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화 (1/50)

<<노예의 도시 슬레인>>

<선택은 자유>

3월 14일

“으으음....”

소녀는 눈을 떴다.

“안녕하세요? 정신이 드나요?”

“앗?! 누구세요? 여긴?!”

“쉬잇!! 조용히 해주세요. 설명은 해드릴게요.”

소녀를 진정시키는 것은 키가 작고 못생긴 소년이었다. 일단은 자신의 또래의 소년이 말을 걸어온 것이기에 소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제 이름은 레인이에요. 그러니까 여긴 슬레인의 판자촌지역인데, 죄송하지만 어디까지가 기억에 나세요?”

“그게...”

소녀는 당황하면서도 차근차근 정신을 수습하고 입을 열었다. 하지만 떨리는 손은 여전히 겁에 질린 표정이었다.

“제 이름은 카산드라에요.. 로시니 왕국 소속이고..”

소년은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그러니까... 여긴 슬레인이에요. 여기가 어떤 곳인지는 잘 모르죠? 일단 충격이 크실 테니 이 물부터 좀 마시세요.”

“됐어요. 죄송하지만 나가봐야겠네요. 설마 제 몸에 이상한 짓이라도 하신 건 아니죠?”

“천만해요. 하지만 그냥 나가시면 안 돼요. 제발 제 이야기 좀 들어주세요.”

“뭔데요?”

소녀는 차가운 눈으로 소년을 째려보았다. 자꾸 머뭇거리는 레인의 표정이 오히려 혼란을 부추기고 있는 것이다. 슬레인? 아예 처음 들어본 지명이다. 집안은 당장 쓰러져도 이상할 것이 없는 집이라고 부르기에도 애매한 곳. 모든 것이 불분명하고 당황스러웠다.

“여긴 슬레인이라고 부르는 노예도시에요. 제가 아가씨에게 마지막 기억을 물어 본 건 다 이유가 있어서 라고요.”

“마지막 기억... 아! 그래!! 그냥 평소랑 똑같은 날이었는데... 몸은 조금 아픈 것 같았지만 잘은 모르겠고.. 아무튼 그래서 어지러워서 침대에 누운 것이 전부인 거 같네요.”

“진정하시고 제 말을 잘 들어 주세요.”

“뭐죠?”

소년은 소녀의 대답에 한숨을 내쉬며 손을 꼭 잡아주었다. 뭔가 중요한 이야기라도 할 심산으로 보였기에 소녀도 괜히 긴장되었다.

“그러니까.. 여긴 모든 여자들이 노예에요. 종족과 나이를 불분명하고요.”

“... 네?”

소녀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여자들이 모두 노예라니? 그런 곳이 세상 어디에 있단 말인가?

“아가씨, 죄송하지만 이름이?”

“카산드라에요.”

“카산드라라고 부를게요. 죄송하지만 카산드라는 아마 원래 사시던 곳에서 이미 죽었어요.”

“... 네?”

카산드라는 서서히 황당함과 짜증이 밀려왔다. 처음부터 끝까지 해괴하고 이상한 말들이었다. 노예도시라느니, 여자는 모두 노예라느니, 심지어 자기가 죽었다니? 그럼 여기가 사후 세계라도 된다는 말인가?

“네. 정확해요. 보통 이곳을 사후세계라고 부르는 것도 틀린 말은 아니죠. 아무튼 대충 이곳에 대한 설명은 해드렸으니까요. 제 말이 사실인지 확인하고 싶은 눈치시네요. 조용히 저기 있는 틈새로 밖을 보세요. 단, 절대로 소리를 지르시면 안 돼요.”

카산드라는 의심과 황당함으로 고개를 저으며 나무와 나무가 덧대져 있는 틈새를 조용히 보았다.

“헉?!”

“쉬잇!!”

재빨리 자신의 입을 틀어막는 소년을 뿌리칠 수도 없는 충격적인 장면이 카산드라의 눈에 비쳤다. 모든 여자들이 벗고 거리를 돌아다니고 있다.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여자는 단 하나도 없었다. 목줄이 채워져 있거나, 수갑, 발찌 심지어 동물처럼 기어 다니는 여자도 있었다. 남자들의 모습은 더더욱 충격적이었다. 인간도 있지만 아무리 좋게 봐주려고 해도 인간이라고 볼 수 없는 몬스터들이 즐비했다. 

