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2화 (22/24)

 ########################## 22화 로레나 ########################## 

“네, 갑니다!”

 테이블위로 양꼬치가 돌아가고 가게를 가득 메운 손님들이 여기저기서 주문을 하기 시작했다.

 가게의 새로운 알바생은 작은 체구에도 불구하고 부지런히 테이블 사이사이를 돌아다니며 주문을 받고 음식을 내왔다.

 ‘참 부지런해.’

 밝게 웃는 얼굴로 주문을 받는 새로운 알바생을 바라보며 정 사장은 이번엔 제대로 뽑았다고 내심 흐뭇해했다.

 ‘근데 웬일이래? 안된다고 할 줄 알았는데.......’

 정 사장은 며칠 전 성훈과의 대화가 생각났다.

 ‘뭐, 자기가 하겠다며는 하게 둬야지, 어쩌겠어.’

 ‘정말? 그래도 돼? 웬일이래? 당장 가게 빼라고 할 줄 알았는데.’

 ‘칫, 내가 왜 그러겠어. 난 그냥 집 주인 일 뿐이고 계약과 상관없는 일은 각자가 맘대로 하는 거지.’

 ‘무슨 말을 그렇게 차갑게 해? 어쨌든 그럼 쓴다. 나중에 딴 말 하기 없기다.’

 ‘엉, 맘대로 해.’

 모니카 모녀 일 이라면 눈에 쌍심지를 켜고 달려들던 녀석이 며칠 만에 완전 다른 사람 대하듯 하고 있었다.

 ‘얼마 전 스미스 사장님 돌아가시고 무슨 심정의 변화라도 생겼나?’

 정 사장은 성훈이 요 근래 조금 무뚝뚝해 졌다고 생각했다.

 “어? 어, 조심해. 그렇게 한 번에 많이 들고 가다간 다쳐.” 

 “괜찮아요. 저 힘 좋아요. 사장님.”

 커다란 눈으로 반달을 그리며 알바생이 대답했다.

 정 사장을 아주 그냥 사르르 녹이는 눈웃음 이었다.

 “아냐, 이리 줘. 일하다 다치면 자기만 손해야.”

 정 사장은 뒤뚱뒤뚱 걸어와 알바생이 든 쟁반에서 칭다오 두 병을 뺏어 들었다.

 그런 정 사장에게 이레네가 활짝 웃고 있었다.

 ***

 “설거지 끝나고 안방으로 오세요.”

 성훈은 다른 사람 같았다.

 말 속에 돋친 가시는 없었지만, 감정 없이 딱딱하게 건네는 음성은 마른 사포처럼 모니카의 가슴을 쓸며 아프게 했다.

 “......, 네.”

 바다를 닮은 에메랄드빛 큰 눈은 소금을 담은 채 짧게 대답했다.

 ‘무슨 일 이시지?’

 이유 모를 불안한 감정이 피어나며 모니카는 요즘 성훈을 떠올려 봤다.

 성훈은 왜 안 나가냐고 다그치지 않았었다.

 모국에서 걸려온 전화로 반 강제적으로 집에 남아야 했던 모니카에겐 다행스런 일이었지만,

 성훈을 향한 미안함과 그의 태도가 주는 불편함에 힘이 들었다.

 조금만 시간이 흘러 성훈의 감정이 가라앉으면, 그때 모든 사실을 성훈에게 고백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모니카였다.

 안방? 스미스가 쓰던 안방?

 성훈이 들어가고 닫힌 안방 문을 바라보는 모니카의 얼굴이 그늘져 어두웠다.

 .......

 모니카는 일부러 안방 방문을 조금 열어 두었다.

 알 수 없는 두려움이 열려진 방문 사이로 새어 나가도록, 하지만 둘만 남겨져 있는 공허한 집안에서 방문을 열었다 한들 알아주는 사람은 없었다.

 성훈은 모니카를 보며 침대에 앉아 있었다.

 “.......”

 침묵은 따끔거리며 모니카의 몸에 쏟아졌다.

