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따르르릉~~~]
벌써 네 번째 통화 연결음을 가만히 앉아 듣고만 있다.
좀처럼 전화를 받지 않는 보영의 핸드폰에 난 끈질기게 재발신을 누르며 계속 통화를 시도하고 있었다.
[...여보세요.]
“와~... 디게 비싼 보영씨다.”
[...]
“많이 바쁜 가 봐요.”
[알면서 왜 자꾸 전화를 걸어요.]
“제 명령은 잘 실행하고 있나 해서요.”
[.....]
“설마! 입고 나온 건 아니죠!?”
[....몰라요. 인수인계로 저 진짜 바빠요.]
“에이~ 밥도 안 먹나요? 벌써 12시 20분인데. 보영씨 회사도 점심시간이 12시부터 맞잖아요.”
[밥 먹을 시간도 없어요. 끊어요!]
“어!! 끊으면 또 전화 걸 거예요!”
[필!...민씨...]
“말해줘요. 입고 왔어요? 아니면...”
[안 입고 왔어요.. 됐죠!]
“잠깐!!”
[...또 왜요!?]
“증거를 보여줘야죠.”
[네!?]
“입고 왔으면서 안 입고 왔다고 하면 어떻게 해요.”
[......나중..에 보면 되잖아요.]
“그거야 나오면서 벗을지도 모르는 거고.”
[...전 거짓말 안 해요.]
“그러니까 증거를 보여 달라고요.”
[......]
“사진 찍어서 보내줘요.”
[네!??.. 미쳤어요? 지금 어떻게 사진을 찍어서 보내요.. 지금도 복도에서 나와서 겨우 받는 건데..]
“...약속했으면 지켜야죠.”
[.....]
“한 입으로 두 말 안하잖아요. 보영씨는...”
[진짜!!.. 나중에 혼 날 줄 알아요!]
“큭큭~ 나중에 보자는 사람치고 무서운 사람 하나도 없더라.”
[끊어요!]
“진짜로 안 보내면 또 전화 할 거예요!”
[알았으니까... 끊어요.]
싱글벙글 이란 단어대로 내 얼굴엔 미소가 끊이질 않는다.
핸드폰을 손에서 놓지도 못하고 샌드위치를 또 한입 베어 먹으며 보영에게서 올 문자를 기다린다.
[또로롱~]
왔다.
흔들리긴 했지만 분명 보영의 스커트 안쪽을 찍은 사진이다.
친절하게 플래시까지 터트려 찍어 준 사진엔 보영의 스커트 안 쪽 면과 그 중심에 아무 가림막 없는 갈라진 계곡이 훤히 들어 있었다.
팬티조차 없는 보영의 탄탄한 허벅지 안의 풍경은 말 그대로 절경이었다.
한시라도 빨리 보영과의 데이트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기에 남은 커피를 대충 마시곤 사무실로 향하게 된다.
보영과의 시간이 가장 중요하지만 결국엔 그 시간을 위해 벌어야 할 돈이 필요했기에 더 이상의 농땡이는 내가 사절이었다.
결정적으로 진급심사가 정말 코앞까지 다가왔었다.
정신없이 업무에 열중하고 있는데..
[또로롱~]
핸드폰의 알람음에 문자를 확인한다.
[저.. 입으면 안 될까요? 너무 휑해서.. 인수인계를 못 하겠어요.]
-안 돼요.
[또로롱~]
피식하고 웃는 그 짧은 시간에 보영이로부터 답장이 온다.
[입을래요!]
“야! 어디가!?”
“..화..장실이요.”
“아까 다녀왔잖아!”
문자를 확인하고 급하게 일어나는 날 불러 세운 건 역시나 한과장이었다.
“배가 또 아파서요..”
“일은 안하고 처먹기만 하니까 그렇지!”
“....”
“뭐해! 또 땡땡이 칠 건덕지나 생가하고 있냐! 빨리 다녀와!!”
[따르릉~... 여보세요?]
한참동안 벨이 울리고나 서야 전화를 받는 보영이다. 아마도 인적이 드믄 곳까지 나와 전화를 받는 게 분명했다.
“벗어 봐요! 당장 회사로 쫓아가서 벗겨 버릴 테니까!”
[.....]
“벌써 벗었어요!?”
[일을 못 하겠다고요!.. 누가 꼭 보는 거 같고, 들킬 거 같아서.. 얼마나 조마조마한지 아세요!?]
“큭큭~.. 말은 그렇게 하면서 혹시 흥분한 거 아니에요?”
[미쳤어요!!!?]
“흥분했구만~”
[끊어요! 그리고! 당장 들어가서 속옷 입을..]
“입기만 해 봐요!”
[진짜.. 왜 그래요..]
애원을 하듯 보영의 울먹이는 목소리가 핸드폰 너머에서 들려왔다.
그녀의 목소리에 마음이 약해지려 했지만.. 난 더 마음을 다잡고 오랜만에 명령조로 얘길 한다.
“잘 들어요. 당분간..이지만... 보영씨는 제꺼에요. 아니! 제 여자에요! 맞죠!?”
[.....]
“제 혼자 착각한 거예요?”
[그거랑... 이게.. 무슨 상관이에요...]
최소한의 부정도 하지 않는 보영의 말에 난 더 강하게 나간다.
