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0화 (20/24)

 ########################## 20화 거짓말 ########################## 

식탁으로 향하는 여름 아침이 더운 공기를 품고 낮게 가라앉아 있었다.

 계단을 내려오는 성훈은 떠나기 전과 달리 자신의 집인데도 발걸음이  낯설고 불편했다.

 ‘하......., 힘드네.’

 스미스의 장래를 위해 미국에 다녀와서는 아니었다.

 정리되지 않은 감정의 도화선들이 얽히고설켜 성훈의 가슴에 무겁게 얹혀 있었다.

 그리고 방금 전 일어날 때......,

 “엄마는 이따 먹겠대.”

 자신을 더욱 혼란스럽게 했던 이레네가 뜨거운 접시를 성훈의 자리에 놓으며 말을 걸었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하얀 접시에 뜨거운 스튜가 김을 내며 놓여 있었고, 이름 모를 샐러드와 바게트 바구니에 놓인 빵들이 식탁 중앙에서 성훈을 기다리고 있었다.

 스미스는 죽었고, 모니카는 보이지 않았으며, 자신을 더욱 혼란스럽게 만든 그녀의 딸이 성훈의 앞에 앉아 식사를 하고 있었다.

 “호, 호~”

 방금 전까지 성훈의 몸에 붙어 있던 도톰한 작은 입술이 스튜가 든 숟가락 위로 바람을 불었다.

 작고 탐스러운 입술이었다.

 그 입술을 잠시 알 수 없는 눈으로  바라보던 성훈은,

 “아까 왜 그랬어?”

 가슴 속 엉켜있던 도화선 한 쪽에 불을 붙였다.

 뜨거운 스튜가 이레네의 작은 입 속으로 들어가 입 안을 돌아다녔다.

 “......, 음, 맛있다.”

 이레네는 숟가락을 스튜 깊숙이 넣었다 꺼내 다시 바람을 불었다.

 “오빠도 식기 전에 먹어. 맛있어.”

 뜨거운 스튜가 다시 이레네의 작은 입 속으로 들어갔다.

 표정은 말이 없었고, 입안은 음식으로 가득 채워졌다.

 “.......”

 성훈에게 침묵은 아무 맛이 없었다.

 이레네의 흔들리는 눈빛을 붙잡고,

 “앞으론 그러지 마.”

 성훈이 담담히 자신의 목소리를 전했다.

 숟가락을 스튜 깊숙이 다시 넣은 이레네는 고개를 숙이고 접시를 바라봤다.

 성훈은 더 이상 그녀의 눈빛을 붙잡을 수 없었다.

 식탁위로 두 사람의 말 없는 식사가 시작되었다.

 딱딱한 바게트 빵을 찢어 스튜에 담근 성훈이 휙, 휙 그 속에 빵을 저었다.

 스튜에 담긴 여러 재료들이 수면위로 올라와 어지럽게 다시 섞여졌다.

 “떠나겠대.”

 이레네의 음성이 식탁위로 떠올랐다 가라앉았다.

 “.......”

 스튜에 적신 빵을 입으로 가져가는 성훈이었다.

 “짐도 다 싸놨어.”

 성훈은 포크를 집어 샐러드를 찍었다.

 “집도 알아 봤으니까 연락 오면 바로 떠날 거야.”

 아삭, 아삭 소리를 내며 야채들이 성훈의 입 속에서 부셔졌다.

 “이대로 헤어지면......., 다시는 못 보니까......., 나, 그게 싫어서.......”

 부셔지는 야채 사이로 이레네의 작은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상처가 남은 두툼한 손을 들어 성훈은 컵을 들어 물을 마셨다.

 꿀꺽꿀꺽 넘어가는 목구멍 너머로 막혀있던 음식들이 뚫려졌다.

 “......, 못 보내.”

 이레네의 물기 찬 큰 눈이 성훈을 바라봤다.

 “이대론 아무도 못 보내.”

 굳은 성훈의 얼굴이 무섭게 이레네의 두 눈에 들어와 박혔다.

 ***

 모니카는 조용히 움직였다.

 “학원 다녀올게.”

 식사를 마치고 방에 들어왔던 이레네가 조금 전에 가방을 들고 방을 나갔다.

 숨죽인 중환자실마냥 조용했던 방안에 홀로 남아있던 모니카는 밖에

 서 한동안 아무 소리가 없자 몸을 움직였다.

 ‘지금쯤, 올라가셨겠지.’

 식탁을 치우기 위해 방문을 돌리는 모니카의 손이 조심스러웠다.

