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0화 (16/21)

20...

“이걸로 주세요.”

“12만원입니다.”

“시..십 이만원이요?”

“..네.”

“할인이나.. 뭐 그런 건 없나요?”

“네!”

“.....3개월..로 해주세요.”

난생 처음 거대한 흰곰돌이 인형이 이렇게 비싸다는 걸 알게 된 순간이었다.

내 주제에 갑자기 무슨 곰돌이 인형이냐고 하겠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보영이의 생일 선물로 머릿속에 떠오른 건 이것밖에 없었다.

값비싼 보석이나.. 화려하고 고급스러운 레스토랑에서의 저녁식사나.. 어떤 것을 해준다고 해도 이미 민우란 놈의 존재로 보영에겐 전혀 새롭지도 그렇다고 감동을 줄리도 없었기에 고심에 고심을 하고 내린 결정이 바로 이 곰돌이 인형이었다.

1m는 훌쩍 넘어 보이는 뚱뚱한 이 곰돌이를 선택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보영이의 삭막한 방을 보고 뭔가 부족하다고 느낀 감정 때문이었다. 여자가 살고 있다고 믿기지 않는 그 삭막함이 내내 마음속에 걸리던 난 결국 곰돌이 인형을 택하며 내 자신에게 놀랐고, 가격에 또 한 번 놀라게 되었다.

그리고.. 포장을 한 곰돌이를 들고 버스에 올라타 사람들의 시선에 다시 또 놀라게 된다.

킥킥 거리는 사람들의 시선은 반투명의 비닐 속에 담긴 곰돌이 인형과 면도를 하다 만 것만 같은 까끌거리는 내 머리스타일의 부조화에 신기한 듯 쳐다봤고 웃기 시작했었다.

이런 쪽팔린 짓은 다시는 안 할거라는 생각을 하며.. 얼굴을 붉히게 된다.

그러나 이런 내 고심 끝에 구입한 곰돌이 인형보다도 훨씬 큰 선물을 보영이에게로부터 받게 될 줄은 전혀 예상도 못한 채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그 선물은 바로 다음날 회사에서 열어보게 된다.

“구..구대리!!!”

“..응?”

“왜 이렇게 늦게 출근 해!”

“뭐가? 아직 9시.. 2분이구만.”

“빨리! 빨리 회의실로 가 봐!”

“회의실이라니.. 거긴 왜?”

“이 친구가! 빨리 가보라고!”

“참나..”

보통 단체 회의는 월요일과 금요일에 치러졌다.

영업과 생산이 주목적인 우리 회사로서는 사실상 회의실을 사용할 이유가 거의 없었기에 특별한 일이 없을 경우 노가리를 까는 장소가 회의실이었고 그 노가리마저 잘 까지 않는 나로서는 회의실은 지루한 곳의 연속일 뿐이었기에 그다지 끌리지도 않는 장소였었다.

회의실의 판넬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날 먼저 재촉한 건 한과장이었다.

“왜 이렇게 늦게 출근해!”

“ㄴ..네?? 차가 밀려 서...”

“차도 없는 새.. 친구가 무슨.. 우선 앉아! 아니.. 인사부터 드려라.”

내 머리를 잡아 강제로 허리를 굽히는 한과장의 행동에 테이블에 앉아 있는 두 사람에게 얼떨결에 인사를 하게 된다.

“구..필민이라고 합니다.”

“...하하. 이 친구가 이렇게 어리숙해서...그래도 열심히 하는 친굽니다.. 보영팀장님.”

“...네?”

한과장의 손을 뿌리치며 고개를 들게 된다.

“보.보영씨..”

“안녕하세요. 오보영이라고 해요.”

“...”

“이쪽은 함기석 주임이시고요. 함주임이라고 불러주세요.”

“안녕하십니까.”

“아..안녕하세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정중히 인사를 하며 명함을 건네는 보영이의 모습을 쳐다만 보게 된다.

“뭐 해 이친구야!”

“...네?..아!.. 여..여기..”

나도 와이셔츠 주머니에서 명함을 꺼내 보영이에게 건넸다.

내 명함을 빤히 바라보는 보영의 표정이 낯설어 보였다. 불과 이틀 전에 만나 격렬하게 몸을 섞었던 여자와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흰색 재킷에 흰색 스커트 정장차람으로 곧게 앉아 있는 보영이의 모습에 당황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런 모습이라도 내 계획대로, 최소한 예견된 장소에서의 만남이 아닌 내 사무실에서의 갑작스러운 만남이었기에 더 놀라게 된다.

“그럼.. 엠블럼하고 그릴,, 음~ 마크 사이즈 별로 이 가격에 맞춰 주실 수 있다는 말씀이시죠?”

“그럼요! 그 정도면 충분히 저희도 맞출 수 있습니다. 수량이 많아서 시일이 좀 걸리겠지만... 전혀 문제없습니다.”

“납품 기일은 충분히 드릴게요. 저희도 오너 쪽과 디자인 협의 과정중이라서 그 정도는 충분히 협의 가능해요.”