 말없이 모니카를 바라보는 성훈의 눈동자가 몇 번 흔들렸지만, 그 작은 흔들림으론 성훈의 입을 열게 할 수 없었다.

 갈등.

 ‘그냥......, 나갈까?’

 침대에서 멀리, 문 앞에 서있는 모니카는 몸을 돌리고 싶었다.

 ‘하지만, 나가봤자 집안 어디야.’

 불편함에 두려움을 품은 생각들이 비눗방울처럼 머릿속에 떠올랐다가 터져 사라졌다.

 ‘그냥 밑에 이레네를 보러 갈까?’

 “벗어.”

 “.......”

 아무 말 없이 서 있던 모니카는 자신이 무슨 말을 들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커다란 두 눈만을 껌뻑이며 성훈을 바라보던 모니카는,

 “......., 네?”

 성훈이 했던 말을 되물어야 했다.

 성훈의 눈동자가 심하게 흔들리며 주저하고 있었다.

 “옷, 옷 벗으라고. 아줌마.”

 어딘가 막힌 듯, 답답한 음성이 모니카에게 다가왔다.

 영문을 모르는 에메랄드빛 두 눈이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성훈은 고개를 숙였다.

 몸에 힘이 줬는지 이네 팔뚝에 힘줄이 돋아나며 굵은 목소리가 어둡게 방안에 깔렸다.

 “스미스랑은 사장님과 가정부 그 외엔 아무 사이도 아니었다며. 스미스가 없는 지금은 내가 사장이니까 모니카는 가정부 일을 하라고. 그러니까 벗으라고!”

  

 마치 자신에게 힘을 주듯, 성훈은 마지막 말에 음성을 높였다.

 톡, 톡,

 말 없는 둘 사이를 거실에 시계바늘 소리만이 뛰어다녔다.

 ‘어, 어떻게.......,’

 언제 가렸는지 자신의 가슴에 손을 올리고 있는 모니카였다.

 연갈색의 매끄러운 피부에 땀이 차기 시작했다.

 “왜? 난, 난.......”

 고개를 들고 자신을 바라보는 성훈의 눈빛이 모니카의 가슴에 파고들었다.

 흔들리며, 젖어있는 가슴 아픈 눈빛이었다.

 그 눈빛에 모니카의 심장이 뭔가 쨍 하고 울렸다.

 에메랄드빛 바다도 소금이 묻어왔다.

 한 발......., 또 한 발,

 모니카는 성훈 앞으로 다가왔다.

 놀라 뛰는 심장이 그녀를 붙잡으려 했지만, 모니카가 이미 셔츠를 벗어 탐스러운 상체를 세상에 보인 뒤였다.

 ***

 여자의 높은 음성이 공항 천장에 부딪혀 흩어졌다.

 깜짝 놀란 사람들이 검색대 쪽을 바라 봤지만 여자는 사람들의 시선을 느끼지 못했는지 계속 출입국 심사 직원에게 짜증을 내고 있었다.

 “이건 내가 필요해서 가져 온 거라니까요!”

 화가 난 듯 여자는 짙은 눈썹 끝을 올리며 고운 얼굴에 홍조를 띠고 있었다.

 붉은 색이 도는 풍성한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며 짙은 아이라인 화장을 한 깊은 눈으로 검색대 여직원을 노려봤다.

 ‘예쁘긴 예쁘네.’

 여자 앞에서 출입국관리직 9급 직원 홍보람은 여자의 미모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여자를 검사하던 40 넘은 남자 반장이 말까지 더듬으며 여자에게 넋이 나가자 자신이 대신해서 검사를 진행하던 중이었다.

 하지만, 여자가 이렇게 까탈스러울줄 알았으면 나서지 않았을 것이다.

 “아 글쎄, 얘도 없으신 분이 유축기가 왜 필요해요. 안에 뭐가 있으니까 검사 좀 한다니까요.”

 “뭐가 있긴 뭐가 있어요. 내 젖이 있지. 그걸 꼭 검사해야 알아욧!”

