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남편은 개의치 않고서, 내 허벅지의 보드랍은 살갗을,
마치 뼈다귀를 핥는 강아지처럼 "싹싹" 길게 내민 혀로 핥아올린다.
뜨겁고 축축한 입김이 사타구니에 닿자 온몸이 다시 한 번 발끈 달아오른다.
"아~어떻해...흠뻑 젖은 걸 눈치챌텐데.."
얇은 면팬티가 흥건하게 젖어드는 게 느껴져 시선을 맞출 수가 없다.
내 몸 양옆으로 팔꿈치를 대고 위로 올라온 남편은,
이미 잔뜩 부풀어있는 유방을 한 입 크게 베어물었다.
질척하고 뜨거운 구강안으로 빨려들어간 유방,
남편이 한 번씩 강하게 빨아 당길 때마다 내 젖무덤 전체가 빨려 들어가는 기분.
그 민감하고도 강한 흡입에 나는 몸을 떨었다.
노련한 혀가 유두의 끄트머리를 핥아 올리고, 휘감고, 찌르고 어른다.
그리고 유두를 입안에서 고정한 다음 혀로 쓸어대자,
마치 움직임이 봉쇄된 가엾은 고치처럼 내 젖꼭지는 몸을 공처럼 동그랗게 감고
남편의 혀끝에서 이리저리 굴러다녔다.
단단한 이가 여린 살결을 살짝살짝 물고 긁고 할퀸다.
그러자 아랫배가 부슬거리고..도대체 숨을 쉴 수가 없다.
그여코 나는 고개를 발딱! 젖히면서 날카롭게 비명을 질렀다.
[아하~~여보...그..그만, 제발..요]
[음음..그만이라니..이제 시작인 걸..후후]
잘록한 내 허리를 쓸어대며 아래로 내려가던 손이 팬티를 끌어내린다.
남편 자신의 소유물..
손가락이 젖은 음부를 헤집자 내 몸이 저절로 들려 올라간다.
[아하~아~~그, 그러지 말아요, 하지 마요, 그건]
남편의 입술과 손가락 움직임에 따라, 예민하게 반응하는 젖가슴과 하복부.
방안 공기마저 밀도가 달라진 것처럼 나를 무겁게 짓누른다.
꿀물을 흘리고 있는 음부 입구에서 은근하게 원을 그리며 장난을 치던 손길,
갑자기 남편의 엄지손가락이 톡 튀어나와 발갛게 부풀어 있는, 예민한 살점을 건드린다.
그 순간 내 몸이 전기에 감전된 것처럼 침대 위에서 펄쩍 튀어올랐다.
[아흐으~~거..거긴.. 아우~~여..보!! ]
눈을 질끈 감았다 뜨며 온 몸에 퍼지는 그 짜릿한 감각을 누르려고 노력했지만,
이미 머릿속까지 까맣게 타버린 느낌이다.
다시금 눈앞이 빙글빙글 마구 돌아간다.
작은 살점을 꼭 누르고 위아래로 문지를 때마다.
짜르르 소름이 돋았다가 오한이 들다가 다시 확 뜨거워진다.
남편의 다른 손가락은 마르지 않는 샘처럼 사랑의 물을 쏟아내는 음부를,
슬금슬금 탐색하다가 슬그머니 더 깊이 파고들었다.
급류를 거슬러 헤엄쳐 올라오는 연어같은 그 손가락에 음문을 활짝 열어주는 여성.
내가 엉덩이를 들어올리자 음부를 구성하는 삼각주의 둔덕까지 내려오는 남편 입술.
[으으..이제 그만요..하아~~제발...다..당신을 ..넣어줘요. 아우~~]
음부 통로가 움찔거리며 남편 손가락을 위해 벌어졌다가 다시 꼭 조여지고,
남편의 뜨거운 혀는 음부 둔덕위에서 움직이다가,
건드려 달라고 애원하듯 삐죽 솟아 나온 작은 살점 위로 옮겨온다.
내 몸은 발작하듯 떨리며 침대에 거의 발뒤꿈치와 어깨만 대고 휘어졌다.
미친 듯이 애원하며 소리를 질렀지만,
남편은 마치 잔인한 고문기술자처럼 손길을 멈추지 않는다.
