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지 않고 하기 위해선 이불 안에서 할 수 밖에 없었다. 난 컴컴한 이불 안에서 보영이의 보지를
찾아서 조심스레 내 자지를 집어넣었다.
"하으윽~"
"보영아~ 소리 살살.."
"몰라~ 흥분되는데 어떻게 그래.."
"그래두~~ 깨시면 좀 그렇잖어.."
"알았어~ 하으윽~ 오빠 빨리.."
"알았어 알았어~ 좀만 참어~"
내 자지가 보영이의 보지에 다 들어가자 난 서서히 보영이의 보지에 박아댔다. 보영이는 내 자지가
보지에 들어갔다 나올때마다 어찌나 신음을 질러대는지 난 결국 키스를 통해 입을 막을 수 밖에 없었다.
"우읍~ 수움~ 막혀어~"
"참어~ 너가 자꾸 신음내서 어쩔 수 없어~ 금방 끝낼께"
난 처갓집인 것도 있고, 내일 출근시간을 위해 서둘러 거칠게 보영이의 보지를 박아댔다. 보영이는
흥분때문에 연신 허리를 들썩들썩거렸다. 처갓집에서 한다는 긴장때문인지 내 속도는 더욱 빨라졌고,
잠시 후 난 보영이의 허리를 꽉 붙잡고 한 가득 정액을 토해냈다.
"하아...하아..좋았어?"
"하아..하아..어어~ 조금 짧아서 아쉬웠지만..히힛.."
"어쩔 수 없잖아..집에 가면 더 뜨겁게 해줄께"
"그래~ 히힛..울 서방~! 쪼옥!"
보영이는 내 입술에 귀엽게 입맞춤을 하고는 찡긋 윙크를 했다.
"그래..귀여운 울 각시..앞으로 내가 더 잘할께.."
"그래~ 근데 오빠 우리 옷은 입고 자야겠지? 안 그러면 부모님이 깜짝 놀라시겠지?"
"그래;; 당연하지~ 왜 벗고 자고 싶어?"
"우웅~~ 오빠 체온 느끼고 싶은데..그래 얼른 입고 자자"
보영이는 못내 벗고 자고 싶어했지만 확실히 여긴 처갓집이라 그건 너무 무리였다. 우린 입기 싫은
옷을 억지로 입고서 내일 출근을 위하여 꼭 끌어안고서 서둘러 잠을 청했다.
그 날의 화해 이후 우린 더욱 서로에 대한 감정이 애틋해져, 마치 신혼초로 돌아가는 것 같았다.
그리고 우리의 섹스생활은 다시 정상으로 돌아갔다. 언제 또 변화를 원할지 모르겠지만..
어쨌뜬 3개월이 넘게 정상적으로 계속해서 섹스를 유지하고 있었다. 서로 싫증도 느끼지 않고..
그러던 어느 날 대단한 소식이 찾아왔다! 한동안 월경이 없어 이상하다 싶어 보영이와 같이
산부인과를 갔는데 보영이가 임신을 한 것이다!!!
드디어 내가 애아빠가 되는 것이다!! 이 나이에 애아빠라니..좋기도 하고..앞으로 애때문에
얽매일 생각을 하니 조금 아쉽기도 했다.
어쨌든 우리의 불장난같던 요란한 섹스생활은 확실히 더 이상 유지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애기 돌보는 데만 올인해야 할테니...
10개월 후 산부인과
난 속이 바짝바짝 타는 것 같았다. 벌써 진통이 10시간 째인데 왜 이리 안 나오는지.. 어느새
깍지낀 손은 땀으로 범벅이 되어갔고, 정신은 아득해져왔다. 그리고 진통이 11시간이 다 되어가던
무렵.. 우렁찬 아기소리와 함께 간호사가 아기를 들고 나왔다.
"축하합니다! 건강한 아들이네요"
드디어 드디어 나의 리틀 2세가 탄생한 것이다. 난 간호사에게 아기를 받아 들어보았다.
너무 작은 얼굴.. 눈.. 코 너무나 신기했다. 난 얼른 애를 들어 병실로 옮겨진 보영이에게 갔다.
보영이는 너무 지친 모습으로 나를 바라봤다.
"오빠아...우리 애기..잘 나온거지?"
"그래..그래...수고했어..수고했어..보영아..허엉.."
난 보영이를 안고 결국 참았던 눈물을 터트려버렸다. 정말 너무 고맙고..사랑스러웠다.
"보영아..내가 정말로 앞으로 더 잘해줄께...정말로..흐흑.."
"지금도 충분히 잘 하고 있어...사랑해..오빠.."
"그래..나두.."
앞으로 아기때문에 힘든 날들이 펼쳐질 거지만 난 충분히 잘 할 수 있을거 같았다. 내 곁에
이렇게 사랑스러운 보영이와 아기가 있으니..