“엠블... 마크라뇨?”

“...”

“..”

“하하..하하.. 이 친구가 아직 잠이 덜 깬거 같습니다. 잠..시만요.”

내 손을 잡아 이끌고 황급히 회의실 밖으로 나온 한과장은 흥분된 표정을 숨기지 못한 채 말을 빨리 한다.

“이 친구.. 내숭을 떨게 따로 있지! 이런 대박 건수를 나 모르게 진행하면 어떻게 하나!”

“건수라뇨..”

“이러기야! 진급심사가 내일 모렌데.. 이런 건 사전에 상의라도 했어야지! 그럼 고가점수가... 너 이건에 대해서 아무것도 몰라?”

“.....네.”

“그럼.. 왜 저 회사에서 여기까지 찾아 왔는데? 그것도 아침 8시 30분부터...”

“왜.. 찾아 왔을까요?”

“......”

“들어가서 물..어 볼까요?”

“너 미쳤냐!... 넝쿨째 굴러들어온 호박을 걷어차려고 해!?”

“호박이라뇨..”

“호박이지! 황금 호박! 대충 사태파악 됐으니까! 네 애인이나 잘 구슬려 봐! 엉뚱한 얘기로 초 치지 말고!”

“....”

만약 내가 기회주의자였다면...

만약 여자 등이나 쳐 먹어 잘 살자는 작정이었다면 한과장의 말대로 이런 기회는 백만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일이 분명했다. 

하지만 난 그런 놈이 아니었다. 

알량한 자존심만 세우다 닭 쫓던 개꼴이 될 지언정..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내 머릿속에 강하게 자리 잡히기 시작한다.

더군다나 보영이라는 순진한 여자 앞에서라면 말이다.

“전에 거래하던 업체가 있었을텐데.. 왜 갑자기 저희 회사로 옮기려고 하시는 거죠?”

뜻밖의 내 질문에 회의실 안은 찬물을 끼얹은 듯 급격히 냉랭해졌다.

“하....하하하.. 이 친구야. 그거야 보영팀장님하고 함주임님이 다 이유가 있으니까...”

“제가 알기론 OO기업에서는 이미 라인 가동하는 공장과 계약이 다 되어있다고.. 그 공장이 저희 업계 1~2위를 다투는 거대 회사라고 알고 있는데 왜 갑자기 이런 계약을 제안하는 지 궁금해서 그럽니다.”

“구..구대리!!”

“왜요? 물량 때문에 걱정이세요?”

“....”

“만약 불가하다고 말씀해주시면 기존의 업체와 계속 진행할 계획이에요.”

“불가능하다고.. 저희가 말을 안 한 다면요? 그럼 이미 저희 업체와 거래를 할 용의가 있다는 말씀이십니까?”

“네! 아침에 불쑥 찾아와서 이런 제안을 할 저희가 황당하실 진 모르겠지만 저희 쪽에선 나름대로 이틀 동안 충분히 검토하고 찾아온 거예요.”

“....더 이해가 안 가는군요. 이틀 동안이란 시간동안 검토까지 하셨다면 저희보다 훨씬 더 좋은 조건에 라인도 더 많이 가동할 수 있는 곳도 충분히 조사하셨을 텐데.. 왜 굳이 저희 쪽을..”

“구..구대리.. 하하하하하.. 자..잠시 만요! 잠시만 또 시간을..”

“아니요. 그럼 단도직입적으로 구대리님한테 묻겠어요. 여기.. 구대리님이 다니시는 이 회사는 그 정도 여력과 능력이 없다고 생각하시나요?”

“....”

“아니요! 됩니다! 되고말고요! 저희도 이정도 물량은 충분히...”

“능력이 문제가 아닙니다. 저도 귀가 있어서 듣는 얘기가 좀 있기도 해서 그런 겁니다.”

“얘기라뇨?”

“납품 공정이나 회사 여건은 다 필요 없고 12개월짜리 어음이나 돌리면서 단가나 낮추는.. 대기업 수법 아닙니까? 중소기업 죽이는..”

“뭔가 오해를 하고 계시네요. 저흰 어음 발행 안 해요.”

“....”

“혹시 저희 회사가 일본계 합병 회사라는 건 알고 계신가요? 저희 팀은 작고 저희 회사는 그리 규모가 크지 않지만 본사와 계열사까지 합치면 어느 정도 규모인지.. 어느 정도 거래량인지 알고는 계세요?”

“일본 놈들이라서 더 짜증나네요. 옛날에는 조선을 노리더니 이젠 대놓고 합병을 해대면서 회사까지 좀먹고...”

“구대리님!! 지금 엄한데다가 짜증내고 있다는 건 알고 계시나요?”

“엄하긴.. 이래봬도 내 아버지의 아버지의 삼촌의 처남에 옆집 살았던 이웃사촌이 독립운동가였수다.”

“사..삼촌... 참나...”

“야!!!! 너.. 너 잠깐 나와 봐!”