그 앙중맞은 핵심을 위 아래로, 양옆으로, 샅샅이 핥고
그리고 입술 사이에 물고 쪽쪽 빨고 혀끝으로 격심한 자극을 가해왔다.
사타구니의 모든 기관이 다 빨려 뿌리가 뽑히는 듯한 느낌에,
아랫배에 힘을 주고 버텼으나 도무지 참을 수가 없다.
[하으으~~안돼.. 더 이상은..아그그..나..나.. 못 참겠어..요..여보!]
절정의 오르가즘.
내 몸의 모든 감각기관들이 순식간에 폭발해 점점이 흩어지고.
그리고 절규같은 비명이 입술 사이를 비집고 터져나온다.
그렇게 작살을 맞은 물고기처럼 한참 동안을 푸득거리다가 온 몸이 축 늘어졌다.
잔뜩 치켜들렸던 엉덩이가 침대로 풀썩 내려앉고,
아직도 남편의 손가락이 박혀 있는 음문에서는 폭우가 쏟아진 계곡물처럼,
"콸콸" 사랑의 결과물이 줄줄 넘쳐 흘렀다.
[아아..몰라..그..그러면...하우우~~나..나!! ]
벌통에 코를 박은 곰처럼 내 사타구니에 얼굴을 묻고는 꿀물을 탐하는 남편,
푸들푸들, 움찔움찔, 간간이 사타구니를 꿈틀거렸지만..
이미 기운이란 기운은 다 빠져버린 듯 남편의 얼굴을 밀쳐낼 힘도 남아있지 않다.
얼마나 지났을까? 빨갛게 달아오른 볼을 어루만지며 고개를 든 나는,
몽롱한 시선으로 남편의 모습을 찾아갔다.
[으헉!! 다..당신...누구...?]
한 순간 정신이 나가버린 것만 같았다.
시간의 흐름도, 세상의 움직임도 알 수가 없다.
먹이를 포획한 야수처럼 하얗게 송곳니를 드러내고 싱긋 웃고있는 남자.
아직도 남편의 뜨거운 체온과 내 몸안에 남아있는 그 감각들의 흔적.
분명히 불과 수 초전까지만 해도 세상의 꼭대기에서 남편의 손길에 의지하고 있었는데,
지금은 낯선 공간, 어두운 새장속에서 마치 상처입은 작은새처럼,
날개를 접은 채 오도마니 떨고있는 내 모습.
무엇이 잘못된 걸까..?
주춤주춤 침대가장자리로 내 몸을 말아넣으며 생각을 굴렸지만..
섬뜩하게 고막을 울려오는 음침한 목소리만 들릴뿐이다.
[흐흐흐, 내가 누구인지 그것은 중요한 게 아니쟎아..
지금부터 무얼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하다면 중요하달까..안 그래? 미인아줌마..]
[너..너! 이.. 이제보니...악! 놔.. 이 나쁜 놈! 사기꾼..짐승.. 변태..]
[후후..앙탈은. 하긴 술에 취해 죽은 듯이 누워있는 여자는 흥미가 없지..
반항하는 여자를.. 이렇게..]
[아악! 놔.. 놔..이 팔 놓으란 말이야..이이..]
내 팔목을 옭아쥔 남자 손이 갑자기 사타구니 깊숙한 곳을 더듬어오자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위태롭게 내 몸을 방어하고 있는 한 조각 마지막 천이 거친 손길에 금새 찢어질 것 같았다.
허벅지를 꼭 모아 그 손길을 막으려고 했지만,
이미 내 의도를 알아챈 듯, 한쪽 다리를 내 사타구니로 집어 넣어 강제로 벌어지게한다.
그렇게 실랑이를 하는 사이 사타구니 틈새가 점점 넓어진다.
그리고 채 식지않은 내 몸의 중심에서 진한 체향이 뿜어지듯 풍겨왔다.
흐릿한 동공속으로 남자의 눈에 비친 내 모습이 투영되어온다.
발버둥치는 몸짓에 따라 흔들리는 젖가슴,
미쳐 닫히지 않았던 몸이 다시금 열리고 있다는 신호를 보내주듯
음부 입구가 촉촉한 끈적임으로 젖어들었다.
[아~~안돼, 이 나쁜 넘..아으윽!! 나를 강제로..제발...]
