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나, 레이첼 입수 & 레즈 플레이 감상>
3월 23일 밤
“멍멍!!!”
“자, 이리 온.. 내가 너의 주인이란다.”
“멍멍?! 멍!!”
정신을 차린 블랙펄은 지금 일어난 상황이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나무와 돌과 흙냄새가 나던 자신의 새로운 집이 아니었다. 무엇보다도 사랑하는 수컷의 향기가 나지 않는다. 그 대신에 누린내가 나는 남자가 눈 앞에 있다.
“멍??”
어떻게 된 일인지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잘 생각이 나지 않는다. 그만큼 멍청하기 때문일까?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리다. 그녀는 현재만을 보며 살아간다. 과거는 이미 그녀에게 의미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무언가를 기억하는 것이 서투르다. 하지만 분명히 기억하는 것은 자신을 사랑하는 손길을 가진 주인이다.
“왜 그러니? 목줄이 마음에 들지 않니? 하지만 난 일을 해야 할 땐, 도미닉 딕텀을 계속 유지하고 있을 수가 없단다. 그건 무척이나 피곤한 일이거든.”
“멍멍!! 크르르르!!!”
화를 내자 새 주인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자신의 마법 낙인이 새겨진 만큼 시간이 지나면 결국 천천히 복종하게 된다. 하지만 그런 시간적인 기다림을 그는 원하지 않았다.
“버릇없는 노예에겐 매가 약이지.”
“멍?! 캬앙!!”
전기가 흐르는 지팡이를 몸에 대고 지지자 블랙펄의 몸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한참을 괴롭히자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블랙펄의 몸에서 지팡이를 떼어주었다.
“멍... 멍...? (어디 있어?)”
“흠, 확실히 얌전해 졌군. 한 번 더 해주마!”
지지지직-!!
“꺄윽!!! 캐앵!!!!”
온몸을 저항하지 못하도록 속박하는 아픔에 블랙펄은 깜짝 놀랐다.
“어때? 또 해줄까?”
도리도리-
지팡이를 다시 들자 블랙펄은 곧 머리를 저었다. 상대는 자신보다 강하다. 그리고 무섭다. 블랙펄은 짧은 시간이지만 저 지팡이에 닿으면 정말 괴롭다는 사실을 배워버리고 말았다.
“역시 노예는 초장에 조져놔야 해. 한 번 더!”
지지직-!!
“캬앙!! 캬앙!!! 으으으으....”
결국 온 몸에 힘이 쫙 빠져 비틀린 채로 바닥에 드러누워 숨만 겨우 쉬는 꼴이 되었다.
“고기가 되기 싫거든 정신차리는 게 좋을 거야. 흐흐흐...”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자 케이지 안에 갇힌 자신만이 남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뭔가 잘못 됐다. 잘못 되어도 크게 잘못되었다.
“멍...(어디 있어??)”
겨우 손가락에 힘이 들어와 꿈틀거렸지만 역부족이었다. 쇠의 냄새가 진동한다. 좁고 어둡다. 왜 이런 곳에 자신이 있게 된 것인지 아무리 이해하려고 해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실수로 날 잃어버린 건가봐. 빨리 찾아야 해.’
불쌍하게도 이 어리석은 노예는 자신이 팔렸다는 사실 위에 깔린 자신을 버렸다는 사실조차도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자신을 둘러싼 철창은 너무나 두껍고 단단했다.
3월 24일
“주인님.. 저기..”
“왜?”
“블랙펄이 안보여서요... 어디로..”
“어디로 갔긴, 팔렸지.”
“네?! 아...”
래티샤는 덤덤히 아침을 먹는 레인의 말에 충격을 받은 듯 눈물을 글썽였다.
“왜? 뭐 잘못 되기라도 했어?”
“왜...”
“왜 팔았냐고? 그만한 충분한 제의가 들어왔으니까.”
그제야 래티샤는 눈앞의 남자의 직업을 제대로 이해하고 직시할 수 있었다. 이 남자는 노예상인이다. 즉, 노예를 팔아서 이윤을 남기는 것을 업으로 삼는 인간인 것이다. 아무리 자신과 블랙펄에게 자상하고 잘 대해줬다고 해도 그건 어디까지나 자신의 목적을 위한 것일 뿐이다. 결국 자신도 필요하다면 이 남자는 자신을 팔 수 있다는 결론이 나왔다.
“밥 먹어. 오늘도 할 일이 많으니까.”
“.. 슬프지 않으세요..?”
“왜 그렇게 생각하지?”
밥을 먹던 레인이 포크를 내려놓고 되물었다.
“그렇게 모두가 하나씩 사라지고 나면... 그럼 결국 주인님 혼자 남으시게 되는 거잖아요..”
“바보 아냐? 미안하지만 슬레인에서 우리라는 건 없어. 단지 나의 생존을 위한 몸부림을 칠뿐이지. 속은 놈이 멍청한 것이고, 죽더라도 원망할 수 없는 곳이 이곳 슬레인의 법칙이야. 내가 널 왜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고 생각해? 네가 그런 것들을 빨리 이해하고 날 도와서 일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싶다는 거야.”
“하지만.. 너무 잔인해요..”
“잔인? 관점의 차이지. 넌 지금 먹고 있는 음식에게 미안하다고 생각 하냐?”
“하지만.. 우린 음식이 아니잖아요!”
‘앗차. 이 골빈 년은 자신의 최후가 되는 선택지에 고기사료로 갈려서 끝난다는 결말도 있다는 걸 모르고 있었지?’
레인은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지만 꿋꿋하게 참았다.
“내가 너희를 음식에 비유한 건 적절치 못했다고 인정하지. 하지만 래티샤, 나는 나의 생존을 위해 해야 하는 일을 해야만 해. 그 위에 넌 지금 목숨을 부지하고 음식을 먹으며 숨을 쉬고 있는 거야. 네가 사는 세상도 비슷하지 않았어? 결국 어떤 대가를 지불하고 그 대가로 나의 생존에 필요한 수단을 얻어오며 살았잖아? 나는 노예라는 대가를 지불하고 나의 생존을 사는 거야. 그렇게 살아가는 거야. 그리고 그건 너도 마찬가지고..”
“하지만...!!”
“왜? 네가 대신 팔려주지 못해서 그래서 미안해서 지금 나한테 그러는 거야? 그랬으면 좋았겠어?”
“아니에요!! 하지만!!”
“네가 대신 팔려가고 싶다면 다음 노예가 왔을 때 그렇게 설명을 해. 그리고 스스로 팔려가고 싶다고 나에게 말하도록. 난 어차피 내 생각을 잘 이해하고 배울 자세가 있는 노예가 필요한 거니까 굳이 네가 그 자리에 없어도 상관은 없어. 난 너를 기꺼이 팔아 줄 거야. 노예경매시장에 붙여서 말이지. 미안하지만 넌 슬레인에서 그다지 가치를 높게 매길만한 요소가 전혀~ 없다는 걸 기억하도록. 아마 50골드.. 아니 40골드 선에서 팔릴 거다. 무슨 뜻인지 알겠나?”