“한과장님 지금 이 건이 잘못 되면 어떤 결과..”

“나오라고!!”

날 또 잡아 끌어낸 한과장은 다짜고짜 내 정강이를 걷어찬다.

비폭력 주의자인 한과장이 이런 폭력을 행사할 정도라면 내 행위가 도가 넘은 건 분명하고 확실했다. 내가 생각해도 왜 이렇게 짜증이 나는 건지 도통 이해할 수가 없었지만.. 어쩔수없이 오기를 부리게 된다.

“너 미쳤냐! 진짜 미쳤어!!!!!”

큰 고함소리에 회의실을 지나가던 몇몇의 직원들이 나와 한과장을 놀란 눈으로 쳐다본다.

“진짜... 나한테 유감 있냐고! 야! 나도 진급이란 걸 해야지! 과장으로 명퇴 당하는 꼴 볼래!”

“그게 아니고요. 진짜로 의심 가잖아요. 아무리 보영씨라고 해도 이건 아니죠.. 어쩌면 우리가 상상도 못할 비리가 숨어 있을지도 모..악!!..”

“영화 찍냐! 뭔 놈의 비리는 비리야! 딱 보면 모르겠냐! 잘 들어!.. 보영팀장님이 널 너무 좋아해서 이런 기회까지 주시는데.. 그걸 마다 해!?”

“죄송합니다.”

한과장이 내게 장엄한 잔소리를 막 늘어놓기 시작했을 때 회의실 문이 열리고 함주임이라 소개 된 남자가 나와 한과장의 말을 끊었다.

“보영팀장님이 잠깐.. 보시자고 하시는데요. 아!.. 한과장님은 죄송하지만 저랑 얘기 좀 나누시고요.”

“네? 저만요?”

“네..”

“참나.. 팀장 주제에 우리 과장님을 오가라나 하고..”

“...구대리님이라고 하셨나요? 우리 보영팀장님이 어떤 분이신지 아시면 이런 태도로 이렇게 무례하게..”

“알았수다! 그 고귀한 보영팀장님 말씀대로 정중히 접견 하러 들어..악!!!”

“...”

“왜 자꾸 때려요..”

“넌!!! 정말.. 나중에 나 좀 보자...하하...하.. 주임님은 저랑 같이 나가시죠. 바로 앞에 진짜 맛나는 커피숍이 있습니다.”

“아닙니다. 그냥 앞에서 잠시 얘기만 나누시죠.”

“하하하~ 이제 한 식구가 될 사람인데 그러면 안 되죠! 넌!!!... 잘.. 해라.. 귀하신 손님한테 최대한 예의범절을 지켜서... 알! 았! 냐!?”

아구를 꽉 다물며 한과장이 날 노려본다.

그런 한과장의 모습에 등골이 오싹했지만.. 어차피 망한 거 오기라도 끝까지 부리자는 생각에 똑바로 한과장의 노려봄을 피하지 않고 회의실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간다.

‘탁!..’

“뭐하자는 겁니까!?”

회의실로 들어가자마자 난 다리를 꼬으고 앉아 있는 보영을 향해 소리를 지른다.

내 목소리에 깜짝 놀란 듯 보영이가 꼬았던 다리를 풀어 다소곳이 모으곤 말없이 날 올려다봤다.

“...”

“내가 불쌍해 보여요? 그제 잠깐 들었던 진급심사 때문에 떡밥이라도 던져주려고 손수 행차하셨어요!!”

“...죄..송해요.”

“죄송하다고 말을 한다고 넘어....네?”

“....죄송하다고요. 필민씨가.. 이렇게 화를 낼 줄은 몰랐어요.”

너무도 조근한 목소리로 얘길하는 보영의 모습에 말을 잃게 된다.

“....”

“전 그냥..”

“......”

“그냥 필민씨가... 저 때문에 회사에 신경도 못 쓰시는 거 같아서.. 그제도 너무 곤란해 하는 거 같아서 제 딴엔..”

“그래서 이런 말도 안 되는 억지를 부리셨어요?”

난 스스로도 느낄 정도로 목소리가 한 결 부드러워졌다.

내 짜증에 억울함이라도 표현할 줄 알았던 그녀가 예상과는 전혀 다르게 사과를 했고, 정말로 미안한 듯 고개까지 숙인 채 쥐 죽어가는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었다.

“그건 아니에요. 단지..”

“단지 뭐요?”

“정말로 일주일 전에 한방기획하고 계약이 끝났어요. 그동안의 잦은 딜레이하고 단가 협상 때 겪은 문제로 위에서도 더 이상의 연장은 원하지 않으셨고요. 대기업보다는.. 유망한 중소기업 중에서 선택해 제대로 일을 해보자고 의견이 모아져서.. 단지 전 추천만 했을 뿐이에요.”

“.....”

“그런데 왜 아까는 그렇게 말을 했어요?”

“그거야.. 필민씨가 자기가 다니는 회사를 너무 과소평가.. 하는 거 같았고.. 함주임 앞이라서 제 입장이란 것도....”