“왜 상관이 없죠? 제가 제 여자한테 명령을 한 건데.”
[그,,,런 억지가 어디 있어요..]
“억지라고요?”
[.....]
“그럼 저녁에 약속했던 복장.. 기대할게요.”
[필민씨.. 필민...]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은 난 심하게 두근거리는 내 심장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내가 변태인 건 맞지만 이런 명령조에 어쩔 줄 몰라 하는 그녀의 말투에 말로 형용할 수 없는 흥분을 느끼게 될 줄은 전혀 예상 못했었다.
‘내가 나쁜 남자....?’
“야야!! 뭔 생각을 하기에 멍 때리고 있는데!?”
화장실에서 나오며 핸드폰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던 내게 담배 한 개비를 물리며 말을 건 사람은 한과장의 최측근인 김대리였다.
동갑이면서도 입사는 나보다 3년이나 후배인데도 벌써 나랑 동급인 대리를 달고 있는, 별로 친해지고 싶지 않은 놈으로 정확히 언제부터인지 반말로 친한 척을 하는 놈의 친화력에 말려들기 시작했기에 지금은 말을 놓고 지내고 있다.
“한과장님이야 하루 이틀도 아닌데.. 뭘 삐쳐서 그러고 있냐.”
“응? 그런 거 아니야..”
“아니긴~ 얼굴에 딱 써있구만.”
“아니라니까..”
“기분이라도 풀게 저녁에 한 잔 어때?”
“...나?”
“그럼 여기 구대리 말고 또 누가 있냐?”
“웬일이냐.. 나한테 술을 다 권하고..”
“그러고 보니 우리 둘이서는 술잔을 기울인 적이 없네. 그럼 더 잘 됐네~”
“그런데 어쩌냐.. 오늘 선약이 있는데..”
“선약은.. 중요하게 할 얘기가 있어서 그러니까 그 약속 나중으로 미뤄.”
“....”
“이러다가 또 한과장님한테 한 소리 듣겠네. 얼른 들어가 봐라.”
“...넌?”
“나야 뭐~..하하하하하하”
김대리 놈의 술자리를 가질 이유가 하나도 없던 난 대답대신 무응답으로 사무실로 향한다. 이 놈 과의 약속을 어긴다고 내게 해가 될 게 하나도 없다는 생각과 막무가내로 일방적인 약속이라 정하는 놈의 행동에 좋았던 기분만 망치며 사무실로 돌아가게 된다.
그러나 계획의 차질은 엉뚱한 곳에서 발생했다.
사무실로 들어가 막 자리에 앉으려던 날 한과장이 불러 세웠다.
“야! 구대리! 이 서류 왜 안 보냈어?”
“..네? 그게..”
“내가 분명히 수정해서 보내라고 했지!”
“생산부에 자료 요청했는데 아직 안.. 와서요. 알루미늄 강도수치를 저희가 마음대로 할 수도 있는 게 아니라서...”
“마음대로 못하면 제대로 알아내서 보내야 할 거 아니야!”
“...”
“너 독촉 전화는 했냐?”
“그게....”
“정신 안 차리지!”
“...”
“... 이것도 보내! 오늘 중으로 다 처리해라! 또 내일로 미루지 말고!”
“....”
한과장이 서류 한 뭉치를 더 던져놓고는 자신의 자리로 돌아간다.
이 서류는 분명 다른 직원의 업무가 맞았지만 난 아무 말 없이 서류를 체크하기 시작했다. 말 그대로 지금의 시기가 시기인 만큼 한 과장에게만큼은 잘 보여야 할 필요성이 있었다.
그러나 서류를 훑어볼수록 야근을 해야만 다 처리할 수 있을 거라는 내 불길한 생각은 확신으로 변해가기 시작했다.
평소라면 대충 마무리하고 내일 하면 되겠지만.. 한과장의 마지막 말이 계속 머릿속에서 맴돌게 된다.
결국 난 보영에게 전화를 건다.
“저에요.”
[자꾸.. 전화 걸지 말아요. 저 진짜 바빠요.. 거짓말이 아니고..]
“그게.. 오늘 야근을 할 거 같아서요.. 오늘 약속은 못 지킬 거 같아요.”
[.....]
“죄송해요.. 지금이라도..... 입어요.”
[정말요?]
“..너무 좋아하는 티를 낸다...”
[...]
“크~.. 네. 정말이에요. 약속 못 지켜서 미안해요.”
[괜찮아요. 일이 먼저죠.]
기뻐하는 보영의 말투에 괜한 호기가 발동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서류뭉치를 둘러볼수록 야근의 끝이 보이질 않았기에 오늘은 한 발 물러나게 된 나였다.
“그럼 내일 봐요.”
[...네.]
보영의 인사말에 아쉬움이 남아 있다는 혼자만의 생각을 애써 접으며 난 서류뭉치들을 처음부터 훑어보기 시작했다. 밤을 새는 한이 있더라도 내일은 꼭 보영이를 만나야 한다는 생각에 서두르게 된다.
“어!.. 구대리 그거 강대리꺼 아니야? 아! 강대리 아침에 부산으로 출장 갔지..”
“...”
“그거 시안이 내일까지 아닌가?”
