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화 (7/37)

서른쯤 되어보이는 깔끔하게 생긴 남자가 반갑게 인사를 하며 우리를 안내한다.

수입 대리석처럼 생긴 돌들로 벽이 꽉 차 있고, 양탄자가 깔린 복도가 미로처럼 엉켜있다.

안으로 들어갈 수록 점점 더 의문이 들었다.

근데, 조금 이상하다?

외관은 분명 괜찮았는데 안으로 들어오니 왠지 모를 야시시한 분위기.

[여기가 술집..? 정말 괜찮은 거야?]

[어..괜찮아..괜찮아...]

민주는 내 말은 들은체 만체.."괜챦아"를 연발하더니..

 "술을 마시는데 꼭 이렇게 비밀스런 장소를 찾아와야 하나.." 하는

나의 의문스런 표정을 읽었는지..

한걸음 뒤처져 시골아낙처럼 촌티나게 걷는 내게 낮게 속삭여왔다.

[은애..너...그 우울한 기분, 확! 풀릴거야..여기..남자접대부가...]

[뭐...남자접대부...? 아니, 그럼...?]

[뭘 그렇게 놀라니...놀라긴, ]

어렴풋이 남자가 여자를 접대하는 여성전용 바가 있다는 소문은 들었지만,

말로만 듣던 그 호스트빠에 들어오다니...

그러나 여기까지 와서, 차마 도루 돌아가겠다고 말을 하지 못하는 나.

울고불고 미친년처럼 난리 부르스를 출 때가 불과 두 시간쯤 전인데..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내 마음은 또 한번 흔들린다.

나란 여자의 본성은 나 자신도 헷갈린다.

단순하면서도 우유부단한 성격에, 겉으로만 착하고 순한 내숭녀?

아니, 나쁜 말로 나는 또라이가 분명했다

 "그냥, 술만 마시다 나오면 되지..뭐..지금 내게 필요한 건 술이니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민주의 뒤를 졸래졸래 따라갔다.

드디어 모습을 보인 카운터. 그리고 우리들을 맞이하는...매니져.

아까 이어폰을 귀에 낀 사내만 빼고는 하나같이 잘생긴 남자.

수연은 매니져의 엉덩이를 한번 툭! 치면서 방안으로 들어갔다.

어두침침한 조명때문에 한참 눈을 끔뻑인 후에야 실내의 정경이 보인다.

우리 아파트 거실만큼이나 넓은 공간에 한쪽으로 노래방 기계도 놓여있고,

쿳션이 좋은 소퍼가 비잉 둘러진 가운데 크다란 테이블이..보였다.

천장에 매달린 알록달록한 조명이 조금 밝아진다.

그리고 문이 열리며 나중에 우리를 안내했던 깔끔남이 들어와, 

수연에게 뭐라고 지시를 받는다.

얼마 지나지않아..먹음직스럽게 장식된 과일쟁반, 마른 안주류와 음료수..

그리고 발렌가 뭔가 하는 꽤 비싼 고급 양주가 아예 테이블 바닥에 깔리듯이 놓여진다.

심한 갈증을 느끼고 있던 나는, 아직도 아린 심장을 달래려고 서둘러 술병을 집어들었다.

[얘는...조금만 기다려..남자가 따라줄테니까..]

민주가 내 손을 붙들며 제지를 한다.

채 4~5분도 지나지 않았는데.."똑똑" 노크소리가 울리더니,

룸문이 열리고, 왠 남자들이 주루루 들어왔다.

남성적이면서 섹시할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어린 남자,

아주 살짝 드러난 가슴과 탐스런 바디라인이 돋보이는 셔츠 차림의 남자.

얼핏 젖은 듯한 흰 셔츠 깃이 새미정장의 쟈켓 사이로 힐끗 보이는 모델같은 남자.

뭔가 쉽게 범접할 수 없는 포스를 물씬~ 풍기는 남..ㅈ..ㅏ

맙소사...!  5 번째 인가 들어와 선, 남자는 바로..바로...!! 동건씨...!

그때서야 희미한 기억 한 조각이 내 머릿속에 떠오른다.