“흑흑... 너무해요...”
“내가 뭘? 넌 스스로 내게 약속을 했어. 네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해서 나에게 도움이 되게 하겠다고 말이야. 그 대가로 난 너를 절대 팔지 않고 지켜주기로 했어. 심지어 내가 성공하게 되는 그때, 널 가장 나의 가까운 노예로서 그에 맞는 합당한 대우와 애정을 선사하기로 했단 말이야. 내가 하는 일을 들었을 때, 설마 이런 날이 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나? 아니면 주제넘게 내가 너에게 노예를 파는 것까지도 보고를 하면서 일을 해야만 하는 건가? 넌 내가 밖에 나가 노예를 좋은 가격에 팔고 온 것을 기뻐해주진 못할망정 나한테 대들면서 잘잘못을 따지고 가르치려고 드는 거야?”
“흑흑... 하지만.. 너무.. 아파요.. 괴로워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어요.. 내가 살기 위해서 남의 불행을 만들고 웃으며 지내야 한다는 건.. 이건 해서는 안 되는 일이에요..”
“난 이미 네게 최대한 양보를 했어. 하지만 자꾸 어리광만 피운다면 나도 생각을 바꿀 수 있다는 것쯤은 그 나쁜 머리로 이해하길 바랄게. 이게 두 번째 경고야.”
“죄송합니다.. 주인님... 저.. 블랙펄은.. 얼마에 팔렸나요?”
솔직하게 말할까 고민도 했지만 적당히 둘러대기로 했다. 래티샤는 이 아티펙트의 가치를 잘 이해하지 못할 것이기에 필요 없는 혼란을 가중시킬 필요는 없는 것이다.
“200골드. 네가 가진 최대 가치보다 4배는 더 받았어.”
“알겠습니다, 주인님. 더 필요한 것은 없으신지요?”
“빵이 부드러워. 반죽을 아주 잘 했군. 앞으로도 이렇게 신경 써줘. 그리고 넌 벌로 내가 허락하기 전까진 사료만 먹어.”
“흠.. 생각하니 좀 아깝긴 하네.”
기지개를 펴며 밖으로 나온 레인은 거리를 걷기 시작했다. 문득 자신의 목적 때문이기는 했지만 어쨌든 아까운 재능이 있는 노예를 보낸 건 조금 아쉽기는 했다.
‘뭐, 내가 계속 마차를 몰 생각도 아닌데 뭐 하러 데리고 있겠어? 그리고 어차피 걘 내가 아니면 써먹지도 못해.’
아마 지금쯤이면 줄진은 후회하고 있을지도 모를 것이다. 그저 경기장에서 보인 영웅적이고 압도적인 퍼포먼스는 어디까지나 블랙펄의 생각과 수준에 맞춰 조교를 해서 얻은 결과물이었기 때문이다. 줄진은 그런 것을 전혀 이해하지 못할 것이고, 오히려 말도 듣지 않고 멍청한 블랙펄을 때리거나 학대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아 조교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끝은..
‘고기로 썰리겠지.’
십중팔구. 자신도 첫날밤이 지나고 그 쓸모없는 노예를 죽일 생각까지 했었으니까. 하지만 이미 소유권은 넘어갔고, 이제 와서 줄진이 자신을 찾아와 하소연한다고 해도 오히려 큰 소리를 킬 수 있는 건 레인쪽이었다. 심지어 브랜드 낙인까지도 줄진이 처음으로 찍도록 허락해준 시점에서 상당한 양보를 한 건 오히려 레인이니까. 물건의 사용법에 관해서 묻지 않은 것은 줄진이지 레인이 아니었던 것이다.
‘뭐~ 이미 팔린 건 버리기로 하고. 흠.. 확실히 목걸이가 효용이 있긴 하군. 래티샤 그 건방진 계집이 마지막에 보여준 서서히 무너지는 모습은 강해진 아우라의 산물이라는 것이지.’
처음 래티샤를 만났을 땐, 그녀의 아우라가 레인의 아우라보다 조금 앞서 있었다. 그걸 알기에 레인은 모든 행동이 조심스러웠지만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레인의 아우라는 크기는 작지만 맹수인 족제비로 비유한다면 래티샤는 여전히 도망만 치는 토끼니까.
이런저런 계획들과 생각들을 정리하며 레인은 화이트타운에 위치한 세르빌라의 옷집으로 가 약간 유행은 지났지만 실용적이고 깔끔한 옷을 골랐다.
“10골드입니다.”
“여기요.”
이곳의 매력적인 여주인인 세르빌라 퀸트는 오늘도 무척 아름다웠다. 금발의 머리카락의 끝을 적당히 구불구불하게 만들어 고급스런 인상을 주고 있었고, 몸에 달라붙는 여성용 하얀색 원피스 형식의 정장은 하늘하늘거리는 레이스가 달려 더욱 고급스러운 인상이었다.
“뭔가 고민이 있으신가 보네요.”
“앗! 이런.. 제가 그렇게 보였나요?”
“네, 눈을 살짝 내리깔고 잠시 머뭇거리시거나 제게 집중을 잘 못하시는 것 같아서요.”
“아! 제가 그랬었나요? 죄송합니다.”
슬레인은 상당히 큰 도시지만 생필품을 파는 가게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당연히 옷집도 항상 바쁜데 어쩐지 일하는 노예가 보이지 않았다.
“혼자서 넓은 가게를 관리하시려면 힘드시겠어요.”
“사실 얼마 전에 노예가 도망을 쳤어요.. 하아...”
“네?! 어쩌다가요?”
눈앞에 있는 기품 있는 여성은 유명한 세르빌라 가문의 장녀다. 학대와 폭력이 난무하는 슬레인에서 몇 안 되는 폭력을 싫어하고 조용하며 얌전한 성격을 지닌 귀족여성이며, 현재 이 도시의 유행을 이끌고 있는 도시의 주요인사다.
“그게.. 부끄럽게도.. 하아...”
“제게 말씀해 보세요. 전 노예상인이에요. 도움이 될 수 있다면 기꺼이 도와드리고 싶어요.”
레인의 얼굴을 마치 탐색하듯이 보던 그녀는 입을 열었다.
“얼굴이 선하네요.. 보기 드문 얼굴이에요. 무엇보다 눈치가 무척 빠르시더군요. 하루에도 수많은 자들이 여기에 옷을 사러 오지만 아무도 당신처럼 말해준 사람은 없었어요. 이름이?”
“레인입니다.”
“레인이라.. 이 음울한 도시에 어울리는 이름이군요. 좋아요, 부끄럽지만 이야기 해드리죠. 절 돕던 노예가 가출을 했어요. 이름은 제인이고 키는 당신보다 약간 크고 머리는 붉은 빛이 약간 감도는 갈색이죠. 단발머리에요. 가슴도 그다지 크지 않고 척 봐도 평범한 얼굴이지만 무척 머리가 좋고 동작이 빠른 아이죠.”