이미 욕정에 눈이 먼 남자는, 비릿한 웃음만 징그럽게 흘리면서,
목덜미를 따라 내 쇄골위쪽으로 입김을 불어넣는다.
"안돼..짐승같은 사내에게..당할 수는..없어...
"아아~~여보! 도와주세요..은애가..은애가.. 헉! "
마지막으로 잡고 있던 이성의 끈을 꼬옥 붙들고, 마음속으로 아무리 애원을 했지만 소용이 없다.
남자의 입술이 젖무덤을 덤썩 베어물었다.
나약한 한 마리의 작은 새를 타 눌러는 야수같은 남자.
힘껏 저항의 손짓을 해보지만 왠지 팔에는 힘이 실리지 않았다.
[아암..그래, 그래야지. 여자가 그런 맛이 있어야지..후후]
[아아~~그, 그..만..제발 나,나를 놓아줘요..이러지 말아요 네?]
사정도 해보고 부탁도 해보고 애원도 해 보았지만 도무지 씨알도 안먹힌다.
허연 허벅지 사이로 흥건한 물기로 얼룩이 진 팬티가..보이는가 싶더니,
교묘한 남자의 손놀림에 후루루 허물이 벗어지 듯 흘러내린다.
도톰한 둔덕 아래, 곧게 갈라진 살틈새로 남자가 얼굴을 묻어왔다.
[아학!! 아아~~안돼...이봐요..네에? 이 짐승아..제발..안돼!!]
쭈웁..쯥쯥..흐릅 흡흡!!
선홍빛 속살을 드러내고 있는 예민한 아래쪽 부분을 쓸어올리는 남자의 혀,
살살 핥고, 입술로 물고, 잡아 당기며..이따금 혀끝을 세워 콕콕 찌르는 등
갖은 방법으로 내 음부속살을 맛보는 남자.
한 가닥 남아있던 내 머릿속의 하얀 빛이 점점 더 짙은 어둠속으로 풀려간다.
이성은 반항하고 있었지만, 점점 뜨겁게 반응해버리는 내 몸.
남자의 움직임이 빨라질수록 숨쉬는 것조차 괴로워진다.
연신 "컥,컥" 잠기는 듯한 격한 숨결을 토해내며 내 목이 뒤로 꺽어져 넘어갔다.
순식간에 남자의 바지가 내려가고...
검붉게 충혈된 남성의 심벌이 그 모습을 드러낸다.
남자의 손이 가볍게 몇 번 자신의 물건을 훑어내린다.
이내 빳빳하게 곧추선 남자의 상징은 무섭게 팽창을 해나가며,
마치 성난 들소처럼 "씩씩" 더운 콧김을 뿜어낸다.
내 몸을 가볍게 들어올리고는 그대로 하복부를 관통해 들어오는 남자의 상징.
[이..이럴 수가...아~~으윽!! 이이..캬악!! 아읏!]
[...............??!!]
털푸덕!! 쿵~!...
나는 마지막 반항의 몸동작으로 벌어진 허벅지를 옆으로 비틀었다.
그리곤 젖먹던 힘까지 다 짜내어 짐승같은 사내의 낭심을 힘껏 걷어찼다.
근데..갑자기 답답함이 사라지는 듯한 기분과 함께,
무언가 허전함이 느껴지면서 내 몸이 어딘가로 쿵 떨어졌다.
바로 그때다. "똑똑" 문을 두드리는 노크소리가 들린 것은.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발딱 일어났다.
아직도 몽롱한 두 눈을 번쩍 뜬 순간, 제일 먼저 시야에 들어오는 낯선 방안풍경.
그제사 꿈을 꿨나 하고 주위를 두리번거리는데..
다시 한 번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울려온다.
"휴우~~꿈이었나보네..."
안도의 한숨을 길게 내쉬었지만, 나는 가위눌린 듯한 답답함을 느꼈다.
너무나 선연한 꿈의 흔적이 아직도 전신을 스물스물 기어다니는 것처럼,
그 낯선 이물감의 감촉이 여전히 내 몸 깊숙히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손바닥이 촉촉이 젖어있고 이마에도 식은 땀이 송글송글 맺혀있다.