 여자의 당당한 큰소리에 처녀인 홍보람의 얼굴이 더 붉어졌다.

 “그러니까. 아이도 없으신 분이 왜 이런 걸 가지고 다니시냐니까요?”

 “젖을 빼지 못하니까 아프다고욧. 아이는 고향에 두고 왔다고 몇 번을 얘기해요.”

 “젖먹이 아이를 그냥 두고 왔다고요? 그리고 아가씨가 아이 낳은 아줌마라는 것을 누가 믿어욧?”

 여자가 자꾸 언성을 높이며 신경질을 부리자 출입국 직원도 같이 화를 냈다.

 그때,

 어머!, 헉, 우와~, 대박-.

 다채로운 소리가 공항 검색대 주위에서 들려왔다.

 홍보람도 역시 놀란 입을 다물지 못하고 얼굴을 붉힌 채 여자를 바라봤다.

 “됐죠? 이제 믿어욧?”

 홍보람과 말싸움을 하던 여자가 블라우스 넥을 밑으로 내리고 자신을 가슴을 꺼내 보이고 있었다.

 하얀색 피부에 풍만한 가슴이 붉은 블라우스에서 나와 흔들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밑으로 하얀 액체가 방울져 떨어져 붉은 옷 위로 굴러 내렸다.

 “이제 믿냐니까욧!”

 여자가 소리치자 홍보람을 서둘러 고개를 돌리며,

 “믿어요. 믿으니까 어서 좀 가려요.”

 흥분했던 여자가 그제야 가슴을 다시 옷 속에 넣었다.

 침을 꿀꺽 삼키며 바라보던 따가운 시선들이 많이 아쉬워했다.

 “이제 가도 되죠?”

 빠른 손놀림으로 자신의 물건을 검색대 위에서 챙겨 가방에 넣은 여자는 주위 사람들이 수군거림을 뒤로한 채 빠르게 심사대를 떠났다.

 몇몇 남자들을 서 있기 힘들었는지 의자를 찾았었고, 출입국 심사대 40 넘은 반장님도 자리에 않아 한동안 일어나지 못했었다.

 ***

 “로레나?”

 선글라스를 끼고 공항을 나서는 여자를 부른 건 모자를 눌러 쓴 남자였다.

 앳된 얼굴에 뿔테 안경을 쓴 키 큰 남자는 수염을 깎지 않았는지, 일부러 기르는 건지 얼굴에 어울리지 않는 수염이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장미꽃은 어디 있죠?”

 선글라스를 살짝 내려 남자를 쳐다본 로레나가 남자에게 물었다.

 남자를 설레게 하는 짙은 속눈썹에 깊은 두 눈빛 이었다.

 “검은 장미는 바다 속에 꽃피고 있겠죠.”

 “당신네들이 도와준다면 빨대는 꽂아 줄게요.”

 “그럼 갈까요?”

 알 수 없는 대화를 나눈 후 남자는 로레나의 짐을 들어 주었다.

 “그건?”

 “아니요. 이건 됐어요. 들고 갈게요.”

 로레나의 손에는 아까 공항에서 실랑이 하느라고 미처 넣지 못한 작은 유축기가 들려 있었다.

 “그렇게 위험한 거 그냥 들고 다녀도 괜찮아요?”

 남자의 심심한 물음에 선글라스 밑으로 로레나의 얼굴이 굳어졌다.

 “이게 뭔지 알아요?”

 “그럼요. 독극물은 우리도 즐겨 쓰는 건데요.”

 아무렇지도 않은 듯 남자는 로레나의 짐을 들고 앞장서 주차장 쪽으로 걸어갔다.

 “당신 이름이 뭐죠?”

 뒤에서 들리는 로레나의 질문에 남자가 고개를 옆으로 돌리며 모자를 살짝 올려 옆얼굴을 그녀에게 보였다.

 씁쓸한 미소와 함께 남자의 담담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왕이펑. 당신 가족들하곤 인연이 많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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