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첼 펠라치오 조교 & 디아나 노예도시 적응조교>
3월 24일 밤..
“디아나.. 나 무서워..”
늦은 밤, 노예들은 거실에서 조금 떨어진 좁은 방에서 함께 잠을 자고 있었다. 아니, 자야만 했지만 제각각의 이유로 잠에 들지 못하고 있었다.
“괜찮아요, 레이첼 아가씨..”
“흑흑.. 디아나는 어떻게 그렇게 침착할 수 있는 거야? 알몸이라고! 우릴 동물취급 하고 있어!! 감히 날... 흑흑.. 아빠가 보고 싶어..”
‘거 더럽게 시끄럽네..’
래티샤는 속으로 부글부글 끓어오르고 있었지만 억지로 참고 있었다. 아니, 정확하게는 무시하고 싶었다. 짜증나는 오늘의 일들 모두..
“레이첼 아가씨도 보셨죠? 저분의 말씀만 잘 들으면 앞으로 편해지실 거예요. 좋은 옷, 좋은 음식들이 그리우시죠? 가족들도 보고 싶으시죠? 죄송하지만 이제 그때로 돌아갈 순 없어요. 힘들지만 그래도 제가 같이 있잖아요.”
“왜 이런 일이 생긴거야... 왜... 흑...흑...”
“그거야 죄를 지었으니까 그런 거겠죠.”
결국 짜증이 난 래티샤는 고개를 돌리고 레이첼을 쏘아붙였다.
“뭐? 뭐라고 했어?”
“건방진 년, 널 죽이지 않고 있는 건, 주인님이 명령하지 않아서야. 주인님의 발톱 때만도 못한 주제에 어디서 귀한척이야? 여기가 네가 살던 싸구려 성인 것 같아? 운명을 받아들이지 못하겠으면 차라리 스스로 지금 당장 밖으로 나가. 나가서 네가 살 길을 찾아 봐! 혼자선 아무것도 못하는 밥버러지 주제에.”
“어.. 방금 나한테 뭐라고 한 거야?”
“밥버러지. 내가 틀린 말 했어?
“저기.. 래티샤님, 정말 죄송합니다. 아직 적응하는 기간인 만큼 조금만 아량을...”
“너도 마찬가지야. 주인님이 조금 애정을 주니까 이제 나를 밀어낼 것 같아? 앗?!”
그제야 래티샤는 자신의 말에 어마어마한 실수가 있음을 깨달았지만 이미 쏟은 물이었다.
“래티샤님께선 주인님을 정말로 사랑하시는 모양이네요..”
“시끄러! 네가 나에 대해서 뭘 안다고 그러는 거야?!”
“죄송합니다.. 사실 집에 오게 된 것도 제가 떼를 써서였어요. 레이첼 아가씨는 보시다시피 슬레인에서 아직까지는 살아남기 어려우십니다. 누군가가 돌봐줘야만 했어요. 하지만 그 역할이 제가 될 수 없죠. 네, 맞습니다. 제가 래티샤님의 소중한 주인님을 이용한 것입니다. 주인님께서도 그 사정을 알면서도 흔쾌히 저와 레이첼 아가씨를 사주셨죠. 무척이나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여자를 모두 동물 취급하는 이곳에서도 작은 온정이 남아계신 분이 있다는 사실에 말입니다. 그래서 래티샤님의 마음도 이해를 할 수 있습니다. 누구보다도 따뜻한 주인님인 만큼 그 곁을 잃어버리고 싶지 않은 건 당연합니다. 저도 제 주인님이 겨우 오늘 하루 만난 것이 전부지만 진심으로 따르기로 생각을 했습니다.”
“...”
래티샤는 완벽하게 논파당해 말문이 막혔다. 무엇보다 그런 사정을 다 듣고도 레인이 덜컥 둘을 사줬다고? 그 사실이 오히려 가슴 아프게 느껴졌다. 레인은 자신만의 주인님, 자신에게 따뜻한 남자이길 바랬다. 물론 그의 직업이 노예상인인 만큼 블랙펄을 파는 것은 불가피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먹고 살아가기 위해선 돈이 필요하고, 그 돈을 마련할 길은 노예를 파는 것이다. 당연히 지금 모인 셋 중에도 누군가는 팔릴 것이고, 그 다음이 자신이 될 가능성도 없다고 배제할 수는 없는 상황인 것이다. 하지만 그런건 너무나 싫었다.
“래티샤님.. 그리고 오늘 정말 감사했습니다. 적어도 이곳에서 주인님을 제외한 최고서열은 래티샤님이십니다. 어리석은 저희 둘을 주인님에게 걸맞는 노예로 조교시켜 주십시오. 최선을 다해 래티샤님을 돕겠습니다.”
달빛이 방안을 밝게 비추는 가운데 디아나는 침낭에서 나와 스스로 몸을 엎드려 절을 했다.
“레이첼 아가씨, 아가씨도 하셔야 합니다.”
“내가.. 내가.. 왜!”
“아가씨! 언제까지고 제가 당신을 보호해 줄 수는 없어요! 이대로 죽고 싶으신 거예요? 어떤 상황이 닥쳐도 우린 살아남아야 해요! 그게 제일 중요해요. 살아야 내일 조금 더 나은 세상을 볼 수 있어요. 아가씨는 모르겠지만, 전 아가씨의 아버지와 신분이 같은 분께서 노예인 어머니를 강간해 낳으셨죠. 전 태어나서 아버지가 없는 아이라고 손가락질을 받고 살았어요. 아가씨가 자신을 딸로 생각해주지도 않는 아버지의 곁에도 다가가지 못해, 멀리서 바라보며 아빠라고 혼자 속삭여본 적이 있나요? 탄 음식, 남긴 음식을 먹어봤어요? 적어도 저분은 그러시는 분은 아니에요. 하지만 여기서 더 나쁜 집으로 간다면 지금 허락된 안락함도 없어요. 이젠 스스로 결정하셔야 해요. 여기까지 안전하게 모셔다 드린만큼 제가 아가씨께 드릴 수 있는 건 이제 아무것도 없어요.”
