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예아내 아영 #3.
"제일 먼저 저희 작품을 시청해주신 여러분들께 감사드리고, 감독님 이하 스텝분들에게도 감사드립니다. 마지막으로 저를 물심양면으로 외조해준, 우리 남편에게도 이 자리를 빌어서 고맙다는 말을 전하겠습니다."
아영은 주말 연속극 <그대가 있기에>의 마지막 촬영날, 취재를 나온 연애 스포츠 신문 기자와 인터뷰를 나누었다. <그대가 있기에>는 대성공작이었다. 시청률만 30~40%를 넘나들었을 뿐만 아니라, 내용면에서도 대단히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은 것이다. 특히나 퇴폐적인 내용이 늘어가고 있던 요즘 드라마들 사이에서 순수한 사랑을 주제로 다룬 <그대가 있기에>의 성공은 하나의 센세이션과 같은 것이었다.
물론 그 중심에는 여주인공 역을 맡은 아영의 역활이 컷다. 청순함과 순수함을 주무기로 내세웠을 뿐만이 아니라, 깊이있는 감정 연기와 강한 캐릭터 성격, 그리고 그것을 받쳐주는 그녀의 뛰어난 연기력 덕분에 대단히 좋은 반응을 얻을수 있었다.
"다음 방송 일정은 어떻게 됩니까?"
"우선 2부작으로 예정되어 있는 <그대가 있기에> 특집극에 출연할 예정입니다."
"그 다음 작품은 뭘로 하실 건가요? 혹시 마음에 두고 게시는 것이 있습니까?"
"아직 구체적인 예정은 없고 얼마 동안은 재충전 기간을 가질 예정입니다. 남편하고 같이 시간을 보내고 싶습니다."
"이번 작품으로 ‘며느리 삼고 싶은 여배우’ 1위로도 뽑혔을 정도로, 청순파 여배우로서 이미지를 굳히셧는데?"
"어머, 저 벌써 결혼했는데 며느리라니요."
"하하하."
기자들 사이에서 웃음소리가 흘럿다. 그녀는 기자들 사이에서도 조신한 성격 덕분에 이미지가 꽤 좋았다. 어느 한 기자가 약간 딱딱한 질문을 던졌다.
"에, 그런데 데뷔후 지금까지 계속 비슷한 이미지의 역만 맡는다는 비판도 있습니다만.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음. 이미지 관리라는 측면도 없지는 않지요. 또 익숙한 역활이기도 하구요. 하지만 다음 작품부터는 변신을 해볼까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그럼 변화한 모습을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모범적인 답변이었다. 은아영은 약간 까다로운 질문에도 침착하고 현명하게 대처하는 태도로도 정평이 나 있었다. 기자들 사이에서 예의가 바르다고 좋은 점수를 얻는 데는 바로 그런 점도 작용했다. 헌데 바로 그때 <스포츠 오늘>의 이기배 기자가 돌발적인 질문들 던졌다.
"최근 남편 장태수씨와의 관계가 좋지 않다는 소문이 있던데... 진상은 어떻습니까?"
그 자리에 모인 모든 사람들의 얼굴이 굳어졌다. 아영 역시 잠시 얼굴이 어두워졌다.
"어떻습니까?"
능글능글한 목소리로 거듭해서 물어보는 이기배 기자는 뚱뚱하고 야비한 인상을 한 사람이었다. 그는 외모 못지 않게 소문이 매우 좋지 않은 사람이었다. 좋은 기사를 써준다던가, 나쁜 기사를 쓰지 않는다던가를 빌미로 해서 신인 탤런트나 가수에게 성상납을 요구한다던가 뭐 그런 종류의 구리구리한 소문이 언제나 뒤를 따라다니는 자였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딱히 특종을 캐내는 능력이 뛰어난 것도 아니었다. 기자들 사이에서는 그가 <스포츠 오늘>의 국장에게 빽이 있기 때문에, 정확히는 국장의 처남이라서 짤리지 않고 버티고 있다는 소문이 돌고 있었다. 실제로 그의 평소 행동도 그런 소문을 부정하기 힘들 정도로 난잡한 편이었다.
"사생활에 관한 일에는 답변할수 없습니다."
아영은 다소 딱딱한 미소를 띠고 대답했다. 하지만 이기배는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하지만 국민에게는 알 권리가 있지 않습니까? 게다가 은아영 씨는 공인이니까."
"부부간의 관계는 저만의 사생활이 아닙니다. 남편도 사회적으로 지위가 있는 사람이니까요. 꼭 알고 싶으시다면 남편과 함께 인터뷰 하는 자리에서 물어주십시요."