“이제 제 말을 믿으시겠죠? 제발, 제발 소리만 지르지 말아주세요. 물어보시는 건 뭐든지 대답을 해드릴 테니까요. 들켰다간 우리 둘 다 목이 날아갈지도 모른다고요.”

카산드라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자 레인은 그녀의 입을 막고 있던 손을 조용히 떼 주었다.

“이게 무슨 일인 건가요? 도대체 왜?? 제가 무슨 잘못은 한 거죠? 왜 여기에 제가 있는 거죠? 이건 뭔가 잘못 됐어요.”

“죄송하지만 그건 저도 몰라요. 이곳에 떨어지는 여자들의 공통점은 없으니까요. 가난한 거지부터 왕실에 왕녀까지도 이곳에 떨어지거든요. 떨어지는 곳은 정확히 이 도시가 아니라 이 도시를 둘러싸고 있는 거대한 숲이에요. 안개가 자욱해서 한치 앞도 보기가 어려운 숲이죠. 이 숲을 거닐다보면 카산드라처럼 숲에 그냥 쓰러져서 기절하고 있는 여자들이 있어요. 다행인 건 제가 발견 했을 땐 카산드라는 그저 기절만 한 상태였다는 거겠죠. 만약 운이 나빠서 촉수괴수와 같은 괴물들에게 걸렸으면 상상도 하고 싶지 않을 만큼 끔찍한 일을 당하게 되거든요.”

“아아... 도대체 이게 무슨... 이제 어떻게 해야 하죠?”

“이곳에서 여자가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은 노예밖에 없어요.”

“말도 안 돼...”

카산드라는 다리에 힘이 풀리며 눈물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은 이런 부조리하고 끔찍한 일에 휘말려야 하는 이유를 당최 알 수가 없었다. 고아로 태어나 작은 여관 겸 식당에서 허드렛일만 하며 그곳에서 살아왔다. 너무 바쁘고 힘겹게 살았기에 몸이 조금 나쁘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도 그저 컨디션이 조금 나빠서 그런 것이라 생각하고 조금 일찍 잤다. 그리고 그대로 죽어버렸고 이런 곳에 떨어졌다. 

“후... 아무래도 충격이 크신 모양이네요.”

“저.. 살려주세요.. 전 이런 곳에서 있을 수 없어요... 제발요...”

아까까지 레인에게 큰 소리를 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하아.. 그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제가 분명하게 말씀드릴 수 있는 건 아가씨는 돌아갈 방법이 없어요.”

“그럼.. 절 파실 건가요?”

“아니에요! 그럴 생각이었다면 처음부터 노예시장에 넘겼겠죠.”

“그럼 절 왜 주우신 건가요...”

“여긴 노예도시고 노예상인이나 노예사냥꾼이 대부분이에요. 노예사냥꾼은 말 그대로 노예를 숲에서 잡아오는 직업이죠. 노예상인은 그런 노예들을 사서 조교를 시키고 파는 일을 업으로 삼는 사람들이에요.”

“다른 직업은.. 없나요?”

“있긴 한데 거의 약 80% 이상의 남자들이 하는 일은 저 두 가지에요. 사냥꾼은 전문 기술이 많이 필요해서 아무래도 상인보다는 숫자가 적죠.”

“그럼.. 레인은.. 사냥꾼인 건가요?”

“아니요! 사실 저도 노예상인이에요. 물론 그렇다고 해도 제대로 된 노예를 조교시켜 본 적도 팔아본 적도 없지만요.. 겨우 노예길드에 등록만 된 초보에요. 사실 노예를 사려면 돈이 있어야 하는데, 그럴 돈은 없고 그렇다고 해서 제가 사냥꾼을 할 수도 없으니 그냥 무작정 숲을 돌아다녀 봤어요. 그렇다고 해도 10분도 되지 않는 거리였지만요. 우연찮게 카산드라가 쓰러져 있었고 누가 오기 전에 먼저 이곳으로 데려온 거예요. 그게 전부에요.”

“그럼 이제 절 어떻게 할 생각이에요?”

“하아.. 그게 문제네요. 사실은 제가 먹고 사는 것도 빠듯하니까...”

꼬르륵-

불쌍한 카산드라의 배에서는 배고픔을 알리는 신호가 울렸다. 레인은 그런 그녀가 안쓰럽다는 표정으로 살짝 미소를 짓고는 작은 포장지를 열자 역하고 끔찍한 냄새가 밀려왔다.