“..조용히 좀 해줄래? 이거 생각보다 복잡한 시안이라서 정신 집중이 좀 필요하거든.”
“어허~.. 동료 좋다는 게 뭐냐. 내가 좀 도와줄까?”
“...”
“새삼스럽게 뭘 그렇게 놀라냐?”
도와준다는 말에도 기분이 영 별로였다.
“김대리! 결재 서류는 다 끝...”
“책상에 올려놨습니다. 과장님.”
“...오케이~”
“그리고 과장님.. 오늘은 구대리 좀 도와줘야 할 거 같은데요. 강대리 파트가 저랑 비슷해서 제가 도와주는 게 그나마 일정에 맞출 거 같은데..”
“결산은?”
“별로 안 남았습니다. 어차피 결산 보고도 내일이라서 아침에 출근해서 마무리만 하면 될 거 같은데요.”
“...마음대로 해. 그렇지 않아도 구대리한테 맡기면서도 불안했는데.. 잘 됐네.”
“네!”
더 기분이 나빠진다.
하지만 티를 낼 순 없었다. 내가 봐도 구대리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한 순간이었고 내일 보영이와의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 위해선 체력충전이 필요하기도 했기에 난 아무 말 없이 내가 미뤄놨던 일을 하며 김대리가 맡은 서류들을 서포터 하기 시작했다.
김대리의 도움에도 벌써 시계의 긴 바늘과 작은 바늘이 11을 가리키고 있었다.
“휴~.. 이 건은 대충 끝났고.. 구대리는 어때?”
“나도 거의 끝났어.”
“그럼.. 과장님!!”
웬일인지 과장까지 퇴근을 미루며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맡은 보고서야 그렇게 급한 게 아닐 것이고, 아마도 강대리 시안이 중요한가보다 라는 생각을 하며 서류를 마무리 짓는다.
“으응??..쓰읍~~”
침까지 흘리며 자고 있던 한과장이 김대리의 시안을 받고는 대충 훑어본다.
“됐네.. 그럼 퇴근하자고,..”
“과장님도 같이 가시죠.”
“그럴까?”
“....”
짜고 치는 고스톱이란 말이 떠오른다.
목적지가 어디임을 밝히지도 않았는데 한과장은 대답을 한다.
더 웃긴 건 내가 허락도 하지 않은 술자리를 이미 기정사실처럼 받아들인 김대리가 멍하니 자신을 쳐다보는 내 시선에 일까지 도와줬는데 당연한 거 아니냐는 시선을 보내며 웃었기에 기가 찼다.
도대체 무슨 꿍꿍이가 있기에 이런 쇼까지 하는 질 궁금해지게 된다.
도저히 참지 못한 난 엘리베이터 앞에서 잠깐 화장실을 간다며 자리를 비운 한과장의 틈을 타 김대리를 떠본다.
“뭔 얘긴데..?”
“뭐? 그냥 술이나 한 잔 하자고 하는 거지 뭐..”
“그냥 술? 장사 하루 이틀 하냐? 무슨 부탁을 하려고? 나한테 부탁이란 걸 할 게 있기는 한 거야?”
“....”
“..뭔데? 어차피 할 얘기면 과장님 앞에서 사람 곤란하게 만들지 말고.. 소수라도 좀 주라고.”
“..이번 진급 심사.”
“심사가 왜?”
“위에서 우리 팀원 중에 자네랑 나, 둘 중에 한명만 올리라고 했나보더라고..”
“....”
역시나 이 새끼가..
“물론 나야 자네가 적합하다고 추천을 했지만.... 요즘 구대리 자네가 정신이 좀 없었잖아.. 심사 점수도 좀 낮게 나와서 사실상 내가 낙점이 된 거 같은데.. 입사 년도에서 말이 나올 거 같다고.. 위에서 걱정을 하는 거 같더란 말이지..”
“...그런데?”
“한과장님도 걱정을 하시고.. 자네가 업무 능력은 좀 그렇지만 사람은 좋다고.. 한과장님이 마음이 많이 여리시잖아.”
“한과장이?”
“그래서 말인데.. 자네가 출장을 가는 건 어떤 가 해서.”
“..출장?”
“암만해도 입사 년차로 봐도.. 내가 먼저 과장대리를 달고 구대리랑 같이 일하는 게 좀 껄끄럽잖아..”
“그래서 나보고 장기출장을 가라고?”
“꼭 그렇다는 얘기는 아니고.. 아마 한과장님이 하실 말씀이 그런 거 아닐까 생각한다고..”
“....”
“뭐하나? 빨리 가자고..”
“네!”
“.....”
이런 일이 생길거란 걸 이미 예상하고는 있었지만....
한과장, 김대리.. 그리고 나는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이미 어둑한 로비를 지나 건물을 나온다. 호명한 순서대로 조금 더 떨어져 걷던 난 찹찹한 마음을 바로잡지 못한 채 표정 관리에도 신경조차 쓰지 못했다.
“휘익~~~”
유리문을 걸어 나가던 두 남자가 한 곳을 응시한 채 휘파람까지 부는 모습에 같이 발걸음을 멈추게 된다.
“와우~.. 저런 여자가 진짜로 있구나...”
“빨리 가자고.”
“과장님도 참~.. 대시 한 번 해볼까요?”
“대시는..”
“피..필민씨...”
