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화 (2/41)

내 어머니

분류 근친상간 (프롤로그 ) 작성일 2006.07.18 (11:05:22) 추천 56 조회 39855

온라인으로 즐기는 오리지날 바다이야기 3.0

푸로로그-2

대장… !!

내가 느지막하게나마 대장을 만나서 내 속 마음을 다 까놓듯이 하소연 할 수 있는 관계를 맺게 되었다는 것이 나는 내 인생에서 가장 행운이라고 생각해오고 있어… !!

대장이 비록 여자이긴 하더라도… !? 또 나이차이가 나하고 두 바퀴나 돌아가도록 어린 띠 동갑이라 하더라도… !? 대장의 나이가 이미 40 을 넘긴 나이가 되다보니까 나는 너무나도 대장한테다 내 지나간 이야기를 해주는 것이 즐겁기만 한 거야… !!

왜냐하면 대장도 그만큼 인생을 살았기 때문에 나의 하소연을 들어주면서 이해를 해줄 수 있는 불혹(不惑)의 나이가 되었다는 것이기 때문인 거지.

나는 대장을 만나고 나서…

내 나이 벌써 60이 넘은 지 몇 해가 되는 동안 나는 지나간 내 인생의 뒤안길을 돌아다보게 된 거야… !!

나이를 먹어가면서 나는 내 지나간 인생관이 너무나 어이가 없고 허무했었다는 사실을 느끼게 되기도 한 것이지… 그 무어라고 할까… ??

내 나름대로 재미있는 삶을 살았다고 하겠지만… 돌이켜보면 너무나 못된 짓을 많이도 하면서 살아오고 있었다는 것을 나는 새삼스럽게 느끼는 거야…

특히나 이 세상에서 나를 가장 사랑해주시는 내 엄마의 가슴에 정말로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뺄 수없는 커다란 대못을 박기도 했고… !!!???

그래서 나는 이 모든 나의 못된 행적을 돌이켜 보면서 내가 평생에 겪은 여난(女難)(?)에 대하여 속죄하는 마음으로 대장에게 이야기 해보려는 거야… !

너무나 글재주도 없다고 나무라지 말고… !! 또 너무나 지루하다고 하지도 말고…

또 이야기중에 나오는 어떤 대목에 가서는 다소 논리적으로 안 맞는 점이 있을지 몰라도 끝까지 읽어주면 아주 고맙겠어… !!

푸로로그- 2 사화(蛇禍)

그 무렵…

우리집안에서는 그야말로 경천동지(驚天動地)할만한 엄청난 사건이 터지고 만 것이었어.

그것은 바로 이집안의 유일한 후계자이고 우리 전씨가문의 왕세손과 같은 대접을 받고 있는 나「전동훈(全東勳)」이가 어처구니없게도 뱀한테 물리는 사고를 당하고 만 거야.

그것도 하필이면 사내아이로써 가장 중요한『고추』줄기를 독사(毒蛇)한테 물리는 불행한 사건이 말이야…

대동아 전쟁(大東亞戰爭)이 막바지에 올라서 미국의 B-29 폭격기가 한반도의 상공에 날아다니면서 폭탄을 떨어지게 한다고 해서 서울이나 대전 시내가 공포에 떨고 있던 무렵이었어.

그런 전쟁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계룡산(鷄龍山) 자락의 용추(龍湫)계곡에서 나는 큰고모와 작은 고모들... 그리고 신도안의 당집 할아버지네 막내딸 또 내 여동생들이 함께 여름날의 더위를 피해서 가재를 잡아가며 천렵(川獵)놀이를 하고 있었어.

물론 더운 날씨 때문에 나는 글자그대로 하동(河童)이 되어서 벌거벗은 채 물가에서 뛰어 놀고 있었고 큰고모나 다른 여자들도 천진스럽게 물장난을 하고 있었지.

그때 갑자기 나는 아래 고추의 밑둥치가 떨어져나가는 것 같은 심한 통증을 느끼고 자지러지듯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까무러치고 만 거야.

