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화 스미스 ##########################
이레네의 심장이 콩당콩당 뛰고 있었다.
상기된 하얀 두 뺨에 은색 솜털이 스르르 일어났다.
굳은 눈으로 땅만 바라보며 걷는 이레네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따닥, 따닥, 따닥-
뛰어가듯 빠른 걸음으로 걷는 이레네의 두 손이 자주색 가방끈을 아프도록 꽉 잡았다.
‘아직도 쫓아오고 있어...’
노골적으로 자신을 쳐다보는 시선을 느끼며 이레네는 몸을 떨었다.
처음 남자를 발견한 때는 버스 안에서였다.
멀대같이 말라 키만 큰 빨간 머리의 남자가 뿔테 안경 너머로 흘깃흘깃 자신을 쳐다보았다.
낯선 타국 땅에서 느끼는 이런 시선에 이레네는 겁이 났다.
그런데 버스를 내려서도, 지하철역 에서도, 지하철 안에서도 빨간 머리 남자의 시선은 자신을 줄 곳 따라왔다.
그리고 점차 노골적으로 자신을 바라보았다.
자국을 떠나 낯선 곳에 온 어린 여자 아이의 긴장감이 극도로 높아졌다.
타닥, 타닥, 타닥-
뒤에서 빠른 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그 남자다.
이레네의 하얀 얼굴에 핏기가 사라지며 더욱 창백해졌다.
부들부들 떨리는 어깨가 몸서리치며 커져갔다.
“잠시 만요.”
빨간 머리 남자가 긴 팔을 쭉 뻗으며 이레네를 가로 막았다.
순간 얼음이 되며 이레네는 꽉 주먹 쥔 손을 가슴에 모았다.
핏기 없이 하얘진 작은 입술이 아무 소리도 내지 못하며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또 공항에서와 같은 일이... 엄마도, 오빠도 없는데...’
그렁그렁 맺혀있던 눈물이 떨어질 듯 차올랐다.
“같은 학원 다녀요.”
“저도 OOO검정고시학원 다니고 학원에서 나오는 거 봤어요.”
이레네가 겁에 질린 눈으로 남자를 이제야 올려본다.
“뒤따라온 건 아니고 제가 가는 방향과 계속 겹친 겁니다. 저도 급한 일이 있어서 급한데 그쪽도 너무 빨리 걸으니까 뒤따르게 된 거고, 그냥 무시하려 했는데 학원에서 다시 보면 또 나 이상하게 볼 거 같아서 쪽팔린 데도 말 거는 거예요.”
숨도 안 쉬고 얘기하던 남자가 이제야 숨을 쉬며 헉헉된다.
그제야 이레네가 남자를 똑바로 쳐다본다.
빨간 머리가 특이했지 착하고 순하게 생긴 마른 얼굴이었다.
급히 쫒아오느냐 힘들었는지 남자의 상기된 뺨 옆으로 땀이 흘렀다.
‘학원에서...? 그땐 저런 빨간 머리 못 봤는데...’
하지만 그땐 자신이 너무 긴장해 있어서 못 봤을 수도 있었다.
“나도 외국인이에요. 국적은 엄마 따라 한국인데 아빠가 중국인이라 한국 온지 얼마 안돼요. 같은 외국인이라 생각하고 너무 겁먹지 말아요.”
그제야 그의 억양이 이상함을 눈치 챈 이레네였다.
“외국인이요? 한국 온지 얼마 안 되세요?”
같은 외국인이란 말에 이레네의 긴장이 조금 풀어졌다.
“네. 왕이펑이라고 해요.”
의아한 큰 눈을 하고 자신을 보는 이레네를 향해 왕이펑이 자신을 소개했다.
“전... 이레네요.”
뜬금없이 나타나 자신을 소개하는 남자한테 이레네는 주저하며 자신의 이름을 말해 주었다.
‘같은 학원 다닌다니까... 학원? 검정고시학원?
이레네가 뭔가 억울한 눈빛으로 왕이펑을 올려다본다.
“근데 몇 살이세요?”
말 속에 뭔가 차가운 의중이 담겨 있었다.
“열아홉이요.”
“열아홉....... 이요? 동생이네...”
슬며시 어깨에 걸린 가방에 손이 가는 이레네였다.
“네? 아... 누나세요?”
뭔가 이상한 기운에 왕이펑은 약간 떨었다.
“응. 누나야... 학원 누나...”
평정을 찾았는지 이레네의 얼굴이 온화하게 미소 짓고 있었다.
그리고,
퍽-
이레네의 가방이 왕이펑을 때렸다.
“놀랬잖아! 무서워 죽는 줄 알았잖아! 어디서 고추장 찍은 멸치대가리 같은 게.......”