“드릴 수 있는 건 이거 밖에 없네요. 사실 제가 먹을 것도 부족한데..”

‘토할 것 같지만 지금은 뭐라도 먹어야 해.’

한평생을 힘들고 고된 일만 하며 살아왔기에 카산드라는 비위가 무척 좋은 소녀였다. 당장 최악의 상황에서도 꿋꿋하게 살아나가는 생명력이 꿈틀대고 있는 것이었다. 기세 좋게 건사료를 손으로 집어 씹어서 꾸역꾸역 삼켰다.

“대단하네요.. 보통 처음 먹을 땐 잘 못 먹는 게 보통인데..”

“살려면 어쩔 수 없잖아요. 그리고 이거라도 먹지 않으면 도망갈 힘도 없는 걸요.”

“도망가실 생각이세요?”

“당연하죠! 이런 이상한 곳에서 죽을 수는 없어요!”

지극히 당연한 반응에 레인은 한숨을 쉬었다.

“좋아요. 정말 후회하시지 않겠어요?”

“네. 차라리 제가 버려져 있었다는 숲으로 절 보내주세요. 죽더라도 거기서 제 살길을 찾아보겠어요.”

카산드라의 눈에서는 완고하고도 분명한 의지가 느껴졌다. 한참을 그녀의 눈을 보던 레인은 결국 항복을 선언했다.

“좋아요. 목숨을 걸고 카산드라를 여기까지 데려온 거지만 스스로가 그런 길을 택하고 싶다고 하니 말리진 않겠어요. 하지만 일단 도시를 빠져나가야 해요. 그리고 알다시피 여자는 옷을 벗고 돌아다녀야 하고, 옆에 주인이 붙어 있어야 해요. 주인이 없는 노예가 혼자 돌아다닌다면 붙잡혀서 다른 남자의 노예가 되거나 험한 꼴을 당하게 되는 건 피할 수 없으니까요.”

“말도 안 돼...”

“결정은 카산드라가 하세요. 전 예전에도 카산드라와 같은 선택을 한 여자아이를 돌려보낸 적이 있었어요. 물론 살았는지 죽었는지, 혹은 다시 붙잡혔는지는 저도 몰라요. 어떻게 하시겠어요? 마지막으로 물어 보는 거예요.”

카산드라는 눈을 감고 여러 생각을 했다. 이곳의 여자는 보나마나 성노예일 것이고, 자신이 이곳에서 살아가야 한다면 결국 누군가의 노리개가 되어 유린당하고 학대당한다는 결론이 자연스럽게 나온다. 일단은 적어도 이곳이 사후세계와 비슷한 곳이라면 차라리 어쩌면 한 번 더 죽는다면 새로운 무언가로 환생할 지도 모른다는 결론까지 스스로 내렸다. 끝없는 고통보다는 생존을 위한 몸부림을 선택한 그녀는 단호한 표정으로 레인에게 선언했다.

“전 도망가보겠어요. 절 도와주시겠어요?”

“휴.. 알겠어요. 하지만 도시 밖으로 나가려면 아시다시피 옷은 벗어야 해요. 그리고.. 손목도 묶어야하고요..”

“왜죠? 절 팔아넘길 셈인가요?”

“그런 게 아니에요. 밖을 자세히 보시면 아시겠지만 수갑을 차지 않은 대부분의 여자들의 몸에는 브랜드 낙인이 찍혀있어요. 누구의 소유인지, 누가 판 물건인지를 나타내는 것이죠. 카산드라는 당연히 그런 게 없잖아요? 그러니 주인이 없거나, 혹은 어떤 목적에 의해서 아직 브랜드 낙인을 찍지 않은 노예라고 여기 사람들에겐 인식이 될 텐데 결박과 같은 무언가가 되지 않았다면 대번에 도망친 노예라고 보일 것이고...”

“알겠어요... 제 옷은...”

“제가 잘 보관하고 있다가 도시 밖으로 나가면 꼭 돌려드릴게요.”

“... 뒤돌아 주세요.”

“아.. 네..”

레인이 뒤를 돌자 옷이 사라락하며 벗겨지는 소리가 들렸다. 

“속옷까지 다 벗으셔야 해요. 정말 죄송해요.”

“네.. 레인의 잘못이 아니잖아요..”