“디아나.. 너까지.. 너무해.. 정말...”
“어서 래티샤님께 머리를 숙이세요!”
디아나는 작고 통통한 레이첼의 머리를 잡고 억지로 몸을 꿇린 다음 머리를 땅에 박게 했다.
‘저게 진짜 노예로서 삶을 살아온 아이의 정신이란 말인가? 아무런 거리낌도 없어.. 망설이지도 않아. 오로지 주인의 관점에서 주인의 생각에 미치도록...’
래티샤는 그런 둘의 모습에 많이 놀랐다. 아마 저 모습은 건방진 노예를 가르치는 다른 노예의 교육법인 것이다.
“흑흑...”
“어서 래티샤님께 말씀하세요. 제가 건방졌습니다. 부디 절 주인님께 맞는 노예로 길들여 주세요라고 말이에요.”
“흑흑.. 싫어.. 아아악.. 아파...”
“아프죠? 늦으면 늦을수록 더 아플 거예요. 몸을 비틀 생각도 하지 마세요. 몸에 멍이 생기면 아침에 주인님은 단번에 알아보시겠죠. 그리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어보실 것이고, 우린 셋 다 모두 벌을 받겠죠. 전 아가씨.. 아니, 레이첼을 위해서 벌을 받아 줄 수 있어요. 하지만 래티샤님께 피해를 끼쳐선 안 되고, 더 중요한 건 주인님의 행복한 아침을 방해했다는 거예요. 빨리 래티샤님께 사죄하세요.”
약 3분간의 보이지 않는 감정싸움이 시작되었다. 결국..
“흑흑.. 죄송합니다.. 부디 절... 래티샤님과 같은 노예로... 흑... 흐아아앙!!”
천천히 입을 떼었지만 결국 분함을 참지 못해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래티샤는 이미 둘에게 질려버렸다. 막상 자신의 일생이 노예와 다를 것이 없다고 여겨왔지만, 진짜 노예의 인생은 그 이상으로도 비참하고 무섭다는 것을 배워버렸다. 그리고 그나마 레인의 집에서는 자신이 가장 높은 서열의 노예겠지만, 다른 집으로 가게 된다면 그저 볼품없는 하녀로 쓰이는 게 전부인 노예일 뿐이라는 것을.. 그곳에서의 자신의 서열은 가장 아래쪽에 위치할 것이다. 이 슬레인에는 예쁜 여자노예들은 넘쳐나고 자신은 그들에 비하면 형편없다는 것쯤은 잘 알고 있으니까.
“됐..됐어.. 그렇게까지 할 건 없어. 주인님께서 이 모습을 보시면 곤란해 하실 지도 모르니 그만해.”
“네, 래티샤님.”
구속하고 있던 레이첼을 풀어주었지만 레이첼은 머리를 땅에 박은채로 흐느껴 울기만 했다. 때론 차라리 울고 또 우는 것이 자신의 입장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 결국 가운데서 우는 레이첼이 진정할 때까지 둘은 잠을 자지 못했다.
3월 25일
“츄릅.. 츄릅...”
“음.. 좋아. 됐어.”
“안녕히 주무셨습니까, 주인님?”
“아주 능숙해 졌구나? 처음엔 뭘 해야 할지 모르더니.”
“주인님이 잘 가르쳐주신 덕이죠.”
레인은 모처럼 기분 좋게 일어났다. 당장 어제 이런저런 머리 아픈 일들도 있었고, 돈도 제법 썼지만 상쾌하게 다시 돈을 벌 궁리를 하면 그만인 것이다. 나름 가난과 싸워온 세월만큼 지독한 현실주의자가 되어버렸다고도 할 수 있다.
“식사는?”
“디아나가 레이첼과 함께 준비하고 있어요. 물론 제가 만들었지만, 차리는 모양새부터라도 배워야죠. 그래도 디아나는 기본적으로 칼질이 능숙하고 청소도 하는 기본이 갖춰져 있어요. 레이첼은.. 노력해야죠. 계속..”
“음.. 제대로 된 후배가 둘이 늘었더니 래티샤가 제법 의젓해진 것 같은데?”
“아니에요, 주인님. 지금은 주인님께 어리광을 피우고 싶은 가련한 노예일 뿐인걸요.”
래티샤는 자신의 알몸을 비벼 레인의 몸을 자극하기 위해 노력했다. 빈약하고 마른 몸이라 그다지 흥분이 되진 않았지만, 그래도 레인은 적당히 맞춰주기로 했다.
“음... 정말 래티샤는 부드러워. 어쩜 이렇게 완벽한 거니?”
“제가 조금 더 나은 모습이면 좋을 텐데.. 이런 저라도 귀여워 해주셔서 영광이에요.”
이제야 꽤 마음에 드는 답이 나와 레인은 무척 흡족했다. 어제만 해도 써먹을 데가 없는, 곧 팔아치우는 게 이득일 것만 같았던 그녀가 오늘은 제법 노예다운 티를 내고 있었다. 아마 이건 디아나의 영향이 컸을 것이다. 매사에 진중하고 노력파인 성격을 가진 디아나에게 뭔가 자극을 받은 것이라는 걸 알아채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좋아, 그럼 아침밥부터 먹을까?”
“아...”
레인은 자신을 유혹하며 자지를 손으로 애무해주던 래티샤를 밀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음 같아선 아침부터 한판 뜨고 싶긴 하지만 해야 할 일이 아주 많다. 그렇기에 누워 있을 시간이 없다.
