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화 어두운 밤 ##########################
정 사장은 이게 무슨 난리인가 어리둥절했다.
낮에 출장을 갔던 성훈이 모델이 사고를 당해 촬영이 취소됐다며 돌아온 시각이 늦은 저녁이었다.
밥이나 먹고 올라가라는 자신의 말에 ‘모니카가 해 준 밥이 더 맛있어요.’ 하고 웃으며 올라간 성훈이었다.
그리곤 단체 손님이 들이닥쳐 정신없이 분주했다.
빨강색 승용차 한 대가 가게 앞에 멈춰 서자 ‘또 손님인가?’ 하고 봤더니 예전에 성훈을 찾아왔던 몸매 좋은 아가씨와 덩치 좋은 흑인 남자가 급히 차에서 내려 뛰어 올라갔다.
‘성훈이 집에 있는 걸 어떻게 알았지? 그것보다 남의 집에 가기엔 너무 늦은 시간 아닌가?’ 이상하게 생각하며 알바생 없이 테이블 여기저기를 바쁘게 돌아 다녔다.
가지볶음과 칭다오 두병을 창가 쪽 테이블에 내려놨을 때 사이렌 소리가 울리며 골목으로 구급차 한 대가 들어왔었다.
놀랍게도 구급차는 가게 앞에 멈춰 섰다.
“여기 가정집으로 올라가는 문이 어디에요?”
차에서 내린 구급대원이 급하게 정 사장에게 질문을 했고, 그제야 정 사장은 성훈의 집에 무슨 일이 생겼다는 것을 직감했다.
곧 바로 두 대의 경찰차가 도착했고, 무슨 일인가 일어났다는 것을 알아챈 손님들이 관심을 가질 때 쯤 피투성이의 스미스가 구급대원에 의해 옮겨져 차에 올랐다.
“외국인 아냐?”
“강도 들었나 봐.”
가게 안, 수군대는 소리가 웅성거릴 때 정 사장은 이 난리의 궁금증을 해소해줄 성훈이 내려오는 것을 보았다.
하지만 그는 어떤 궁금증도 묻지 못했다.
수갑 찬 성훈은 경찰에 끌려 경찰차에 바로 몸이 실려졌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를 표정의 멍한 모니카가 그 뒤에 내려와 다른 차에 오르려 했다.
“모니카?”
모니카는 수갑을 차고 있지 않았다.
“무슨 일이에요?”
절망에 갇힌 멍한 눈으로 모니카가 그를 보았다.
“정 사장님... 이레네, 이레네한테 아무 일도 없었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좀 전해 주세요.”
말을 하며 모니카는 눈물을 흘렸다.
모두가 떠나자 가게 안, 손님들은 다시 자신들의 얘기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이게 무슨 난리야.......’
싱숭생숭한 마음에 어떻게 장사를 했는지 모를 시간이 지나가자 가게 밖을 지나치는 이레네가 보였다.
“이레네!”
급하게 뛰어간 정 사장은 이레네를 불렀다.
“네?”
순진한 얼굴의 이레네가 큰 눈으로 정 사장을 바라봤다.
***
“조나단, 상부에선 뭐래?”
“위에서 하는 말이야 만날 똑같지, 뭐. 일이 이지경이 될 때까지 뭐했냐, 현장 요원이 그 정도 판단도 못하냐. 뒤탈 없게 조용히 처리해라. 뭐, 다 지네들 피해 없게 일 처리하라는 얘기지.”
“역시... 데스크 오더러 들이란. 우리 요청도 매뉴얼에 없다고 거절해 놓고 매뉴얼에 없던 문제가 발생하면 꼭 우리한테 책임을 뒤집어씌울라고 그러지.”
“뭐, 하루 이틀이야. 그건 그렇고 우리 로즈플라워는 이제 어떻게 할 생각이지?”
조나단의 질문에 장미는 잠시 턱을 당기고 아래를 바라봤다.
하얀색 병원 복도에는 간호사와 방문객들이 지나다니고 있었다.
“우리 정체도 다 밝혀졌을 테니 이젠 어쩔 수 없네. 스미스는 본국으로 압송하고 한국정부에 협조요청 정식으로 해서 그 왕이펑이란 남자를 찾는데 주력해야겠어.”
조나단은 짙은 검은색 피부 때문에 유독 희어 보이는 두 눈을 밝히며 키 큰 마른 남자를 떠올렸다.
“근데 진짜 어떻게 알고 숨어버린 거지? 우리가 덮치려고 할 때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사라졌잖아. 누가 위협이라도 했나?”
“그러게, 현장 요원이라곤 우리 둘 밖에 안 왔으니 끄나풀이 있다면 워싱턴에 있을 텐데... 갑자기 이렇게 숨어 버린 게 나도 신기해. 혹시 조나단 네가?”
눈을 치켜뜨며 조나단을 노려보는 장미였다.
“무슨 소리야. 난 너랑 쭈욱 같이 있었잖아.”
눈이 커다래지며 두 손을 쫙 펴서 들고 흔드는 조난단이었다.