머릿속을 어지럽히고 온통 뒤엉키게 만든 그 남자,
분명 처음은 남편과 사랑의 몸짓을 교환했는데..두 번째 그 야수같은 사내는,
도무지 뿌연 안개속처럼 얼굴 형체가 모호해, 기억이 되지않았다.
심하게 몸부림을 치다, 침대위에서 굴러떨어진 나는,
그제사 헝클어진 머리칼을 쓸어넘기며 마악 열리고 있는 방문께로 눈길을 돌렸다.
[으..은애씨..괜챦으십니까..?]
[...당신...그럼..여긴..?!]
반쯤 열려진 문틈으로 얼굴만 디민 남자는 서준, 바로 그 작자다.
부스스한 머리, 잠을 못잤나..? 입을 크게 벌리고 하품을 하다말고는 멈칫한다.
"아~ 이게 무슨 망신이람..하필이면..어머낫! "
헝클어진 실타래를 풀 듯 차근차근 기억을 더듬었으나,
분명 룸에서 나온 것까지는 생각이 나는데..그 다음은 잘 떠오르지 않았다.
[무..무슨 짓을 한거에욧..? 이게 왜...?]
민주에게서 빌려 입었던 원피스대신 내 몸에 걸쳐져 있는 남자와이셔츠.
나는 도끼눈을 뜨고 남자를 째려보았다.
앞단추도 몇 개나 열려진 채, 반컵 브래지어가 볼상 사납게 밀려 있는 흉한 몰골,
양볼이 화끈 달아올라 얼른 앞섶을 여미긴 했지만...
[저어..그게 말입니다..어떻게 된 사실이냐면..]
[답답해..얼른 사실대로 말 못해요? 왜..왜...서, 설마 내 몸에...?]
[아, 아닙니다. 절대 그런 일 없었습니다.
어떻게 된 일이냐면..은애씨가..저기..그 비싼 술을..옷에다..다 쏟으셔서..]
[어머나..!!]
남자가 채 말을 끝내기도 전에 나는 침대귀퉁이에 얼굴을 파 묻었다.
토를 완곡한 비유로 표현해, 내 수치심을 들어주려는 남자의 배려,
"에구구..이게 무슨 왕챙피람.."
술에 취한 나를 차마 모텔같은데로 데려갈 수가 없어서 자신의 집으로 업고 왔다는 이 남자..
기가 막힌다..심은애, 그러고 보니 하얀 침대시트도 새 것으로 갈아씌운 듯했다.
[큭! 평소에도 잠버릇이..]
[뭐에욧..? ]
[이크, 자..여기 꿀물 좀 드시구요..자초지종은 이따 얘기 나누도록하죠.
원피스는 세탁해서 말리는 중이니..걱정 마시구요]
쟁반에 받쳐진 꿀물컵을 방안으로 살짝 디민 남자는 조용히 문을 닫았다.
"어떻해..내 옷을 갈아 입혔다면..호..혹시"
여전히 끈끈하게 젖어있는 아래쪽을 은연중에 손으로 확인하던 나는,
최근에 벌어진 일련의 일들을 머릿속에서 조합해보며 한숨을 푸욱 내쉬었다.
앞으로 다가올 불투명한 미래가 왠지 초조하고 불안했기 때문이다.
* * * *
세탁용 고무장갑을 낀 내 손끝에서 물을 주르르 흘리며 들려올라오는 남자의 와이셔츠,
민주에게 빌려 입었던 원피스와 함께 물속에서 휘적거려진 그것은,
남편이 아닌 외간사내의 옷이다.
그는 막무가내로 만류를 하였지만,
하룻밤을 꼬박 내 몸에 휘감겨 여자의 체취가 흠뻑 벤 그 셔츠를,
차마 그냥 벗어두고 나오기가 민망스러웠다.
손빨래를 마치고 쪼그려 앉았던 다리를 길게 뻗어올린 순간,
어찔한 어지럼증이 피잉 눈앞을 스친다.
베란다의 빨래걸이쪽으로 걸음을 옮기는 내내,
결코 가볍지 않은 그 현깃증은 사라지지 않았고, 걸음걸이 마저 휘청이게 했다.
평소 가끔씩 눈앞이 어질거리는 가벼운 빈혈 증세는 가지고 있었지만,
오늘처럼 이렇게 심한 적은 없었는데..