마사지사를 하면서 술집에서 가끔 아르바이트를 한다고 했던..맞아! 호빠에서..알바!

조명이 밝지않은 탓에..아직 나를 발견하지는 못한 듯, 

약간 다른 곳으로 시선을 던지고 섰다.

그리고 2명 더 모두 일곱 명의 남자가 우리들앞에 주욱 줄을 선다..

[쵸이스하시죠..사모님..]

[오늘 주빈이..먼저..응? 은애..?]

수연은 내게 먼저 지목할 기회를 주었지만 나는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다..

[나중에 괜히..후회하지 말구..]

민주가 옆에서 멍해있는 내 옆구리를 쿡 찌른다.

나는 얼른 고개를 돌렸다.

그때, 자신들을 지목해 놀림을 줄 손님들이 어떤 부류인가 살피듯,

시선을 보내오던 동건씨의 눈과 내 눈이 딱! 마주친 때문이다.

나보다 더 놀라는 모습이 그 짧은 순간에도 느껴진다.

[나..나는 나중에...언니랑..민주 니가 먼저..]

[야, 내숭 그만 떨고..왜? 첫 눈에 봐도 맘에 드는 파트너가 없어?

 이 집 에이스급 선수는 모다 불러 달랬는데..하긴 우리 은애가 눈이 좀 높긴하지..]

[그래두..저기 세번째 남자 정도면...]

[..........!!]

계속해서 미적거리며 내가 망설이자..그럼 후회하지마 그러면서..

수연은 첫번째 남자...자기보다는 10살쯤은 어려보이는 남자를..

그리고 민주는 하필이면..나, 참! 동건씨를..지목했다.

[사모님..제게.... 미인을 모시는 영광을..]

엉뚱하게 남자가 한 명 앞으로 나서며 나를 향해 ..파트너로 지목되길 자청한다

[그..그러세요]

어차피 누구를 파트너로 지목하던 내게 문제될 건 아니다.

술만 마실테니까..

근데 자꾸 민주의 파트너로 선택된 동건씨가 맘에 걸린다.

어떻게 이런 곳엘 왔느냐는 눈빛을 한 번 보내고는 더 이상 내색은 하지않았고,

이따금씩 나를 의식하는 듯 했지만, 

처음보는 사람처럼 사모님, 사모님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민주와 어울렸다.

다행히 민주도 그가 마사지사라는 것은 모르는 모양이다.

나는 옆에 다가와 앉은 내 파트너, 이름이(물론 가명) 정재랬나..

그가 공손하게 따뤄준 술을 단숨에 입가로 밀어올려 홀짝 마셨다. 

대학생으로 보이는 어린 남자와 어울린 수연은 벌써 모종의 그림을 그리고..

정말 요지경속 같은 세상이다.

여자가 남자접대부를 곁에 앉히고 술을 마시다니..

[진동민..어째 개그맨 갸랑 이름이 똑같냐..우리 춤한 번 추자..]

민주는 남자에게 안기다시피 테이블 앞쪽의 넓은 공간으로 나간다.

노래방 기계에서는 박자가 빠른 댄스곡이 흘러나오고...

홀짝 술잔을 비우며 슬그머니 건너편을 바라보니..

어린 남자를 마치 젖먹이 아기처럼 자신의 가슴에 품고,

입안에 머금은 술을 빠는지, 남자의 젖은 입술을 핥는지..

분간하기 어려운 행위를 서슴없이 행하고 있는 수연.

어느새 남자의 바지를 벗게했는지..아랫도리 삼각형의 팬츠위에 한 손이 놓여져 있었다.

[사모님은 이런 곳에 오실 분이 아니신 듯..]

[큭! 왜.. 나같은 여자는 여기 오면 안되요?]

[아, 아닙니다..제 말은..그런 뜻이 아니라..왠지 고결하신..귀품이..]

얼굴도 잘 생기고 매너도 깍듯 했지만 어딘가 나처럼 어슬퍼 보이는 정재,

나중에 얘기를 나누면서 알았지만 호스트빠에 나온지 한 달밖에 되지않았단다.

[무슨, 기분 좋지않은 일이라도..]