갑자기 장난기가 발동한 장미가 씨익 웃었다.
“그럼 이놈이?”
“헉.”
조나단의 다리사이 묵직한 몽둥이를 꽉 잡는 장미였다.
“그때 이놈이 너무 날뛰어서 우리가 늦을 뻔 했잖아.”
“그건 내 맘대로 되는 게 아니야.”
놀란 조나단이 얼떨결에 핑계를 댔다.
“어머!”
지나가던 간호사가 둘의 행동을 보고 놀랐다.
간호사를 의식하고 손을 뗀 장미가 살짝 병실 안을 바라봤다.
얼굴이 팅팅 부은 스미스가 한 손에 침대와 연결된 수갑을 차고 잠들어 있었다.
“안되겠어. 취조해 봐야지.”
“뭐? 여기서?”
놀란 조나단이 묻자
“아니, 화장실에서.”
조나단을 잡고 남몰래 화장실로 들어가는 장미였다.
.......
“여기 새벽에 입원한 스미스 환자 몇 호실에 있어요?”
1층 안내 데스크 앞에서 누가 스미스의 병실을 물었다.
재빠른 손으로 컴퓨터를 두들긴 안내원이
“813호요.”
키가 큰 그를 올려다보며 대답했다.
데스크를 떠나며 마른 남자가 검은색 모자를 깊이 눌러써 붉은색 머리를 감췄다.
***
엄마는 침대에 누워 소리 없이 울기만 했다.
밤을 꼴딱 새고 모니카와 함께 귀가한 이레네는 어떠한 설명도 엄마에게 들을 수 없었다.
‘오빠도 아무 말을 해주지 않았어.’
성훈은 조사할 게 남았다고 유치장에서 밤을 보내야 한다고 했다.
‘정 사장님 말대로라면 스미스 아저씨는 병원에 실려 갔다는데... 누군가에게 맞은 듯 얼굴이 말이 아니랬어.’
이레네는 성훈이 스미스를 때렸다는 사실을 눈치 채고 있었다.
‘그리고, 그 일은 아마 엄마 때문에 일어났을 거야.......’
침대에서 이불에 얼굴을 파묻고 괴로워하는 모니카였기에 이레네는 그녀에게 어떠한 것도 물을 수 없었다.
‘엄마랑 오빠는 무슨 관계지? 그리고 스미스 아저씨랑은......, 언제부터?’
답을 알 수 없는 질문들이 이레네의 작은 머릿속을 맴돌며 작은 가슴을 아프게 콕콕 찔렀다.
주인 없는 집에서 남겨진 가정부와 그녀의 딸이 각자의 감정에 빠져 괴로워했다.
어느새 창밖으로 붉은 빛이 넘쳐 들어왔다.
띵동-
울다가 멍하니 노을에 젖어있던 이레네는 울리는 초인종 소리에 뒤늦게 놀라 현관으로 달려갔다.
“누... 누구세요?”
왠지 겁이 났다.
“이레네? 나야, 일층 가게 사장.”
“정 사장님?”
이레네는 경찰이 아니라는 사실에 안도하며 문을 열었다.
정 사장이 쟁반에 그릇을 받쳐 들고 서 있었다.
“밥은 먹었어? 얼굴이 반쪽이네...”
이레네는 정 사장의 몇 마디에 눈물이 그렁그렁 해졌다.
“이게 무슨 난리 라냐. 그래, 모니카는 괜찮고?”
조용히 고개를 젓는 이레네였다.
씁쓸한 표정의 정 사장이 쟁반을 건넸다.
“내 그럴 줄 알고 볶음밥 좀 가져왔어. 입맛 없더라도 모니카랑 같이 좀 먹어. 그러다 몸 상한다.”
이레네는 아무 대답 없이 쟁반을 받았다.
하루 새 얼굴이 반쪽 난 이레네를 안쓰럽게 바라보던 정 사장은 몸을 돌려 계단을 내려갔다.
“고맙습니다.”
이레네의 대답이 물에 젖어 무겁게 그 뒤로 떨어졌다.
식탁에 쟁반을 놓고 방문을 여니 수화기를 들고 있는 모니카가 보였다.
“엄마, 밥 먹어. 아무것도 안 먹었잖아...”
에메랄드빛 슬픈 눈으로 이레네를 바라보던 모니카가 열릴 것 같지 않던 입을 간신히 열었다.
“괜찮아...”
“그래도 먹어. 밑에 정 사장님이 가져다 주셨어. 먹어야 된데.”
“......., 알았어. 전화 한 통화만 하고 나갈게.”
이레네의 걱정 가득한 눈빛을 받으며 모니카는 차마 끝까지 거절하지 못하고 대답했다.
“Hola.”
닫힌 방문 밖으로 본국으로 전화하는 모니카의 잠긴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엄마 표정이 많이 안 좋아...’
모니카를 걱정하는 이레네의 표정 또한 굳어갔다.
밤이 소리 없이 굳은 마음속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밤이 되어도 불이 켜지지 않던 성훈의 집.
그날 밤, 성훈은 집에 돌아왔고 아저씨는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