나만의, 아니 남편과의 보금자리에 낯선 타인의 흔적이 묻혀졌다는 자괴감 때문일까.
아니면 누군가가 내게.. 정신을 차리라고 넌즈시 일깨우는 작은 경고성 알림일까.
혼란스러운 머리를 가만히 가로저으며,
아직도 물기가 "뚝뚝" 떨어지는 남자의 셔츠와, 민주의 원피스를 빨래 걸이에 널었다.
그리고 나는, 살포시 이마를 한 손으로 짚으며 베란다 창가로 한 걸음 다가갔다.
"휴우~~믿기지 않네..어제는 그렇게 억수같이 쏟아지던 비가.."
온 몸이 내려앉을 정도로 쏟아져 내리던 폭우,
그 속에서 꼼짝도 않고 사라지는 승용차를 바라보고 있었던 나 자신의 모습이,
새삼스레 희미하고 낯설게 뇌리속에서 떠오른다.
창대같은 빗줄기가 길바닥의 고인 빗물위로 화살처럼 박힐 때마다,
마치 판자에 못질하는 것처럼 "타다닥"소리를 내며 무수한 분화구를 만들었었는데..
천둥까지 동반할 때는 꼭 나 자신의 고통을 대변하는 것처럼 들려,
가슴이 내려앉고 심장이 떨렸었는데...
그런데..그런데..불과 몇 시간도 채 지나지않아..
어처구니 없게도 그런 낯선 풍경속의 술집에서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취할 수 있었는지..
"후~~휘유~ 미쳤어...내가 미치지 않고서.. 어떻게 그럴 수가.."
언제 그렇게 비가 왔냐는 듯 오후의 햇살을 가득 받은 아파트 단지는,
마치 황금가루를 뿜어내는 듯이 눈이 부신다.
이름을 알 수 없는 나무들과 잘 어우러져,
한 폭의 풍경화를 연상케 하는 단지의 녹색 푸르름.
아득하게 내려다 보이는 노천주차장에 세워진 차들이, 마치 모형물처럼 자그맣게 보인다.
아른거리면서 또 다시 피어오르는 현기증에 얼른 고개를 들어올렸다.
햇살 사이를 비집고 한가롭게 흘러가는 몇 조각의 구름.
그것은 이제와는 전혀 다른 세계로 진입케하여,
영락없이 환상속을 헤매는 것 같은 착각마저 느끼게 한다.
"색다른 세계속의 나란 여자는..정말이지.. 어처구니가 없네.."
나는 비로소 부메랑처럼 현실로 돌아와,
천천히 거실을 향해 걸음을 옮기며 곰곰히 그 남자를 생각했다.
* *
꿀물을 마시자 세탁조속의 빨랫감처럼 뒤엉켜 있던 속이 조금은 가라앉았다.
간사한 인간의 몸은,
한 가지 불편함이 해결되면 또 다른 욕구를 생성시키는 모양이다.
갈증 해소와 함께 거북하던 뱃속이 진정되자 심한 허기가 느껴졌다.
나는 그제사, 어제 오후부터 그 독한 술 이외에는,
아무 것도 먹은 게 없다는 걸 인식하고 무언가 조금 먹었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근데..마치 그런 내 식욕을 미리 알고 있었기나 한 것처럼,
자신의 거처인데도 똑똑 노크를 한 뒤에 다시금 얼굴을 내민 남자는,
쟁반에 받쳐진 채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죽 그릇을 슬그머니 내밀었다.
[마땅히 끓여드릴 게 없네요..야채 스픈데..이거라두 좀..]
매무새를 가다듬고 침대 귀퉁이에 걸터앉아 있던 나는 거부하지 않았다.
[불편하시면 나가 있을께요..아직 좀 이른 시간이라.. 지금 나가시면..]
[...............!?]
긍정도 그렇다고 부정의 의사표시도 하지않고, 나는 스푼을 들어 입가로 댄다.
베란다로 통하는 창문에 커튼이 드리워져..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모르고 있었는데..
남자는 낯선 장소, 자신의 집에서 내가 벗어나는 것까지 신경을 써온다.