[...그냥요, 술을 마시고 싶대니까..친구가 여길로 끌고 왔네요..]

[저도 한 잔 주시겠습니까? 사모님!]

건너편에 앉아, 남자의 아랫도릴 만지고 있던 수연이,

파란 종이 몇 장을 파트너의 팬티 속에다가...

나는 시선을 돌려 민주와 얽혀있는 동건씨를 흘끔 바라보고는 이내 고개를 돌렸다.

괜히 신경쓰면서 질투의 감정을 느낀다는 인상을 심어줄 필요는 없으니까, 

빈속에 독한 술이 넘어가니 취기가 오르는 듯했지만 정신은 말짱하다.

낯선 풍경속의 내 모습이 왠지 어설펐다.

나란 여자는 이렇게 나약하고 단순한 동물이었나 보다.

깔끔하고 댄디한 스타일의 정재는 이미 내 분위기를 간파했는지,

유머러스한 농담보다는 업소 얘기를 주로 하기 시작했다.

눈치도 빠르고 요령도 있어야 이런 곳에서 생활한단다.

술 담배..섹스, 그렇게 몸 버려가면서 산다는 것이 어쩌면 이런 곳의 생리인 듯해,

그들, 아니..동건씨의 애환이 느껴진다.

주객이 전도된 듯..정재는 내가 채워주는 술잔마다 사양않고 원샷을 했다.

그러나 결코 흐트러짐 없이 절제된 어투로 이야기를 이어갔다.

[사모님처럼 이야기하고 술만 마시는 여자분도 있습니다. 별로 안힘듭니다.

 아니 오히려...오늘 저는 영광입니다..미인이신데다 품위도 있으시구요]

[음..나 그렇게 좋은 여자 아니에요..계속 얘기해보세요]

[그런데 대부분의 여자들은 여기 오시면 이상한 거 시킵니다]

[이상한 거라뇨..?]

[예를 들어 일렬로 세워놓고 딸딸이 쳐서 아, 죄송합니다..자위시켜서 누가 빨리 싸는가. 

 그래놓고 10만 원짜리 수표 서너 장..제일 먼저 사정한 놈 가져가라는거죠]

[그..그럼, 만약에 우리가 시켜두요..]

[사모님이 시키신다면...저는 자진해서..기쁜 마음으로..]

[호호, 농담이에요, 모르죠..저기 저 언니면 또 어떻게 나올지는..]

술에 취하고, 정재의 사근사근한 말빨에 취한 나는,

점점 더 그 낯선 풍경속 어색한 분위기 사이로 헤엄쳐 나가기 시작했다.

민주와 동건씨가 키스를 하던 말든, 수연이 젊은 남자에게 요상한 짓거리를 강요하던 말든,

고개를 기울인 나는, 파트너의 어깨를 빌리면서 흐느적거린다.

[그냥 그 돈 받을 필요없이 살짝 치는척 하고 싶은데요, 

 그렇게 하면 여자들 눈빛이 확! 달라져요, 

 그냥 하기 싫어도 돈에 눈이 먼척 존나게 막 합니다. 

 진짜..처음 하면서는 속으로 얼마나 눈물나고..세상이 엿같은지..]

[으..후우~~정말 그렇겠네요..남자가 여자앞에서...]

[자존심 그런 거 다 버려야 합니다. 그걸 또 폰카로 찍는 여자들도 있습니다. 

 또, 기차섹스라고, 남자끼리 하는 건데..차마 그 얘긴 사모님처럼,

 고귀하신 분앞에서 말씀드리지 못하겠습니다]

[괜챦아요..있는 그대로 얘기하세요..자아..술 한 잔 받으시구요]

[감사합니다..사모님...무슨 괴로운 일이 있는지는 저로써 알 수 없지만..

 과음은..이거..시원한 과일이라도 좀 드시면서..]

[훗! 고마워요...하던 얘기 마저하세요..제게 신경쓰지 마시구요]

[네에, 그럼 있는 그대로 리얼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아줌마들이 오면 섹하자고 많이 해요.]

[여기서요..?]

[네, 웃음을 띄우면서 상대합니다. 그래도 30~40대 아줌마들은 착해요. 