결국 카산드라는 속옷까지 벗곤 수치스러운 마음에 손으로 가슴과 아래쪽에 있는 꽃잎을 가렸다. 

“몸이.. 아름다우세요.”

“... 저도 제 몸이 그다지 아름다운 건 아니라는 것쯤은 알거든요?”

실제로 카산드라의 몸은 흉측한 흉터가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워낙 어릴 적부터 고된 일을 해왔고 잘 먹지 못했기에 그다지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먼 몸매였다. 하지만 레인은 오늘 처음만난 자신의 앞에서 옷을 벗은 소녀를 위로해 주고 싶었다.

“아니에요. 열심히 사신 흔적이 있는 정말 아름다운 몸인 걸요.. 이런 곳이 아니었다면 청혼을 했을지도 모르겠어요.. 앗! 제가 너무 건방진 말을 했죠? 헤헤헤...”

“훗... 당신은 정말 좋은 사람이네요. 이런 지옥 같은 곳에서 당신을 만난 것만으로도 행운이에요.”

“그럼 손을 묶겠어요. 다시 설명 드리지만 절대로 밖으로 나가서 눈에 띄는 행동을 하거나 갑자기 돌발적인 행동은 하지 마세요. 아시겠죠?”

“네.. 꽉.. 묶어 주세요. 의심을 사면 안 되니까...”

레인은 튼튼한 밧줄로 카산드라의 손목을 단단히 묶었다. 조금 서툰 느낌도 있었지만 확실하게 조여지자 자신의 몸을 숨길 수 없게 된 카산드라는 눈물을 쏟을 것 같은 얼굴이 되었다.

“그럼.. 나갈까요?”

“네...”

천천히 문이 열리고 둘은 인파 사이로 걷기 시작했다. 알몸으로 손이 묶인 채 거리를 배회한다는 정신 나간 짓을 하고 있음에도 이런 것이 정상인 곳이라서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오히려 카산드라는 놀랐다. 이곳의 여자들의 대다수는 적응을 한 것인지 의외로 우울한 얼굴보다는 쾌활한 얼굴들이 넘쳐났다. 심지어는 옆에 있는 주인에게 아양을 떨거나 성적인 봉사를 길에서 서슴없이 하며 행복해 하는 모습도 보였다.

‘정상이 아냐... 미쳤어...’

“레인군! 오랜만이네요. 잘 지내셨어요?”

“네. 루티아님도 잘 계셨나요?”

“호호.. 저야 매일 같은 일상이죠. 그 아가씨는?”

“안에 계시는 도리아 아저씨께 도움을 받으려고요.”

“그렇군요. 그럼 안으로 들어가세요.”

갑자기 레인이 멈춰선 곳은 구석진 곳에 위치한 가게였다. 결국 불안한 마음에 카산드라는 먼저 입을 열었다.

“저기, 어디로 가는 거예요?”

“안에 계시는 분이 도와주셔야 성 밖으로 나갈 수 있어요. 제 말을 믿어 주세요.”

“네... 정말.. 꼭.. 약속 지켜주실 거죠?”

“그럼요. 두렵고 무서운 건 알지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금방 끝나니까요.”

카산드라는 고마운 마음으로 레인의 뒤를 따라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여어~ 레인! 오랜만이군. 그동안 잘 지냈나?”

“여긴 가능하면 오고 싶진 않은데, 어쩔 수가 없네요.”

“킥! 네가 능력이 부족해서 벌어지는 일인 것을 왜 그러나? 덕분에 너도 며칠은 포식하고 좋잖아?”

“하긴, 그것도 그렇네요.”

“아..아아....”

카산드라는 겁에 질려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여자들이 갈고리에 꽂혀서 공중에 매달려 있다. 고개를 숙인 여자들은 미동조차 하지 않는 것으로 봐선 이미 죽은 것이다. 더 충격적인 것은 레인과 친근하게 이야기 하는 뚱뚱하고 우락부락한 남자의 뒤로 보인 관경이었다. 큰 도마 위에 여러 토막으로 썰려있는 고기들.. 분명 사람의 고기.. 잘려진 유방 조각.. 적당히 땅에 굴러다니는 머리.. 이곳은 도살장이다. 

“쯧! 살이 너무 없군. 생긴 것도 하급이고, 왜 팔러 왔는지 이해가 가는군 그래! 너무 오래 빈둥대고 있었구만! 5골드를 주면 살을 발라줄게. 피부, 내장, 뼈는 날 줘. 살코기는 다 네가 가져가는 걸로.”

