 건 실례라고 생각해.”
“왜요? 우리끼리 정보 공유도 하고 그러면 좋잖아요. 주인님은 보지를 잘 빨아주세요. 나도 모르게 오줌을 쌀 것 같다니까요. 사실 요즘엔 주인님이 넣어주시는 것을 상상만 해도 축축해져요. 봐요, 그렇죠?”
스스로 자신의 음부에 손을 가져가선 애액을 묻혀 보이면서도 전혀 부끄러워하는 기색이 없는 모습에 래티샤는 살짝 충격을 받았다.
“난 주인님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해. 그런 음란한 생각을 하지 않더라도 말이야.”
“핏! 재미없네요. 디아나만큼 재미없어요.”
집안에 울리는 시계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린다. 아무것도 할 일이 없는 오전 두 여자는 그저 나무탁자에 머리를 대곤 파여 있는 곳을 손톱으로 괜히 건들이다 말다를 반복하며 무료하게 시간을 보냈다.
“지루하네요.”
“지루하지...”
“그럼 언니는 저랑 주인님이 외출하면 집에서 혼자 뭘 하고 지내세요?”
“청소, 빨래, 식사준비.”
“어차피 금방 하시잖아요. 그러고 나서는요?”
“그냥 주인님이 불편하지 않으시도록 혹시 모를 정리도 하고, 가끔 다른 노예를 데리고 오실 수도 있으니 침낭도 햇빛에 잘 말려두고.. 아무래도 다른 노예가 오면 바빠질 테니 긴장을 하며 있어야 하지.”
“그게 전부에요?”
“말이 참 쉽게 나오는구나?”
“헤헤.. 그럼 안 되나요?”
“!!!”
래티샤는 화가 나서 의자를 박차고 일어섰다. 반대로 레이첼은 빙글빙글 웃으며 그런 래티샤를 은근히 자극했다.
“왜요? 때리시게요? 때려보세요. 몸에 상처라도 나면 주인님이 얼마나 슬퍼하실까?”
“건방진 년...”
역시 이 건방진 꼬마는 자신을 만만하게 보고 있다. 지금까지 적당히 경계선을 왔다갔다 하며 자신이 도발에 걸리기를 기대하는 듯 장난을 친 것이다.
“언니도 알고 있죠? 언니랑 나 언제까지고 여기서 함께 있진 못해요. 물론 언니가 더 유리하다는 건 인정할게요. 주인님은 인정이 많으시고 착하고 멋진 분이시니까 첫 노예를 조금 더 대접해주려고 하는 마음이 있다는 건요. 하지만 언니는 쓸모없어요. 밥이나 하고 청소나 하는 집에 흔히 보이는 있으나마나한 배경과 같은 존재죠. 아핫! 말이 너무 심했나요?”
“다시 지껄여봐.”
“언니, 미안하지만 당신이 이 집을 나가줘야겠어요.”
“뭐? 참나, 이젠 살다살다 미친 소릴 다 듣네.”
“왜요? 언니보단 제가 주인님을 더 만족시켜드리잖아요. 심지어 제가 언니보다도 어리지만 가슴도 더 큰걸요? 앞으로 자랄 것까지 계산하면 더 말할 필요도 없겠죠? 그게 전부는 또 아니죠~ 언니보단 제가 더 머리가 좋아요. 얼마 전엔 주인님께서 집안의 가계부를 작성하는 것도 가르쳐 주셨어요. 배우니까 별거 없던데, 그런 걸 아직도 가르치지 못하신 건, 언니가 그만큼 멍청하거나 신용이 되지 않는다는 뜻이겠죠. 안 그래요?”
“이.. 이....”
주먹이 쥐어졌지만 차마 때릴 수가 없었다. 틀린 말이 아니라서 더 가슴을 아프게 찌르고 파헤친다.
“헤헤헤~ 아유.. 이렇게 멍청한 언니한테 머리를 숙이다니, 다이나는 참 고지식한 얘였어요. 그거 아세요? 지금 와서 보니까 주인님이 다이나를 판 건 순전히 언니보다 값이 더 나가서였을 거예요. 전 주인님의 자금사정도 이제 훤히 알거든요? 사실 지금의 생활이 7일이 넘도록 아무런 수입을 내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유지가 되고 있는 건 디아나가 꽤 비싼 가격에 팔려서 그런 거예요. 이런 건 알고 계셨나 몰라?”