 문제는 20대 여자들.. 술집나가는 빠순이들..

 하긴 그 여자들도 자기들이 받는 스테레스 풀려고 여기 오니까 이해는 되지만..

 별 희안한 거 다 시킵니다. 

 과일같은 거 자기 이빨로 토막내서는 다리부터 허벅지까지 몇 개 놓고.. 

 또 거시기에도 하나 끼워놓아요. 

 그걸 손 대지말고 먹어라고 합니다. 어떡합니까..먹긴 먹어야죠..

 근데..구멍에 끼워 있는거 먹을려고  하면 꼭 이런 말해요.

 "나 오늘 응아싸고 안닦았는데..."

 그래도 먹습니다. 그러면 또 머라고 하는지 아십니까?

 "깨끗이 싹싹 핥아먹어..." 진짜 좆같습니다.. 아!! 죄송합니다 사모님..]

[괜챦대두요...참, 방금 뭐라고 하셨어요..? 근데 늘 섹스하고 그러면 돈은 많이 벌어요?]

나는 또 한 잔의 술을 꼴까닥 목구멍 너머로 부어넣었다.

[술먹고 취한 여자 데리고 호텔가서 서비스해 주는 건, 뭐.. 거의 코스라서..

 그런데 소문난 것 같이 돈 5~60만원 막 쥐어주는 그런 거 드물어요]

[정재씨는.. 이런 일 하신지 오래됐어요..? 크..으윽! 어머, 미안해요..갑자기 트림이]

[괜챦습니다..전혀...사모님은 방귀도 향기로울 것 같은데요..]

[호홋! 그건 너무 아부성이 짙은 발언이네요..

 돈 잘 버는 사람은 시계나 옷은..물론이구 자동차에..오피스텔까지 선물 받는다던데..

 그럼 그게 모두 헛소문이에요?]

[아니죠, 실제 그런 형들이 있긴합니다..우리집에는 그런 형들 없는데요..

 이 바닥 얘기 들어보면 별별 사기꾼이 다 있어요..

 공사라고..어쩌다 진짜 있는 여자분 만나면...]

[궁금해요..계속 얘기해봐요.. 으음..내 술잔이..]

[사모님..이러시면..속 버립니다. 안주를 드시면서...아님, 여기 우유라도..]

이 남자 매상 올릴 생각은 않고 자꾸만 그만 마시라고 내게 은근하게 퉁을 준다.

그러면서 내 파트너는 자신이 들었다는 그 바닥 얘기를 이어나갔다.

[좀 사이코틱한 부잣집 딸을.. 그 형이 자기꺼로 만들기 위해서..별짓거리를 다했대요.

 술을 마시고 게임하면서 화장실을 안가고 참고있다가..

 나중에 여자애들 보는 앞에서 생리욕구를 해결본 적도 있구요..

 그뿐만 아니라..여자가 벗으라면 벗어야 하고..까라면 까야하고..]

[.............!?]

[여자들이 명품 사준다고 하죠? 예, 사준대요..

 낮에 집에서 자고 있으면 전번 교환했던 누나한테서 전화가 온대요..

 로렉 시계랑 스키니 정장 안입고 싶냐고...]

[좋다고, 진짜 사줄거냐면서 가잖아요..

 그렇게 좋아서 나가면 백화점 화장실로 데리고 가요.. 팬티벗고 오라고.

 팬티 벗고 오잖아요..그럼 여자가 살짝 바지 지퍼를 열어요. 그리고 꼬치를 약간 꺼내요. 

 그런 다음 걸어다녀라고 한대요. 솔직히 얼마나 쪽팔리겟습니까..  

 그뿐입니까..점원이 "어? 손님 남대문 열렸습니다" 하고 웃잖아요. 

 그 형이 어떻게 할지 막 몰라하고 있는데..한참 그러다가 닫아라고 한다더군요. 

 하여튼 그 얘기 듣고 얼마나 개같았는지..]

[솔직히 우리는 머 자존심 없습니까? 

 보복성은 아닙니다만..뒤빠에 있는 형들은 술집가서..

 똑같이 섹하면서 폰카로 막 사진찍고..인터넷에도 올리고..]