“제가 그 노예를 찾아드리면 되는 건가요?”
“음.. 사실 데려와주면 좋긴 하겠지만, 아시다시피 주인의 곁을 떠나서 혼자 있는 노예는...”
“다른 사람이 낚아채가도 할 말이 없죠..”
“어쩌면 벌써 죽었을지도 모르죠. 운이 나빠서 싸이클롭스나 미노타우르스 같은 몬스터들에게 잡혔다면...”
“아무래도 잡아먹혔을 가능성도 높겠죠..”
“하아.. 정말 곤란해요.. 혼자 이 넓은 가게를 돌보는 건 정말 힘든 일이에요. 제인이 똑똑한 만큼 일이 편했었는데.. 지금까지 잘 지내왔는데 갑자기 왜 도망친 건지.. 그 운명이 어떻게 될지 모를 만큼 멍청한 아이도 아니었는데.. 이해가 가지 않는 일들 투성이네요..”
“걱정 마세요. 늦었을지는 모르지만 한 번 찾아보죠. 만약 찾아서 데려올 수 있다면 값은 얼마까지 가능하신가요?”
“제인의 몸값이라면 아마 400골드면 충분할 거예요. 하지만 굳이 제인을 데려오지 않으셔도 되요. 제가 레인의 시간을 너무 많이 뺐을 이유는 없으니까요. 제인을 대신할 새로운 노예를 데려와 주셔도 되요.”
“어떤 조건으로 찾으시는지요?”
“전 제 노예들이 이곳에서 어떻게 일하는지 직접 가르쳐요. 그러니 많은 걸 굳이 교육할 필요는 없죠. 아주 기본적인 것만 가르치면 되요. 어떤 상을 굳이 주지 않더라도 묵묵히 일할 수 있는 일꾼이면 좋겠네요. 그리고 정숙했으면 좋겠어요. 격정적인 성격은 이 일에 맞지 않죠. 제인의 이야기를 들어서 눈치 채셨겠지만 굳이 눈에 띄는 외모가 아니어도 되요. 중요한 것은 섬세한 작업을 위한 예민한 손가락과 손님의 요구를 잘 들어주고 잘 지낼 수 있는 능력이 가장 중요하겠죠.”
“여러 직업에 대한 이해가 많은 쪽이 좋겠군요.”
“네. 기본적인 교양이 갖춰진 아이가 아무래도 일을 더 빨리 잘 배우겠죠. 눈썰미가 있는 것도 중요해요. 상품 판매뿐만 아니라 때론 직접 옷을 만들어야 하니까요. 그리고 노예가 기본적인 가사를 할 줄 알아야 해요. 전 노예와 작업을 하고 함께 숨을 쉬며 지내는 시간이 더 길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다른 조건은 없겠습니까?”
“그게.. 이게 중요하기는 한데.. 제 입으로 말하긴 조금 불쾌한 거라..”
“남자와 관계를 많이 가진 노예는 아무래도 껄끄러우시겠죠?”
“네! 정확해요. 후후.. 정말 눈썰미가 좋군요. 노예가 일하는 동안 성적인 생각에 빠지는 걸 보고 싶지 않으니까요. 이곳의 노예들은 그들이 살던 환경보다도 음란한 이곳에서 너무 쉽게 그 색이 바래버려요. 가능하면 노예들끼리 서로 만족을 시킬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 정도면 될 것 같군요. 제 요구가 너무 까다롭나요?”
솔직히 말하면 무척 까다로웠다. 어떤 어려운 것을 가르치는 것보다도 상대가 요구하는 것은 기본적인 기질에 관련된 것이 더 많았기 때문이었다. 시간을 들여 조교를 하다보면 나아질 수도 있지만, 실패할 수도 있다. 기질과 관련한 문제는 결국 스스로가 그렇게 바뀌려고 노력하거나 타고난 것이니까.
“음.. 솔직히 그런 노예를 빨리 찾는다는 보장은 조금 어려울 것 같아요.”
“괜찮아요. 부담을 느끼실 필요는 없어요. 저도 저 나름대로 오빠가 제게 필요한 노예를 구하고 있으니까요. 당신이 늦게 가져오더라도 오히려 노예가 둘이 되니까 제 짐이 덜어져서 더 좋겠죠.”
“알겠습니다. 최선을 다해 찾아서 데려오지요.”
“네. 그럼 조심해 가세요.”
가게를 나서며 레인은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그렇게 이상한 노예가 세상에 어디 있어?’
슬레인의 달콤한 공기는 암컷들을 보다 솔직하고 자유롭게 만든다. 아무리 정숙한 여자도 슬레인에서 자신의 처지를 받아들이고 자지를 몇 번 받아들이면 스스로 성욕을 느끼고 엉덩이를 흔든다. 실제로 도시가 모든 여자를 노예로 삼겠다는 규칙이 생겨버린 것도 바로 이 때문이었다. 여자들은 이곳으로 와서 쉽게 타락하고, 성욕의 노예가 되어버린다. 반면 남자들은 이곳에서 이성이 남아있다. 원인은 모르지만 아무튼 과거에도 그래왔고, 지금도 그렇다. 자연스럽게 슬레인의 수컷들은 이세계에서 넘어오는 여자들을 탐욕스러운 자신들만의 물건으로 삼아 즐기기 시작했다. 그런 슬레인에서 옷가게 주인 퀸트가 말한 여인을 찾는 일이란? 결코 쉽지 않다.
‘장담하지. 보나마나 발정 나서 자지 맛을 본 년이 제 발로 기어나갔을 걸? 이 미친 도시에서 취향이 다양한 놈은 있기 마련이니까 정숙한 여주인의 노예를 타락시키는 걸 재미삼아 해본 놈이 있을 거야.’
매일 어떤 눈에 띄는 결과물을 가져온다면 좋겠지만 그건 어려운 일이다. 노예상인길드에도 레인이 시도해 볼 만한 일은 없었다. 허탕을 치는 날이 늘어간다는 것은 그리 좋은 일은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항상 원하던 결과를 얻을 수 없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다. 차분한 마음으로 노예시장으로 들어갔다.
“오늘 경매는 끝났어! 내일 또 보자구 친구!”
오늘의 경매는 일찍 끝나있었다. 보통이었다면 아쉬워했을 상황이지만 굳이 레인은 상관없었다.
“피라드, 오늘 내놓지 않은 노예를 하나 구하고 싶은데.”
레인은 자신의 아우라를 시험하기 위해 일부러 반말을 했다. 피라드는 레인은 쓱 보더니 평소와 같은 친근한 말투로 대답했다.