‘주인님.. 역시 이제 나에게 실증이 난 걸까..’
래티샤는 마음이 불안해져 왔다. 어젯밤의 사건만 봐도 자신보다는 디아나가 훨씬 나은 노예라는 건 증명이 되어버렸다. 심지어 디아나는 라이벌이라고도 할 수 있는 자신의 위치까지도 배려를 하며 먼저 고개를 숙였다. 그런 착한 노예를 레인이 싫어할 리가 없다. 적어도 그는 상과 벌이 분명하니까. 왠지 두려운 마음이 든다. 지금부터라도 조금 더 레인에게 충성해야겠다고 스스로 다짐하곤, 옷을 입고 밖으로 뒤따라 나갔다.
“음.. 냄새가 오늘도 좋군.”
아침밥은 가벼운 버섯스프에 야채샐러드. 간단하긴 하지만 스프를 오래 끓여 진하면서도 은은한 맛과 향기가 감돌도록 노력한 정성이 보였다. 이 정도면 아침밥도 만족. 적어도 래티샤가 요리에서 만큼은 쓸모 있는 노예라는 평가를 재확인했다.
“와아...”
레이첼은 침을 흘리진 않았지만 눈을 반짝이며 부럽다는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왜? 너도 먹고 싶어?”
“응! 저도 먹고 싶어요.”
“반말은 좀...”
옆에서 깜짝 놀라 말을 흐리는 디아나를 손으로 적당히 제지했다.
“좋아, 네가 정 원한다면 내 식사를 절반 나눠줄게.”
“와아!! 감사해요!”
“그 대신에 넌 나에게 뭘 해줄 수 있는데?”
“어...”
레이첼은 몹시 당황했다. 눈을 껌벅이며 어떤 대답을 해야 좋은지 집안 여기저기를 눈깃으로 확인하곤
“청소 할게요.”
“집은 너무 깨끗해서 탈이야. 그리고 네가 아니더라도 이 집을 청소할 수 있는 건 래티샤와 디아나 둘 다 있어. 너보다 더 익숙하고 너보다 더 잘하지.”
“아.. 그렇긴 하지만.. 그럼 요..”
“요리를 하려고? 이것보다 맛있게 할 수 있어? 난 이 정도로 수준이 있는 음식이 아니면 먹지 않는 걸?”
“히잉...”
울먹거리며 곤란해 하며 디아나를 쳐다보았지만 디아나 역시 뾰족한 수가 나올 리는 없었다.
“그럼 넌 날 위해서 뭘 해줄 수 있는데?”
“저.. 그럼... 아! 어깨 주물러 줄게요!!”
“어깨만? 발도 주물러 줄래?”
“네!! 그럴 게요!! 이 사료는 너무 맛이 없어요.. 냄새도 지독하고.. 흑...”
“흠.. 이렇게까지 싫다고 하는데 억지로 먹어라고 하는 것도 인간미는 없어 보이긴 하네.”
“... 레이첼! 주인님을 귀찮게 하면 안돼요.”
“하지만..”
래티샤의 작지만 분명한 경고에도 이 고집쟁이 어린이는 마음을 꺾지 않았다. 반면 레인은 오히려 이 장면이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다. 이제야 조금씩 래티샤가 자기 역할을 찾아하는 것 같아서 말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세르빌라에게 보낼 노예를 누구로 할지 정하진 않았다.
“좋아, 그럼 내 부탁 3가지를 들어주면 내 밥을 통째로 주지.”
“와아!!!”
“처음 내리는 명령이니까 너무 어려운 걸 시키면 공평하지 않겠지?”
“네. 쉬운 걸로 부탁해요.”
“좋아, 내 어깨와 다리를 주물러.”
“네!”
활기찬 미소로 레인의 어깨와 발을 정성스럽게 주물렀다. 서툴고 엉망이고 오히려 아프기까지도 했지만 자발적으로 무언가를 봉사하는데 의의를 두기로 하고 일단은 합격점을 줬다.
“음.. 괜찮은데? 귀여운 레이첼이 이렇게 아침, 저녁으로 봉사를 해주면 정말 좋겠어.”
“제가 할게요! 할 수 있어요!!”
“그래? 좋아. 그럼 벌써 두 개나 해버렸으니 하나만 성공하면 되겠구나.”
기대하는 레이첼의 눈은 반짝거렸다. 확실히 처음만나고 나서부터 지금까지 모습 중에 가장 활기찬 모습에 어느 정도 조교의 방향이 잡혀가기 시작하고 있었다.
“좋아. 마지막은.. 음.. 고민 되는 걸?”
“헤헤헤.. 쉬운 걸로 부탁해요, 주인님!”
처음 봤을 때부터 상황판단이 안 되는 모습에 비하면 장족의 발전이긴 하지만 여전히 진심이 섞여있지 않았다. 조금 놀려보기로 할까?
“좋아, 아침에 래티샤가 펠라를 해줬는데 싸진 않았거든. 네가 대신해서 싸게 해줘.”
“에?? 그게 무슨...”
아예 의도조차 읽지 못했다. 당연히 그럴 만도 했다. 자신이 살던 세계에선 이런 걸 저 나이에 겪진 않으니까. 하지만 이곳은 슬레인, 더 어린 나이의 어린이도 시키면 한다. 하지 않으면 죽으니까.
“래티샤, 미안하지만 시범을 보여줘.”
“네, 주인님.”
래티샤는 무릎을 꿇은 채로 기어와 레인의 속옷을 내리곤 입으로 천천히 자지를 머금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 역시 래티샤는 좋은 걸. 레이첼은 어떤 느낌일까? 주인님은 정말 궁금해.”
“아.. 아.. 파렴치해.. 이상해.. 뭐하는 거야??”
“왜? 못하겠어? 흠.. 래티샤는 많이 했으니 불공평한가?”