“불쌍한 아이에요. 깔끔하게 처리해 주세요.” 

“킥! 그러지!! 걱정마라, 아가야. 내가 널 맛있는 고기로 만들어 줄게.”

카산드라는 차라리 기절하고 싶었다. 어느새 바닥에 오줌을 질펀하게 싸고 공포심에 어금니가 덜덜 떨리고 있었다. 

“미안해요. 저도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인데, 차라리 노예가 되고 싶다고 그랬다면 노예시장에 팔아줬을 거예요. 조금만 순응하고 살아줬으면 좋았을 텐데. 다음 생에는 꼭 좋은 곳에서 태어나세요.”

너무나 달콤한 위로가 귓가에 들리지 않는다.

“아..안..돼.. 살려..주세요...”

피가 뭍은 우락부락한 손이 카산드라의 머리카락을 움켜쥐었다. 마지막으로 한 마디를 더 하고 싶었지만 카산드라에게 허락된 시간은 더 이상 없었다. 정육점 주인 도리아는 다른 한 손으로 도마에 박혀있는 날카로운 칼을 잡더니 카산드라의 목을 빠르게 그었다. 베인 곳에서 피가 쏟아지며 정신이 혼미해지기 시작했다. 살고 싶어서인지, 아니면 마지막으로 자신의 원한을 표현하고 싶은지 알 수는 없지만 카산드라는 손으로 도리아의 앞치마를 붙잡고 당겼다. 하지만 곧 숨을 완전히 멈췄다. 

“킥킥킥.. 정말 멋진 일이라니까! 레인! 네가 원한다면 특별히 내 제자로 널 키워주지. 어때? 해보지 않겠나? 대성하진 못해도 굶어 죽을 일은 없지.”

“하하.. 생각해 볼게요. 그보단 얼마정도 나오겠어요?”

“안심 부위는 1인분 양만큼 자르고, 나머진 어차피 고기와 지방을 통째로 갈아서 민스미트로 만들어 줄게. 다르게 썰어줄까? 비용이 추가 된다고.”

“배고프네요. 그냥 얼른 해주세요.”

“킥킥!! 보채기는!! 방금 잡은 년의 살점이나 씹어 봐. 처녀는 아니지만 그래도 신선한 게 최고지.”

날렵하게 포를 떠서 건넨 살점을 레인을 씹어 삼켰다. 비릿한 피의 향기가 일품이었다. 이곳은 고기를 구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노예를 도축하는 것이다. 예외적으로 돼지고기나 소고기와 같은 물건도 있기는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가장 부유한 자들만의 전유물이다. 

“아, 배고프네요. 요즘 건사료만 먹어서 몸이 허했는데 잘 됐네요.”

그렇게 30분 정도 둘은 즐겁게 일상적인 대화를 하며 떠들었다. 잘려나간 카산드라의 목은 적당히 쓰레기통에 던져져 처박혔고 내장은 깨끗하게 긁어내져 칼로 쳐내자 모아둔 통에 흘러내리듯 굴러갔다.

“자! 다 됐어! 비용은 5골드를 받아야 하지만, 너니까 특별히 3골드만 받기로 하지.”

카산드라였던 고기가 잘 포장되어 나왔다. 

“안심 4인분에 잘게 간 고기 10인분이야. 고기가 더 필요하면 언제든지 오라고.”

“감사합니다. 그럼 또 뵐게요.”

도리아 아저씨에게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온 레인은 기지개를 쭉 켰다. 어젯밤 얻은 전리품 덕분에 적어도 5일 정도는 넉넉히 맛있게 식사를 할 수 있게 되어서 기뻤다. 물론 노예시장에 팔아넘겼더라면 더 많은 돈을 얻었겠지만 어차피 키도 작고 힘도 약한 그로서는 강제로 끌고 갈 능력도 없었기에 차라리 고기로라도 만들어서 먹는 쪽이 속편했다. 이것이 이곳에서의 약자의 생존방법인 것이다.

“잘 먹을게요. 그래도 죽는 길에 선물을 남겨 주셔서 고맙네요.”

레인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옷가게에 들려 싸구려 잠옷과 속옷을 파는 것도 잊지 않았다. 고작 1골드 밖에 되진 않았지만 2골드에 신선한 고기를 5일치 얻은 것으로 만족하기로 하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집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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