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2화 (82/96)

"전화 했냐.."

"그래~ 몇 통을 했구만..ㅎㅎ 새끼 졸라 웃기는구만~ 너가 안 깨서 그래서 우리 재수씨가 

깨서 나 문 열어 준거 아니냐.."

"어쩐 일이냐.."

"기분 안 좋냐?? 목소리가 왜 그래..;; 그냥 잠깐 오랜만에 얼굴이나 볼까해서 찾아왔지.."

"보영이 먹으러 온건 아니고.."

"야! 왜 그래;; 무슨 말을 그렇게 하냐;;"

"그래..오빠 기태오빠한테 갑자기 왜 그래.."

"시끄러!! 지금 편 드는거야?!"

"아니..그게 아니라..오빠 갑자기 왜 그래.."

"됐어..!"

'왜 이러지..내가 미쳤나..'

이상했다. 전혀 화를 낼 상황이 아닌데..쓸데없이 마구 화를 내고 있었다. 방금 전에 꿨던 꿈때문인가..

난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지껄여대고 있었다. 미친 놈처럼..

보영이와 기태는 계속해서 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고, 이상하게 그 모습이 너무 다정해 보였다.

갑자기 또 다시 참을 수 없는 분노가 끓어 올랐다. 난 안방으로 들어가 옷을 갈아입고나와 신발을

꾸겨신었다.

"오빠 어디가!!"

"야~!! 왜 그래 갑자기!! 어디가는데!!"

"말걸지마..재미 보고 싶으면 보영이랑 재미나 보든가.."

"오빠!! 무슨 말을 그렇게 해! 어디가냐고! 오빠!! 오빠!!!"

애타게 보영이는 내 이름을 불렀지만, 난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아파트 문을 닫고 나와 버렸다. 

꿈 속에서 본 모습을 그대로 반대로 하고 있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지껄이면서...

이런 내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나도 모르겠다.. 그냥 갑자기 화가 난다. 

이렇게 되길 원한건 나인데.. 그까짓 꿈 하나 때문에 이런 미친 짓을 하고 있었다.

'휴...내가 원한건 뭐였을까.. 쾌락에 빠져 미쳐있던 걸까..내가 도대체 보영이한테 무슨 짓을

한건지..뭘 요구하고 있었던걸까..'

담배를 한 대 빼물고 길게 연기를 내뿜자 한결 마음이 차분해졌다.

'끝도 없이 빠져든 환락의 늪에서 허우적대고 있었던건가..'

갑자기 끝없는 후회가 밀려들었다. 그렇게 만들건 나였것만...나 스스로 이런 상황을 만들고

후회라니..참으로 우스웠다.

'내가 과연 보영이를 사랑한게 맞나...어느 순간 난 보영이의 몸에..욕구에 미쳐버린게 아닐까..

왜 이렇게까지 된거지..'

후회..한숨...솔직한 내 심정이었다. 한참을 멍하게 있던 난 전화벨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기태군...미쳤지..왜 기태에게 그리 화를 낸거지..'

전화를 받자마자 기태의 화난 목소리가 들렸다.

"멍청한 놈아!! 어디냐!"

"왜..."

"아우~ 내가 돌겠군!! 야~ 재수씨 짐싸서 나갔어"

"뭐!!!"

'짐을 싸서 나가다니...말도 안돼..'

"어디 간다는데!!"

"몰라~ 친정 가겠지~ 멍청한 놈아!! 도대체 넌 뭐하는 놈이야! 어디냐! 내가 가마..어차피

재수씨 잡아봤자 늦었어..나중에 얘기하든가"

"휴...그렇겠지..여기 한강 고수부지다.."

"새끼..생쇼하고 있네..기다려"

잠시 후 기태는 까만 비닐봉지 하나를 들고 멀리서 걸어왔다.

"뭐하냐..청승도..이런 청승을 봤나..그리 화내고 나간게 고수부지냐?"

"한심하냐? 그래..나도 이런 내가 한심하다.."

"ㅋㅋ그래 초 한심하다!! 이 멍청한 놈아..자~ 분위기 낼라고 소주 두 병 샀다~"

"뭐냐..깡소주냐..."

"그럼~!! 넌 티비도 안 보냐..ㅎㅎ 이런 분위기는 그냥 깡소주가 짱이거든~~!!"

"웃기는구만...알았다...안주는?"