“이봐, 그런 요구는 옳지 않아. 우리도 우리 나름대로의 룰이 있다고. 자네가 싫은 건 아니지만 영업시간이 끝났는데 자네에게 특혜를 주며 노예를 보여줄 수는 없는 것 아닌가?”
“그럴지도. 하지만 내가 찾는 건 그리 좋은 노예가 아닌데? 무대 뒤에 있는 노예 중에 싼 걸로 가져가지.”
“아무거나 상관없다는 말이야? 그렇다곤 해도 우린 손해를 볼 수 없으니 입찰가로 책정한 금액에 세 배를 받아야겠어. 사실 경매의 묘미는 서로의 치열한 눈치싸움 끝에 우리가 이득을 보는 게임인데 세 배도 너무 작아! 그게 싫다면 굳이 손님들과의 약속을 꺾으면서까지 이 거래를 성사시킬 이유가 보이지 않는군.”
“좋아.”
“만약 거래를 파토 낸다면 각오하는 게 좋을 거야. 우리에게 직접 이렇게 딜을 했다는 건, 그만큼 자신있다는 증거로 받아들여도 좋겠지? 우리는 정직하게 친구가 고른 노예의 가치를 말해줄 것이고 결국 아무것도 사지 않겠다고 말하면 노예상인길드에 블랙리스트로 올려달라고 건의할 거야. 그래도 정말 상관없겠나?”
이건 기싸움이다. 자신에 앞에 나타난 애송이로 보이는 꼬맹이의 역량을 시험해 보고 싶은 것이다.
“좋아! 그럼 안내해 주지. 잘 봐, 꽤 많지? 아직 이름이나 살았던 곳, 기초적인 소질도 파악되지 않은 년들이야. 네가 원하는 걸 골라 봐. 뭐가 되었건 우린 곧바로 감정해 줄 테니까.”
피라드는 아직 분류되지 않은 노예들이 있는 곳으로 레인을 안내하곤 유일한 통로 앞에 있는 의자에 앉아서 졸기 시작했다.
‘정말 더럽군.’
안은 말 그대로 엉망이었다. 진흙인지 오물인지 분간이 가지 않는 것들을 몸에 묻히거나 뒤집어 쓴 노예들이 보이고, 그 중에는 배고픔을 참지 못해 스스로 대변을 주워 먹는 노예도 보였다.
‘저런 건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까 도축이 되겠지.’
레인이 찾는 건 세르빌라 퀸트가 굳이 원하는 노예는 아니었다. 다만, 싼 가격에 좋은 결과를 얻어낸 블랙펄의 사례를 보며 준비가 되지 않은 노예를 아무거나 골라서 그에 맞는 조교를 하고 팔아볼 생각이었다.
“으으....”
“괜찮아. 아무 일 없을 거야..”
불안해하는 노예를 침착하게 달래주는 노예도 보이고
“엄마.. 보고 싶어요...”
“흑흑.. 왜 이런 곳에 내가..”
“꺼내 주세요...”
슬퍼하며 눈물을 흘리고 괴로워 하는 노예도 많이 보인다
“저.. 언제까지 여기 있어야 하는 거죠?”
조금이나마 활달한 성격을 가졌으면서도 붙임성이 있는 노예가 레인에게 물어왔다. 아마 겉으로 보기에도 작고 귀여운 인상인 그가 조금 더 편하게 느껴져서 일 것이라고 추측했다. 아니면 그저 당돌한 성격일지도 모른다.
“언제까지 있어야 하는지는 모르겠고요. 그래도 아마 늦어도 3일 정도 안으론 나가실 수 있을 거예요.”
“정말요? 저.. 그런데 여긴 너무 추워요.. 밥도 거의 주지 않고요.. 안에 있는 레이첼이.. 기운이 없어요..”
“음, 정말 미안하지만 도움이 안 될 것 같네요. 전 여기에서 일하는 사람이 아니니까요.”
“네? 그럼 왜 오신거죠?”
“여기 있는 여러분 중에 하나를 사고 싶어서죠.”
“... 우릴 어떻게 하실 생각이죠?”
“글쎄요. 그건 저와 함께하게 된 인연이 있는 분의 올바른 태도에 달렸겠죠?”
눈앞의 노예는 제법 현실을 직시하는 것 같았다. 레인은 자리에 앉아 귀여운 외모의 노예에게 물었다.
“왜요? 제 노예가 되어주실 생각이 있으신가요?”
“그 전에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네요.”
“내 이름은 레인이에요. 노예상인이죠. 내 집은 아주 넓어요. 물건은 그다지 많지 않지만. 그래서 청소할 노예가 필요해요. 가능하면 손이 빠르면 더 좋고요. 하루 종일 청소만 하는 노예는 필요 없거든요.”
“저기.. 혹시 그럼 전 안 되나요? 앗차! 소개가 늦었네요. 제 이름은 다이나에요. 제 직업은 음악가를 하시던 주인님의 수발을 들던 몸종이고요. 저기.. 혹시..”
“왜요?”
“레이첼을 데려가 주시면 안 되나요??”
“네?!”
레인은 깜짝 놀랐다. 그나마 만만해 보이는 자신을 따라가겠다고 할 줄 알았고, 그런 목적으로 접근을 했다고 여겼는데 상대는 자신이 아닌 다른 노예를 골라줄 것을 권했다. 그것도 아픈 노예로.
“레이첼은 많이 아파요. 여기 올 때부터 충격에 이기지 못하고 시름시름 앓았죠. 제대로 된 식사와 보살핌이 조금만 있다면 아마 금방 좋아질 거예요. 레이첼은 귀족집 영애라고 하고요. 섬세하고 성격도 나긋나긋해서 아마 말을 잘 들을 거예요.”
“흠, 왜 제게 그녀의 일생을 맡기려고 하는 거죠?”
“당신은.. 적어도 여기 이상한 곳에 떨어져 제가 본 남자 중에 가장 좋은 사람처럼 느껴지니까요.”
“정말 그럴까요? 내 노예가 되는 순간, 내가 원하면 윤간시키거나 고문을 하거나 심지어 죽일 수도 있어요. 그건 이 도시에 모든 남자들이 당신들에게 할 수 있는 일이죠. 그런 곳에 하루라도 빨리 보내겠다고요?”
“분명.. 전 당신을 잘 몰라요. 하지만 반면 누가 되었건 간에 우리들에게 주인님이 생기는 건 정해진 수순이겠죠. 그럼 차라리 조금이라도 나은 주인에게 선택되기를 바라지 않겠어요?”
“그럼 당신이 볼 땐, 내가 좋은 주인으로 보인다?”
“그런 거죠.”
“그럼 왜 당신이 날 따라오겠다는 선택지를 고르진 않는 거죠?”