엉뚱한 곳에서 들려 온 엉뚱한 목소리에 내 눈이 휘둥그레진다.
투 스냅 회색 단추가 포인트인 짧은 반코트를 입고 각선미를 자랑하듯 높은 에나멜 하이힐을 신은 아름다운 여자가 날 불렀다.
그림자에 드리워진 화단 쪽에서 걸어 나와 날 머뭇거리며 걸어 나오던 보영은 한과장과 김대리란 존재에 발걸음을 멈추곤 내 이름을 한 번 더 부른다.
“필..민씨....”
“자네랑 아는 여자야?”
“..누구야?”
“잠깐만요..”
“와우~. 아까 말했던 선약이란 게 데이트였어? 그것도 저런 여성분하고!???”
“선약?”
“아닙니다. 과장님.. 금..방 다녀올게요.”
“어떻게 된 거예요? 지금까지 기다렸어요?”
“.....네.”
“전화라도 하지.. 퇴근 했으면 어쩌려고...”
“야근한다고 했으니까...”
“그래서 이러..고....”
보영의 잘록한 발목부터 훤히 보이는 종아리, 허벅지 위까지 내 시선이 옮겨졌다.
코트 바로 아래 보이는 보영의 늘씬한 다리는 아주 얇은 검은색 실크 스타킹에 감싸여져 살색과 잘 조화를 이루며 눈을 즐겁게 해주고 있었다.
그리고 목까지 여민 코트를 보자 갑자기 생각난 약속이란 단어를 떠올리게 된다.
“혹시 안에 아무...”
난 나도 모르게 크게 말을 하다가 한과장과 김대리를 쳐다보곤 다시 고개를 돌려 보영에게 속삭이듯 얘길 한다.
“아무것도 안 입은 거예요?”
“.....”
보영이가 고개를 푹 숙이곤 아주 작게 끄덕인다.
“미..미쳤어요? 회사 앞에 이러고 날 기다리면...”
“,,...”
“뭐해요.. 빨리 돌아가..”
“내가.. 미쳤지.. 진짜 미쳤나 봐요.. 필민씨가 좋아 할 거라고 이런 짓을... 쳐다보고 가는 사람들 때문에 얼마나 창피했는데.. 말까지 거는 남자들 때문에...”
“말을 걸어요?”
“...시간 있냐고..... 커피 한 잔 하자고...요.”
“그래서요?”
“도..망 갔다가 다시 왔어요.”
“....”
“정말.. 안에 아무것도 안 입었어요?”
“....네.”
“스타킹은....”
“.... 너무 창피해서 신었어요. 스타킹도 안 돼요?”
“.....”
나도 모르게 피식하고 웃게 된다.
보영이란 여자의 엉뚱함은 내 상상을 넘어섰다.
아니.. 이런 행동을 할 여자가 아니었기에 더 서툰 모습을 보여주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며 보영의 우물쭈물하는 모습에 더 미소 짓게 된다.
“안녕하세요!”
“.....!?”
느닷없이 어깨동무를 하며 김대리가 보영에게 인사를 한다.
“와우~.. 가까이서 보니까.. 진짜 미인이시네..”
“...”
“...”
“뭐야 이 분위기.. 구대리 인사도 안 시켜 주냐?”
“...인사해.. 여긴 김대리라고... 직장 동료고.. 여긴 보영씨...”
“오~~ 이름도 아름다우시네.”
“안..녕하세요.”
“휘유~.. 모델이시죠? 아니면 배우??”
“...네?”
“우리 지금 한 잔 하러 갈 건데.. 같이 가시죠.”
“......”
“가긴 어딜 가.. 잠깐 내 얼굴만 보러 온 거야.. 이제 그만..”
“누구신데?”
“구대리 애인이랍니다! 과장님.”
“애인?? 친척이 아니고? 구대리가 애인이란 게 있어?”
“아..안녕하세요.”
“.... 정말요?”
인사를 질문으로 받아치는 한과장의 시선은 여전히 믿지 못하겠다는 듯 보영의 발끝부터 머리끝까지를 훑어보기 시작했다.
“정말 애인이세요?”
“,,,”
“그쵸!? 도저히 믿기지 않는..”
“과장님.. 그만 가시죠. 보영씨는 먼저 들어가세요. 제가 연락..”
“가만 좀 있어 봐.. 보영씨?”
“네..네??”
“...”
얼떨결에 대답부터 하는 보영의 버릇은 내게만 기분 좋은 행동이 아니었다.
큰 눈을 더 크게 뜨고 과장의 시선을 마주하는 보영의 모습에 과장이 먼저 날 향해 시선을 옮겼다.
“같이 가시자고.. 이런 기회도 흔하지 않을 텐데...”
무슨 기회??
보영은 어쩔 수 없이 나와 같이 일본식 어묵이 주 메뉴인 가게에 나란히 앉게 되었다.
높은 테이블의 높이와 높은 의자로 인해 자연스럽게 까치발을 하고 앉은 난 살짝 허리를 빼 보영의 자태를 확인하게 된다.
내 걱정대로 나와 마찬가지로 하이힐의 끝만이 바닥에 살짝 닿은 채 엉덩이를 살짝 걸친 보영의 모습은 말 그대로 위태로워보였다. 한과장과 김대리의 시선을 피해 연신 코트 밑자락을 조심스럽게 끌어내리는 보영의 행동이 지금의 심경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보영씨는 뭐하세요? 백조? 아니면 연기 지망생?”