 성훈은......, 식탁에 그대로 앉아 있었다.

 식사를 마친 뒤에도 밀랍인형처럼 자리에 그대로 앉아 있던 성훈이었다.

 “조금 이따 치울게요.”

 모니카는 주저하며 말하고 다시 돌아서려 했다.

 “다 먹었어요. 치워요.”

 고개가 돌려지지 않는 인형처럼 정 자세로 앉아 얘기하는 목소리가 낮고 단단했다.

 “.......”

 식탁은 소리 없이 치워졌다.

 길고 고운 손이 하얀 접시를 만질 때마다 하얀 식탁보는 잠시 흔들렸지만, 아무 소리도 내지 못했다.

 “스미스는.......,”

 조심스럽게 움직이던 모니카의 손이 멈춰졌다.

 “정보를 빼돌리려 했대요. 자세히는 모르지만, 미국 에너지부에서 발견한 자원 정보를 우리나라와 시추 계약을 맺으려 하는 척 하면서 중국에 팔아넘기려고 했대요. 장미 씨가, 아니 미국 CIA가 정보를 입수하고 감시하려 나왔었고, 병원에 입원하고 장미 씨가 같이 있자 중국에서 스미스가 마음을 바꾼 것으로 판단하고 거래 내용을 숨기기 위해 병원에 침투해 살해한 거래요.”

 모니카가 침을 삼킨 듯 기다란 목에 목젖이 잠깐 움직였다.

 “밑에 가게에서 일하던 왕이펑은 스미스를 감시하기 위한 중국 측 스파이였고, 장미 씨도 스미스를 감시하기 위해 내게 접근했던 사람이었어요.”

 모니카가 주방으로 가려고 손에 잡은 접시를 들었다.

 “이게 내가 미국에서 들은 스미스에 대한 전부에요.”

 덥석.

 성훈의 손이 모니카의 손목을 잡았다.

 쨍그랑.

 손에서 흔들리던 접시가 떨어져 소리를 냈다.

 “이제 모니카가 얘기할 차례에요.” 

 성훈을 바라보는 파란 눈동자가 불안하게 흔들렸다.

 성훈은 더욱 강하게 힘을 주어 모니카를 자신에게 끌어 당겼다.

 “스미스랑 무슨 사이였어.”

 모니카는 시선을 돌려 다른 곳을 바라봤다.

 성훈이 잡은 손목이 아팠지만 움직이지 못했다.

 “말해, 둘이 무슨 사이였어!”

 젊은 남자의 고함 소리가 가까이서 울렸다.

 아래 입술을 깨물고 고개를 숙인 모니카가 묵묵히 그 소리를 듣고 있었다.

 “......., 보셨잖아요. 어떤 사이 인지.”

 조용한 모니카의 목소리가 처량하게 흩어졌다.

 모니카를 잡은 성훈의 손이 부르르 떨었다.

 쉴 새 없이 흔들리는 검은색 눈동자가 여러 다른 감정을 품으며 수시로 바뀌어 갔다.

 “그럼 나와는.......”

 “그만하세욧!”

 모니카는 힘을 줘 성훈에게서 잡힌 손을 빼냈다.

 “저는 가정부고 스미스는 사장님 이였어요. 나는 스미스에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어요.”

 성훈의 올려보는 에메랄드 두 눈이 물속에 잠겨 있었다.

 “도련님하고도 도련님과 가정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에요.”

 성훈을 지나쳐 나가는 모니카였다.

 “난 그렇지 않았어!”

 “.......”

 꽝.

 뒤에서 소리치는 성훈을 뒤로하고 모니카는 현관문을 나섰다.

 샘솟듯 솟아난 푸른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 바닥에 떨어졌다.

 ‘나도 그렇지 않았어요.’

 오전의 여름 하늘은 너무나 파랬다.

 ‘모니카, 많이 놀랐지? 얼마나 놀랬을까........’

 미국에서 걸려온 사모님 전화에서 성훈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었다.

 ‘한국에 간 지 얼마 안 돼서 이런 일이 터져서 내가 다 미안해.’

 사모님은 오히려 모니카에게 미안해했다.

 ‘그래도 빨리 마음 다잡고 우리 성훈이 한국 돌아가면 잘 좀 챙겨줘. 애도 많이 놀라서 정신이 없을 거야.’

 사모님은 모니카가 계속 집에서 일해 줬으면 하고 바랬다.

 성훈이 모니카가 집안일을 아주 잘해줘 자신이 편해졌다고 말했다 했다.

 거짓말이다.