“전 태어나서부터 누군가의 몸종이었어요. 어릴 적엔 집안의 또래 뻘인 아가씨의 말동무로 지냈고, 조금 크고 나서는 집의 하인으로 살았죠. 그 다음엔 다른 주인님께 팔려서 그곳에서 그분의 몸종 역할을 해왔어요. 전 노예의 삶에 익숙하고 무엇을 시키던 받아들일 수 있어요. 반면 여기 있는 많은 아이들... 특히 레이첼은 달라요. 조금만 마음에 들지 않아도 우릴 죽이는데 망설임이 없는 곳이라는 것도 잘 알아요. 그러니 차라리 조금이라도 말이 통하시는 분께 레이첼을 보내고 싶은 거예요.”
레인의 눈에 읽힌 다이나의 눈빛은 거짓이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스스로 저런 이타적인 생각을 하는 노예는 흔치 않다. 그리고 나름 머리도 어느 정도는 돌아가는 모양이었다. 의외로 이런 노예는 심각하게 부당한 대우만 하지 않는다면 다른 마음을 품지 않을 것이다. 즉, 아주 조교하기 좋고 무난한 노예라고 할 수 있다.
“훗, 좋아요. 그럼 제안하나만 하죠. 제가 다이나와 레이첼을 사겠어요. 그 대신 어떤 일이 있더라도 레이첼이 내 명령을 어겨서는 안돼요. 못하고 실수할 순 있어요. 하지만 거부하거나 의지가 부족한 모습을 보인다면 난 분명히 그에 대한 응징을 할 거예요. 자신 있겠어요? 당연히 다이나가 도와주거나 대신해주는 것은 절대 용납하지 않을 거예요.”
“좋아요.. 레이첼 아가씨, 저만 믿어주세요. 알았죠?”
“으응...”
레인은 속으로 둘의 모습을 보며 코웃음을 쳤다. 이 상황에서도 귀하게 자라신 귀족영애의 비위를 맞춰주고 있는 전직몸종도 가관이지만, 자연스럽게 상전행세를 하는 영애는 더더욱 웃겼다. 물론 전혀 이해가 가지 않는 상황은 아니었다. 극단적인 상황에 몰리고, 두려움이 엄습해 오는 상황에서는 자연스럽게 자신들이 예전에 했던 일들을 떠올리며 그와 유사한 환경이 되기를 바라는 심리는 일정부분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마침 둘은 퍼즐조각처럼 비슷한 역할을 할 수 있었다. 그렇게 서로 의지하며 함께 한 모양이었다.
‘좋아. 저 두 년을 서로 못 잡아먹게끔 해볼까? 아니면 죽이는 상황으로? 앗차.. 너무 재미있을 것 같아서 쓸데없는 생각을 했군.’
레인은 자리에서 일어나 피라드에게 두 마리의 노예를 지목했다.
“저기 적갈색의 다이나라는 노예와 그 뒤에 웅크리고 있는 레이첼을 살까 하는데?”
“이봐, 친구! 한 마리만 팔겠다고 했을 텐데? 이건 룰에 없는 사항이라고.”
“세배의 가격을 준다고 했잖아. 솔직히 경매에 올라온 물건 중에 3배까지 뛰는 경우는 없어. 심지어 입찰시 2.5배에 해당하는 골드를 지불하면 곧바로 살 수 있는 룰도 있잖아? 물론 나에게 특혜를 주었기 때문에 3배라는 금액이 불만이라는 건 아니야. 하지만 때론 융통성이 있게끔 할 필요도 있지, 안 그래?”
아티펙트의 위용을 확인할 겸, 레인은 살짝 목소리에 노기를 실어 피라드를 쳐다보았다. 피라드는 아주 잠깐 레인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더니 곧 평소처럼 웃었다.
“하하! 이거 내가 한 방 먹었군, 친구! 그렇게 무섭게 쳐다보지 마! 장난이니까. 보기보다 배짱이 있네. 이봐, 신사분께서 말씀하신 노예 둘을 끄집어 와봐.”
“넷!!”
갑옷을 입은 병사는 우리의 자물쇠를 열고 머리채를 잡아서 끌고 나왔다.
“맞지?”
“맞다.”
“어디 보자.. 젊은 노예는 몸에 흉터가 조금 있군. 쯧쯧, C등급 외모에, 건강해 보이고 배려심이 있는 성격에 제법 적극적인 성격이군. 약간 독립적인 성향도 있고 알몸을 내놓는 것도 그리 부끄러워하진 않는 모양이군. 외모만 되었다면 제법 비쌌겠는 걸?”
비릿한 웃음을 보이며 피라드는 수잔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어린년은 보자.. 제법 예쁜 건 좋은데, 몸도 허약하고 척 봐도 겁쟁이군. 조금 반반한 외모가 그나마 쓸 만해서 좆집으로 쓰기 좋은 년으로 보이는데, 자넨 어떻게 생각하나?”
“뭐, 나쁘진 않지. 그래서 전부 얼마야?”
“젊은 년은 330골드. 어린년은 120골드. 흥정은 없어.”
“좋아. 둘 다 내가 사지. 괜히 뛰쳐나가면 귀찮아지니까 손목까진 잘 묶어서 나에게 줘.”
“하하!! 3배로 팔았으니 나쁘진 않군! 자, 여기 노예계약서가 있네. 참고로 이 경우엔 노예에 어떤 하자가 있다고 해도 자네가 선택했으니 우린 최소한의 도리도 하지 않을 것이네. 그 점만 명심하게!”
그렇게 다이나와 레이첼은 레인의 노예가 되었다.
“다녀오셨.. 어머!”
“왜? 쓸 만해 보여서 샀어.”
“고생 많으셨어요, 주인님. 식사 준비부터 할까요?”
“음, 배고프군. 둘에게도 사료를 한 줌씩 주도록.”
“알겠습니다.”
레인이 단검을 꺼내자 레이첼은 작게 놀라며 다이나의 뒤로 숨었다.
“괜찮아요, 아가씨. 손목을 풀어주려고 하는 거니까요.”
“흑흑.. 너무 무서웠어.. 발가벗기고 거리를 걸으라니.. 여긴 미친 것 같아... 어쩌지?”
‘저 년은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린 모양이군. 뭐 당장은 내버려 둘까?’
레인은 흐뭇하게 웃으며 둘에게 처음으로 명령했다.
“화장실은 저기야. 처음이니까 함께 씻어도 좋아. 아, 그리고 혹시나 해서 해두는 말이지만 괜히 배관 파이프를 부수고 거기로 탈출할 생각은 하지 마라. 고장 나서 내가 고쳐봤는데, 배관 아래로 있는 하수구에 악어가 살더라고. 어쨌든 돈을 지불했으니 너희가 그만큼 벌어다 주지 않는 한 죽는 것도 허락하지 않을 거야. 어서가. 눈치 보지 말고.”
“네, 주인님. 아가씨, 어서가요.”
“으응...”
두 노예가 화장실로 향하자 래티샤가 곧장 물어왔다.
“저기.. 저 두 분은..”
“큰 애는 다이나고 음악가의 저택에서 몸종을 하고 살았다고 하더군. 작은 애는 귀족집 영애라는데?”