“네?.. 아..니요.”
“그럼요? 역시 모델??”
“회사.. 다녀요.”
“...허.”
어느새 주는 보영이가 되었다.
김대리의 친화력은 예쁜 여자 앞에서는 배가 되는 건지 나는 안중에도 없는 듯 계속해서 보영에게 이빨을 까기 시작했다. 내가 알기론 저 새끼도 2년 사귄 여자 친구가 있는 걸로 알고 있었는데..
“몇 살이세요? 스물다섯? 여섯? 혹시 셋?”
“...”
“설마.. 스물 둘?”
“아..아니에요.. 스물.. 아홉이요.”
“에이~~ 거짓말!!”
“....”
“진짜요? 말도 안 돼!! 진짜 동안이시다... 몸매..도... 입는 스타일 때문에 더 그렇게 보이시내~”
“네?.....네...”
“그거 요즘 유행하는 하의실종.. 맞죠!? 우리 또래에서는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와우~”
“....”
하의실종이라..
하긴 진정한 하의실종이 맞긴 맞았다. 팬티도 안 입었고,, 스타킹만 신고 있.....
생각에 잠겨 무심코 보영의 허벅지를 향해 시선을 옮기는데.. 검은색 진한 톤의 스타킹이 내 시야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 바로 위, 코트아래의 아주 작은 틈에 보영의 새하얀 살결이 드러났다.
밴드스타킹을 신고 온 게 분명했다.
잘 신지도 않던 밴드스타킹을 하필 오늘 신고 온 보영이의 모습에 내 심장이 더 콩닥 거린다.
“그런데 정말 구대리랑 사귀는 사이에요?”
“........네.”
“이 친구가 언제부터 이런 호박씨를 깐 거래요.”
“..”
“호박씨라니.. ”
대화를 나누던 중 우리는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어묵 탕을 보게 되었다.
커다란 검은 색 냄비에 꼬치형식으로 나온 어묵들이 정말 맛있어 보였다. 시장이 반찬이라고 하더니..
“자자.. 우선 건배도 한 번 해야지~”
한과장이 평소처럼 건배를 제안한다.
김 대리만큼이나 나서기 좋아하는 한과장은 오늘도 팔을 높게 들어 지휘를 하려 했다. 익숙한 만큼 나와 김대리는 잔을 한과장의 잔과 마주하며 팔을 높이 들었다.
그러나 쉽게 팔을 올리지 못하는 보영을 보게 된다.
“어흠... 흠.”
“보영씨도 분위기 좀 맞춰주세요. 우리 과장님이..”
김대리의 말에 머뭇거리던 보영이가 곤란한 듯 날 쳐다본다.
잠시 후 손으로 앞섬을 가리며 우리와 마찬가지로 잔을 든다.
“그럼 지화..자.......”
한과장이 평소와 달리 말꼬리를 흐린다.
그 이유는 자명했다. 팔을 올린 보영이의 행동에 자연스럽게 코트 사이가 벌어졌고 손으로 가린 다해도 그 틈을 다 막을 순 없어보였다.
휘둥그레진 한과장과는 달리 목이 마른지 원샷을 하는 김대리 놈이 넉살 좋게 보영에게 한 잔을 더 권하며 자신의 잔을 먼저 채웠다.
“역시~ 술하고 노래는 미인 옆이 가장 재밌고 맛있다고 하더니.. 그런데 보영씨는 어쩌다가 이런 놈하고 엮이셨어요?”
“엮..이다뇨?”
“하하하.. 제가 말이 좀 심했나? 그런데 도저히 이해가 안 가서요.”
“필민씨.. 생각보다 좋은 사람이에요.”
“사람만 좋죠! 능력도 그렇고... 제가 알기론 집안도 그냥..”
“....”
“김대리.. 벌써 취했냐?”
“비결이 뭐냐?”
“뭐가?”
“아무리 생각해도 이런 미인 분이...”
“김대리..”
“네?”
“구대리가 어디가 어때서? 원래 사내대장부한테는 미인이 따르는 법이야. 아직 그런 것도 모르나?”
“.....”
어쩐 일로 한과장이 내 편을 들어준다.
나보다 김대리가 더 뻘줌해하며 맥주를 들이켰다. 김대리의 표정을 고소한 듯 쳐다보던 난 한과장의 말에 보영이를 다시 쳐다보게 된다.
평소처럼 굵은 파마로 차분함이 묻어나는 도시 미인의 표준형이라 할 수 있는 외모와 반코트로 몸을 가렸지만 어쩔 수 없이 드러나는 육감적이고 섹시한 몸매는 김대리 말대로 나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여성상이 분명했다.
보영이와의 은밀한 비밀이긴 했지만 코트 외에는 아무것도 입지 않은 알몸을 아무것도 모르는 두 남자 앞에서 상상하는 재미는 내게 스릴이란 감정까지 느끼게 해준다.
“그럼.. 보영씨가 하시는 직업이란 게..”
한과장이 뜻밖의 질문을 보영에게 한다.