“....”

“정말이에요. 절대 외압이나.. 그런 건 없었어요. 추천한 세 개 회사 중에서 윗분들도 필민씨네 회사를 가장 유망하다고 선택하신 것뿐이에요... 화...내지 마세요.”

“...”

“상의도 없이.. 마음대로....”

‘덜컥.’

“오팀장님 시간..”

“저희 회사를 어떻게 보셨기에 그런 말씀을 막 하세요!”

“....”

갑자기 돌변한 보영의 모습에 노크를 한 번하고 들어오던 함주임보다 내가 더 크게 깜짝 놀라게 된다.

“지금 무례한 언행이란 건 알고 계신가요? 그것도 이런 조건을 들고 먼저 찾아오기까지 한 저희 한테 말이에요!”

“오..팀장님..”

“잠깐 나가있어요!”

“......네.”

‘덜컥~.’

“미..안해요...”

돌변하듯 나긋하던 목소리에서 버럭하는 모습으로, 다시 상냥하게 사과하는 보영의 모습에 기가 찼다.

“지금 저랑 장난해요?”

“어..쩔 수 없잖아요. 더군다나 한주임은 저희 팀도 아니고... 괜히 의심 받으면 저도 곤란해진다고요.”

“.....”

“그리고.. 필민씨 때문만은 아니란 거.. 정말로 이해해주세요.”

“....정말이에요?”

“그럼요! 제가 왜 필민씨를 불쌍하다고 생각해요.. 절대!.. 네버!! 그런 거 아니에요.”

“그래도 이번 일은 없었던 걸로 해요.”

“...아직도 화 안 풀렸어요?”

“됐어요.”

“필민씨.. 저 이제 회사 그만 둬요.. 지금도 인수인계중이고요... 기분 나쁘셔도.. 제가 해드릴 수 있는 마지막 선물이라고 생각하고.. 받아주면 안 돼요?”

“.....”

“필..민씨한테 받은 게 너무 많잖아요... 평범한 여자로서의.. 기쁨이나 삶이란 것도 알게 해줬고.. 잠시동안이지만 행복이란 것도 느낄 수 있었고요.. 필민씨가 제게 해 준거에 비하면 정말 아무것도 아니잖아요.”

“....”

“필민씨~~”

말을 하며 보영이가 세운 손가락으로 테이블 위를 미끄러트리며 내게 점점 더 다가온다.

금방이라도 내게 올라탈 기세로 바로 내 앞까지 다가와선 얼굴을 바짝 들이밀기까지 한 보영의 양 볼은 붉게 물들어 있었다.

‘똑똑..’

‘덜컥~’

‘후다닥~’

전광석화라는 사자성어가 어울릴정도로 재빠르게 보영이는 뒷걸음질을 치며 나와 떨어진 테이블 위에 걸터앉는다.

“그럼! 더 생각해보시고 연락주세요!”

“....네.”

“가요.. 한주임님!”

보영이가 돌아간 후 얼떨떨한 표정으로 난 부장부터 대표이사까지 직접 만나게 되었다.

입사하고도 단 한 번도 이런 미팅을 해 본적 없는 난 말 그대로 어리버리한 놈이 돼 버렸다. 잔뜩 신이 난 한과장과는 너무 대조적인 모습으로 말이다.

대표 이사와의 면담 후 사무실로 돌아 왔을 땐 더 했다.

모든 직원들이 날 지금까지와는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는 듯 느꼈기에 부담감이 하늘을 찌르게 된다. 역시나 이런 것엔 도저히 익숙해질 수 없었다.

나중에야 보영이란 여자가 선물한 것이 내가 입사한 후 지금까지 해 왔던 영업이란 것의 몇 배나 되는 양이란 걸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정작 그런 시선들이나 미팅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보영의 마지막 말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는다.

-마지막으로 해 줄 수 있는 선물...

어쩌면 보영이란 여자는 나보다 더 고민을 했고 더 심각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가슴이 먹먹해 온다....

“어.. 필민씨.”

“이제 끝난 거예요? 혹시 회식 있어요?”

“..아뇨. 전화라도 하시지..”

“저.. 말 놔도 되요?”

“...네?”

“말 놓고..싶어요. 제가 나이도 많잖아요.”

“그럼요.. 저도 거리감 있는 거 같아서.. 사실 싫었어요.”

“....그럼.. 가자.”

“...어딜요?”

“데이트 하러.”

“...”

난 보영을 데리고 영화란 걸 보러 건대로 향했다.

홍대보다도 한 때 더 번화했던 젊음의 거리에서 한 블록 건너 있는 영화관에 도착한 난 오랜만에 영화표를 예매하게 되었다. 1시간 남은 영화시간에 우선 식사부터 하자고 보영에게 제안했고 흥쾌히 승낙하는 보영의 고개짓을 보게 되었다.

내가 선택한 메뉴는 분식집이었다.