물가 위쪽 편에서 놀고 있던 큰고모 등 여자아이들은 내 비명소리를 듣고 몰려들 오긴 했지만 그들 소녀들로서는 감당할 수 없는 엄청난 사건이 벌어졌던 거지.

순식간에 내 사타구니 앞의 고추가 풍선처럼 부어오르며 커지더라는 거였대…

큰고모가 보고 있는 동안에도 엄지손가락 굵기의 독사한마리가 매달려있더라는 거였대.

마침 근처에서 천렵을 하고 있던 마을 청년들의 덕택에 나는 마을의 의원으로 옮겨졌대.

마침『신도안』의 집에 계시던 내 어머니는 이런 나를 보시고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절망감을 느끼셨지만 그래도 이지적이고도 분별 있는 행동으로 나를 안정시켜주시며 급한 대로 응급조치를 해주셨다는 거래.

시골 의원의 말이지만… 목숨은 붙어서 살아나기는 하겠지만 하필 물린 곳이 남자로써 가장 중요한 남근(男根)의 밑뿌리이기 때문에 이곳을 잘라낼 수도 없고 그냥 치료하자니 목숨이 위태로울 것 같아서 자기의 능력으로는 어찌 해볼 수가 없으니 어디 대처의 다른 큰 병원으로 가보라고 하더라는 거 였대.

내 엄마는 그 당시 감히 보통사람으로서는 엄두도 내지 못하는 소위『닥꾸-시』라는 것을 전세 내셔서『대전』까지 나를 데리고 오셨었고… !?

또 그곳에서도 안 된다고 하자 거의 실성한 사람처럼 되셔서 그날로 그 당시에 전쟁터의 최전방이라고 하는 경성(京城)으로… 그리고 인천(仁川)이라는 도시로 이렇게 돌아다니시는 동안 마침 인천의 어느 중국 한의원 원장의 결단성 있는 집도(執刀)로 내 고추를 수술 받게 되었더라는 거래.

가히 내 엄마가 아니면 어느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집념과 용기였었다는 이야기인 거래… 그렇게나 아들 타령을 하시던 내 할아버지께서도 포기하시다 시피 했었다는 데… !?

소위 서울에서도 가장 유명하다는 세브란스 병원에서도 치료를 받아보았지만 이미 뱀의 독이 아이의 고환에까지 퍼져서 아이의 목숨을 구한 것만으로도 다행으로 여기라고들 하고 있었지만 내 엄마는 결코 포기를 할 수가 없었다는 것이었대.

내 엄마가 어찌나 애절하게 갈구하시듯 아이를 고치려고 하자… 천우신조였던지 마침 그 병원의 경비로 있던 한 영감님이 엄마에게 귀 띰을 해주더라는 거였대…

? 인천에 가면 한 중국의원이 있는데 이런 방면으로는 아주 수술을 잘한다고 소문아 나 있는데… 그리 한번 가보 슈… ?라고 말이야… !?

물에 빠진 사람은 지푸라기라도 잡는다는 말처럼… 엄마는 나를 데리고 또 인천에 까지 가셨었다는 거래…

그곳에서 나는 기상천외한 수술을 받았 대…

말하자면 내 고환(睾丸)주머니에 있는 독을 제거하고 다른 의사들이 어설프게 잘라낸 내 고추를 복원한다고 하며 어떻게 수술을 했는지는 몰라도… 어쨌든 내 하초(下焦)에 하얀 붕대를 칭칭 감아놓았던 기억이 지금도 아련하게 나고 있어.

그 후로 얼마동안이나 그 병원에 있었는지는 몰라도 내가 정신이 들었을 때에는 나는 한 달에 한 번꼴로 인천에 올라가서 치료를 받고 내려와야만 했었어.

약은 무슨 약인지는 몰라도 고환의 기능을 재생시키는 약이라고 하며 엄청 비싸게 돈을 주고 한보따리씩 갖다 다려서 먹어야만 했었고… !!