“으으.. 맞아! 불공평해!! 이런 건.. 무효야!!”
레인은 곤란한 표정을 지었고, 래티샤와 디아나는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반면 눈치 없는 노예는 길길이 날뛸 뿐이었다.
“디아나! 네가 한 번 와서 해봐.”
“네?!”
당연히 디아나도 남자에 대한 경험이 전혀 없다. 가능하면 남자의 손을 타게 하고 싶진 않지만 좋은 비교가 될 것이기에 주저없이 명령을 내렸다.
“왜? 너도 못하겠어?”
“아닙니다! 하지만 어떻게 하면..”
“그냥 입에 넣고 빨아봐. 하다보면 감이 올테니까.”
‘우와.. 커져있네.. 신기하다..’
여태껏 조용한 음악가의 몸종으로 살아왔기에 전혀 남자의 물건을 본 경험이 없었다. 호기심과 약간의 두근거림으로 입을 벌리고 천천히 레인의 물건은 머금는다.
‘야한 기분이 들어... 신기해.. 이게.. 몸 안에 들어오는 거야? 정말? 아프지 않을까?’
온갖 상상을 하며 점점 더 깊은 쾌락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확실히 그녀는 우등생이었다. 스스로 뭘 해야 하는지 배우는 과정에서 스스로 찾는 법을 안다. 제 아무리 똑똑한 노예라고 해도 스스로의 의지가 없다면 멍청한 노예보다도 배우는 속도는 느릴 수밖에 없다. 반면 준비된 노예는 이렇듯 모든 일이 일사천리로 쉽게 진행된다.
“으.. 쌀 것 같아! 그만해!”
“후아... 하아.. 네.. 주인님..”
입에서 흘러나온 자신의 침이 바닥을 더럽히는 것도 모른 채, 황홀한 기분에 젖어 멍한 눈으로 레인의 자지를 바라보았다.
‘하마터면 쌀 뻔했군. 후우.. 역시 우등생은 다르다니까.’
“저기.. 주인님.. 제가 실수라도..”
“좋아, 아주 잘했어. 소질이 있는 걸? 정말 대단했어. 레이첼! 이제 네가 마무리 해. 다른 두 언니는 아침부터 날 위해서 많은 일을 했어. 방금한 건 래티샤 언니도 날 깨울 때 해준 거야. 즉 너 말곤 모두가 다 했어. 어쩔래? 선택은 네 몫이야. 네가 성공한다면 내 식사의 절반을 떼서 주지. 빨리 결정해. 음식이 식어가니까.”
“으으...”
“한번 해보세요. 생각보다.. 아니 생각이상으로 엄청나요..”
눈이 평소와 달리 살짝 풀린 디아나의 표정을 본 레이첼은 호기심이 들었다. 정말 대단히 재미있고 신기한 경험을 한 것만 같아보였고, 실제로도 그랬으니까.
“네.. 해보겠습니다.. 주인님...”
긴장을 하며 레인의 물건을 신기하다는 듯 바라보더니 이내 스스로 입을 벌려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파. 이빨이 닿지 않도록 입술을 이용해서 물건의 끝을 빨아 당기듯 고정하고 위아래로 움직여. 천천히.. 너무 빨라. 아직도 이빨이 닿잖아. 좋아.. 조금 더..”
장난기가 생긴 레인은 그대로 레이첼의 입안으로 쌌다. 비릿한 맛이 혀에서 느껴지자 당혹한 표정과 함께 레인을 바라보았다. 레인이 머리를 붙잡고 있었기에 마음대로 입을 뺄 수도 없었다.
“삼켜. 거기까지가 네가 할 일이야.”
‘이걸?? 냄새나.. 끔찍해...“
“못하겠다면 지금까지 했던 모든 것은 없던 걸로 하겠어. 난 약속은 지킨다. 어긴 건 네가 되는 거지.”
‘으으.. 참을 수 있어.. 삼켜.. 삼키자!!!’
“츄릅... 켁켁켁... 우웩...”
헛구역질을 하며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레인을 흘겨봤다. 하지만 반대로 레인은 씨익 웃어주었다. 잠시 기세를 올렸지만 자신이 상대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인지한 레이첼은 스스로 눈을 아래로 깔고 머리를 숙였다.
“좋아. 아주 잘 했어. 내 생각보다도 더 대단한 걸? 다른 언니들은 아침에 해내지 못한 일이야. 약속은 지켜야지. 오늘은 네가 내 옆에서 내 식사를 같이 먹는다.”
“와아..!! 해냈어!! 다이나!!! 헤헤헤...”
“잘하셨어요. 정말 잘하셨어요.”
‘칫.. 내가 더 잘할 수 있는데..’
괜히 질투를 하는 래티샤를 제외하곤 화기애애한 아침식사를 할 수 있었다.
“오늘은 뭘 할까?”
“네? 저기..”
“왜? 나랑 나온 게 싫어?”
“아닙니다! 영광입니다!”
“그럼 됐어. 뒤에만 있지 말고 내 옆으로 서.”
“네, 주인님.”
레인과 래티샤는 아침식사를 마치고 거리를 걸었다.
“하고 싶은 말이나 생각이 있으면 뭐든 말해도 좋아. 물어봐도 좋아.”
“저.. 왜 절 데리고 나오셨는지..”
“심심하니까. 데이트라고 해두지.”
“데이트요?”
“네가 살던 곳에선 남녀 간의 만남 같은 건 없었어?”
“아! 그런...”
역시 순결한 처녀답게 얼굴이 새빨개지며 말을 흐리는 모습이 참을 수 없이 귀여웠다.
“옷 잘 어울려.”
“감사합니다. 여긴 제가 살던 곳에선 못 보던 동물.. 괴물들이 많네요.”