흔한 분식점이 아닌 체인점식 깔끔한 분식집으로 철판돼지덮밥과 모듬 떡볶이, 그리고 스팸 치즈 김말이란 것과 마지막으로 시원한 냉모밀이란 걸 시켰다.

테이블 가득 메운 음식들에 보영이의 눈이 더 동그랗게 커졌다.

“뭘.. 이렇게 많이 시켜요.”

“이런데 와 봤어? 저번에.. 분식집도 안 가봤다고 했잖아.”

“....그래도 이렇게 많이 못 먹어요.”

“맛만 봐. 여기 생각보다 깔끔하다고 그러더라.”

보영이가 가장 먼저 젓가락을 댄 건 붉은 양념이 잘 버물어진 떡볶이었다. 한입 가득 떡볶이를 먹더리 이내 후후 거리며 손으로 부채질을 해댔다.

“물!~ 물물물!!”

“큭큭~.. 매운 거 못 먹는구나.,”

“적당히 메워야죠.. 이렇게 맵고 짠 건 몸에도 안 좋다는 거 몰라요?...후~~~”

“하하하하~ 그런데 왜 또 먹냐?”

“.....”

연신 ‘후후~’ 거리며 또 다시 입속에 떡볶이를 한 가득 넣어 다람쥐처럼 볼을 부풀이는 보영의 모습이 너무나 귀엽게 보인다.

“참.. 팔색조 같다....넌.”

아직 존칭까진 반말이 어색한 난 말을 하고도 멋쩍어 했다. 하지만 보영은 정말로 맛있는 음식을 난생처음 맛보는 듯 이마에 땀방울까지 보여주며 떡볶이를 또 한 입 가득 집어넣는다.

“으응?”

“처음엔 도도한 모습만 보여서 좀.. 건방지고 재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볼수록 점점 더 귀엽게 보여진다고 해야 하나?.. 섹시함은 처음부터 갖고 있었으니까 그건 패스고..”

“제가 귀여워요?”

“응.”

“설마! 이제 곧 서른인데 귀엽긴.. 후아~~.. 이거 진짜 맵다.,.. 근데 자꾸 먹게 되요.”

“그게 땡긴다는 거지. 입이 얼얼할 정도로 매운데도 막 땡기는.. 그럴 땐 이 김밥으로 매운 느낌을 죽이면서 먹는거야. 이 바부야.”

“..응? 김밥은 많이 먹어 봤는데.”

“이것도 먹어 봐. 먹던 김밥하고 다른 맛일거야.”

“으음~~.. 스팸..이네. 이것도 맛있어요.”

“크~”

“아.. 이렇게 먹어대면 살찌는데..”

“넌 살 좀 쩌야 돼. 허리가 너무 얇아서 애 낳을 때 어디 힘이라도 주겠냐?”

“치~.. 전 살 찌면 가슴부터 쪄서 안 돼요.”

“정말!?”

“네.. 으음~.. 이것도 진짜 맛있다.”

“얼마나 더 커지는데? 무슨 장난감 개구리 알처럼 물만 먹으면 막 자라는 거냐?”

“응? 개구리 알?”

“있잖아. 물에 집어넣으면 무지막지하게 커지는 거.”

“...???”

오물거리며 음식을 씹는 동시에 보영이가 내 말 뜻을 모르겠다는 듯 의아한 표정으로 쳐다본다.

“개구리 알 몰라?”

“몰라요. 그런데 안 먹어요?”

“난 배 불러..”

“필민씨도 아무것도 안 먹었잖아요. 빨리 먹어요.”

“그것보다.. 그럼 살찌면 가슴부터 부푸는거야?”

“...풍선이에요? 부풀게?”

“크큭.. 혹시.. 엉덩이도 막 커져?”

“.....”

“궁금해서..그래.”

“가슴이 커지기 시작하면 곧바로 다이어트 시작해서.. 저도 가슴 이후엔 어디가 찔진 몰라요.”

“와~.. 진짜 축복받은 몸이다..”

“왜요?”

“왜라뇨! 이게 크면 얼마나 불편한 줄 모르죠!? 제일 불편한 게 어깨하고 허리에요. 생리라도 시작해봐 얼마나 아프고 당기고.....”

“...”

“내가..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좋은데.. 꼭 부부 같잖아..”

“...”

“그래도 젖이 크면 우유도 많이 나오고 좋은 거 아닌가?”

“...”

“왜? 아니야? 암만해도 우유병이 크면 우유도 많이 나오는..”

“이 봐!! 그럼 초콜릿 먹으면 초코 우유 나오게요?”

“괜찮다~!! 난 초코는 별로고 딸기.. 아니다! 바나나 우유!”

“점점!!.. 이봐요! 물론 크기로 결정될 수도 있지만 가장 중요한 건 가슴 안에 있는 유선이 얼마나 발달을 했는지가 가장 중요하다는 거 몰라요?”

“유선?”

“네! 가슴 안에... 그런 게 있어요!”

“암만 그래도 1L짜리하고 500ml하고 용량차이가 있는데..”