            *           *         

평소의 내 주량(?)은 양주 두 잔, 소주는 남편과 어울리면 반 병 정도..?

근데 오늘은 아무래도 너무 과음한 것 같았다.

아픈 마음을 달래려고 마시기 시작한 것이 상황이 묘하게 꼬이면서,

술이 술을 먹게 만든 것은 아닌지..

파트너가 몇 잔 마셨을까..? 양주 한 병이 거의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아~ 너무 어지러워...정재씨! 나..쉬 마려..잠깐만 화장실..]

[누님..제가 모셔다 드리겠습니다. 실내에 화장실이..]

근데, 이 남자 언제부터 나에게 누님이랬지? 모르겠다.

[아, 안돼요..따라오시면..그냥 바람도 쐴겸 잠깐 나갔다 올께요..]

알록달록한 천장의 불빛이 빙글빙글 마구 돌아간다. 

정신도 몽롱하고..속도 메슥메슥 이상해 찬바람을 좀 쐬면 괜챦을까 하구는,

팔을 내저으며 파트너를 떼어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민주와 수연이는 도대체 무슨 짓을 하는지..조용한 음악만 흐르는 실내..

동건씨가 내가 일어나자 힐끗 쳐다보는 것도 같았고..그리고 언제 끝날지도 알 수 없는 술자리..

[사모님 안되겠습니다..제가 부축을..]

눈치가 빠른 정재는 내가 집으로 돌아간다는 걸 미리 알아챘나보다..

저녁에 남편회사로 가면서 소지했던 작은 숄드백을 집어들고 따라나왔다.

[팁을 줘야...]

[아닙니다..그냥 두세요..누님! 저 오늘 정말 즐거웠습니다.

 쓸데없는 이야기만 해드렸는데..저, 정말 아무 것도 해드린 게 없어요]

 후~~물론, 다시는.. 여기 오실 일은 없겠죠...누..님!]

나는 그의 부축을 받아 미로같은 복도를 빠져나온다.

그때다.

혼망한 가운데도 얼핏 머릿속에 떠오르는 남편의 애틋한 얼굴.

폰을 열었다. 룸안에서는 신호가 뜨지 않은 것 같았는데..

남편이 띄워 보낸 메시지가 6 개나 차곡차곡 쌓여있었다.

"공장에 가 있었는데.. 못보구 그냥 갔나봐.."

"음..우와!! 맛있겠다..야식 잘 먹을게.."

"갑자기 폭우가 쏟아지네.."

"비 맞지 않구..잘 들어갔니..? 

"이쁜이 혼자 심심하겠네..

"우리 색시..내 꿈 꾸면서 잘자.."

비는 그쳤는지 모르겠으나 계단이 있는 지하입구쪽으로 나오자 바람이 얼굴에 닿는다.

조금 기분이 나아지는 듯 했으나 그 대신 눈앞이 팽글팽글 돌기 시작한다. 

술기운이 더욱더 올라오는 모양이다

그렇게 마구잡이로 안주도 먹지않고 마셨으니 당연한 결과인가?

나는 옆에 있는 벽을 잡고서 잠시 눈을 감았다.

그러나 눈을 감는 순간, 

눈꺼풀 아래로 무지개가 춤을 추었고, 잡고 있는 벽이 와르르 무너지 듯 흔들렸다.

[어..? 사장님..!! ]

[아니, 으.. 은애씨 !! ]

빙빙 돌고있는 문자들, 

아롱거리는 무지개빛 사이로 도망다니는 그 문자를 한자 한자 찾아다니며 들여다 보느라,

누군가가 다가온 것도 나는 몰랐다.

파트너가 사장님이라고 블렀고, 사장이란 남자가 왜? 내 이름은 부르나 싶어 고개를 돌렸다.

근데..촛점마저 일렁이는 시야에...왠지 낯이 익은 얼굴이 들어온다..

[당신은...?]

몸을 돌려 비틀비틀 걸음을 옮기는데 갑자기 육중한 물체에 몸이 닿았다.