“몬스터라고 부르지. 고대어로 괴물 맞아. 여기도 아마 처음은 남녀가 높낮이가 없었을 거야. 그런데 어느 날부터 도시의 바깥에 있는 안개 숲에서 여자들이 계속 나타났지. 때론 남자들이 넘어오기도 해. 인간도 있지만 몬스터들도 있지. 저들은 그런 자들이야. 하지만 열에 아홉 이상은 여자가 나타나. 아무리 크다곤 해도 공간이 한계가 있는 도시로 외부인들이 꾸역꾸역 들어오기 시작했지. 아마 처음엔 외부인을 거부하지 않았겠지만 점점 더 부족해지는 식량과 팽창해가는 도시문제들 때문에 결국은 불만이 쌓이기 시작했겠지.”
“그래서.. 여자들을 노예로...”
“여자들은 하루에 셀 수도 없이 많이 안개의 숲에서 나타나. 그들은 죽음을 경험한 사람도 있고, 평소처럼 자신의 일을 하다가 갑자기 정신을 차려보니 숲에서 헤매고 있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어. 다들 사연도 제각각이고 심지어 같은 세계에서 온 것도 아니야. 그래서 우린 잠정적으로 결론을 내렸어. 이곳이 아마 사후세계라라고 말이야.”
“그럼.. 저도 죽은 건가요?”
“글쎄? 내 눈엔 네가 언데드로 보이진 않는 걸? 뭐, 네가 살던 세계에선 지금쯤 네가 사라져서 도망쳤다고 여기거나 아니면 사고를 당했다고 여기고 찾고 있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분명한 건 여기로 온 이상 돌아갈 방법은 존재하지 않아. 너희들에겐 안타까운 이야기지.”
“그렇군요..”
“이야기가 딱딱하고 재미없지? 좋아, 저기에서 조금 쉴까?”
야외카페에 앉자 웨이트리스가 곧바로 달려왔다.
“어떤 걸로 하시겠습니까?”
“난 레몬에이드. 넌?”
“같은 걸로 부탁할게요.”
“네, 감사합니다. 4골드 선불입니다.”
“5골드를 주지. 대신 같이 먹을 쿠키라도 가져와.”
“알겠습니다.”
정중하게 인사를 하고 가는 여자를 보며 디아나는 신기해했다.
“저.. 얘도 노예인거죠?”
“여자는 다 노예야.”
“그런데 가끔 그렇지 않은 사람도 보이는 것 같아요. 저기 저 사람처럼요.”
한눈에 봐도 비싼 옷들과 보석으로 치장을 하고 눈빛부터가 남다른 여자가 자신의 뒤로 노예들을 데리고 걸어가고 있었다.
“눈썰미가 좋네. 저런 게 귀족들이지. 타고난 마력과 고귀한 혈통을 지닌 자들의 자식이야. 이곳은 자기자식이라고 해도 멍청하거나 약하면 노예로 만들어버리기도 해. 대부분은 그냥 도축시켜버리지. 자신의 핏줄이 어딘가에서 노예로 굴려지는 걸 보느니 죽이는 게 낫다는 결론을 내려. 딱 레이첼 같은 아이였다면 그런 꼴이 났겠지. 하지만 그렇지 않은 일부 여자들은 이곳에서 권력을 행사하기도 하지. 바로 저기 있는 쟤처럼 말이야.”
“정말.. 제가 살던 세상과는 다르군요..”
“난 네게 조언을 해주고 싶어. 네가 어떤 곳에서 어떤 삶을 살았건, 뭘 했건, 뭘 싫어하건 그건 중요한 게 아니야. 문제는 네 주인이 어떤 존재던, 어떤 모습이건 상관없이 그 어떤 요구를 하더라도 네가 그것을 믿고 따르면 돼. 그게 아무리 어렵고 힘들고 부당하다고 해도 말이야. 그게 전부야.”
“네. 명심하겠습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사이 레몬에이드와 함께 마늘빵이 나왔다.
“먹어.”
“네? 하지만..”
“내 옆에 앉아서 먹어. 명령이야.”
“알겠습니다, 주인님.”
디아나가 머뭇거린 이유는 주변의 모든 노예들은 맨바닥에 쭈그리고 앉아서 고개를 숙인 채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곳은 이게 자연스러운 암컷의 모습이다.
“어때?”
“음, 평범하네요.”
“그렇지? 보통 그런 반응이더라고. 그런데 아까도 말했지만 여긴 한정된 자원, 물자로 버티고 있어. 가장 큰 문제는 식량이지. 특히 신선한 채소나 과일은 너무 비싸. 이곳의 기후는 항상 이 모양이지. 얻을 수 있는 식재료가 한정이 되어 있어.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주변에 있는 다른 나라와 교역을 하는 건가요?”
“교역은 하지 않아. 하지만 약탈도 아니지. 그들이 찾아오도록 만드는 거야.”
“네?! 그렇다면...”
“우린 이 안개의 숲으로 도시 외부에서 멀리 떨어진 다른 나라들의 침공을 유도하지. 그들은 매번 우리에게 속으면서도 오고. 그렇게 그들에게서 빼앗은 전리품부터 노예들로 살아가는 거야. 물론 때때론 암암리에 교역을 하긴 하는 모양이던데, 워낙 베일에 쌓여있으니까. 자세한 건 아무도 모르지.”
“아...”
“대충 이 세계가 돌아가는 모양새는 다 말해준 셈이군. 뭐, 다른 비밀들이 많을진 모르겠지만 내가 아는 한도는 여기까지야. 이거보다 더 자세히 아는 사람도 드물지.”
“네에.. 그렇군요.”