[입안이 깔깔했는데.. 어떻게 끓였는지..맛있네요.. 잘 먹었어요]
내가 한꺼번에.. 내 몸 상태랑, 음식 칭찬까지 늘어놓자,
컴퓨터가 두 대나 놓여있는 책상..그 앞 의자에,
엉덩이만 엉거주춤한 자세로 걸치고 앉아 있던 남자는 여린 미소를 띄우며 입을 열었다.
[차사고 때문에 그러신겁니까..? 아니면..또 다른..? ]
[네에? 무슨...?]
[어제는 좀 실망스러웠습니다..첨엔..그냥 내버려둘까도 생각했습니다만..
제가 잘못 알고 있었나요? 은애씨 같은 분이...호스트바~에서 술을 마셨다는 건..]
[그럴 일이 있었어요.. 아니, 근데 가만 듣고보니.. 기분 나쁘네요..]
[기분이 나쁘다뇨..? 전 다만 저의 솔직한 속내를 말씀드린 겁니다.
첫인상이 우아하고 품위가 있어 보였는데..가식으로..]
터무나 없는 차 수리비에 대한 선입견 때문일까.
왠지 이 남자만 만나면 사기꾼, 나쁜넘이란 인식이 쉽게 지워지지 않았고,
불과 세 번의 만남이지만 괜히 억하심정으로 내 입에서 나가는 말이 곱지않았다.
남자의 말이 채 끝나지도 않았는데, 나는 생전 처음 말꼬리를 비틀어 물었다.
[진짜 웃기네요..당신이 뭔데.. 남이사 바~에서 술을 마시던, 아니 거리에서 춤을 추던..
왜 꼬치꼬치 캐묻고.. 실망 운운하세요..?]
퉁을 먹은 남자는 좀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멀뚱멀뚱 내 얼굴만 쳐다보았다.
[아니, 그리고..누가 여기로 데려다 달라고 부탁이라도 했나요?
길거리에서 쓰러져 자던 말던 내버려뒀으면..그만아녜요..
그럼 꿀물 탈 일도 없었을테고..스프도..
꿀물이랑 스프 값 얼만지 차 수리비에 보태서 청구서 보내세요.]
[그..그런...? 하~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나..참! 어이가 없습니다]
빈 그릇이 담긴 쟁반을 탁! 소리가 나도록 남자의 가슴팍에 안긴 나는 발딱 일어났다.
원래 미인에게는 약한 게 남자?
나는 속으로 미안한 마음을 느끼면서도 일부러 지지않으려고 강하게 밀어붙였다.
그리고 그가 벤추의 차주란 사실이 더욱더 나를 그렇게 만들었는지도 몰랐다.
남자는 원피스를 가져오느니 어쩌느니 하면서 덩달아 몸을 일으켰다.
"아~ 어머나...! "
순간적으로 내 차림새가 머릿속에 떠 오른다.
침대에 앉아 있을 때는 그럭저럭 셔츠 자락으로 아래를 가린 형태였지만,
자리에서 발딱 일어나는 순간, 마치 박스형 초미니 스커트를 입은 것처럼,
하얀 내 허벅다리가 거의 다 드러난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도로 주저앉을 수도 없고..괜히 퉁명스럽게 남자에게 또 쏘아부쳤다.
[그리고 어떻게 된거에요..? 당신이..왜 하필 그 때..? ]
[우선..잠깐만 앉아 계십시요.. 은애씨..옷을 가져 올테니..]
하여튼 이 남자 눈치 하나는 빨라요.
내가 옷을 갈아입기를 기다려 다시 방안으로 들어온 남자는 자초지종을 얘기했다.
뭐, 호스트바는 자기가 아는 형이 운영하는데 지분을 투자했다나 뭐래나..
그리고 한물 간 모델이지만, 스포츠 에이전트처럼 신인 모델을 어떻게 한다나..
아무튼 착실하게 애널리스트 활동도 하는데..나중에 전문 경영인이 되는 게 꿈이랜다.
근데 그 어려운 전문 용어를 내가 어떻게 이해해..
[본업은 명함에 적힌 그대로입니다.은애씨!]
[몰라요, 난 그딴 거..그날 핸드백에 구겨 넣은 뒤론..찾아보지도 않았으니까]
[하~ 그건 좀..너무하시네요, 명색 차사고 피의자가...]
[그래요, 나 그날 사고낸 직접 당사자맞아요.. 수리비만 물어주면 되지..
