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6화 (66/96)

혼자서 쇼파를 뒹굴거리며 머리를 쥐어뜯으며 생각해도 좀처럼 괜찮은 방법이 나오지 않아 일단

난 그냥 보영이를 믿어보기로 했다. 정 안되면 나중에 창식이한테 전화를 하게 될지라도..

그리고 토요일 아침 보영이는 아침부터 분주하게 일본여행을 갈 짐들을 꾸리고 있었다. 밤 늦게

잠을 설쳐 더 자려고 했지만 도저히 덜그럭 대는 소리에 더는 잠을 잘 수 없을 거 같아 난 졸린

눈을 비비며 거실로 나갔다.

"하암~~ 벌써 준비해??"

"어~ 아침 일찍 비행기라서~"

"그래? 몇 시 비행긴데?"

"10시 비행기야~"

시계를 보니 7시가 조금 넘은 시각이었다.

"10시 비행긴데 벌써 준비해??"

"공항까지 가는 시간이 있잖어~ 가서 절차하고 걸리는 시간 포함하면~ 넉넉하게 해야지"

"그래..;; 그렇구나~ 외국가 본 지 좀 되었더니..멍하다~"

"그래~ ㅋㅋ 나랑 외국여행 다음에 가자~ 밑반찬은 대충 몇 개 해놨고~ 밥도 오늘 저녁까지 

넉넉하게 해 놨어~ 심심하면 친구들 불러서 놀든가~ 아님 술 마시러 가든가~"

"네네~ 알겠으니~ 빠지는 거 없이 준비나 잘 해서 가세요~"

보영이는 뭐가 그리 신나는지 내가 묻지도 않았는데 계속 혼자 즐겁게 떠들며 짐들을 싸더니 

전화 한 통을 받고 간다며 후다닥 나가버렸다. 

"쳇..그리 좋냐~ 난 인사도 안했는데 사라졌구만~"

갑자기 주말 아침부터 마누라 없이 혼자 집에 있어야 된다는 생각에 난 괜시리 우울해져버렸다.

"아휴...됐다~ 언제는 주말에 시간 잘 있었냐~ 밥이나 먹자~"

밥을 먹고 청소를 하려고 하다 괜시리 하기 싫어 쇼파에서 뒹굴대다 친구녀석들에게 전화를 해보았다.

하지만 애인이 있는 녀석은 애인 만나러 나간다고, 마누라 있는 녀석들은 가족들과 보낸다고 전부다

나올 수 없다고 했다.

"아우~!!! 망할 자식들~~ 다들 바쁘구만..쳇쳇~ 그래 잘들 놀아라! 난 티비에서 편하게 방콕할테니!"

난 괜시리 전화기를 쇼파에 집어던져 화풀이를 했다. 물론 그 정도로 기분이 좋아질 리 없었다. 

약속도 없고, 집 안에서 마누라없이 보내는 주말은 정말 너무나 지루했다. 하는 일이라곤 밥 먹고,

티비 리모컨 돌려대기 두 가지 빼고는 아무 일이 할 일이 없었다. 이 좋은 주말에 이리도 할 일이

없다니...정말 맙소사였다!!

"아~~~~지겨워~ 남들은 주말을 기다리는데..난 주말이 왜 이 모양이야~"

시계도 날 도와주지 않는지..너무나 천천히 흘러가고 있었다. 몇 시간이 지났나 보면 겨우 이제

몇 십분이 지났을 뿐.. 그렇게 무료한 시간을 보내는데 저녁 무렵에 보영이에게서 전화가 왔다.

"도착한거야??"

"ㅋㅋ 도착은 아까 전에 했지~"

"뭐야!! 근데 왜 이제 전화해??"

"미안해~ 점심 먹고 쇼핑하다보니 정신이 하나도 없었어~"

"그래? 이제 뭐하게??"

"몰라~ 쇼핑 더 하다가 저녁 먹고 해야지~"

"숙소는 잡았어?"

"어~ 당연 잡았지~ㅋㅋ 오빠는 저녁 먹었어?"

"어~ 대충~ 으구~!! 얼마나 잼있었길래 나한테 전화하는 것도 까먹고~"

"헤헤~ 미안해~ 오빠야 근데 나 배터리 없다~!! 나 전화 꺼 놓는다~ 내일 가기전에 연락할께~"

"야야~ 보영아~ 야!!!"

하지만 혼자만의 외침일뿐 이미 전화기는 끊긴 상태였다.

"아우~~ 배터리도 안 챙기냐~!! 그럴꺼면 휴대폰은 왜 로밍을 해서 가져갔냐고~~~"

그렇게 아무도 듣지 못하게 혼자만의 절규를 하는 나였다. 어찌나 비참한지..