남의 연애 사에는 별로 관심 없어 하던 평소의 모습과는 다른 한과장의 질문에 맥주를 먹다 행동을 멈추게 된다.
“OO디자인 팀에 있어요..”
“...”
“왜..요?”
“아니요. 좀 놀라서.. 그런 일류 브랜드에 다니시면....”
한과장은 정말로 놀란 표정으로 보영을 쳐다본다.
왜 저렇게 놀란 표정을 지었는지는... 그의 시선으로 뒤늦게 알 수 있었다.
건배 제의에 마지못해 손을 올린 보영의 행동으로 좀 더 크게 벌려진 옷깃 사이로, 이미 알고 있던 내게도 보이는 가슴의 언덕엔 브래지어의 흔적조차 없었다는 걸.. 한과장도 그런 보영의 코트 속을 본 것이 확실했다.
“...”
“왜.. 그러세요?”
“아닙니다.”
“과장님도 보영씨한테 반하셨죠!? 생전 하지도 않으시던 질문을 하시고. 하하하하하.”
“누가 누구한테 반했다고.. 쓸데없는 얘기 그만하고 술이나 더 시켜!”
“하하하하..”
김대리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보영이도 따라 일어난다.
“어디 가요?”
“....손 좀 씻으려고요.”
“...네.”
일어나자마자 보영이가 한 첫 행동은 코트의 뒷단을 끌어내린 것이었다.
검은색의 투명한 스타킹에 둘러싸인 보영의 늘씬한 다리는 감탄사가 절로 나올 정도로 세끈해 보인다. 페티시적인 취향보다는 완전히 벗은 나신에 더 끌린다는 내 생각은 보영의 뒤태로 인해 변해가고 있었다.
화장실로 향하는 늘씬한 다리가 훤히 드러난 보영이의 뒷모습을 응시하던 난 한과장의 또 다른 뜻밖의 질문에 눈을 크게 뜨게 된다.
“술집 여자냐?”
“...”
“그럼 그렇지.. 하다하다 이젠 술집여자까지 회사로 끌어 들이냐? 술값이라도 밀린 거야?”
“아니에요..”
“이 새끼가.. 나도 젊었을 때 제대로 놀아봤지만 내 주제는 알았다. 감당할 수 있을 정도로 놀아야지 이게 뭐냐!?”
“...”
데자뷰...
모든 면에서 상기놈 과는 달랐지만 묘한 동일성을 느끼게 만든 상황이었다.
보영과의 사이가 이렇게나 사람들의 시선에 안 어울리게 보인다는 건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분위기에 걸맞지 않게 웃게 된다.
“웃음이 나와?”
“큭..하하하하하”
“구대리!”
“하하하... 아우...”
“..”
“죄..큭~..합니다. 그냥... 이런 오해가 첫 번째가 아니라 서요.”
“오해?”
“제가 보영씨하고 그렇게 안 어울리나 봐요..”
“그것도 그거지만..”
“..네?”
“저 여자 복장이....”
“제가 부탁한 겁니다.”
“....뭐?”
어차피 버린 몸.
지금 상황에서 어떤 변명으로도 이 상황을 모면할 생각이 들질 않는다. 정확히 말해 보영이란 여자가 어떤 남자에게도 창녀나 술집 접대부정도로 취급 받는 게 싫다는 생각이 들어 있는 그대로를 얘기하게 된다.
“부탁이라니?”
“어떻게 보이실지 모르겠지만.. 보영씨는 정말 착하고 순진하고.. 아까 말한 회사에서 능력도 꽤 인정받는 여자가 맞습니다. 단지..”
“...”
“제 개인 취향으로 인해 가끔 이런 놀이를 하게 된 것뿐이죠.”
“그럼...”
“네! 보영씨는 생각하시는 그런 여자가 아니고...”
“뭔데? 뭐가 아니라고?”
“아무것도 아니야..”
“보영씨는?”
“화장실..”
“야~ 그런데 진짜 끝내주는 여자다. 어떻게 만났어?”
“그냥..”
“술집 여자지?”
“....”
“에이~ 우리 사이에 뭘 빼고 그러냐? 딱 봐도 일반 술집은 아닌 거 같고.. 혹시 그런 거 아니야? 0.5?”
“쩜오? 그건 뭐냐?”
“요즘 대세 아니냐. 한 때 유행하던 텐프로 중에서도 더 뛰어난 여자들이 원프로고 그 여자들 중에서도..”
“아니야.”
“아무리 봐도 남자를 후리는 기술이 보통이 아닐 거 같던데.. 야! 동료 좋다는 게 뭐냐!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서로 정보도 공유하면서 좋은 곳에 혼자 가면 안 되는..”
“김대리 술 시켰냐?”
“안 되는.. 네?”
“넌 뭐하는데 이렇게 늦게 들어와?”
“주문하러 간 김에 흡연실에서 담배 하나..”
“너 아직도 담배 못 끊었어?”
“....”
“전.. 이만 들어가 볼게요.”
도저히 안 되겠는지 화장실에서 돌아온 보영은 자리에 앉지 않고 조용히 그리고 다부지게 우리에게 말을 했다.
“왜요?”
“...”
“그만 들어가 봐..”
“네??”
“그런 게 어디 있습니까! 이제 겨우 시작인데..그리고 구대리가 빠지면..”