내가 왜 당신같은 나쁜 너..ㅁ...직업이 뭔지 일일이 챙겨야 하는데요? ]
[뭔가 오해를 하신 모양인데.. 그래서, 아! 이 남자 내게 수작을 거는구나,
무슨 꿍꿍이 속일까..왜 열흘 동안 전화도 안하고..지금 그 생각하시는 거죠?
솔직히 툭! 털어놓고 모두 말씀 드릴까요? 네? ]
오해는 무슨..나쁜 넘! 사실이쟎아.
차 수리비를 미끼로 멀쩡한 가정주부..꼬득여서 미시 모델이 어쩌니저쩌니..
그게 꿍꿍이구 수작이지..이 사기꾼아.
잠깐 그런 생각들로 대답을 하지 못하는 사이, 남자는 진지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은애씨가..믿던 안믿던, 차사고와 어제 만남은 정말 우연입니다.
한정식당에서 말씀드린 그 이야기와는 별개구요.
하긴 뭐, 당장 모델일을 하신다고 해서 차 수리비가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전 다만..워낙 뛰어난 은애씨의 참신한 모습이..그날 제 눈에 확! 들어왔기 때문에..
그런 제의를 한 것 뿐이구요..]
[소문들으니까..당신같은 사람들..별루다 좋은 직업은 아니라구..]
[그건 그 바닥 생리를 나쁘게 받아들이는 일종의 편견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예전이나 지금이나..좀 복잡하고 이상한 일들이 벌어진 건 사실이구요.
알고 계시겠지만..은애씨가 싫다고 하셨으니..저야 수리비만 해결되면 그만이죠.]
[그..그거야..그렇죠. 내가 그 돈만 지불하면...]
이 남자 내가 "돈이 궁할 것이다" 라는 말은 입밖에도 뻥긋않는다.
한편으로는 사기꾼에 나쁜 놈으로 보이는데,
접촉사고가 난 그날, 그리고 오늘까지 세 번 조우했지만..
그런 선입견만 아니라면 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닌 것 같기도 했다..
[근데, 왜.. 전화질도 안하시구..차 수리비 독촉도 하지 않아요..?]
[글쎄요, 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보험처리하구 모자라는 부분은..은애씨가 어떡하던 알아서 하실테지만..왠지..]
[것봐요..그게 꿍꿍이구 수작이쟎아요.
어떻하던 당신이 던진 미끼를.. 내가 덥썩 물기 바라는..]
[아~ 진짜, 답답하게...사람 말을 못믿으시네요..
[세상 믿을 사람이 어디있어요..? 허우대는 멀쩡해 가지구...
어리버리한 아줌마한테 사기나 치는 사람이 수두룩한 요즘에..]
[하하..하도 어이가 없어 웃음이 다 나옵니다.
어딜봐서 은애씨가 어리숙한 겁니까? 다른 사람앞에서는 저 이러지 않습니다.
은애씨니까 망정이지..벌써...]
[지금, 나..겁주는 거에요..? 고소라도 하시게..요?]
어이가 없다는 듯, 나를 말끄러미 바라보던 남자는,
부수수한 앞머리칼을 한 번 쓰윽 긁어올리며 또 다른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제가 현역에서 활동할 때부터..저를 후원해 주시는 분이 한 분 계십니다..
제법 큰 기업체의 중역이십니다.. 이를테면 광고주라고 할까요..]
[더 이상 듣고 싶지않네요..시간도 많이 지났구..그만 가봐야겠어요]
[아니, 아직 제 얘기 끝나지 않았습니다.
가실때 가시더라도 제 말 마저 듣고 가십시요]
나는 순간적으로 움찔했다.
방금전까지..상냥하고 다정다감하게 이야기하던 남자의 모습과 뭔가가 다르다.
뭐라고 표현하면 좋을까?
잠이 모자란 듯 흐리멍텅했던 눈이,
마치 호수의 밑바닥처럼 무겁게 가라앉은 그런 눈빛을 쏘아낸다고 하면 맞을까.
그리고 남자의 그런 포스는 언젠가 꼭 한 번 남편에게서 느낀 적이 있었다.
오래전..내가 몸 담고 있었고 오빠를 처음 만났던 바로 그 자미정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