"아우~ 이런 상황에서 안주타령이 나오냐?ㅋㅋ 하여튼 있긴 있다~"

기태는 비닐봉지에서 새우깡을 꺼내더니 찌익 찢어 새우깡을 하나 꺼내 내 손에 쥐어주었다.

"ㅋㅋ 됐지? 자~ 일단 한 모금 마셔라"

기태와 난 가볍게 병 건배를 하고 소주를 마셨다. 난 한 번에 반 병을 비워 버렸다. 빈 속에

깡소주를 반이나 마시니..속이 울렁거렸다.

"아우~ 새끼..속이 어지간히 타나보네..안주 좀 먹어라.."

"그래.."

그리고 한참동안 아무런 말이 없었다. 그 사이에 기태와 난 말없이 담배 한 갑을 다 피워버렸다.

잠시 담배를 사러 갔다온 기태는 옆에 앉아 말문을 열었다.

"아까 왜 그랬냐..."

난 아까 꿨던 꿈 얘기와 그것때문에 혼란스러워서 화까지 낸 상황에 대해 말해주었다.

"참...웃긴다..그러니까 그 요상한 꿈 하나에 그렇게 그러셨다고?"

"그래...나도 이해가 안 간다..그런데 갑자기 그렇더라..내가 무슨 짓을 하고 있나 싶고.."

"참...너란 놈 알다가도 모르겠다..창민아..난 솔직히 너가 고등학교때부터 참 부러웠다"

"나같은게 뭐가 부럽냐.."

"뭐가 부럽긴..넌 고등학교때부터 공부를 꽤나 하는 편이었지~ 그래서 결국 너가 원하는 대학에

들어갔고, 난 대충 아무 전문대나 들어갔지..취업을 잘 하는 곳을 골라서.. 그리고 넌 대학을 

다니며 보영이같은 이쁜 여자친구도 사겼잖아. 거기에 취직도 했고..더군다나 너네 부부의 그

프리한 섹스생활을 보며 얼마나 부러웠는 줄 아냐? 그렇게 성격도 잘 맞고, 섹스까지 잘 맞는

부부가 흔한줄 아냐?"

"그런가...난 너가 더 부러웠는데.."

"뭐?? 내가 여자 많은거? 그거 하나도 부러워할꺼 없다~ 내가 여자 후린다고 지금 직장이나 제대로

된 직장이냐? 언제 짤릴 줄 모르지..더군다나 진지하게 결혼대상은 아직가찌 한 번도 못 사겼다"

"그건 그렇군..."

"그래..내가 보기엔 보영이 참 대단한 애야..너때문에 그렇게 변한 거 아니냐? 너 취향 맞춰준다고

솔직히 니 취향이 보통 취향이냐?? 다른 애들 같았으면 니 변태같은 취향에 도망갔어도 벌써 도망갔어

그런데..그렇게 잘 맞춰주고 잘 대해주면 고마워해도 감지덕지지..이게 뭐하는거냐!!"

"나도 알아..내가 화 낼 주제가 아닌데..내가 화낸게 얼마나 바보같은지..."

"자..받아라.."

"뭐냐?"

"재수씨가 주고 간 편지야.."

"이리 줘봐!"

난 서둘러 기태에게서 받은 편지를 열어 보았다.

' 오빠..

오빠 지금 어디서 뭘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계속 전화 안 받네..

왜 그리 화가 난거야..난 솔직히 뭐가 그렇게 잘못된건지 잘 모르겠어..

오빠 말들이 무슨 말인지 이해가 하나도 안되구..

내가 기태오빠랑 같이 있어서 화난거야? 그리고 아까 그런 말이 어딨어..

나 기태오빠랑 아무 짓도 안했어..왜 오해하고 왜 화내는건데..

내가 뭘 그렇게 많이 잘못한거야??

나 솔직히 처음에 오빠에 대한 섹스 맞춰주는 거 힘들었어..

아니 섹스 자체가 힘들었어..오빠도 알잖아..오빠가 내 처음 남자라는거..

하지만 오빠가 원해서..난 오빠가 너무 좋으니까..그냥 내 첫 경험 주고 싶었어..

그리고 차츰 섹스라는게 내가 생각한만큼 나쁘지 않다는 것도 알았어..

오빠의 체온을 느낄 수 있어서 너무 좋았거든..

하지만 오빠는 점점 이상한 걸 요구했고..알면서 모른 척 하기 힘들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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