“됐으니까.. 보영씨라고 했죠.. 다음에 제대로 직원들에게 인사 부탁드려도 될까요? 구대리가 생각만큼 주변머리가 없어서요. 보영씰 보면 시선들이 많이 바뀔 거 같은데...”
“절..요?”
“뭐하나.. 에스코트라도 해 주랴?”
“아..아닙니다. 가요.. 보영씨..”
“과장님이 좋은 분이신 거 같아요.”
“글쎄요.. 무서워요.”
“그거야 필민씨가 상관이라고 색안경을 끼고 대하니까 그렇죠.”
“....”
“맞을 걸요. 어쩌면 한과장님이란 분이 필민씨를 많이 챙겨주는데 그걸 모를지도 모르고..”
“아니거든요.”
“본인은 잘 몰라요.”
“팀장이라고 저 무시하는 겁니까?”
“네?..그게 아니고..”
“지금 한과장이 왜 같이 나가라고 한 줄 아세요? 보영씨 젖탱이가 다 보여서,...”
“젖.. 뭐라고요?”
“...”
“....”
인도를 걷던 보영이 고개를 돌려 휘둥그레진 눈으로 한참 걸어 거리가 멀어진 일본식 주점을 다시 돌아본다.
발까지 동동 구르듯 하이힐 소리를 내며 보영은 내 얼굴과 주점 간판을 번갈아 보기 시작했다.
“걱정 말아요.”
“....어떻게 걱정을 안 해요. 얼떨결에 제가 다니는 회사까지 다 말했는데.. 절 어떻게 볼..”
“내가 시켰다고 했어요.”
“...네?”
“내가 변태고.. 보영씨는 전문직에 세련된 커리어우먼이 맞다고..”
“...”
“불쌍한 놈 인생 구제해 주는 천사 같은 여자라고 말 했어요.”
“그걸 곧이곧대로 믿어요? 그런 뻔히 보이는 거짓말을?”
“거짓말이 아니니까 믿죠.”
“....”
“왜요?”
“필민씨.. 선수죠?”
“네?”
“가끔 느끼는 건데.. 얼굴하고 안 어울리게 결정적일 때 사람 막 감동주고.. 무섭게 굴다가도 부드럽게... 정말 선수 아니에요?”
“선수는... 이렇게 생긴 선수 봤어요?”
“.....”
“와~.. 부정도 안 해주네.. 하긴 생긴 게 이러니...”
“그래서 더 그런 거 같아요.”
“...?”
“방심하게 만들어 놓고..”
“풋~..큭큭.. 그건 보영씨가 순진해서 그래요.”
“...”
“덕분에 시간도 널널해 졌고.. 그럼 즐겨야죠.”
“무..뭘요?”
“가만히 좀 있어 봐요!”
“헉!!”
난 보영의 어깨에 손을 얹고는 180도 돌려 버렸다.
한적한 인도를 살펴본 난 그대로 보영이가 입고 있는 코트의 허리끈을 풀기 시작했다. 뒤로 예쁘게 리본지은 허리끈을 풀곤 그대로 허리에 꽉 조여 맨다.
내 예상대로 보영의 코트가 더 타이트하게 밀착해지며 반 뼘 정도나 말려 올라갔고 밴드 스타킹의 타이트한 밴드 고무줄이 거의 다 드러나 흰 살결의 경계선을 살짝 보여주기 시작했다.
“무..뭐하는 거예요!”
“가만히 좀 있어보라고요!”
“미..미쳤어! 사람들 보면 어.. 악!”
‘짝~~~~“
보영이가 미간을 찡그리며 내가 세게 때린 엉덩이를 손으로 비비며 움켜쥐었다.
“손맛이 아주~~”
“진짜!!!”
“큭큭.. 가요!”
“어..어딜요?”
“우선... 아! 담배 떨어졌네.. 담배 하나 사게 편의점부터 들려요.”
“...”
날 도끼눈으로 쳐다보는 보영의 팔목을 잡고 성큼성큼 걸어가는 난 묘한 미소를 짓게 된다.
“원 블루로 하나 사다줘요.”
“네!!?”
“뭐해요. 빨리요.”
“미..미쳤어요!? 이상한 소리 하지 말고..”
“어허!!”
“.....”
정말 화를 내듯 똑바로 쳐다보는 보영의 모습에 아직은 무리라는 생각을 했고 결국 보영의 팔목을 다시 잡고 같이 편의점 안으로 들어가게 된다.
“어서 오세...요...”
심야의 편의점 안엔 다행히 남자 학생이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자리에서 일어나며 인사를 하던 남학생은 형광등 조명아래에 훤히 비쳐지는 보영의 모습에 인사조차 잊고는 눈을 비비며 말을 잇질 못했다.
말 그대로 표정이 가관이었다.
“원 블루 하나 주세요.”
“....”
“원 블루요.”
“네?....네.”
내 큰 목소리에 그제야 담배를 찾아 바코드기에 가져다 대는 아르바이트생은 여전히 뒤로 돌아서 고개를 숙이고 있는 보영의 모습을 훔쳐보고 있다.
갓 이십대 초반으로 보이는 어린 학생 같은 아르바이트생은 남자란 동물의 원초적인 본능을 보여주듯 보영의 에나멜 하이힐부터 잘록한 발목, 그리고 탄탄한 종아리를 지나 무릎과 이어진 허벅지를 뱀의 혀처럼 눈동자를 천천히 움직이며 훑어보고 있다.
