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화 (6/24)

 ########################## 6화 전화 ########################## 

“새댁 아직도 장 봐? 무슨 장을 그렇게 오래 봐?”

 시식코너를 지날 때 아주머니가 말을 걸었다.

 의아한 표정의 인심 좋아 보이는 아주머니는 외국인 새댁의 긴 장보기를 안쓰러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제가 아직 잘 몰라서요.”

 긴 속눈썹으로 반달을 그리며 대답하는 외국인 새댁은 상냥히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그래도 그렇지, 장 보다가 하루 다 가겠어.”

 걱정스러운 듯 혀를 차는 아주머니가 모니카는 싫지 않았다.

 “이렇게 아주머니 자주 보고 친해지니까 전 좋은데요?”

 도톰한 입술 안에서 붙임성 있는 대답이 흘러 나왔다.

 하지만,

 모니카는 네 시간째 장을 보고 있었다.

 신선한 우유가 시간이 흘러 상하듯이,

 같은 자리를 맴도는 게 몇 번째인지도 모를 정도로 걷다보니 모니카는 이 큰 마트도 지겨웠다.

 ‘하지만, 집에서 스미스와 단 둘이 있긴 싫어...’

 모니카는 스미스와 단 둘이 있게 되는 날이면 도망치듯 집을 나섰다.

 이런 날이면, 아는 사람도 갈 곳도 없는 모니카에게 이 큰 도시가 독방처럼 답답하게 느껴졌다.

 모니카에게 마트는 스미스로부터 자신을 지키는 장소이자 자신을 가두는 감옥 같았다.

 ‘이건 뭐지?’

 예쁘게 생긴 병에 든 상품을 손에 들고 잘 읽지도 못하는 한글이 써진 뒷면 라벨을 바라봤다.

 ‘아까 봤던 거네...’

 상품을 정면이 보이게 가지런히 돌려놓는 모니카의 손길이 어두웠다.

 무거운 걸음으로 카트를 밀던 모니카는 신선코너 앞에서 멈춰 서서 손을 내밀까 말까 잠시 주저했다.

 ‘... 청국장?’

 매일같이 남미 음식과 서양 식단만 내 놓는 것이 성훈한테 미안해서 며칠 전 모니카는 된장찌개를 끓이려 했었다.

 ‘이거? 이건 청국장인데?’

 조리법을 묻는 모니카에게 시식코너 아주머니는 이렇게 대답했다.

 ‘이것도 맛있어. 뚝배기에 두부하고 파 좀 쓸어놓고 끓이기만 하면 되. 거기에 청량고추 조금 잘라 넣어도 되고.’

 맛있다는 말에 생각 없이 덥석 짚어온 것이 화근이었다.

 스미스는 도망치듯 밖으로 나갔고 모니카는 요리하는 내내 멀미하듯 어지럽고 미식 거렸다.

 호기심에 식탁에 앉은 이레네는 창백해진 얼굴에 숟가락을 부르르 떤 뒤 다신 손을 대지 못했다.

 성훈은... 아무 말이 없었다.

 매번 모니카가 해 주는 음식에 맛있다. 음식점 하자. 천상의 맛이다. 등등 말이 많던 성훈은 조용했다.

 ‘우리 아들? 청국장이라면 사족을 못 쓰지. 상한 장으로 끓여줘도 겐 좋다고 다 먹을 걸?’

 나중에 주인집 사장님이 통화로 알려 주셨다.

 ‘청국장 너무 냄새나서 싫어해요. 다음부턴 하지 마요.’

 어지러워 소파에 기대있던 모니카에게 성훈은 그렇게 말을 하고 올라갔다.

 뚝배기는 모두 비어 있었다.

 주저하던 손을 들어 모니카는 청국장을 카트에 담았다.

 ‘이번엔, 고추도 좀 사가야겠다...’

 카트가 방향을 바꿔 야채 코너로 향했다.

 카트를 미는 모니카의 눈빛이 웃는 듯 보였다.

 삐리릭-, 삐리릭-

 “여보세요?”

 걸려온 핸드폰을 확인하고 모니카가 얼른 전화를 받았다.

 “지금, 마트에요.”

 “아니에요······. 네? 네, 그럼 그럴게요.”

 멈춰있던 카트가 다시 이동했다.

 모니카는 발걸음이 가벼워 졌다.

 전화, 이렇게 긴 시간 장을 보는 모니카의 또 다른 이유였다.