"그나저나..진짜 친구들이랑 간 게 맞나부네~ 바로 옆에서 한국여자 목소리들이 시끌벅적한거

보니까.."

내일까지 보영이 목소리를 들을 수 없다는게 몹시도 아쉬웠지만, 일단 친구들이랑 같이 간 게 

맞다는 생각만으로도 어느 정도 안심이 되었다. 그리고 다시 열심히 티비돌리기를 해댔다. 주말인데

재미있는 것도 안한다며 열심히 욕을 해대며... 그러다 어느새 난 나도 모르게 잠이 들어버렸다. 

한참을 자는데 한 통의 전화에 난 잠이 깼다. 전화를 받으려고 보니 한국에서 걸려온게 아니었다.

"뭐지..외국에서 걸린거 같은데..보이스피싱이나 사기 아냐??"

난 번호가 이상해서 전화를 받지 않았다. 전화는 곧 끊겼지만, 다시 울려대고 있었다. 신경 쓰지

않고 놔두려 했지만 휴대폰이 계속 울려대자 난 도저히 받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우~ 밤중에 어떤 새끼야~!! 너 이 새끼 기분도 안 좋은데!! 잘 됐다~ 욕이나 한 바가지 해주지~"

난 당장이라도 욕을 해 줄 퍼부어줄 기세로 전화를 받았다. 그런데 낯익은 목소리가 날 불렀다.

"창민아~"

"창식이냐??"

"그래~ㅋㅋ 왜 이리 전화를 안 받냐??"

"어? 어어~ 그게 요새 보이스피싱이나 사기 전화가 많아서..난 또 그런거인 줄 알고~"

"그래?? 요새 한국에는 그런거 많나 부네~ㅎㅎ"

"어~ 그렇지 뭐..일본은 안 그런가 보네~ 그런데 어쩐 일이냐?"

"뭐~ 그냥 전화 해봤지~ 잘 지내냐??"

"나야 뭐 잘 지내지~"

창식이는 나에게 그냥 전화했다고 하고 있었지만 난 괜시리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희한하네..본 지 얼마됐다고 안부전화지..그것도 해외에서..'

뭔가 찜찜한 기분이 들었지만 창식이가 말을 하기 전에 물어볼 수가 없어 난 창식이의 말에 대답을

하며 창식이가 무슨 말이 해 주기만을 기다렸다. 그리고 드디어 기다리던 말이 흘러나왔다.

"야~ 보영이 일본 왔다며~"

"어? 너가 그걸 어떻게 아냐?"

"ㅋㅋ 보영이가 연락했던데~"

"그러냐? 보영이가 너 일본연락처도 아냐??"

"어~ 나중에 놀러오면 연락하라고 연락처 줬지~ㅎㅎ"

순간 난 보영이에 대한 배신감과 창식이의 능글거리며 말하는 것에 대한 짜증에 욕찌거리가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꾹꾹 참으며 간신히 대화를 계속했다.

"아아...하하..그렇구나.."

"그래~ㅋㅋ 왜 그러냐?? 기분 나뻐?"

"아니~~ 내가 그런걸로 기분 왜 나쁘냐~"

"아니 난 혹시 기분 나빠하나 해서~ㅋㅋ"

"내가 쪼다냐~ㅋㅋ 그딴거에 기분이 왜 나빠~"

"그건 그래~ 하여튼 친구들이랑 같이 놀러왔다고 하더라고~"

"어~ 나한테 그렇게 말했어"

창식이의 말을 듣는 순간 갑자기 내 머리 속은 복잡하게 꼬여갔다.

'뭐야..친구들이랑 간 게 그럼 맞는거야?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거지..'

난 아직까지 확신할 수 없다는 생각에 창식이 녀석의 말을 좀 더 들어보기로 했다.

"그래서 친구들이랑 쇼핑하고 저녁먹고 잼있게 잘 놀았다하더라고~"

"그래~ 얘기 들었어~"

"그런데 갑자기 나한테 술을 사달라 그러더라~ 그래서 한 잔 사줬지~"

"어??어~~~ 그래..그랬구나.."

그 말과 함께 갑자기 진정됐던 내 가슴은 또다시 미친듯이 뛰며 분노와 함께 나도 모르는 야릇한

기분이 밀려왔다.

"말 안하고 술 사줘서 좀 그러냐?? 미안하다~ 갑자기 술을 사달라고 연락왔는데 너한테 허락맡고

사 준다 그럴수는 없잖냐~"

"그래~ 그렇지~ 잘 했어...하하~ 잘했네 야~"

난 억지로 웃음을 지으며 최대한 침착하게 창식이의 말에 대꾸를 했다. 이미 마음속은 불덩이처럼

타오르고 있었지만 말이다.

"그리고 말인데...보영이가 나랑 같이 있다"

"어?? 그럼 아직 술 마시냐??"

"아니..여기 호텔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