퍽, 퍽, 퍽-
여전히 외국인답지 않은 어휘를 구사하는 이레네였다.
그렁그렁 맺혀있던 눈물이 격한 움직임에 떨어졌다.
그 모습에 화도 못 내고...
“아! 아... 아파욧.”
“닥쳐”
퍽, 퍽, 퍽-
괜히 말을 걸었다 생각하는 왕이펑이었다.
***
초여름의 오후 햇살이 열려진 창문으로 쏟아졌다.
햇살은 방안에서 반사되어 전등을 켜지 않아도 방안 사물 하나하나를 또렷이 보여 주었다.
후덥한 열기가 방안에 떠다녔다.
그 속에 나신의 젊은 남녀가 하얀 침대 위에서 누워 있었다.
남자 위로 몸을 뒤집는 여자의 웨이브 한 머리카락이 햇빛을 받아 붉은 빛을 띠었다.
“내가 해 줄까?”
남자의 배에 올라타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한쪽으로 치우며 여자가 물었다.
“YES."
훤히 들어난 여자의 하얀 가슴을 주무르며 남자가 대답했다.
여자의 작은 얼굴이 겹치듯 남자의 눈앞으로 다가왔다.
맛있는 것을 앞에 둔 소녀처럼 남자를 쳐다봤다.
남자의 짙은 갈색의 눈동자가 사춘기 소년의 그것처럼 들떠 있었다.
매끈한 몸에 비해 살짝 살이 오른 그녀의 볼 사이에서 석류 빛 혀가 길게 나와,
두툼한 그의 짙은 입술을 뒤집으며 핥아갔다.
끈적한 침이 흘러 그의 입술을 축축하게 적셨다.
하-
남자의 뜨거운 입김이 그녀의 혀에 부딪혔다.
하얀 잇 사이로 남자의 붉은 석류가 그녀의 애무에 마중 나왔다.
쭙, 츕-
서로의 침을 빨아들이는 야한 소리가 한동안 이어졌다.
남자의 검고 단단한 가슴에 올려 진 그녀의 하얗고 긴 손가락이 장난치듯 남자의 유두를 괴롭혔다.
“으...”
억누른 남자의 신음소리에 그녀의 혀가 밑으로 내려갔다.
까끌한 남자의 턱을 슬며 내려온 그녀는 남자의 단단한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부드러운 흑인의 살결이 그녀의 입술에 전해졌다.
단단한 남자의 가슴을 움켜지며 혀로 남자의 유두를 돌리자 그녀의 배를 자극하는 남자의 성기가 느껴졌다.
평범한 남자들보다 기다란 이 그 남자의 남성이 까딱거리며 끈적한 쿠퍼 액을 길게 늘어뜨렸다.
가슴을 만지던 손으로 기다란 그것을 잡고 남자의 근육 있는 배로 그녀의 혀가 이동했다.
복근의 골을 타며 내려가 살짝 패인 배꼽에 머물며 혀로 그 속을 탐닉했다.
“하아.... please."
들뜬 뜨거운 음성 속에,
남자가 그녀의 어깨를 지그시 누르며 재촉하듯 그녀를 밑으로 밀었다.
울고 있던 그의 페니스가 턱에 닳으며 그녀의 뺨 위로 올라왔다.
크고 길었다.
춥, 츕-
옆으로 뉘이며 여자의 입이 옆면을 핥아 댔다.
굵은 힘줄이 솟아나며 더욱 커지는 게 여자의 작은 손에 느껴졌다.
음낭에서부터 혀로 길게 쓸어 올리며 여자의 붉은 입술이 벌어졌다.
끈적한 침에 반짝이는 그녀의 입천장과 목구멍의 음란한 붉은 빛을 보여줬다.
그 속에 검은색 남자의 그것을 가득 채워 넣었다.
‘하아... 좋아...’
남자의 짙은 향기를 코로 맡으며,
여자는 혀를 움직여 남자의 페니스를 감쌌다.
으... 윽,
허리를 들썩이는 남자의 반응에 여자는 더욱 깊이 목구멍으로 남자의 페니스를 삼켜갔다.
‘이 좋은 걸 두고 날 버리고 가?’
젖어오는 밑으로 자신의 다른 손을 뻗으며 잠시 성훈을 떠올리는 그녀였다.
***
“사장님 장 봐 오세요?”
가게 문을 열고 있던 정 사장이 성훈에게 인사했다.
“아 그렇게 부르지 마시라니까요. 벌써 가게 오픈 하시는 거예요?”
정 사장은 성훈의 빌라 1층에 세든 양꼬치집 사장이었다.