“....”
래티샤는 더 이상 대꾸를 할 수 없었다. 어느새 자신이 손을 대지 못하는 일들을 눈앞에 계집이 하나씩 뺏고 있었다. 서서히 자신의 자리를 좁혀 들어오며 레인과 자신을 멀리 떼어놓으려고 한다.
‘죽이고 싶어.. 죽이고 싶어..’
분함에 이빨이 갈리고 꽉 쥔 손에서 피가 난다.
“에이.. 좀 친해져보고 싶었는데.. 괜히 말 걸었네요. 미안해요, 언.니.”
환하게 웃고 있지만 시커먼 속이 훤히 들어나 보였다. 하지만 래티샤로선 패배를 인정할 수 없었고 그저 분함을 스스로 삭히는 것이 전부였다.
“아~ 피곤하다. 사이좋게 잘 지냈어?”
“네~ 주인님 피곤하시죠? 마사지 해드릴까요? 아니면 목욕부터 하실래요?”
오늘따라 늦게 들어온 주인을 향해 눈을 반짝이며 레이첼은 먼저 약삭빠르게 달려가 팔짱을 끼곤 애교를 부렸다.
“언니랑 잘 지냈어?”
“네~ 언니가 요리랑 청소하는 법을 가르쳐 줬어요. 주인님 생각하며 열심히~ 정말 열심히 배웠어요.”
“이야~ 레이첼 덕분에 힘이 나네.”
“헤헤헤~~”
“다녀오셨어요?”
“아, 응. 밥은 먹었어?”
“아뇨~~ 주인님 기다리느라 배고팠어요.. 힝...”
래티샤의 말을 가로챈 레이첼은 레인이 자신만을 바라보도록 유도했고, 레인은 곧바로 래티샤에게 갔던 시선을 거두곤 레이첼과 대화를 하기 시작했다.
‘역시.. 이길 수 없구나..’
“에이.. 아무리 그래도 내가 너무 늦으면 밥은 꼭 챙겨먹어. 래티샤, 넌 뭐했어? 내가 없으면 네가 잘 돌봐줘야 하는 거 아니었어?”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주인님.”
“쯧.. 역시 별 도움이 안 되네.”
차갑게 말하는 레인의 말이 비수가 되어 박혀 너무나 고통스러웠다. 하지만 울면 직감적으로 정말 끝이라는 생각에 참았다.
“아무리 노예라고 해도 최소한으로 생각을 하고 행동하란 말이야. 바보 같이 굶기면 굶긴다고 그냥 죽을래? 난 그런 산송장은 필요 없어.”
“네. 명심하겠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주인님..”
“에헤헤~ 주인님 죄송해요. 주인님을 걱정시켜드리고.. 하지만 주인님이 밖에서 힘들게 일하시는데 저희만 집에서 편하게 식사하는 건 예의가 아닌 것 같았어요.”
“음, 그랬어? 역시 레이첼이 최고네. 내 생각을 해주는 건 너밖에 없구나.”
“주인님! 목욕해요!! 제가 열심히 봉사해드릴게요!”
“하하~ 그럴까?”
‘안 돼.. 제발.. 그만 좀 해..’
래티샤는 결국 참지 못하고 울상이 된 표정을 짓고 말았다. 서로 정답게 이야기하며 욕실에 들어가는 모습은 마치 금슬 좋은 신혼부부 같았다.
‘주인님께.. 솔직하게 말씀드리자. 날 팔아달라고... 더 이상 못 버티겠어. 차라리 똥밭에서 정액이나 받아먹으며 살래.. 그게 마음이 편할 것 같아..’
억지로 울지 않기 위해서 또 참았다. 마지막 자존심, 절대로 레이첼 앞에서 울고 싶지는 않다는 고집이 생겼다. 그래서 한 번 더 참기로 결심했다. 어차피 등 떠밀려 팔려나가더라도 자신이 사라진 뒤에 비웃음을 당하고 싶지는 않았다.