그동안 나는 억지로 아랫배에 생으로 구멍을 뚫어놓고 그 구멍을 통해서 오줌을 누어야만 하기도 했었지…

그럭저럭 세월이 지나는 동안 나는 서서 내 고추를 통해서 오줌을 눌 수 있게 되었고… 내 고추도 그럭저럭 제 기능을 한다는 것도 알 수가 있었던 거지.

과연 운명의 신은 나에게 어떤 인생을 살게 하려고 이런 고통을 주신 것인지… !? 어린 나이에 나는 너무나도 커다란 시련을 겪었다는 거지…

엄마는 나를 위해서(?) 혼신의 노력을 하신 것이고… !!

어른들은 엄마나 내게다 대놓고 말씀들은 안하시지만 내 고추가 과연 남자의 무기(?)노릇을 할 수 있느냐가 관심거리였었나 보래… 그것은 훗날 내가 어른이 되고난 뒤의 일이니까 당시로는 누구도 알 수 없는 노릇인 거겠지만…

어쨌든 나는 이렇게 해서 세상에 다시없는 물건을 내 양다리사이에 달고 살아야 했어.

어찌 보면 무슨 살덩어리 같기도 한 것이 털렁거려서 뛰어다닐 때면 너무나 거추장스러워서 한동안 이놈을 내 몸의 일부로 받아들이기에 익숙해지느라 무척이나 애를 먹었었어.

나를 수술했던 의사의 말에 의하면 몇 년 안 있어서 그 툭 튀어나온 살덩어리가 내 몸속으로 흡수되어서 동화가 된다고 하니 엄마나 나는 참는 수밖에… !?

어쨌든지 우리집안에서는 그야말로 초미의 관심사가... 내가 사내구실을 할 수 있느냐 없느냐 였 었 던 것 같았어… 왜냐하면 나는 너무나도 손(孫)이 귀한 가문에서 귀한 아들로 태어났던 것이기 때문인 거지.

그럭저럭 나는 초등학교에 들어가게 되었어. 나는 원래 호적에다 2 년이나 늦게 출생신고를 했었기 때문에 내 나이 보다 2 년이나 늦게 학교에 입학하게 된 것이야.

그런데 사람은 원래의 자기 나이보다 사회생활에서 어울리는 또래들과의 행동을 닮아가는 모양인지… !? 다른 아이들 보다 두 살이나 늦게 학교에 갔는데도 내 행동은 역시 늦게 들어간 1 학년 코흘리개 또래 그대로였었나 봐… !?

그렇게 초등학교엘 다니면서도 나는 유난히 엄마를 밝혔어…

밤만 되면 칭얼대거나 울어대는 바람에 나보다 더 어린 내 여동생들은 엄마차지를 할 수가 없었어.

엄마도 당신을 너무나도 놀라게 만든 나에게 애잔한 마음이 드시는지 내 응석을 마다않고 다 받아주셨었고...

신도안의 할아버지께서도 아직은 확신을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서서 오줌을 누는 손자 녀석이 대견스러우신지 내가 어떤 응석을 부려도 그저 좋다 좋다만 하시는 거지.

내가 처음 들어간 초등학교는 신도안의 내가 사는 동네에서 그리 멀지 않은『신도네』초등학교였었어.

내가 걸어서도 충분히 다닐 수 있는 곳이었지.

또 때마침 대전에 있는 양조장에서도 많은 변화가 일고 있었어.

그동안 일본사람들이 운영하던 양조장은 전부 그 당시 미군들이 점령하고 난 다음 다시 우리나라사람들에게 불하한다고 하는 바람에 내 엄마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두개나 되는 술도가(釀造場)를 더 불하받으셔서 기왕에 우리가 하고 있던 양조장하고 합쳐서 더욱 커다란 양조장을 운영하게 되었던 거야.

그 바람에 엄마는 거의『대전』에서 기거하시며『신도안』에는 거의 오시질 않으시는 거야… 그야말로 매일 밤 우리 집에서는 난리가 난거지… 엄마가 없다고 울어대는 이집안의 귀한 도련님의 행패 때문에 할머니나 할아버지조차 잠을 못 주무실 정도인 거야.