 그의 거짓말에 가슴이 찢어지는 모니카가 눈물을 숨기며 거리로 나섰다.

 ***

 현관문의 손잡이를 돌리기가 두려웠다.

 자신이 익숙한 세계와 다른 세계가 되어버린 그 곳이 집이라 이레네는 문 앞에서 잠시 망설였다.

 ‘아무 일 없었겠지?........, 제발.’

 아침 식탁에서 다른 사람 같던 성훈이 떠올랐다.

 ‘그래도, 오빠가 엄마의 고집을 멈춰줬으면.......’

 집을 나가기가, 그래서 성훈과 떨어져 남남이 되기가 싫었던 이레네는 무서운 얼굴로 ‘못 보내.’ 라고 했던 성훈의 말을 기대했다.

 그래서 학원 수료식에서 빠르게 돌아 왔지만, 그래도 현관 앞에서 망설여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하-”

 깊은 심호흡을 한번하고 이레네는 현관문을 열었다.

 ‘아무도 없나?’

 톡, 톡, 톡....

 현관을 들어선 이레네를 반긴 건 거실에 걸린 시계에서 나온 시계바늘 소리뿐이었다.

 조용히 방문을 열고 방안으로 들어선 이레네는,

 “아~ 이게 뭐야.”

 방안 가득 헝클어져 있는 옷가지들과 뒤집힌 여행 가방들을 보고 눈을 크게 떴다.

 누군가 물건을 뒤진 듯 쏟아진 옷가지들과 가방들이 방 안 가득 팽개쳐져 있었다.

 가구 서랍이나 거실 물품들은 가지런히 정돈돼 있는 것을 보니 도둑이 든 것은 아니었다.

 ‘누구지? 엄마가?......, 근데 왜 이 상태로......?’

 이레네는 방을 나와 안방, 세탁실, 베란다를 둘러보았다.

 모니카는 없었다.

 ‘설마 위에?’

 이렇게 이른 시간에 갑자기 집에 들어온 건 처음이었다.

 계단을 올라가는 이레네의 발걸음이 뒤꿈치를 들고 조심스러웠다.

 ‘아닐 거야.......’

 엄마가 성훈과 둘이 있을 생각을 하면 어딘지 자꾸 불안했던 이레네였다.

 코너를 돌 때, 귀를 기울여 무슨 소리가 들리나 집중했다.

 두근, 두근.

 자신의 심장 소리만 들릴 뿐, 위층에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조금은 마음이 편해진 이레네가 평소처럼 계단을 올랐다.

 위층엔,

 “오빠?”

 소파에 성훈이 누워 있었다.

 낮잠을 자는 것인지 아니면 무슨 깊은 생각을 하고 있는지, 성훈은 이레네의 부름에 꼼짝도 하지 않았다.

 “오빠...”

 이레네는 방금 전보다 조금 작은 소리로 성훈을 부르며 성훈을 살펴보기 위해 다가갔다.

 죽은 듯 소파에 널브러져 누워있던 성훈이 조용히 눈만 떴다.

 “오빠, 자?”

 “아니.”

 성훈은 사막의 오랜 여행자처럼 갈라진 목소리로 짧게 대답했다.

 “엄마는?”

 “......, 몰라.”

 “.......”

 성훈은 멍하니 눈만 뜬 채 이레네를 바라보지도 않고 누워만 있었다.

 평소와는 다른 성훈의 모습에 이레네는 왠지 불안했다.

 “그, 그럼 쉬어.”

 몸을 돌리려는 이레네를 성훈의 목소리가 잡았다.

 “이레네,”

 “어?”

 자신을 부르는 조용한 소리에 이레네가 성훈을 쳐다봤다.

 “난......, 보내기 싫어,”

 아침에 식탁에서 자신에게 했던 소리였다.

 “이대로......, 괜찮은 거지?”

 무슨 소린지 이해는 잘 가지 않았지만 이레네는 성훈의 표정이 슬퍼 보여서 그에게 가까이 다가가 몸을  숙였다.

 “으응......, 괜찮아.”

 이레네가 대답해 줬다.

 “.......”

 성훈은 이레네의 대답을 듣고도 소파에 그 상태 그대로 누워만 있었다.

 잠시 그 모습을 쳐다보던 이레네는 성훈이 말이 없자 조용히 자리를 비켜주려 몸을 돌렸다.

 “어머!”

 성훈의 손에 당겨져 단단한 성훈의 몸 위로 겹쳐진 이레네의 늦은 비명이었다.

 젊은 수컷의 향기가 이레네의 전신을 뒤늦게 파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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