"그럼 그런 소문이 나오게 된 배경에 대해서…."
"아는바 없군요. 저는 그런 소문을 들은적 없습니다. 본인보다 더 정확히 아는 소문도 있습니까?"
"에 그래도 좀 뭐라도 말을."
"이기배 기자님. 다른 기자분들도 있는데…."
그녀가 그렇게 말하며 곤란하다는 표정을 짓자, 다른 기자들도 다들 이기배를 떨떠름하게 쳐다보았다. 이기배는 기자들 사이에서도 인망이 나쁘다 보니 이런 곳에서도 그리 좋은 대우를 받지 못했다. 결국 그는 더 이상 캐묻지 못하고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집으로 돌아온 뒤, 아영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후우."
인터뷰에서는 좋은 말로 넘겼지만 사실 객관적으로 봐도 지금 태수와 아영의 관계는 썩 괜찮다고 할 수 없었다. 그날 이후로 태수는 너무나 크게 동요해서 아영과 눈도 제대로 마주치지 못하고 있어서 강짜를 놓은 그녀도 미안하게 생각할 정도였으니까.
그녀는 성격면에서 대단한 완벽주의자라고 해야 할 것이다. 돈도 빽도 없던 그녀가 성공한 비결이 단순히 재능 덕분이라고 할수는 없었다. 그 실체는 성격에 기인한 철저한 자기 관리와 자기 개발이라고 할수 있었다. 당연히 성적인 면에서도 자기 절제를 빼놓을수 없었다.
그녀의 어머니는 섹스에 있어서는 지극히 보수적인 아영의 모습에서는 상상도 할수 없을 정도로 색을 밝히는 여자였다. 자유부인 정도는 뺨을 칠 정도로. 그리고 그 방면에서는 소질도 있어서 아영의 어머니는 오직 섹스와 미모만을 무기로 하여 어느 재벌집의 안방을 차지했었다.
하지만 아영은 그런 어머니가 무너지는 것을 봤다. 성욕에 미친 어머니는 늙은 재벌영감 만으로는 만족할수 없었던 것이다. 청년들을 유혹하여 음란한 파티를 벌이던 그녀는 그 짓이 들키자 당연히 이혼을 당하게 되었다. 그리고 지나치게 섹스에 탐닉한 탓에 몸을 상해서 일찍 죽었던 것이다.
그 재벌도 군사독재 시절 정부에 잘못 보인 탓에 지금은 완전히 축출당해서 과거를 물을 사람은 없게 되었지만, 아무튼 아영은 그로 인해서 섹스에 대해서 두려움을 지니게 되었다. 자신의 몸에 어머니와 같은 피가 흐른다고 생각하면 그 자신도 어머니 같은 최후를 맞을 것만 같은 공포를 느끼는 것이다.
그러나 태수가 반성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녀도 느낀 것이 있었다. 자신의 반응이 너무 심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 여보?"
그날 돌아온 태수는 오랜만에 웃으면서 맞아주는 아내의 얼굴에 놀랏다. 불륜을 저질럿던 것 때문에 괜한 걱정까지 들었다. 하지만 아영은 오히려 자신이 잘못했다면서 먼저 사과를 하는 것이 아닌가.
"일이 너무 바빠서 여유를 잃었던 것 같아요. 당신한테 부담을 주었던 것 미안하게 생각해요."
"아니야. 내가 잘못한거지. 갑자기 그런 짓을 해서 놀랐을 꺼야."
"저도 노력해보겠어요. 그러니까 앞으로는 상의하고 하도록 해요."
그후의 대화는 놀랄 만큼 술술 풀려나갔고 문제는 거의 해결되어버리는 것 처럼 보였다. 태수는 외도를 했던 일이 너무나 부끄럽게 여겨졌다. 이렇게 착한 아내를 내버려두고 불륜을 저지르다니. 틀림없이 너무 성욕이 쌓여서 어딘가 잘못되었던 것이라고 생각했다. 수아와의 불륜 사실을 고백할 생각은 없었지만 다시는 외도를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그들은 그날 밤 오랜만에 함께 잠자리에 들었다. 아영은 태수의 요구를 몇가지 수용해주기로 했다. 그녀는 태수가 원하는 대로 불을 켜고 잠옷을 벗어내렸다. 은은한 스탠드 불빛 드러난 아영의 날씬한 몸매를 보자 태수는 가슴이 쿵쾅쿵쾅 뛰었다.
"어?"