 ***

 “빵 먹고 가자.”

 “또?”

 “싫음 먼저 가. 누가 같이 가재?”

 자신의 가슴팍 즈음에서 휙 돌아 사라지는 이레네를 보며 왕이펑은 기가 차 답답했다.

 ‘저 빵순이.’

 이레네는 빵을 좋아했다.

 그것도 크림이 든 단팥빵을 좋아했다.

 “어제는 내가 샀으니까 오늘은 네가 사.”

 빵을 두 손으로 잡고 밑에서 고개를 들어 왕이펑을 자신만만히 바라보는 이레네다.

 ‘어제도 내가 샀는데...’

 “네가 먹자 했잖아.”

 뭔가 억울한 왕이펑이었다.

 “그래? 그럼 내껀 내가 살게.”

 거침없는 이레네였다.

 “아냐, 됐어. 두 개 얼마에요?”

 힘없는 목소리의 왕이펑이 급하게 지갑을 꺼냈다.

 푹-,

 계산도 하기 전에 봉지를 찢으며 밖으로 몸을 돌리는 이레네였다.

 부글부글 왕이펑의 가슴에서 기름 끓는 소리가 나는 듯 했다.

 “덥잖아. 안에서 먹고 가자.”

 “싫어.”

 작은 입으로 빵을 한 입 베어 물며 빵집 앞에 서있는 이레네였다.

 헉-

 빵 봉지를 찢으며 내려 보다 왕이펑은 큰 눈을 뒤집어 자신을 노려보는 이레네를 봤다.

 “또, 왜!”

 “야, 멸치. 너 아까 누나한테 너라고 했지?”

 ‘내가 멸치면 넌 아메바냐? 고개 들면 보이지도 않는 게...’

 왕이펑의 말할 수 없는 비밀이었다.

 “내가 언제...”

 “아까 가게에서 ‘네가 먹자 했잖아’라고 했어 안했어. 너 자꾸 누나한테 까불면 혼난다.”

 도톰한 핑크색 작은 입술에 하얀 크림을 묻힌 누나가 왕이펑 가슴팍에서 올려보며 으름장을 놨다.

 ‘으... 요걸 한 대 쥐어박을 수도 없고...’

 “빵 샀으니까 오늘만 누나가 한 번 봐준다.”

 왕이펑의 속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앙’ 하고 빵을 다시 베어 무는 이레네였다.

 맛있는지 커다란 눈이 휘어지며 좋아 죽는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왕이펑의 눈빛도 같이 웃는다.

 “근데, 스미스 사장님은 오늘도 집에 있어?”

 “몰라. 관심 없어.”

 “어제도 집에 계셨잖아. 무슨 일을 하시길례 그렇게 출 퇴근이 자유로워?”

 “음... 저번에 미국 공무원이라고 들었는데 여기 와서는 모르겠네. 뭐, 그만 뒀다는 말 못 들었으니까 아직 하고 있겠지.”

 ‘앙’, 다시 한입 베어 무는 이레네였다.

 “너랑은 안 친한가봐?”

 갑자기 빵을 먹던 이레네의 동작이 정지했다.

 회색빛의 냉기가 이레네로부터 흘러 나왔다.

 슬금슬금 가방으로 손이 가는 이레네의 손을 보며 왕이펑은 볼에 땀이 흘렀다.

 “너~어?”

 “아, 알바 늦었다. 먼저 간다.”

 후다닥 뛰어가는 왕이펑이었다.

 ‘언제 멸치 똥 빠지게 맞아봐야 정신을 차릴 텐데...’

 앙-,

 도망가는 왕이펑의 뒷모습을 보며 이레네는 거칠게 빵을 베어 물었다.

 초여름 빵집 앞에 서서 이레네는 남을 빵을 마저 야금야금 먹었다.

 ‘올 때가 됐는데...’

 역에서 내려 얼마 안 되는 길을 항상 느리게 걷는 이레네였다.

 왔던 길을 돌아보며 이레네는 핸드폰을 꺼내 만지작거렸다.

 ***

 띡똑-, 띡똑-

 ‘오빠 우리 언제 봐?’

 ‘요즘 연락이 없네?’

 ‘야 죽었냐?’

 ‘술 먹자. 나와.’

 촬영을 마치고 스튜디오를 나오는 성훈에게 문자가 밀린 숙제처럼 쏟아졌다.

 ‘지금 죽어서 천국에 있다.’