그렇게 한해 두해 지나는 동안에 내가 나이도 먹어가고 또 아이를 교육시키는데도『신도안』보다는『대전』이 더 좋다는 결론이 내려져서 나는 삼학년 진학을 할 때쯤에『대전』에 있는 초등학교로 전학을 하게 되었어.

얼마나 좋은지 나는 며칠 동안 밥도 안 먹고 잠도 못 잤을 정도였었어.

내가 전학한 학교는 해방 전까지는 일본사람의 자식들이거나 조선(朝鮮)사람들 중에서도 아주 특별한 사람의 자식이 아니면 들어갈 수없는… 말하자면 그때당시로서는 귀족학교라고 평이 나있던『춘일(春日)』학교라고 하는 국민학교인 것이야…

그 학교는 시설 면이나 교과과정 면에 있어서도 대전 시내의 다른 초등학교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우수했기 때문에 대전에 사는 사람들이라면 너 나 할 것 없이 모두가 들어가고 싶어 하던 그런 학교였던 거야.

그랬던 관계로 해방이후에는 일본사람들이 모두 떠나고 난 다음이라 공교롭게도 그 학교에는 학생들이 거의 없었다는 거야.

그래서 해방이후에 다시 그 학교가 개학을 하려니까 학생들을 대전 시내에 있는 각 학교로부터 각 학년별로 편입생을 받아들여야만 했었다는 거야… 다만 1 학년 신입생들만은 처음부터 배정을 받아서 정원이 다 차고 말았다는 그런 학교인 것이지.

소문에 그 학교에 편입생을 모집하는 과정에서 엄청난 부정이 있었을 정도로 해방이후에도 그 학교는 대전 시내에 사는 사람들에게 선망의 대상이 되었던 그런 학교인 것이었어.

그런 귀족학교로『신도안』이라는 촌구석에서 다니던 보잘것없는 내가 전학을 오자마자 들어가게 된 것도 다 내 어머니의 세련되고 뛰어난 미모와 재정적인 뒷받침으로 가능했다는 것을 나는 나중에 어른이 되어서야 알게 된 것이야.

그때에 우리 집은 대전시내의 한 중심가이고 그 학교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넓디넓은 정원과 5 층짜리 양조장건물이 딸려있는 커다란 저택에서 살고 있었어.

모든 사람들이 다 어렵고 한 끼 밥을 먹는 것도 힘들었던 시절에 나는 내 할아버님의 기본재산과 내 엄마의 사업수완으로 인해서 누구보다도 풍요롭게 학교에 다닐 수가 있었어.

그때쯤… 나는 내가 뱀한테 물렸던 때로부터 거의 4 년이 지났기 때문에 내 고추의 수술자국도 다 아물어서 내가 학교에 다니는데 전혀 지장이 없었어.

수술당시에 내 고추에 매달아놓았던 이물질(異物質)들도 어느 사이에 내 몸에 흡수되어서 겉으로는 그 수술자국이 전혀 표시가 나지를 않았지만 그래도 다른 아이들 고추에 비해서 엄청나게 크고 어찌 보면 괴물처럼 생겨서 나는 남들이 보는 앞에서 내 고추를 내놓는걸 아주 질색으로 하는 버릇이 생기기도 했었지.

또 원래의 내 나이가 내 또래의 같은 학년의 아이들보다 두 살이나 많았기 때문에 공부하는 것도 그 아이들 보다 월등히 우수하기도 했었어.

그런 점만 뺀다면 나는 보통 내 또래 3 학년 학생으로 평범하기만 하고 어리광만 부리는 말썽꾼인 말하자면 나와 전혀 상관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골칫덩어리로 미운 학생일 뿐이 었던 거야.

앞에서도 몇 번을 말했지만 내 엄마는 정말 아름답고 늘씬한 미인이셨어.

물론 입고 다니시는 옷들도 훌륭하고 고급품들이지만 엄마는 언제나 그 당시에는 극히 드물게 양장으로 옷을 해 입고 다니시기를 좋아하셨어.