헌데 태수는 갑자기 벌어진 괴이한 사태에 놀라고 말았다. 그의 자지는 바람 빠진 풍선처럼 축 늘어져서 당최 일어날 생각을 안하는 것이 아닌가? 아무리 주무르고 만져도 소용이 없었다. 아영도 걱정스럽게 바라보다가 조심스럽게 손으로 애무해주었으나 전혀 효과가 없었다. 태수가 아무리 용을 써도 그의 자지는 말을 듣지 않았다. 어제 호텔에서 수아와 그렇게 불타올랐던 물건이라고는 생각도 할수없었다.
"당신, 너무 피곤한가봐요. 다음에 하도록 해요."
아영은 태수를 위로해주고는 잠자리에 들었다. 하지만 태수는 불안감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렇게 강력한 정력을 자랑하던 자신이 갑자기 발기부전이 되다니. 정말 믿기지 않는 노릇이었다. 결국 그는 거의 뜬눈으로 밤을 지새다가 새벽에야 겨우 잠이 들었다.
그러나 다음날 아침에도 상황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아침이 되면 늘 꼿꼿하게 서서 자신을 주장하던 자지는 그날에도 힘을 잃고 늘어져 있을 뿐이었다. 태수는 이게 보통 사태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았다. 이렇게 갑자기 발기부전이 찾아왔다는 경우는 듣도보도 못했다.
자존심에 큰 상처를 받은 태수는 대체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을 잡을수가 없었다. 호텔에 출근해서도 걱정만 태산같이 쌓여있었다. 만일 이대로 영영 발기를 할수없다면? 상상만 해도 끔찍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또 자존심이 걸려 막상 병원에 찾아갈 결심은 쉽게 할수없었다.
수아가 다시 그에게 접근해온 것은 바로 그때였다. 그녀는 태수의 핸드폰으로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안녕하세요. 태수씨. 혹시 당신의 몸에 뭔가 문제가 생겼다면 저를 찾아와 주세요.]
대체 어떻게 된 거지? 그녀는 뭔가를 알고 있는 건가? 태수는 정신없이 수아가 묶고 있는 방으로 달려갔다. 어떻게 된 것이냐고 캐묻는 그에게 수아는 태연스럽게 대답했다.
"전 태수씨에게 이상 현상이 오리라고 예상하고 있었어요. 의사로서의 직감과 추론이지요."
"뭐라고? 어떻게?"
"원인과 결과는 분명해요. 아아, 역시… 불쌍하게도."
수아는 바지 위로 태수의 자지를 주물럭 거렸다. 하지만 그녀의 손길에도 불구하고 태수의 자지에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예상했던 그대로였다.
"태수씨. 이 발기 부전은 심리적인 것이 원인이예요."
"심리적인 것?"
"성적으로 부담이 가는 일을 저지른 사람한테 가끔 나타나는 것이지요. 무의식 속에 남아있는 죄의식이 성 기능을 억제하는 겁니다. 이런 사례로는…."
그 뒤에 수아가 전문용어와 임상사례를 들어가면서 좀 더 설득을 하자 태수는 그녀의 말을 믿게 되었다. 그녀는 분명히 유학까지 다녀온 뛰어난 의사였으니까. 사실 보통때라면 이렇게 쉽게 넘어가지는 않았을테지만 그는 갑자기 찾아온 질환으로 인해서 혼란에 빠져 있었기 때문에 예상보다 훨씬 쉽게 설득 되고 말았다.
"그럼 대체 어떻게 하면 좋지? 병원에 가봐야 하나..."
"이런 일로 병원에 갔다가는 금방 의사에게 들키게 될걸요."
"곤란하게 되었군..."
"걱정 마세요. 제가 직접 고쳐줄테니까. 저도 불륜을 들키고 싶진 않거든요."
"대체 무슨 방법으로?"
"최면을 걸어보겠어요. 마음 속의 부담감을 걷어내고 나면 괜찮을 거예요. 일단 여기 누워보세요."
태수는 수아가 시키는 대로 침대 위에 편안한 자세로 누워 최면을 준비했다. 수아는 커튼을 쳐서 주위를 어둡게 하고 작은 라이트를 들고 태수의 눈 앞에서 좌우로 움직였다.
"아무것도 생각하지 말아요. 편안하게… 편안하게… 당신은 점점 잠이 듭니다."
10여분 정도의 시간이 흐르고 태수는 완전히 최면 상태에 빠졌다.
수아는 상냥한 어조로 물음을 던졌다.
"태수씨. 내 목소리가 들리나요?"
태수는 꿈꾸는 듯 멍한 목소리로 반응했다.
"예. 들립니다."
수아는 싱긋이 웃었다. 그 미소에는 아주아주 강렬한 악의가 번뜩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