30대의 젊은 사장이었지만 건물주인 성훈한테 자꾸 사장님이라 불러 아직 20대의 성훈을 난처하게 했다.
“건물주님, 하고 부르면 이상하잖아.”
웃으며 편하게 이야기하는 정 사장 이었다.
혼자 살며 밥해먹기 귀찮았던 성훈은 자주 가게에 내려와 식사를 해결했다.
얼굴도 자주 보고, 나이차도 그리 많이 나지 않아 둘은 서로 농을 주고받을 정도로 친해졌다.
“가정부도 들어왔겠다. 이제 여기서 밥 안 먹겠네?”
“무슨 소리세요. 가정부랑 같이 와서 먹어야지.”
성훈이 모니카 얘기에 신나 웃으며 대답했다.
“모니카 씨라고 했죠? 근데 진짜 예쁘시다. 어때요, 우리 집에서 일 해볼 생각 없으세요?”
“네?”
당황한 모니카가 되물었다.
“모니카 종업원 쓰시고 가계 빼시게요?”
갑자기, 둘 사이를 가로 막으며 날카롭게 쏘아보는 성훈이었다.
“아이고, 건물주님 무서워서 종업원도 맘대로 못 쓰겠네. 허허”
“헤, 아직 FA도 안 풀린 저희 가정부 탐내니까 그러죠. 맞아, 알바는 구하셨어요?”
며칠 전부터 알바를 구한다는 정 사장의 말이 생각났다.
“어, 저기 테이블 닦고 있잖아.”
정 사장 되로 테이블을 청소하고 있는 뿔테 안경의 빨강머리 청년이 보였다.
“너무 마른 거 아니에요?”
청년을 보며 ‘멀대같이 커서 마른 멸치에 고추장 찍어놓은 머리를 하고 있네.’ 라고 생각한 성훈이 물었다.
“화교래. 뭐 정확히 화교는 아니지만 중국 살다 와서 양꼬치에 대해 자기가 일가견이 있다나 모라나. 나야 뭐 알바니까 속는 셈 치고 써보는 거지.”
“아... 유학생이었구나...”
성훈은 멋대로 생각하며 정 사장과 인사하고 모니카와 올라가려 했다.
“어? 스미스 어디가요?”
양복을 차려입고 급하게 외출하는 스미스였다.
“성훈, 모니카 이제 와요?”
자신을 부르자 약간 주춤하며 성훈의 뒤로 숨는 모니카를 성훈은 보지 못했다.
“나 바쁜이리 생겨서 지금 나가야 되요. 저녁 식사는 하고 올께요.”
총총걸음으로 떠나려 하는 스미스였다.
“스미스?”
성훈이 그를 불러 세웠다.
“부탁했던 일은 내일 해줄게요.”
“아, 그거요. 천천히 해 줘도 되요. 그럼 이따 봐요.”
다시 급한 걸음으로 사라져가는 스미스였다.
‘미국 공무원들은 모두 저렇게 열심히 일하나?’
살이 쪄 걸을 때마다 씰룩 데는 스미스의 커다란 엉덩이를 보며 성훈은 어제 공항에서 돌아오며 했던 엄마와의 통화가 떠올랐다.
‘스미스가? 진짜? 난 몰랐는데?’
‘그래. 스미스가 미국 에너지부 공무원이잖니. 그래서 네가 싸운 사람이 미국 국적자인걸 알고 대사관에 전화해서 그 사람한테도 합의하도록 압력 놓은 거야. 안 그랬으면 일이 커질 뻔 했어. 아들, 스미스한테 고맙다고 말해.’
‘대사관에 직접 전화 할 정도면 꽤 직급이 높을 텐데? 전혀 그렇게 안 보이는데... 참, 미국 공무원도 청탁 놓는구나...’
‘그런 말은 스미스한테 하지 말고, 꼭 새아빠 고마웠어요. 하고 말해라 착한 아들...’
성훈은 엄마와의 약속을 지켰다.
물론 ‘새아빠’ 란 닭살 돋는 말 대신 ‘스미스’ 라고 이름을 불렀지만,
‘괜차나요. 내가 성훈 아빠니까 도와 줘야죠. 대신 성훈도 나 도와줘요.’
하며 건 낸 작은 박스 하나를 은행 금고 보관함에 맡겨 달라 했었다.
오늘은 바빠서 하지 못 했지만,
“모니카 올라가요.”
약간 상기된 얼굴의 모니카가 뒤를 따랐다.
“알바생, 일 안하냐?”
뒤로 정 사장의 큰 소리가 들렸다.
“네, 갑니다!”
급하게 핸드폰 전송 버튼을 누른 후 왕이펑이 사장에게 달려갔다.
- 코드S 지금 외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