“솔직히 남자들이 정하는 거잖아요. 가슴 크고 모양 좋다고.. 보기 좋다고 결정짓는 건 남자 잣대잖아요.”

“좆대?”

“.....”

“큭크크~. 빨리 먹어. 곧 영화 시작하겠다.”

“피~..필민씨도 조금이라도 먹어요. 저 이거 다 못 먹어..”

[따르릉~~..따르르릉~~]

“잠시만요.. 여보세요...”

핸드백에서 울리는 벨소리에 고개를 돌려 핸드폰을 손으로 가리며 전화를 받는다.

누구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내용이 중요했지...

“네? 집..이요?.. 타워... 네 알아요... 전.. 상관없어요. 네... 차요?...있는데 뭐 하러....... 알겠어요. 아니에요... 기...뻐요.”

핸드폰을 끊은 보영은 젓가락 한 쪽만을 들고 떡볶이를 이리저리 헤집기 시작한다.

곰곰이 생각에 잠긴 듯 내리 깔은 두 눈은 미동조차 없이 헤집고 있는 떡뽁이를 멍하니 내려다보고 있었다.

“민우..씨죠?”

“.....네?..........네.”

“타워라면.. 신혼.. 집?

“..네. 일반 주택으로 하려다가.. 그곳으로 정했대요.”

“.....”

“...”

방금전의 분위기가 거짓처럼 어색한 침묵이 이어진다. 이미 다 받아들였고, 이대로 민우란 놈보다 날 더 사랑..하는 보영이의 모습을 보며 즐기기만 하면 되는 것인 승리를.. 승리라 생각할 수 가 없었다.

처음.. 

날 궁지보다 더 한 낭떠러지로 몰아 눴던 민우란 놈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 보영을 완벽히 섹녀로 만들자는 계획이 어느새 내 머리가 아닌 가슴까지 흔들어대기 시작했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언젠가부터.. 난 보영이를 정말로 내 여자로 만들고 싶다는 충동을 느끼게 되었다.

비교도 안 될 서로간의 차이를 분명히 알고 있으면서도...

“아!.. 그런데 영화 좋아하죠? 묻지도 않고 그냥 예매했네.”

“...”

“영화 안 좋아해요?”

“영화 보다는.. 책을 좋아해요.”

“책이 원작인 영화가 얼마나 많은데요. 이 영화도.. 만화책이 원작이에요.”

“지금까지 원작보다 좋은 영화는 한편도 못 본 거 같아요..”

“그럼 영화 보지 말까요?”

“아니요.. 그런데 왜 다시 존댓말이에요?”

“...네?...아......”

“큭큭.. 필민씨는 아무리 그래도 상냥한 사람이라는 거 모르죠?”

“....상냥하긴.”

“가요. 진짜 더 이상 못 먹겠어요..”

보영은 자신의 말을 입증이라도 하 듯 영화가 시작하고 딱 10여분 만에 잠이 들었다...

박진감 넘친다고 생각했던 변신자동차 영화를 아이들 보는 만화영화라도 대하 듯 눈만 깜빡이다 내 어깨에 기대어 잠이 든 보영의 모습에 홀로 영화를 보게 되었다.

“일어나.. 끝났어요.”

“후흡~.. 으응?”

“일어나요..”

“아..안 잤어요.”

“....”

“잠깐 생각 좀 하느라..”

“....2시간 동안이나?”

“...”

“그건 그렇다고 쳐도.. 이 어깨는 어쩌고?”

“어..어머...”

보영이가 내가 가리킨 곳을 보곤 깜짝 놀라 손을 올려 침으로 흥건히 젖은 내 양복 상의를 황급히 닦기 시작한다.

요즘 난 보영이 때문에 연신 낄낄거리는 헤픈 놈이 돼 버렸다.

“미안해요.”

“영화를 보러 왔으면 영화를 봐야지.. 얼마나 재밌었는데.”

“안 봐도 뻔한 영환데..”

“뻔하다고?”

“착한 로봇이 나쁜 로봇하고 싸워서 이겼다.. 잖아요.”

“......”

“당연히 중간쯤에 반전이 있었을 거고, 그런 악조건 속에서 싸워 이기는.. 아니에요?”

“맞긴 맞는데.... 그런데 많이 피곤했나 봐요. 그렇게 시끄러웠는데도 세상모르고 자게..”

“존댓말하고 반말 섞어서하니까 더 어색해요.”

“.....”

“요즘 정신없어요. 막판이라고 인수인계를 아주 작정하고 시키는데...”

“마사지 해 드릴까요?”

“...마사지요?”

“몸도 많이 뭉쳤을 텐데 가요.”

“..”

모든 사람이 빠져나간 후 청소부 아주머니 한 분만이 있던 영화관 안에서 난 보영이 손을 이끌고 가까운 모텔을 찾게 된다.

완전히 러브모텔이란 곳을 표방하듯 보여주는 조금은 허름한 모텔 안에서 물부터 들이킨다.

그런 내 앞에서 보영이가 옷을 먼저 벗기 시작했다.