“저기...”
“뭔데?”
“죄송합니다, 주인님. 다시 일하러 가보겠습니다.”
뭔가 머뭇거리는 래티샤를 내버려 둔 채, 레인은 탁자에 앉아 이런저런 생각을 했다. 하나가 아닌 둘이기에 변수도 많고 필요한 조치도 달라질 것이다.
“그래도 씻으니까 기분 좋다.”
“그렇지요? 앞으로 저기 계신분의 말씀을 잘 들으면 많은 것을 허락해 주실 거예요. 조금만 힘내기로 해요, 아가씨.”
“응! 헤헤.. 다이나 너무 좋아!”
다이나에게 매달려서 고마워했다가 레인과 눈이 마주치자 고개를 돌리며 경계했다.
“이리로 와.”
“으으...”
“어서 가셔야 합니다. 제가 설명 드렸지요? 앞으론 저분의 말씀만 잘 들으면 되요.”
거의 억지로 끌고 오다시피 했지만 어쨌든 명령을 어긴 건 아니었다.
“앉아.”
“네?! 주인님과 겸상이라뇨?! 그런...”
‘어? 무슨 말이야? 저게..’
깜짝 놀라는 다이나와는 달리 래티샤는 약간 당황했다. 당연한 것이었지만 레인은 항상 자신의 옆에서 식사하는 것을 허락해 주었으니까. 오늘 아침은 제외하고 말이다.
“감히 어떻게 그런...”
“아니야, 네가 건방진 노예라고 보였더라면 아예 굶겼을지도 몰라. 하지만 넌 적어도 상황판단도 빠르고 자신의 입장도 잘 알고 있지. 난 틀려먹은 노예만 아니라면 어느 정돈 자율성을 줄 거야. 이건 내 판단이니까 자리에 앉아.”
“감사합니다, 주인님.”
예의바르게 엎드려 인사를 하곤 의자에 앉았다.
“헤헤.. 나도..”
“넌 아냐. 바닥에 무릎 꿇고 있어.”
“어? 왜??”
“그야, 넌 쟤만큼 준비되지 않았으니까.”
“아...”
“아가씨, 주인님의 말씀을 따라주셔야 합니다. 제발..”
“으으.. 알았어.. 정말 너무해... 흑..”
“주인님, 식사 준비되었습니다.”
“음, 고생했어. 아주 잘 했어.”
“감사합니다.”
래티샤가 만든 요리는 꽤 대단한 것이었다. 후추만 조금 뿌렸을 뿐이지만 스테이크는 칼집이 들어가 정성스럽게 잘 굽혀있었고, 그 위로 잘게 슬라이스로 자른 버섯으로 예쁘게 모양을 내었다. 스프는 알맞게 따뜻한 온도였고, 옥수수향이 은은하게 나며 식탐을 자극한다. 함께 나온 빵도 여전히 폭신폭신하고 먹음직스러웠다. 합격.
“훗, 제법이군. 역시 이 재주하난 인정해줘야 한다니까.”
“감사합니다, 주인님.”
래티샤는 아침에 들었던 말을 상기하며 레이첼의 옆으로 가서 무릎을 꿇고 앉았다.
“자, 식사하지.”
“네, 감사히 먹겠습니다.”
“감사히 먹겠습니다.”
“...”
둘은 순순히 대답을 했지만, 레이첼은 하지 않았다.
“왜 대답을 안 하지? 감사하지 않아? 아니면 배가 고프지 않은 건가?”
“이건...”
“배고프지 않은 모양이군. 래티샤, 정리해.”
“네.”
“앗! 안 돼... 어... 왜?!”
“아가씨.. 제발...”
디아나는 모기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진언을 하였지만, 레이첼의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싫어!! 전부 다 싫어!! 왜 이러는 거야!!! 내가 뭘 어쨌다고!! 난!! 난!! 고귀한 바인 영주의...”
짜악-!
“어? 디아나??”
말릴 새도 없이 디아나가 자리에서 일어나 레이첼의 뺨을 갈겼다. 레인은 이 재미있는 상황을 속으로만 웃으며 겉으론 냉정하게 바라보았다.
“레이첼, 주인님의 식사시간을 방해한 죄가 얼마나 큰지 모르니?”
“흐아아앙!! 난 잘못한 게 없다고! 옷도 없어!! 밥도 쓰레기 같아!! 구역질 나!!! 왜 내가 저 천박한 남자의 말을 들어야 해? 차라리 죽여!! 죽여라고!! 이 나쁜 놈들아!!!”
디아나는 새파랗게 질려 레인의 앞으로 다가가 머리를 땅에 박았다. 심지어 피도 흐르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주인님. 이런 일은 없어야 하는 것입니다. 어떠한 벌도 제가 대신 받겠습니다. 이 노예를 주인님께 권한 것은 제가 한 짓입니다. 부디 저를 벌해 주십시오.”
‘어떻게 할까나?’
은근히 고민되는 선택지였다. 레인은 효율적인 방법보다는 재미있는 방법을 찾고 싶다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
‘본래라면 레이첼을 혼내는 것이 맞겠지만, 저렇게 원하는데 쟤 소원을 들어줘야 하나? 아니지, 그럼 너무 재미가 없지.’
여전히 정신을 못 차린 어린 노예년과 정신이 똑바로 박힌 노예년. 참 보기 좋은 조합이다. 둘의 끈끈한 사이를 한 번 시험해 보고 싶어졌다.
“좋아, 그럼 디아나가 레이첼의 뺨을 3대 때리는 걸로 용서해 주지. 적당히 살살치는 건 용납하지 않겠어. 그럼 그때는 내가 채찍으로 직접 때릴 거니까 쓸데없는 생각은 하지 않도록.”
“알겠습니다, 주인님. 자비를 베풀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디아나의 어깨는 살짝 떨리고 있었다. 자신이 지켜주겠다고 해놓고도 반대로 자신이 상처를 입혀야 하는 상황이 와서 마음이 괴로운 것이다. 분명 눈앞의 노예는 자신의 입장도 잘 알고 있고, 해야 할 행동도 분명히 숙지하고 있다. 반면, 어디까지나 자신의 본분이라는 생각에서 하는 일이기에 진심어린 마음속 깊은 곳에서 나온 행동이라고 볼 수 있을지는 모를 일이기도 했다.
“디아나??”
짜악-!
“주인님께 사죄하십시오.”
“어... 날 때려? 네가 감히?”
짜악-!!
“빨리.. 사과 하십시오.”
“디아나.. 너무해.. 너까지..”
“어이, 난 때리라고 명령했지, 잡담하라고 한 적은 없다. 수프가 식어가고 있어.”
짜악-!!
“아앗!!!”
결국 최대한 힘을 실어 휘두른 디아나의 손찌검에 레이첼의 연약한 몸이 바닥에 고꾸라지고 말았다.
“다.. 때렸습니다, 주인님.”