“오늘은 너와 내가 즐겁게 이 도시의 구석구석을 돌아볼 거야. 넌 내게 솔직한 감상만 말해주면 돼. 네가 이곳의 사람들이 구역에 따라 어떻게 사는 모습이 다른지, 어떤 것이 필요해 보이는지, 무엇을 하며 살아가는지와 같은 것들을 살펴봐. 넌 이 세계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니까.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지금부터라도 배워야지. 그게 오늘이야. 보통은 이렇게 시간만 보내는 짓을 하진 않아.”
“앗! 감사합니다.”
“됐어. 내 선택이니까. 어서 먹어. 평범하긴 해도 이곳에선 귀한 것이니까.”
“네, 주인님 먼저 드세요.”
가볍게 목을 축인 둘은 거리를 걷기 시작했다.
‘아.. 내가 다른 노예와 달리 많은 특혜를 받고 있는 거구나.’
대부분의 여자노예들은 알몸차림이었다. 목줄을 한 채 끌려 다니기도 하고, 동물처럼 행동하는 이상한 여자들도 곳곳에 보인다. 심지어 모든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몬스터와 교접을 하고 있는 모습까지도 보였다.
“저기.. 저건....”
“공공이용물 틀이야. 보고 갈래?”
“저게... 뭐하는 거죠?”
“그만.. 제발 그만...”
“시끄러!! 입 다물어!!”
“우웁?!!! 아흑....”
“아파요.. 제발 살살... 아흐흑...”
“시끄러, 주인에게 개겨서 혼나는 암캐주제에 떠들긴!!”
몸을 90도로 숙인 채 목과 손을 움직이지 못하도록 고정한 틀에 여자들은 묶여있었고 지나가던 남자들은 저마다 자신의 자지를 여자에게 거칠게 쑤셔 넣고 있었다. 여자들은 비명을 지르기도 하고, 고통스러워 하지만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그저 쑤시고, 또 쑤실 뿐이다. 주인의 명령을 어긴 대가로 겪게 되는 수치심조교 중 하나로서 보통 두세 번 다녀오면 아무리 대가 센 노예라도 고분고분해지는 벌인 것이다.
“.... 무서워요...”
“봤지? 내가 레이첼에게 얼마나 양보하고 있는지?”
그제야 상상 이상이라는 것을 디아나는 깨달았다. 이곳은 상상 이상으로 무섭고 고통스러운 일이 넘쳐난다는 것을.. 한 남자가 사정을 하자, 다음 남자가 다시 여자의 구멍을 범하기 시작한다. 보지로 시작된 강간은 애널로, 그리고 때에 따라선 입으로 쉬지 않고 남자를 받아들인다. 처음엔 수치심에 물들고 고통을 호소하겠지만 이내 트라우마가 잘 박혀 고분고분하게 변한다. 바로 그런 일이 대낮에 길거리에서 성행하는 것이다.
“죄.. 죄송합니다!! 아침엔.. 그게..”
“상관없어. 난 너도 레이첼도 저런 꼴을 겪게 할 생각은 없으니까.”
“감사합니다, 주인님!”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사이 도시의 절반 이상을 둘러보았고 어느새 오후가 되었다.
“어땠어?”
“신기한 것들이 많았어요. 모든 것이 제가 살던 곳과는 너무 달라요. 사실 가장 크게 느낀 점이라면 이젠 혼자서 밖에 나온다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 되어버렸다는 점이겠죠.”
“훗.. 그렇지. 이젠 죽을 때까지 주인의 곁을 떠나면 안 돼.”
“네. 하지만 그런 걸 가르쳐주시려고 절 데리고 나온 건 아니죠?”
“역시 눈치가 빠르네..”
레인은 조용히 디아나의 손을 잡고 걸었다.
“여긴??”
“글쎄, 네가 살던 곳에서 볼 수 있었을 관경인지는 모르겠지만, 여기만큼 경치가 좋은 곳이 없지.”
“와아....”
눈에 들어온 관경에 디아나는 감탄했다. 도시 안에 존재하는 해변. 부드러운 파도가 들어오고 광활한 수평선이 보인다. 마법으로 유지되는 이 환상의 세계는 노예들이 잠시나마 자유를 만끽하는 장소로서 무척 선호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어때? 볼만하지?”
“신기해요.... 정말.. 바다가 앞에 있네요..”
참방-!
“앗! 차가워요!!”
“맘에 들었다니 다행이네.”
“정말 이곳은 신비한 것들이 많네요. 마법이라던가.. 제가 살던 곳은 마법이 없었어요. 너무 아름다워요..”
황홀해 하며 석양이 저무는 바다를 뚫어지게 쳐다보는 디아나를 레인은 뒤에서 살짝 안았다.
“어? 주인님??”
“팔을 옆으로 펼쳐봐. 날아가는 새처럼. 그리고 눈을 감아봐.”
시원하게 불어오는 바람이 머리카락과 귀 사이를 간질인다. 따뜻한 온기가 두려움을 편안함으로 치환해준다. 막상 모든 두려운 것을 하루사이에 다 봤지만, 이 남자와 함께라면 괜찮을 거라는 생각을 디아나는 확신했다.
“너무.. 대단했어요...”
“후후.. 그렇다니 다행이군. 난 여기가 제일 좋아. 널 만나기 전엔 아까 봤던 판자촌 봤지? 거기서 오래 살았었어. 남을 속이고 훔치고 숨어서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별짓을 다 했지. 그때 꿈이 있었어. 나만의 아늑한 집을 가지고, 아름다운 노예를 조교하고.. 그렇게 내가 만든 이상적인 세계에서 흠뻑 취해서 아늑한 삶을 살아가는 것 말이야.”
“너무.. 감사해요.. 이 모든 것이 다... 전 아무것도 해드린 게 없는데..”
“없긴, 네가 온 덕에 나름 집이 체계를 갖췄어. 단 하루 밖에 되진 않았지만. 사실 난 래티샤를 처분할 생각이야. 널 가까이에 두고 싶어. 훨씬 예쁘고 똑똑하고 순종적이지. 어때?”