계속 그 곳에서 자라왔다. 할아버지때부터 들어와 살았는데 아버지는
고향에 대한 애착이 있었던 것인지 우리 3남매가 그렇게 다른 지역으로 이사가자고 해도 말을 듣지
않으셨다. 그래서 난 태어나서 지금까지 한 번도 동해시를 떠나본 적이 없었다. 가끔 가는 휴가철의
여행이나 수학여행 등으로 다른 지역으로 가는게 전부였다. 그러다보니 티비에서 항상 나오는 서울은
언제나 나의 동경의 대상이었다. 그래서 중학교때부터 나는 무작정 어떤 일을 하더라도 서울로 가겠다는
꿈을 꾸며 살았다. 하지만 생각보다 공부는 쉽지 않았고, 겨우 인문계에 들어가긴 했지만 친구녀석들이
모두 공고나 상고를 가는 바람에 같이 어울려 놀게 되었다. 마음으로는 열심히 공부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천성은 어디가겠는가 원래 노는 걸 좋아하는 나는 쉽게 마음을 잡지 못했다. 그런 나에게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사건이 터졌다. 가끔 명절에나 볼 수 있었던 창민형이 결혼을 한다는 소식이었다.
취업을 했다는 얘기는 들었었는데 취업하고 불과 1년만에 결혼을 한다는 소식이었다. 꽤나 놀라운
소식이었다. 가끔 보면 노는 것만 좋아하는 형같았는데 취업도 하고, 결혼까지 한다니까 왠지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창민형의 결혼식날이 다가오고 난 아버지와 어머니와 함께 결혼식에 참석했다. 누나와
형은 일요일인데도 직장에서 일을 한다고 참석을 하지 못했다. 살면서 처음 와본 서울이란 도시는
너무나 신기했다. 티비에서 보던 것처럼 고층빌딩들이 가득하고, 수 많은 사람들과 수 많은 차들로
가득했다. 한적한 우리 동네에선 볼 수 없는 풍경들이었다. 정신없이 밖을 보고 있는 중에 어느새
결혼식장에 도착했다. 꽤나 유명한 호텔에서 결혼식을 했는데 사람들로 북적거려 한참을 찾아 겨우
창민형을 볼 수 있었다. 창민형은 취업에 결혼에 좋은 일들만 가득해서 그런지 얼굴이 미소로 가득했다.
난 언제쯤이면 저렇게 될 수 있을까란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리고 신부를 보고 싶었는데 아쉽게도
결혼식이 시작할 시간이라 보지 못했다. 결혼식장에 들어설 때야 처음으로 신부의 얼굴을 볼 수 있었는데
꽤나 멀리서 봤는데도 형수님은 꽤나 예뻐 보였다. 좀 더 가까이서 볼 수 없다는게 못내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혼식이 끝이 나고 부모님과 나는 사람들도 워낙 많고, 아버지가 볼 일이 있으시다 그래서
점심만 먹고 빨리 집으로 돌아왔다. 처음 가 본 서울을 좀 더 구경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몹시도
아쉬웠다. 그리고 집으로 오는 길에 나는 열심히 해서 꼭 서울을 가겠다는 다짐을 했다. 하지만 계속
놀기만 하다 고3 올라와서야 공부를 할려니 쉽게 되지 않았다. 정말 자는 시간까지 줄여가면서 공부를
했지만 모의고사 성적은 늘 신통치 않게 나왔다. 그래도 난 쉽게 포기 할 수 없었다. 정말 죽기살기의
각오로 열심히 공부를 했다. 그리도 드디어 수능을 치는 날이 되었다. 내 인생을 결정짓는 첫번째 관문인거
같아 몹시 긴장이 되었지만,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시험에 임했다. 시험이 끝이 나고 좀 더 열심히
공부할 껄이란 생각이 들어 후회가 밀려왔지만 이미 늦었기에 어쩔 수 없었다. 초조한 마음으로
결과만을 기다리며 하루 하루를 보내던 중 드디어 수능 시험 결과가 나왔다. 약간의 기대를 하고 있었지만
역시나 성적은 좋지 못했다. 이미 예상하고 있었던 일이었지만 몹시도 아쉬웠다. 서울에 가기엔 터무니없이
모자란 성적이었지만 이대로 포기 할 수는 없었다. 난 이미 서울에 갈 결심을 굳힌 상태였기때문이다.
집에서는 대충 가까운 강릉의 아무 대학이나 가라고 했지만 난 끝까지 결심을 굳히지 않았다.
결국 집안과 선생님의 무수한 반대를 거의 억지로 설득하다시피 해서 서울로 올라갔다.
사실 설득이라기보단 반 협박에 가까웠다. 서울에 안 가면 죽어버리겠다고 했으니..;;
어쨌든 그렇게 해서 우여곡절 끝에 서울로 올라갔다. 대학에 붙으면 좋고, 안 되면 재수를 하든 아무 일이나
하든 나에게 서울에 간다는게 중요했기 때문에 서울에 간다는게 그저 좋기만 했다. 기차를 타고 서울에
올라오자 사촌형에게 전화를 걸었다. 서울에서 유일하게 내가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작년에 결혼할 때,
보고 못 봤으니 1년정도 된 거 같았다. 멀리 있어 자세히는 못 본 형수님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사촌형은 바쁜지 전화를 세 통이나 걸자 그제서야 통화가 됐다.
"여보세요?"
"어~ 창민형 나 정민이야"
"어~~ 그래 정민이구나~ 서울 올라온거야?"
"어~ 좀 전에 도착했어~ 바쁜가 보네"
"아니~ 뭐 그런건 아니고 방금 회의 하고 온다고"
"그렇구나~"
"그래 우리 집 주소는 작은 아버지한테 받았지?"
"어 받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