 ‘당신의 간을 사랑해 주세요. - 금주 홍보대사 최성훈.’

 몇 개의 문자에만 빠르게 답을 하고 성훈은 차에 올랐다.

 생에 처음으로 집, 촬영, 집, 촬영을 오가며 바른생활을 하고 있는 성훈이었다.

 지금도 시동을 거는 성훈의 손놀림이 급했다.

 막 결혼한 새신랑처럼 집으로 향하는 길이 설레는 요즘이었다.

 성훈은 핸드폰으로 어딘가 전화를 걸었다.

 수화기 너머로 듣고 싶던 음성이 들려왔다.

 “모니카? 어디에요?”

 핸드폰으로 질문 하며 성훈은 엑셀을 밟은 발에 힘을 주었다.

 .......

 “오늘도 일찍 끝나셨나 봐요?”

 바퀴달린 빨간 장가방을 들고 성훈을 기다리던 모니카가 차에 올랐다.

 모니카가 옆 자리에 올라 머리를 매만지자, 성훈은 잘 익은 남미의 과일 향이 농염하게 자신에게 몰아치는 듯 느꼈다.

 “그러게요. 요즘 일이 별로 없네요. 헤헤.”

 그 향기에 약간 바보가 된 듯 성훈이 헤헤 거리며 대답했다.

 “그럼 어떻게 해요... 저 이제 정 사장님 양꼬치 집에서 일해야 되요?”

 모니카가 미간을 모으며 장난스레 질문했다.

 “아니요, 그 전에 건물 팔고 꼬치집 만 문 닫게 할 겁니다.”

 성훈 역시지지 않고 대답했다.

 “호호, 도련님 말을 참 잘해요. 여자 많이 만나보셨죠?”

 “아니요, 엄마 말고 모니카가 처음인데요?”

 “에이, 거짓말.”

 ‘진짜에요. 사랑한 여자가...’

 “헤헤, 티 나요?”

 “예, 아주 많~이.”

 모니카의 작은 입술이 삐죽 나왔다.

 ‘내가 왜 실망하지?’

 문득 든 당혹스런 생각에 모니카는 창밖으로 시선을 급히 돌렸다.

 자신의 감정을 모른 체 차는 막힘없이 집으로 향했다.

 .......

 “어? 저기 이레네 있네요?”

 이상하리만치 집에 오는 길에 이레네와 자주 마주치는 성훈이었다.

 모니카는 앞에서 두 팔을 활짝 흔드는 이네레를 발견하고 활짝 웃었다.

 “맞네요, 우리 이레네네요.”

 달달한 모니카의 목소리에,

 두근, 두근

 ‘...... 우리... 라고 했다.’

 지 혼자 상상하고 지 혼자 설레는 성훈이었다.

 폴짝폴짝 토끼처럼 다가와 뒷문을 열고 들어온 이레네는

 “둘이 어떻게 같이 와요? 언제 만났어요? 무슨 얘기 했어요? 가서 뭐 할 거예요?”

 종알종알 쉬지 않고 말을 건다.

 물을 때마다 눈동자가 여기저기 흔들리는 게 겉과 달리 속으로 살짝 긴장하고 겁이 나는 듯 보였다.

 돌아오는 대답과 분위기를 판단하며,

 ‘다행이야. 둘 사이엔 아무 일 없었어...’

 괜히 안도하는 모니카였다.

 요즘, 성훈과 모니카가 같이 있는 모습을 보면 언제 부턴가 불안해 지는 이레네였다.

 이유는 이레네도 아직 알지 못했다.

 길지 않은 길이였기에 차는 곧 집 앞에 멈춰 섰다.

 삐리릭-, 삐리릭-

 안전벨트를 푸는 모니카의 가방에서 핸드폰이 울렸다.

 고운 손으로 핸드폰을 꺼내 본 모니카의 손이 미세하게 떨리고 에메랄드빛 두 눈이 더욱 커졌다.

 “모예요? 전화 온 거 아니에요?”

 “아뇨, 잘못 걸린 전환가 봐요.”

 급히 핸드폰을 덮는 모니카의 손길이 빨랐다.

 “내려요. 우리.”

 차 문을 열고 내리는 모니카의 행동이 도망치듯 거칠었다.

 걸려온 전화는 몇 번을 더 울다 조용해 졌다.

 화면에 떠 있던 번호가 다시 사라졌다.

 058-002-XXXX-XXX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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