스커트의 후크를 풀어 바닥에 흘려내리듯 벗고는 블라우스의 단추를 풀던 보영은 멀뚱히 자신을 쳐다보던 날 발견하곤 단추를 잡은 손가락을 그대로 의아한 듯 물어본다.

“왜요?”

“...”

“왜.. 그렇게 쳐다봐요?”

“이젠 알아서 잘 벗는 구나~.. 해서요.”

“네?”

“...”

“그..게 아니고.. 어차피 또 구겨질게 뻔 하니까..”

“큭큭크크크~.. 그렇지 않아도 찢어버릴라고 했는데..”

블라우스까지 다 벗은 보영은 브래지어와 팬티를 남긴 채 텔레비전 받침대 옆에 있던 수건을 들고 욕실로 향한다.

그런 보영의 손목을 잡고 난 조금은 거칠게 침대에 내던져버렸다.

“꺄악~”

“...”

“잠..깐만요. 씻고 와서..”

“제가 언제 씻고 난 후에 했어요? 항상 씻기 전에 먼저 시작했지!”

“까르륵~~ 가..간지러워요!!”

“...”

“흑흑~.. 왜.. 왜요?.”

“......”

“필민씨가 그런 표정 지을때마다.. 얼마나 무서운 줄 알아요? 또 엉뚱한..”

“흐흐흐흐..”

“.....”

“가만히 있어요! 절대로! 절대로 움직이면 안 돼요!”

“무..뭘 하게...악!.. 아..아파요.”

난 보영이가 입고 있던 브래지어를 풀어 크게 올린 보영의 두 손목을 묶기 시작했다.

출렁이는 보영에 가슴의 부드러움을 고스란히 느끼며 얼떨결에 저항 한 번 못한 보영의 두 팔은 자신의 브래지어로 수갑처럼 묶이게 되었고, 난 아까 보영이 들고 있던 길고 큰 수건을 그 사이에 묶어 보영의 몸을 고정할 장소를 찾아 시선을 이리저리 옮기게 되는데..

마땅한 곳이 없었다.

보통의 모텔 안에서 뭔가를 묶을 장소를 찾기란 힘들었기에 난 보영의 몸을 더 올려 직사각형의 침대에 사선으로 눕히곤 침대 다리에 묶어 버렸다.

팔을 약간 굽힌 채 보영은 침대위에서 사선으로 가슴을 드러낸 채 팬티차림의 알몸과도 같은 형태로 누워있게 되었다.

고개를 젖혀 자신의 묶여 있는 팔을 몇 번 당겨보지만 곧 체념한 듯 들어올린 얼굴로 날 빤히 쳐다본다.

그러나 이전과는 달리 두려움이나 불안한 표정은 찾아 볼 수 없었다.

내게 길들여진 시간만큼이나 이런 좀 거친 플레이에도 나름 익숙해진 듯 보인 보영이다.

“아..파요. 그냥 평소처럼...”

“음~.. 평소라..”

“...”

난 천천히 침대 쪽으로 걸어가며 넥타이를 풀기 시작한다.

“왜..왜 그래요?”

“하긴.. 벌써 몇 개월이나 지났으니..”

“...?”

“우리.. 새로운 놀이 해 봐요.”

“새..로운?? 무..무섭게 왜...이래요.”

“뭐가요. 제가 옆에 있는데..”

“.....자..잠깐.. 필..필민씨!!!”

고개를 좌우로 심하게 흔드는 보영의 행동에도 어렵지 않게 넥타이로 그녀의 눈을 가릴 수 있었다.

꼭 해보고 싶었던 구속 플레이란 걸 시작하기로 마음 먹은 난 보영의 두 눈을 가린 넥타이를 조금은 아플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꽉 조여매기 시작했다.

눈을 가린 채 두 팔을 위로 올려 묶인 보영의 자극적인 모습은 급격한 꼴림을 내게 선사했다.

묶인 팔을 풀려는 듯 바둥거릴수록 더 출렁이는 보영의 가슴이내 눈을 더 호사스럽게 했고 연신 꼬으는 다리는 내 심장까지 벌렁이게 만들었다.

당장이라도 보영의 팬티를 벗기고 커진 자지를 밀어넣고 싶다는 충동을 겨우 억제하며 갑자기 번뜩이며 든 아이디어를 과감하게 또 실행하게 된다.

[띠...띠..띠띠띠띠...]

“여보세요. 오랜만입니다.”

“피..필민씨...??”

통화소리에 보영이가 움찔거리며 무릎을 굽혀 오므린다.

“여기가...OO모텔인데..출장 마사지 좀 부탁드릴 수 있을까요? 네.. 근육이 많이 뭉쳐서.. 호수요?”

“...”

보영이가 내 말을 더 잘 들으려는지 귀를 쫑긋거리며 고개를 살짝 비튼다.

난 보영의 그런 모습을 보며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한다.

일부러 발소리를 들려주듯 조금은 크게 소리를 내며 말이다.

“3층으로 오셔서.. 문을 열어놓을게요.”