[서준입니다..은애씨..은애씨..정신..차리십시요]

뭐라고 두런거리는 소리가 가물가물 기억 저멀리로 사라지면서, 

유성우처럼 떨어지던 하얀빛들이 순식간에 사라진다. 

무지개 색깔이 온통 뒤섞인 눈앞이 칠흑같은 어둠처럼 깜깜해졌다.

              *          *          *          *

까무룩한 기억속에 "딸각"하는 둔탁한 소리가 귀에 들린듯 했다.

그리고 허공을 유영하던 몸이 풀썩 어딘가 푹신한 바닥에 내던져진다.

 "여기가 어딜까...정신을 차려야 해...아~ 머리야.."

사방이 벽으로 둘러싸인 공간, 

읽다만 패션잡지가 책상위에 널브러져있고..컴퓨터도 두 대나 있다.

아마 저걸로 무슨 작업이라도 하는 모양이다. 

디자인, 뭐 그런 걸 하는 걸까? 

불안한 마음에 심장이 콩당콩당 뛰었으나 몸이 말을 듣지않는다.

긴 머리가 엉망진창으로 흩어져서 베개며 어깨며 얼굴에 달라붙어 있다. 

누군가가 조심스럽게 내 이마에 손을 댄 다음 다시금 걱정스럽게 인상을 찌푸린다. 

어쩌자고 이렇게 필름이 끊길 때까지 술을 마신 걸까?

수리비용이 너무 압박을 준건가..최근에는 전화질도 하지 않았는데..

마치 꿈결처럼..누군가가 혼자 중얼거리는 속삭임이 들리는 듯하다.

옷은 다 구겨졌고 머리도 헝클어지고 이상한 스타일일텐데..

추루한 모습이 보여지면 안돼..

그렇게 걱정스럽게 안달을 하며 자꾸만 무거워지는 눈꺼풀을 들어올렸다.

[끄윽! 음..더워...여..여기가 어디에요..? ]

[후후..어디긴...우리 집...우리들 침실이지..]

[어..여보.. 당신.. 언제...?]

노타이 차림의 남편은 쟈켓을 벗어 아무렇게나 툭 던져놓는다.

윗 단추가 두개나 풀려있는 셔츠안으로,

넓직한 어깨와 팽팽해진 가슴 근육이 내 시선을 끌었다.

 "아~ 다행이다..오빠구나.. 우리...집  침실.."

벌떡벌떡 거칠게 두근거리던 심장 박동이 점점 차분해져오고 

몸속에서 포근한 깃털 한 뭉치가 바스락거리는 기분이다. 

바짝 마른 입술을 축이려고 손을 들어 올리려는데..힘이 없다.

[목 말라요..나...갈증나..물..좀..]

내 곁에 다가와 앉은 남편은 손등으로 내 볼을 살그머니 쓸어내린다.

그리고 한 손에 거머쥔 물컵을 마시기 좋게 기울여주었다.

 "벌컥벌컥" 목젖이 떨릴 정도로 "꿀꺽꿀걱" 시원하게 물을 마셨다.

[으응..고마워요.. 휴우~~이제 좀.. 살거 같네..]

[..우리 이쁜이..속상한 일 있었구나..과음을 다하구..자아, 입가심..]

벌어진 내 입술에 달작지근한 남편의 입술이 와 닿았다.

고개를 좀 더 기울이더니 입술가로 혀를 내민다.

물을 마시게 좋게 내 어깨를 잡고 있던 커다한 손이,

머리뒤로 움직이더니 바싹 끌어당긴다. 

내 입술을 촉촉하게 적셔놓는 달콤한 애정,

그리고 내 입안에, 혀끝에 남아 있는 사랑의 여운? 

[은애는..언제봐도 아름답고..순수해 보여..사랑해..]

[저두요..오빠 사랑해요..근데..여보..?]

[으응, 분위기 깨져..할 말 있으면 담에..나, 급해..은애야..]

[아니에요.. 지금 얘기해야..해요. 그렇지 않으면 어쩜..영영...]

술기운을 빌어 고백을..하자. 그리고 잘못을 빌고 용서해 달라고..

하지만 까마득히 높은 절벽끝에서 아무런 보호장비도 없이,

뛰어내려야 하는 절박한 상황이 이런 걸까? 