늘씬한 각선미를 자랑하시듯 높다란 하이-힐을 신고 또각또각 소리를 내시며 내가 공부하는 학교의 교실에 내 엄마가 나타나시면 내 담임선생님은 물론 옆 학급의 담임선생님들까지 모두들 혼이 빠진 듯이 내 엄마의 자태를 감상하느라 정신이 없으신 거야… !?

나나 내 엄마는 우리 학교의 선생님들 사이에 너무나 인기가 많은 거야.

나야 물론 아무것도 아닌 얄밉기만 한 학생이지만 다 내 어머니의 후광으로 인해서 인기가 있는 것 처럼 보였겠지만...

하기는 내 엄마는 학교에서 뿐 아니라 양조장(釀造場)안의 일꾼들 사이에서나 신도안의 동네 머슴들은 물론 심지어는 동네 아주머니들 사이에서도 너무너무 인기가 많으신 거야.

나는 여름이나 겨울에 방학만 되면 할아버지가 계시는 신도안 엘 가곤 하는 거야.

대전역에서 기차를 타고 호남선 쪽으로 몇 개의 정거장을 가다보면 두게 역이라는 곳에서 내리게 되지.

그곳에는 대전의 내 어머니한테서 미리 연락을 받고 그 시간에 맞추어서 할아버지께서는「언년이」누나와「돌」이 아빠를 내보내주시곤 하는 거야.

「언년이」누나는 나보다 여덟 살인가가 나이가 많은 내 큰고모와 동갑내기 누나인데 옛날에 그녀의 아버지가 내 할아버지께 무슨 죄를 짓고 도망을 했던 적이 있었다는데 그 후에 그녀의 어머니와 함께 우리 집에 잡혀 와서 아무 일이라도 해주며 보상을 한다는 명분으로 우리 집에 살고 있는 아주 예쁘고 마음씨고운 누나였어.

일종의 인질이라고나 할까… !? 아니면 죄 갚음이라고나 할까… ?

하기야 그 당시에는 남의 집에 얹혀서 일을 해주며 살더라도 밤만 세끼 먹여준다면 어떤 짓이라도 마다 않던 시절이었으니까… !?

처음에는 우리 집에서 종살이처럼 시작 했었으나 내 엄마가 만주에서 돌아오신 다음부터는 사람을 차별하면 안 된다고 하시며 나에게도 그녀에게 누나라는 호칭을 붙이도록 엄명을 하시고 이제는 아주 우리 집 식구로써 대우를 해주고 있는 터였어.

그래서 나는「언년이」누나라는 호칭으로 불러오고 있었지만 그녀는 여전히 나에게는 도련님이라는 호칭으로 부르곤 하는 거야.

그녀도 이곳 시골에서 살기에는 아까운 미모를 갖춘 팔등신(八等身)미녀였어.

역시 방학 때만 되면 나나 고모들 그리고「언년이」누나까지 함께 계룡산 기슭을 헤매고 뛰어다니며 놀기도 하고 용추에 가서 천렵을 하기도 하는 것이 너무나도 즐거웠어… 몇 년 전 내가 어렸을 적에 뱀에게 물려서 그만큼이나 혼이 났던 사실도 잊어버리고 말이야…

그 당시 내 큰고모는 스무 살 정도 되는 처녀였는데 워낙 활달하고 명랑한 성격인데다가 나를 워낙에 사랑하기 때문에 내 일이라면 무슨 일이라도 마다않으시는 분인 거야.

큰고모는 어렸을 적에 철모르고 나를 데리고 산에 갔다가 내가 뱀한테 물리는 사고를 당한 후에 언제나 나한테는 속죄라도 하시는 심정으로 나를 유독 사랑해주고 있는 거야.

내가 5 학년이 올라가던 해부터…

나는 언제부터인지 몰라도 왠지 모르게 남자와 여자의 이성(異性)관계에 대한 호기심과 흥미를 갖기 시작했어. 나도 남자이니까 자연히 나이를 먹어가면서 남녀관계의 성(性)에 관해서 눈이 떠지게 되는 것은 이상하다고 할 것이 못되었지만…

먼 훗날에야 내 자신을 깨닫게 된 사실이지만 이상하게 나는 다른 아이들처럼 단순한 남자들이 가지는 그런 흥미와는 달리 좀 이상한 방면으로 느끼기 시작했던 것 같았어.