“그런 영광을 감히..”
“난 누가 되었건 일을 잘하는 만능 노예가 필요해. 요리, 가사 뿐만 아니라 비서일도 할 수 있어야 하고, 다른 노예를 관리할 줄도 알아야 되지. 하지만 그러기엔 래티샤는 너무 성격이 약해. 깨질 듯 약한 유리처럼 쉽게 흔들리고 휘청거리지.”
“... 래티샤님을 어디에 보내실 생각인가요?”
“하급 창녀촌. 거기 밖에 걜 사줄 곳이 없더라고. 아니면 사자마자 집으로 끌려가 죽임을 당할 가능성이 높은 네크로멘서나 몬스터 계열의 놈들이 원하겠지. 고작 그래봐야 50골드도 못 받아. 참고로 넌 꽤 비쌌어. 300이 넘었으니까.”
디아나의 눈은 심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내적인 갈등을 하는 것이다. 스스로도 눈앞의 주인을 따르면 편안한 생이 기다릴 것이라는 걸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 선택을 함으로서 누군가는 나락으로 정말 비참한 나락으로 떨어진다.
“주인님!”
디아나는 무릎을 꿇곤 눈을 질끈 감았다.
“절.. 절.. 대신 팔아주세요!!”
“뭐? 네가 그런 곳에 팔리겠다고?”
“네!! 전.. 저..전.. 할 수 있어요. 하지만.. 남이 불행해지는 걸 알면서 주인님 곁에서 편하게 웃을 순 없어요. 그건.. 제 스스로가... 흑...”
결국 눈물을 보이며 착한 심성을 드러내었다. 보면 볼수록 마음에 드는 노예였다. 하지만 이건 노예의 의견일 뿐이다. 그것을 듣고 말고는 온전히 레인의 선택인 것이다.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몸단장을 해줘.”
“알겠습니다.”
“저.. 주인님.. 여긴?”
“널 공주님으로 만들어줄 곳이다. 얌전히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
“네..”
디아나는 거울로 비치는 나가는 주인의 모습을 보며 걱정이 되었다. 행여 자신이 주인을 선택하지 않은 말에 그가 실망했을까봐. 그녀는 매사가 진중하다. 너무 진중해서 재미가 없을 정도로. 이런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스스로의 도덕적 관념을 버릴 만큼 하찮은 정신을 가진 창녀가 아니다.
“머릿결은 나쁘지 않네요. 끝을 조금만 자를게요.”
“네.. 감사합니다.”
익숙한 듯 가위로 자신의 머리끝을 조금 자르고 다듬더니 뜨거운 열기가 나는 물건을 들이밀어 머리카락을 풍성하게 모양이 나오게끔 만들었다.
‘와.. 이러니까 꼭 내가 귀족이 된 것 같아..’
“자, 이제 눈 감으시고요.”
“네.. 넷!!”
뻣뻣해져 눈을 감자 촉촉한 감촉이 얼굴에서 느껴졌다. 이리저리 얼굴을 두들기며 뭔가를 한참 하더니 눈을 뜨도록 시킨다.
“와아...!!!”
디아나는 깜짝 놀랐다. 스스로 예쁘다는 건방진 생각을 한 적은 없었지만, 너무나 거울속의 자신은 아름다웠다.
“손으로 만지면 안 돼요. 화장이 지워지니까요..”
“세상에...”
자신이 모시던 주인의 가족들을 꾸며주는 것이 그녀의 일이었지만, 스스로가 아름답게 바꿔질 것이라고는 상상하지도 못했다. 그리고 이렇게 아름다워 질 것이라곤 더더욱...
“이야~~ 정말 예쁘네?”
“앗! 주인님!!”
“가만히 있어. 아직 다 끝난 게 아니니까.”
“네.. 정말 감사합니다.”
결국 작은 울음을 터뜨리려고 하자 레인은 잽싸게 말렸다.
“얼굴에 화장이 번지면 안 돼. 울지 마.”
“주인님 말씀을 들으세요. 예쁘게 단장해주시는데 울면 안 돼죠.”
“흑! 네! 알겠습니다.”
씩씩하게 웃으며 자신이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아름답게 바뀌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다 되었습니다. 정말 예쁘죠?”
“흠, 확실히 볼만하군.”
“아하하.. 주인님도 참...”
“그래, 그렇게 넌 웃는 게 제일 보기 좋아.”
“네?! 아.. 에헤헤...”
쑥스러운 듯 눈을 깜빡거리는 모습은 마치 사랑에 빠진 소녀 같았다. 마치 래티샤처럼..
“잘했어. 이제 이걸 입어. 새로 사온 옷과 신발이야.”
“저.. 너무 많은 걸 주시는 건..”
“내 맘이야.”
“헤헤.. 그럼 입어 볼게요.”
거리낌 없이 입고 있던 옷을 벗곤 새 옷과 신발을 갈아 신었다. 붉은 장미의 그림이 새겨진 아름답고 고풍스러운 드레스를 입자 완벽하게 귀족집의 영애처럼 한 송이 꽃이 된 자신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우와... 우와아...”
“감동하긴 일러. 신발도 얼른 신어.”
“네...”
아름답게 세공된 유리로 된 신발은 거짓말처럼 완벽히 자신의 발에 맞았다. 너무나 신기하고 놀라워 이리저리 자신을 살펴보며 거울 앞에서 우쭐댄다.
“멋지군. 정말 멋져. 역시 내 노예는 이렇게 아름다워야지.”
“헤헤... 정말.. 모든 것이 너무 감사해요.”
“그러니? 아직 놀랄 일은 남았는데?”
“네?! 아직도요?!”
깜짝 놀라는 디아나의 손을 잡고 레인은 밖으로 나왔다. 이제 마지막으로 오늘의 이벤트를 장식할 그곳으로..