한 번 뛰어내리면 영원히 다시는 되돌아 올 수 없을지도 모르는..

이상하다, 그렇게 잠깐 망설이는 사이..목이 메여 더 이상 말이 나오지 않았다.

[아~ 무서워요..도와주세요]

[바보..뭐가 무섭다구..나야..오빠야..]

자신의 영역을 마음대로 휘젓고 다니던 남편의 혀가,

입 안의 여린 살을 건드리고 입천장을 쓸어온다. 

간지러운 느낌이 온 몸으로 번진다. 

나른하게 늘여놓았던 내 손에 울퉁불퉁한 맨가슴이 닿았다.

따스하고 단단한 남자의 가슴패기,

맨질맨질한 바위에 오송송하게 자라난 이끼를 만지는 기분,

만지면 만질수록 그 감각에 중독되어 손을 뗄 수 없게하는 남편의 넓은 가슴. 

내 가슴속에서 무언가가 "퐁" 하고 솟아오르더니 머리 위에서 "팡" 하고 터지는 느낌이다. 

그리곤 절벽끝에 매달렸던 절박한 상황이 어느새 내 기억 저 뒤편으로 사라지고,

듬직한 내 사랑앞에는 행복가득한 무지개 색깔이 환하게 빛난다. 

언제 블라우스 단추를 다 풀었는지 

드러난 어깨와 앞가슴으로 시원한 공기가 닿았다. 

팔이 당기는 느낌이 나더니 곧 침대 옆으로 훌쩍 날아가는 상의.

익숙하게 브래지어 후크를 풀어, 천 안으로 손가락을 넣어온다. 

[히익!! 으응..간지러워요..]

[으음..은애...젖가슴은..정말..몽실몽실..어쩜 이렇게 탐스러울까..?]

[아이~새삼스럽게...]

[내가 이거에 반해서..미처 날뛴적이 있쟎아..]

길고 거친 손가락이 유방 아랫부분을 쓰다듬자 온 몸이 바르르 떨리고,

아랫배는 무언가가 꼬물대는 것처럼 간질거린다.

사타구니 깊은 부분, 그리고 허벅지 사이가 자꾸 간지럽다. 

남편에게 대고 사타구니를 문지르면 그 이상한 감각이 사라질까 생각했으나,

나른한 기분에 젖어 사지를 꼼짝할 수가 없다.

손가락이 포동포동한 유방을 어루만지는가 싶더니 손끝이 유실을 건드렸다. 

순간 내 몸이 발작하듯 휘어지자 한 손으로 어깨를 살짝 누른 채, 

다른 손으로 유방탐험을 계속하는 남편.

가라앉아 있던 젖꼭지가 반응하며 거만하게 빳빳히 곤두서고, 

머리와 가슴, 그리고 사타구니가, 마치 하나의 신경으로 연결된 것처럼 찌릿찌릿하다. 

곤두선 작은 살점을 비벼대자 내 입에서는 어느새 흐느끼는 신음이 흘러나온다.

[아아~~! 여보..그, 그만요. 이상해요! ]

[제발, 그만요..아아~~제발요...]

내가 허리를 들어올리며 신음하자, 귓불을 따라 뜨겁게 혀를 움직이며,

유방을 주무르던 손이 더 아래로 내려가 스커트의 지퍼를 내린다.

"짜라락" 지퍼가 내려가는 소리가 왠지 섬뜩하게 들린 것은 나만의 착각? 

나는 팽팽한 엉덩이를 들어올려 스커트 벗기는 걸 도와주었다.

허벅지와 종아리를 스치고 아래로 사라지는 치마의 감촉.

팬티 한 장만으로 가려져 있는 은밀한 부분이 금새 뜨거워지는가 싶더니, 

남편의 남성을 맞을 채비로 경로에 물이 뿌려지는 모양이다.

근질거리는 사타구니 깊숙한 부분이 촉촉하게 젖어들었다.

남편의 혀가 아래에서 무릎을 지나 허벅지 안쪽으로 올라오자,

본능적으로 흠칫한 나는 그이의 머리를 꼬옥 붙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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