“에에? 주인님, 오늘은 혼자 쉬고 싶으시다고요?”
“응, 정말 오늘은 피곤해서 안 되겠어.”
“아잉... 전 주인님이 없으면 잠을 못 드는 걸요...”
“하하하, 그래도 방금도 한 번 싸줬잖아.”
“헤헤.. 주인님의 씨앗이 제 안에서 꿈틀거리는 것이 느껴져요. 너무 행복해요.”
쪽-!
“아유, 이뻐. 잘자~~ 우리 사랑하는 레이첼~”
“주인님도 제 꿈꾸세요~”
“주인님, 안녕히 주무십시오..”
래티샤는 고개를 숙이고 묵묵히 말하고 돌아서려고 했다.
“래티샤, 목말라. 방금까지 정기를 다 빨려서 말이야. 시원한 토마토 쥬스나 갈아와.”
“네! 알겠습니다!!”
그의 작은 지시에 래티샤는 순간 힘을 얻은 것처럼 밝아졌다.
‘아.. 난 역시.. 주인님을 사랑하는 건가봐... 흑...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그런 래티샤의 감정을 읽은 레이첼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넌 졌어.’
‘그래, 이제 속이 시원하니? 축하한다, 썩을 년’
래티샤는 마지막 저항으로 레이첼과 눈빛으로 대화를 주고받곤, 부엌으로 향했다.
똑똑-
“들어가도 될까요?”
“음~ 들어와.”
문을 열자 사랑하는 남자의 모습이 보인다. 작고 귀여운 얼굴이지만 자신보다도 더 크고 강한 남자. 래티샤는 이 남자를 사랑한다. 진심으로 많은 것이 고마웠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이젠 더 이상 두고 볼 수는 없었다.
“아, 고마워. 거기 두면 돼.”
“네, 주인님.”
래티샤는 레인의 얼굴을 보자 바보 같게도 방금까지 느꼈던 분노가 사그라드는 것 같았다. 평생을 고개만 숙이고 살아왔고, 자신의 것을 빼앗기는 상황들이 그녀에겐 낯설지 않았다. 그래서 결국 이번에도 울분을 감춘 채, 자신에게 명령을 내려준 그에게 감사하는 마음만을 되새겼다.
“래티샤, 요즘 힘든 건 없어?”
“... 없습니다, 주인님.”
“정말? 표정이 많이 어두운데? 내가 알던 래티샤가 아니야.”
“흑... 주인님...”
래티샤는 결국 울음을 참지 못하고 레인에게 안겼다.
“왜 우는 거야?”
“모르겠어요.. 하지만 주인님이 너무 좋아서... 자꾸 멀어지는 것 같아서.. 불안해서... 모르겠어요.. 저도 제 마음이 왜 이러는 건지.. 이제 어떻게 해야 좋은 건지... 흑흑...”
“에이 참... 기껏 쉬려고 했더니 엉망이 되었군. 이리 와서 앉아.”
레인의 옆으로 앉은 래티샤는 작게 흐느꼈다. 너무나 고통스러워서 차라리 레인이 자신을 고문했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이렇게 가까이 있지만 너무나 멀어서 숨이 막혀 죽을 것만 같았다.
“왜 그런 생각을 하는 거지?”
“그건.. 그건...”
“솔직하게 말해. 난 거짓말은 딱 질색이니까. 그건 너도 잘 알지?”
래티샤는 울먹이며 그동안 자신이 느낀 감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몇 번이고 울음을 터뜨리다가도 겨우 진정하고 다시 이야기를 하고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차라리.. 절 팔아주세요.. 전.. 주인님 곁에 있을 자격이 없어요...”
“그게 전부야?”
“네.. 주인님.”
짝!!
레인은 팔을 최대한 세게 휘둘러 래티샤의 뺨을 갈겼다.
“겨우 그런 수준 밖에 안 될 거라곤 생각도 못했다. 쓸모없는 년.”