“어서 오세요. 어머! 당신이군요. 마침 당신 생각을 하던 참이었어요.”
금발의 여인이 레인을 보고선 살짝 미소를 지었다.
“저.. 이분은?”
레인은 손으로 디아나를 제지했다.
“이 노예를 당신께 납품하고 싶습니다.”
‘어? 뭐라고 하신거지?’
디아나는 깜짝 놀라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당신도 참 독특하군요. 제 가게에 와서 드레스와 신발을 사가더니 그걸 입힌 노예를 바로 데려올 줄은.. 후훗.. 좋아요. 눈에 총기가 있는 게 맘에 드는군요. 너! 손재주는 좀 있니?”
“네! 예전 주인님께서 음악가이셔서 틈틈이 배려해주신 덕분에 피아노를 조금 칠 수 있습니다!”
“호호호.. 난 피아노 치는 노예는 필요 없는 걸요?”
‘안 돼.. 날 왜 파시려는 거야? 싫어.. 그런 건..’
“아하하.. 긴장해서 그래요. 가사일도 시켜봤고, 분명히 다른 노예들과는 다르게 스스로 능동적으로 순종하는 자세가 아주 잘되어 있어요. 총기야 말할 것도 없고요. 일류급으로 아름다운 외모는 아니지만 적어도 이 정도는 C+급 이상은 되죠. 재주가 참 많은 아이에요. 기억력도 꽤 좋더라고요. 하루 종일 데리고 다니며 여러 사람들을 보여주고 그들에 관한 이야기를 해주었죠. 나중엔 스스로 길을 걷는 사람들의 직업과 개략적인 성격까지도 어느 정도 읽더군요. 성격도 똑 부러지고 아마 실망하시진 않을 겁니다.”
“좋아요. 900골드를 드리죠. 드레스 값과 신발값을 생각한 금액이에요. 나쁘지 않죠?”
“보시다시피 이 노예는 그 이상의 값어치가 있습니다.”
“전 분명히 말했어요. 더 나은 수준의 노예를 데려온다고 해도 제가 필요한 노예와는 전혀 무관하다고요. 딱 맞는 노예를 딱 맞는 가격에 사고 싶은 거죠. 하지만 당신이 스스로 그렇게 보증하니까 1000골드까진 생각해드리죠. 어떤가요?”
“1500입니다. 그 이하로는 팔지 않겠습니다.”
당돌한 레인의 말에 세르빌라 퀸트의 눈은 동그랗게 커졌다.
“재미있군요. 당신은 무척 순한 외모에 비해 고집이 있으시네요. 제가 편안하게 대해주니 만만하게 보이는 건가요? 이 따위 노예가 1500의 가치가 있다고 정녕 믿으시나요?”
짜악-!
퀸트를 불결하다는 눈빛으로 디아나를 쏘아보곤 그녀의 얼굴을 마구 때리며 머리를 헝클였다. 한 시간이 넘는 공을 들여 만든 아름다운 메이크업이 지워지고 뭉개져 엉망이 되었다. 하지만 참고 또 참으며 피하지 않았다. 자신의 주인님이 그렇게 명령하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서러워서 나오는 눈물은 막을 수 없었고 메이크업은 지저분하게 번졌다.
“볼품없는 얼굴이군요. 이런 쓰레기가 1500? 500도 아까워요. 아니 300도 아깝죠.”
찌익-!!
퀸트는 사정없이 자신의 손칼로 디아나의 드레스를 칼로 북북 찢어서 걸레조각으로 만들었다. 아름다웠던 자태는 순식간에 사라지고 벌거벗은 몸뚱아리가 전부인 노예의 본연의 모습이 드러났다.
“절 부디 당신의 노예로 삼아 주십시오..”
디아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퀸트의 앞에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자신의 주인이 모욕을 당하는 상황이 참을 수 없지만, 노예상인이 그가 자신을 팔지 못한다면 그건 더 큰 손실이라는 생각을 순간적으로 했다. 아니, 적어도 레인이 원하는 마지막 명령을 수행하고 싶었다. 그것이 노예의 인생이기에. 스스로 결정할 수는 없지만, 그렇기 때문에 자유롭다. 그런 홀가분한 마음으로 퀸트의 발 앞에 머리를 숙이며 자신의 부끄러운 모습을 드러내었다.
“호호호호!!! 정말 재미있군요!!!”
“제가 뭐라고 했습니까? 큭큭큭...”
“어...??”
“미안, 많이 놀란 모양이네.”
“에이.. 그래도 드레스를 찢은 건 좀 아깝긴 하네요.”
“그럴만한 보람이 있지 않았습니까?”
“인정하죠. 후후후.. 솔직히 말해서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완벽한 아이네요. 순수하면서도 순종적이고 매우 안정적인 아우라에요. 이런 아이는 절대로 주인을 물지 않는 차한 아이죠. 이런 아이를 하루 만에 찾아서 내 앞에 데려오다니 정말 놀라워요. 확실히 당신은 재미있는 사람이군요. 이 따분하고 멍청하고 냄새나는 슬레인의 머저리들과는 달라요. 후후후...”
“저.. 주인님...?”
“미안.. 이게 시험이었거든. 정말 잘 해주었어. 인사드려. 앞으로 네가 모셔야 할 분이셔..”
“흑흑... 죄송해요.. 정말.. 죄송해요...”
디아나는 레인을 붙잡고 펑펑 울었다. 그렇게 디아나는 1500골드에 세르빌라 퀸트의 노예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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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소지금: 2317골드
지출내역:
5골드 - 레몬에이드 두잔. 쿠키
9골드 - 풀메이크업
50골드 - 기품 있는 드레스
10골드 - 아름다운 유리구두
노예 디아나 판매: +1500골드
소유 중인 노예: 래티샤, 레이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