‘철컥~... 끼~~익~~~~~’

“그럼 10분 안에 오시는 걸로 믿고 기다리겠습니다. 아!.. 제가 없어도.. 진행해 주세요.”

핸드폰을 끊자 보영이가 큰 목소리를 낸다. 모텔 방문이 열려 있다는 걸 눈치채곤 곧바로 소곤거리듯 작아지긴 했지만 말이다.

“필민!!...씨... 무..뭐 하는거예요.. 이..이거 풀어요. 이거 풀고.. 전 괜찮으니까 당장 전화해서..”

“쉬쉿~~”

“이런 거.. 싫어요. 무섭다고요.”

“가만히 있으면 돼요. 그리고 지금 목소리 듣고 누가 들어오면 어쩌려고 그래요..”

“필민씨...”

“쪼~~옥~~”

“흑~~”

단지 문만을 열어놓은 것 일뿐인데 효과는 대단했다.

보통의 모텔처럼 문을 열어 놓는다고 해서 침대가 곧바로 보일리 없는 모텔방의 구조에도 보영은 심하게 긴장을 하며 엄청난 심장고동소리를 내게 들려줬다.

“조..용히.. 있으면 마사지만 하고 갈거예요..”

“미..미쳤어요.. 이거 풀고...”

“저번에도 받았잖아요.”

“그때!!...는.. 필민씨가 해준 거잖아요.. 이런.. 거 싫어요.”

“그래요?”

“..네!.”

“왜요? 창피해서? 아니면 너무 흥분 할 거 같아서?”

“흥분..하다뇨. 말도 안 되는 소리 그만하고 빨리 이거 풀..”

“말이 되는지 안 되는 지는 겪어보면 알 테니까..”

“...피..필민씨..??”

“만약에.. 내가 돌아왔을 때 이걸 풀었거나.. 넥타이도 안 돼요. 그럼 다시는 안 볼 거예요.”

“자. 장난치지 말아요. 갑자기 무섭게 왜..”

‘저벅~.저벅~~..저벅~~... 턱.. ..탁..탁...탁..’

발소리를 내며 현관문으로 향한 난 구두를 신는다. 그리곤 밖으로 걸어가는 소리까지 들려주며 복도를 지나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피..필민씨!!!,,필민...”

소리죽여 날 부르는 보영의 목소리를 들으며 엘리베이터 앞에서 잠시 머물게 된다.

‘삐~~’

엘리베이터 도착음과 함께 조심스럽게 구두를 벗고 발소리를 죽여 다시 모텔 방안으로 들어갔다.

“피..필민씨.. 장난치지 말고.. 이거 풀어..요.. 화.. 안 낼 테니까.. 이거 빨리.. 풀어요. 그럼... 필민씨.......”

“필..민씨??”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인기척을 찾는 보영의 모습에 하마터면 숨소리를 낼 뻔했다.

“장..난치지 말아요.. 그만..”

‘저벅저벅저벅~.’

복도에서 들려오는 커플의 발소리에 날 찾아 말을 하던 보영이 얼음처럼 굳어진 듯 팔을 움찔거리며 입을 꾹 다물었다.

다리에 힘을 더 줘 꼬으며 바짝 오므린 보영은 복도 끝의 방문이 열리고 닫히는 소리를 듣고 나서야 다시 꼼지락 거리기 시작한다.

팔을 앞뒤로 움직여보지만 브래지어의 강도가 생각보다도 강하다는 걸 깨닫고는 눈을 가리고 있는 넥타이라도 풀어보려는 듯 팔뚝에 대고 얼굴을 위아래로 움직여보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게 호락호락하게 묶을 내가 아니었기에 넥타이마저도 꼼짝하지 않게 되자 보영은 곧 체념한 듯 다시 고개를 좌우로 움직이며 인기척을 찾아 귀를 세우기 시작했다.

“필민씨!”

그렇게 1~2분이 지난 후 기습적으로 부른 보영의 목소리에 무의식적으로 대답을 한 뻔 했다.

“... 진짜..없는 거예요?”

“..”

“없으면 없다고 대답 좀 해봐요..”

‘땡!~~~ 저벅~저벅~’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는 소리와 같이 들린 발자국 소리에 잔뜩 긴장한 보영의 몸을 보게 된다.

다리를 꼬아 옆으로 돌리며 자신의 몸을 최대한 가리려는 보영의 몸짓이었지만 오히려 엉덩이가 더 도드라지는 모습으로 변해 섹스러워졌다는 걸 모른 채 최대한 비트는 모습은 복도에서 들려온 발자국 소리 때문이란 걸 알게 되었다.

커플의 것이 아닌 남자 구둣발 소리만이 들려온 복도의 마찰음에 보영은 깜짝 놀라 숨죽이며 윗입술을 깨물기 시작했고 몸을 꼬으게 된 것이다.

내 통화내용대로 마사지사라도 도착 한 건 아닌지.. 잔뜩 겁먹은 표정으로 보영이가 몸을 더 비틀어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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