“아... 아.. 주인님...”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충격은 너무나 강했다. 더 이상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내가 너였더라면 이 기회를 잡기 위해서 스스로 내 옆으로 와서 어깨라도 주물러 줬을 거다. 그러면서 은근슬쩍 날 떠봤겠지. 레이첼이 거의 다 배운 것 같으니 이제 파는 게 어떻겠냐고 말이야. 근데 그보다 더 화가 나는 건 뭔지 알아?”
퍽-!
“윽...”
레인은 발로 래티샤의 배를 걷어찼다. 어차피 이년은 이게 전부인 하찮은 년이다. 스스로 기회를 줘도 그걸 전혀 잡을 줄도 모르고 그럴 생각도 적극적으로 없다. 더 이상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만 들었다.
“네가 저기 있는 건방진 계집 따위에게 지고 와서 나한테 질질 짜고 있는 상황자체가 난 매우 불쾌해. 적어도 난 네게 나에게 쓸모 있는 사람이라는 걸 증명하라고 명령했어. 그런데 넌 그걸 완벽하게 무시했지. 네가 왜 널 상대하지 않는 줄 알아? 쓸모가 없거든. 말을 하지 않으면 스스로 뭘 해야 할지도 몰라. 겨우 걸음마를 뗀 어린애나 다름없는 창녀한테 지고 돌아와선 나에게 주인님이라는 말이 입에서 나와?”
퍽!!
“으윽...”
래티샤는 레인의 발길질이 이상하게도 아프지 않았다. 아픈 건 오히려 마음이었다. 비참하게 패배하고 돌아와 주인에게 고자질이나 하는 그런 쓸모없는 노예를 레인이 바랄 리가 없다는 건 자신이 더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정작 자신이 그렇게 쓸모없게 변해가고 있다는 걸 고쳐볼 생각은 하지 못했던 것이다.
“뭐? 내 노예가 될 자격이 없어? 그걸 왜 네가 멋대로 건방지게 정하는 거지? 그나마 고분고분한 게 네 장점이 아니었나? 편하게 대해줬더니 이젠 기고만장해져서 스스로 자격운운하는 수준까지 떨어진 거야?”
레인은 자신의 벨트를 꺼내 들었다.
촤악!!
“끅!!”
“소리 지르지 마. 넌 그럴 자격도 없어.”
“네.. 주인님..”
짜악!!!
“으읍...”
“아파?”
“아닙니다. 더 때려주십시오. 이 쓸모없는 노예를 주인님에게 걸맞는 노예로 만들어 주십시오.”
“네가 그렇게 말했으니 사양할 이유는 없겠군.”
촤악!! 촤악!!!!
“끄으...”
수차례 래티샤를 벨트로 후려치자 얇은 옷이 찢어졌고 발갛게 상처가 난 살이 보였다. 하지만 래티샤는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입술을 깨물고 참고 있었다.
“그거 아냐? 내게 쓸모없는 노예라는 건, 다른 고객에겐 아예 권할 수도 없다는 뜻이야. 널 팔아서 쥐꼬리만한 돈을 벌고 그 대가로 내 명성이 먹칠되는 걸 알면서 내가 널 팔 것 같아?”
짜악!!!
“으읍....”
몸이 부들부들 떨리고 입술에서는 피가 새어나왔지만 또 참았다.
“일어서.”
래티샤는 대답할 기운조차 없었다. 몇 번을 비틀거려 겨우 후들거리는 다리를 팔로 붙들고 일어서서 그의 눈을 바라보았다.
“아파?”
“아..프지 않습니다..”
“그럼 더 때려도 되는 거지?”
“네. 부디 마음이 풀리실 때까지 때려주십시오.”
“누구한테 명령질이야?”
퍽-!
“윽..”
살을 찢는 고통이 느껴졌지만 래티샤는 더 이상 아프지 않았다. 고작 이것밖에 안되는 노예로 기억되고 싶지 않았다. 그를 사모하는 마음만큼 그에게 더 나은 노예로 기억되고 싶다는 생각으로 참고 또 버텼다.
“조금 나아졌군.”
레인의 마지막 한마디는 너무나 차가웠다. 하지만 그녀에겐 따뜻한 메시지로 들렸다. 결국 그날 밤 래티샤는 그토록 미운 레이첼의 손에 들려 나가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