다른 내 동급생들은 5 학년에 올라가는 나이라면 보통 열세 살이 되겠지만…

그래서 나도 외형적으로는 초등학교 5 학년에 걸 맞는 덩치와 정신연령을 갖추고 있었지.

가뜩이나 내 원래의 덩치가 왜소하고 계집애 같이 예쁘게만 생겨서 더욱 그렇게 어려보이는 것이었지만… 사실은 실지 내 나이는 그들보다 두 살이나 더 많이 먹은…

생리적으로는 막 사춘기가 시작되는 열여섯 살이 되는 나이였던 거야.

그러기 때문에 내게 사춘기가 찾아오는 것은 당연한 일인 것이지.

그런데 나에게 찾아온 그 호기심과 흥미가 엉뚱한 방향으로 빠지고 있었던 거야.

모든 사람들이 다 같이 내가 가장 사랑하는 내 엄마를 보면서 흠모와 연정을 느낀다는 것을 자각하게 되자… 특히 내 담임선생님이 내 엄마를 바라보는 눈길에서 연정(戀情)과 욕정(欲情)이 혼합된 것 같은 표정을 보게 되면 나는 그 뜻도 모르고 묘한 질투심 비슷한 감정이 일어나면서 내 머리 속에서는 그 담임선생님의 품에 안겨서 욕정에 못 이겨서 몸부림을 치고 있는 내 엄마를 보는듯한 착각이 상상 속에서 일어나며 나도 모르게 담임선생의 얼굴을 살피게 되고 그 자체를 즐기는 야릇한 버릇이 생기기 시작 한 거야.

말하자면… ? 네가 그렇게 그리워하는 사람을 나는 아무 때나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단 말이다 ?라고 하며 가진 자가 못가진자에게 자긍심을 갖거나 승리자가 패배자에게 우월감을 갖는 것 같은 그런 심리상태… 말이야… ??

이런 묘한 감정자체가 내게 있었다는 사실도 그 당시에는 전혀 느끼지 못한 채 그저 막연히 내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다른 남자가 애타게 그리워하고 또 내 엄마를 상대로 욕정을 느낀다는 사실 그 자체만을 즐기고 있었던 거야.

가히 훗날 큰일을 저지르고도 남을 만한 소질이 일찍부터 나타난 것이지.

또 그것뿐만이 아니었어.

같은 반 다른 학생들이 내 엄마의 늘씬한 각선미를 바라보는 눈에서도 담임선생님의 눈빛과 비슷한 눈길이 되는 걸 바라보게 되면... 언제나 나는 그 어떤 가진 자로서의 우월감을 넘어서 오히려 그들이 애태워하는 그 심정을 더욱 잔인하게 짓밟고 싶은 심정 말이야…

그 왜 있잖아… !? 정확하게 표현은 할 수 없지만… !?

남자들이 자기가 가장 흠모하는 스타일의 여자를 보게 되면 그 여자를 상대로 상상(想像) 속에서 온갖 형태의 망상을 즐긴다는 그 무언가(?)를 말이야… !?

보통사람들이라면 자기가 가장 사랑하는 여자가 다른 남자들로부터 아무리 그들의 상상 속에서지만 그런 취급을 받고 그런 상대가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아마도 노발대발 하겠지만… !?

나는 그때부터도 이상하게 그렇지가 않았어.

겉으로 보기에는 그토록 어리고 순진해보이기만 한 나에게 그런 망측하고 불순한 면이 있으리라고는 아무도 상상을 하지 못 하겠지만… !?

사실 그 당시 나 자신도 그런 미묘한 감정이 잘못되고 도덕적으로 나쁜 짓이리라고는 또한 생각지도 못했었어.

이런 식으로 나는 초등학교 시절을 보내고 있었어.

PREV > 내 어머니 1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