“아니지, 최대한 세게 때리라고 난 명령했어. 방금 마지막이 최선을 다한 거잖아? 그 전엔 머리가 겨우 흔들리는 정도였으니까. 아직 두 대 남았어. 너까지 날 기만한다면 그땐 정말 험한 꼴을 보게 될 거야.”
“죄송합니다. 주인님..”
짜악-! 짜악-!!
“으윽...”
결국 힘이 빠진 레이첼은 바닥에 쓰러져 숨을 몰아쉬었다. 레인은 잘 알고 있다. 고작 이런 걸로 사람이 죽지는 않는다. 마음 같아선 침낭도 줄 생각이 없지만, 레이첼은 그러지 않으면 몸이 약해서 오히려 더 쓸모없게 될 것이다. 그래서 거기까지 손을 대진 않기로 결심했다.
“잘했어. 그럼 식사하기로 하지. 디아나, 너도 바닥에 앉아서 먹어. 네 멋대로 내 허락도 없이 자리를 움직인 것도 모자라 네 얼굴에 상처를 내었지. 네 몸은 나의 것이야. 함부로 다치게 하는 행동은 용서할 수 없어. 무슨 말인지 이해했지?”
“네, 주인님. 감사합니다.”
‘뭐야.. 이 여자는?? 어째서 저렇게 행동하는 거지? 미친 건가? 그보다 저 꼬맹인...’
래티샤는 무척이나 혼란스러웠다. 쓰러진 꼬맹이를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는 사이 빠르게 식사를 하는 레인보다 늦게 먹을 수는 없었기에 재빨리 사료를 집어서 삼켰다.
‘450골드라니 젠장..’
솔직히 생각보다 너무 비쌌다. 적당히 말만 구슬리고 팔릴 법한 노예를 사는 게 우선순위였는데 어쩌다보니 비싸게 산 것도 모자라 하나도 아닌 둘이나 더해졌다. 식비도 이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것이다. 레인이 먹는 식사를 제외하면 약 3골드. 열흘이면 30골드다. 만만치 않은 돈이다. 그나마 사료를 이제 막 샀고, 자신의 식사 또한 식재료가 어느 정돈 남아있다. 내일부터는 조금씩만 먹을 생각도 들었다.
똑똑-
“들어와.”
“부르셨습니까?”
“그래, 여기 의자에 앉아.”
“감사합니다.”
디아나의 눈빛에서는 어떠한 반항의 흔적도 찾아볼 수 없었다.
“재우고 왔어?”
“네. 스트레스에 취약해서.. 안정이 필요해 보입니다.”
“그래서 특혜를 달라 이거야?”
“죄송합니다. 다만.. 레이첼에게 시킬 일이 있으시다면 제게 시켜 주십시오!”
“그래? 그럼 한 가지만 시켜보자. 래티샤를 데려와.”
곧 레티샤가 들어와 레인의 앞에 섰다.
“너희 둘 해봐.”
“... 네?”
“죄송하지만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여자들끼리 해보라고. 그거 말이야. 난 그게 한 번쯤은 구경해 보고 싶었어. 사실 디아나 너랑 레이첼을 시켜볼 생각이었는데, 저렇게 자고 있으니까 너희 둘이 알아서 해봐.”
“하지만 어떻게...”
“디아나, 넌 남자 경험이 있나?”
“없습니다.”
“여자는?”
“당연히 없습니다..”
“그럼 오히려 잘 됐네. 래티샤, 네가 디아나를 조교해봐. 자위 하는 법과 애무하는 법은 기본적으로 많이 느껴봤으니 알겠지? 중간 중간에 필요한 동작은 내가 가르칠 테니까 너희들끼리 저기 침대에서 해봐.”
레인이 자신의 침대를 손가락으로 가리키자 둘은 어색하게 서로를 바라보다 침대위로 올라갔다.
“아니지, 래티샤. 네가 조교하는 거니까 네가 위로 올라가야지.”
“아! 네!!”
“내가 너에게 애무했던 것처럼 시작해.”
조금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래티샤는 디아나의 입술을 스스로 핥으며 천천히 혀를 집어넣었다.
‘이게 뭐하는 거람?’
‘첫 키스가 여자가 될 줄은..’
둘은 각자 다른 생각을 하며 천천히 키스에 몰입하기 시작했다. 아직 조금은 어설프지만 레티샤의 리드로 키스는 점점 더 농밀해져가기 시작하고 있었다. 래티샤는 키스를 하면서 디아나의 적당히 부푼 가슴을 손으로 잡고 힘을 줬다 빼며 흥분감을 고조시키기 시작했다.
‘신기해.. 뭔가.. 기대되는 기분...’
‘이 얜 도대체 뭐야? 점점 더.. 리드를 뺏겨가고 있어?’
래티샤는 깜짝 놀랐다. 서서히 키스를 받아들이는 쪽은 상대가 아닌 자신이었다. 이건 어디까지나 명령을 수행하겠다는 의지의 문제였다. 스킬은 둘 다 큰 차이를 보이지 않을 만큼 무지하다. 반면, 래티샤는 이 명령에 의구심을 가졌다. 그 차이가 서서히 조교의 효과를 벌리는 차이로 나타나는 것이다.
“츄릅...츄르릅...”
이젠 서로가 서로를 더욱 격렬하게 키스로 몰입하기 시작했다. 래티샤는 천천히 손을 뻗어 디아나의 꽃잎을 손가락으로 자극했다. 어설프지만 최선을 다해서. 왠지 이 놀이가 조금은 재미있다는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흐응... 하앗?!”
깜짝 놀라며 서로의 입술이 떨어졌다.
“괜찮았어요?”
“네.. 첫키스였지만.. 이런 느낌이었네요..”
“자, 이제 서로의 보지를 바라보도록 래티샤 네가 머리를 반대쪽으로 가도록 누워.”
래티샤가 명령을 수행하자 서로의 꽃잎이 민망하게 벌어졌다 좁아졌다는 반복하는 모습이 보였다. 긴장을 한 탓에 자신도 모르게 힘이 들어갔다 빠지며 향긋한 냄새가 새어나오는 것 같았다.
“서로의 보지를 혀와 입술을 이용해서 빨아. 이빨도 써도 되지만 그건 어려울지 모르니까.”
둘은 천천히 서로의 보지를 이리저리 열어보며 구경을 했다. 신기한 경험이었다. 정작 자신의 몸에 있긴 해도 스스로 안을 쳐다볼 생각을 하며 살진 않았으니까. 더군다나 다른 여성의 몸이다. 왠지 자신의 털색과도 비교가 되고, 모양이나 색도 조금은 달라 무척 재미있게 느껴졌다.
“하읏!!!”
“하앙!!”
서로가 혀로 서로의 꽃잎을 핥기 시작하자 조금씩 교성이 나오기 시작했다.
“흡?!!!”
디아나는 깜짝 놀라며 눈이 커졌다. 래티샤의 혀가 자신의 꽃잎 안으로 들어와 꿈틀거리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디아나, 너도 쉬면 안 돼지.”
“네, 주인님. 하음..”
“하앙!”
서로가 서로의 보지를 더욱 격렬하게 빨며 서서히 절정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아... 가.. 가버려!!”
더 예민했던 래티샤의 허리가 먼저 꺾였지만 디아나는 아직인 모양이었다.
“이제 둘의 보지와 보지가 닿도록 자세를 잡아봐. 그렇지, 그렇게 교차시켜서 서로 마주보고 허리를 움직여.”
“네, 주인님. 하읏!!”
“아앙.. 여자와 하는 것도 너무 좋아요.. 버릇이 될 것 같아..”
래티샤는 완벽하게 느끼기 시작하고 있었다. 본래 의도와는 반대의 결과기는 하지만, 처녀에게 처음부터 많은 걸 바라는 것도 어려워 보였기에 최선을 다하는 것을 확인한 것으로 일단 만족하기로 했다.
한 차례 조교가 끝나고 래티샤는 레이첼을 돌보러 나갔고 방에는 디아나와 레인만이 남았다.
“어때, 마음에 들었어?”
“네, 주인님. 신기한 경험이었습니다.”
완벽히 격렬하게 가지는 못했지만 몸이 붕 뜨는 것과 같은 기분을 느꼈기에 디아나 역시 기분이 꽤 좋아져 있었다.
“넌 참 착하구나. 별말 안하고 하는 걸 보면.”
“주인님께서 저와 레이첼..을 데려오는 조건이었지 않습니까? 전 주인님과 오늘 반나절을 보내며 주인님이 약속을 지키는 분이시라는 걸 느꼈습니다.”
“그래? 난 오늘 네게 모진 일을 시켰는데도?”
“그렇지 않습니다. 지금까지는 제가 레이첼..을 보살펴 주었지만, 앞으론 그녀가 스스로 갈아가야 합니다. 제가 도울 수 있다면 좋겠지만, 어쩌면 언젠간 서로 다른 길을 가야할 지도 모릅니다. 다만.. 아무것도 모른 채,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어딘가 정말 위험한 주인을 만나 제대로 꽃도 피워보기 전에 죽는 운명을 맞을지도 모른다는 것이 걱정되었습니다.”
“참 디아나는 마음씨가 착하네. 정말 귀여워. 사실은 널 적당히 가르치다 팔 생각이었는데 왠지 생각이 바뀌는 걸? 이렇게 온순하고 귀여운 아이를 파는 건 좀 아깝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어.”
“주인님 곁에 있을 수 있다면 무슨 일인들 못하겠습니까?”
“하하.. 아주 좋아. 이리 와서 내 옆에 앉아.”
다가온 디아나의 어깨를 잡고 쓰다듬어 주었다. 그녀는 부끄러워하면서도 더욱 안기기 위해서 몸을 밀착했다. 여전히 처녀지만 스스로 남자에게 사랑받는 법을 빨리 익히고 있었다. 하지만 굳이 레인은 그녀의 처녀를 받을 생각은 없었다. 이건 어디까지나 비즈니스니까.
“나에게 키스 해보겠어?”
“네.”
디아나는 레인의 목을 스스로 팔로 안아서 키스를 시도했다. 레인은 오히려 래티샤보다도 더 낫다는 사실에 조금 놀랐다. 확실히 이 노예는 진지한 성향을 가지고 있다. 침착하면서도 스스로 처한 상황에서 최선을 다한다. 오히려 이쯤 되면 330골드가 결코 아깝지 않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조금만 더 갈고 닦으면 아마 C+급으로 조교할 수 있을 것이고, 1500골드에 노예를 찾는 인근의 이웃들에게 팔아넘길 수도 있을 것이다. 반면 세르빌라 퀸트에게 넘긴다면 700골드가 고작일 것이다. 아무리 많이 쳐도 1000을 넘기기가 어려울 것이다. 다만 후자는 전자에 비해 자신의 명성을 조금 더 빠르게 올려줄 것이다. 그리고 더 매력적인 부분은 그냥 팔 것 없이 이 노예를 래티샤를 대체할 부품으로 쓰는 선택지도 존재한다.
‘뭐야.. 나보다.. 쟤가 더 좋은 거야??’
밖에서 몰래 문틈 사이로 보이는 관경을 래티샤는 보며 당황했다. 레인에게 아양을 떠는 눈앞에 보이는 년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문을 박차고 들어갈 수는 없었다. 그랬다간 레인에게 남아있는 마지막 마음까지도 모두 빼앗길 것 같았기에.
“후후.. 정말 귀엽네. 널 가지고 싶구나. 하지만 오늘은 아니지, 내가 선물을 줄까?”
레인은 조심스럽게 가방 안에 든 물건을 꺼냈다. 래티샤가 입은 평범한 원피스가 아닌 무릎보다 약간 아래까지 길이가 닿는 연분홍빛 드레스였다. 적당히 움직이기에도 좋고, 예쁘게도 보이는 적당한 물건이었다. 사실은 래티샤에게 언젠가 줄까 생각하며 미리 충동구매를 했던 물건이지만, 다행히도 디아나에게 아주 잘 맞았다.
“와아.. 감사합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걸 제게...”
“난 분명히 말했어. 네가 나와의 약속을 잘 지킨다면, 더 대단한 포상이 있을 거야. 반면 반대로 나아간다면 모든 것이 어려워지겠지. 하지만 그럴 만큼 넌 어리석지도 부족하지도 않아. 네게 제안을 할까?”
“네..”
디아나는 태어나 처음 받아본 아름다운 드레스에 눈을 떼지 못했다. 받아들곤 이리저리 돌려보며 눈빛을 반짝였다.
“입어봐.”
“네! 감사합니다.”
환한 표정으로 옷을 입고 뒤에 있는 지퍼를 잠근 후 머리카락을 정리하자 확실히 벌거벗고 있는 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나아졌다.
‘뭐야.. 왜 저년은 저렇게 좋은 것을 주는 거야? 오늘 난 열심히 일했다고! 빵을 그렇게 구워내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아? 난 너 때문에 바닥에서 사료나 주워 먹었다고! 이건 불공평해! 내가 자길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면서.. 왜 이러는 거야?’
래티샤는 결국 주저앉아서 눈물을 흘렸다. 반짝이는 눈빛으로 자신의 옷을 자랑하며 주인에게 감사를 잊지 않는 노예와 그 모습을 질투하는 또 다른 노예. 레인은 문 밖에서 자신들을 보고 있는 래티샤의 시선을 느끼며 그녀가 더 잘 보게끔 미소를 지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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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소지금: 891골드
지출내역:
450골드: 노예 구입 330 + 120
10골드 - 다리가 조금 나오는 짧은 드레스.
소유 중인 노예: 래티샤, 디아나, 레이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