그 시선은 보영의 코트 바로 아래, 스타킹의 밴드가 끝나는 부위의 틈 사이에 보인 살결에서 수초동안이나 머물러 있었고 심한 갈증이라도 느끼는 듯 마른 침을 삼키기까지 한다.
난 아르바이트생의 그런 표정을 살피던 시선을 옮겨 가장 안쪽에 있는 냉장고를 살펴본다.
“영이야.”
“..”
“영이야!”
“..네?”
줄여 부른 이름에 보영이는 두 번 만에 날 향해 고개를 돌렸다.
“맥주 좀 사와.”
“...?”
“저기 있잖아. 하이투 1.5L로.”
보영이가 내가 가리키는 손가락의 끝을 향해 시선을 옮겼다가 깜짝 놀란 눈으로 날 다시 쳐다본다.
“뭐해!?”
“...”
“한 병.. 아니 두 병 사와. 빨리!!”
보영은 마지못해 냉장고를 향해 걸어간다.
연신 앞 머리카락들을 쓸어내리며 혹시나 CCTV에 찍힐까봐 걱정하는 모습으로 냉장고로 걸어간 보영은 또다시 날 한 번 노려보곤 어쩔 수 없다는 듯 냉장고 문을 열어 최대한 조심스럽게 허리를 숙이기 시작했다.
당연히 맥주는 냉장고의 가장 아래에 위치해 있던 걸 확인한 나였기에 명령했고 더 곤란해 하는 보영의 모습과 더 황홀한 표정을 숨김없이 보여주는 아르바이트생의 상반된 얼굴을 쳐다보며 나도 마른 침을 삼키게 된다.
조금씩 숙여지는 보영의 허리에 서서히 올라가는 코트..
코트의 짙은 색과 검은색 밴드 스타킹의 어두운 톤이 보영의 드러나기 시작한 하얀 살결을 더 도드라지게 보여주는 대비의 효과를 보여준다.
심장이 멎을 듯 크게 요동치기 시작한 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삐~..삐~~...삐~~~...삐~~~~~’
‘탁!’
“계..산 해주세요.”
언제 걸어왔는지 보영이가 테이블 위에 맥주를 소리 나게 내려놓고는 다시 고개를 숙이고 앞머리를 연신 쓸어내린다.
“큭큭~ 계산이요.”
그런 보영의 모습에 난 미소를 지으며 지갑을 꺼냈다.
“삼만 사천 구백 원입니다..”
“여기..네?”
“삼만 사... 맥주 팩 2개랑.. 담배가.. 1....3개......죄..죄송합니다.”
연신 바코드를 눌러대더니...
말도 안 되는 요금을 청구한 아르바이트생이 급히 사과를 하곤 처음부터 다시 계산을 시작한다. 그 모습에 난 결국 웃음을 참지 못하고 낄낄거리며 입을 틀어막고는 보영을 쳐다보게 되었고 보영은 그런 내 모습에 더 황당하다는 듯 콧방귀를 끼며 어이없어 했다.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편의점에서 나오자마자 난 사람들의 이목도 신경 못 쓰고 크게 소리 내 웃기 시작했다.
쿵쾅거리는 심장소리와 보영이처럼 상기 된 얼굴을 감추기 위해 더 크게 웃던 내게 결국 가차 없는 응징이 들어왔다.
“아악!!.. 아..아파요!”
“....”
“윽..큭큭..~..미안해요!.. 알바 표정이 너무 재밌어서..”
“재밌어요?”
“...큭크크.”
“제 몸을 남한테 보여주는 게 그렇게 재밌어요?”
“음~~.. 뭐라고 할까.. 내 여자 노출에 환장하는 남자들을 볼 때 막 흥분이 된다고 해야 하나?”
“...기가 막혀.”
“혹시.. 보영씨는 자신의 아름다운 몸을 남한테 자랑하고 싶다는 충동을 느껴본 적 없어요? 단 한번도?”
“네!!!”
“에이~.. 여름에 비키니는 입을 거 아니에요.”
“전 비키니도 안 입거든요!”
“왜요?”
“....”
“설마 그런 몸을 갖고 있으면서 콤플렉스 같은.. 걸 갖고 있는 건 아니죠?”
“..아니에요.”
“그럼요?”
“구씨가문 며느리 감이.. 어떻게 그런걸 입어요..그런 걸 입었다가 사진이라도 찍히면...”
“말도 안 돼.. 이렇게 예쁘고... 아름다운데... 나같으면 매일 벗고 다니겠다!”
“뭐라고요?”
“진짜로요! 참나.. 늙으면 보여주고 싶어도 욕먹을 거 같아서 못 벗고 다닐 텐데.. 아깝잖아요.”
“진짜 변태 같아.. 내가 미쳤지.. 이런 변태를 뭐가 좋다고...”
“엇!”
“또...뭐가요!?”
“지금 좋아한다고?”
“....됐거든요!”
“웃차~.. 그럼 이 흥분상태를 이어서..”
“또 무..뭘 하려고요?”
“걱정 마요. 조~~기 모텔로 직행 할 거니까.”
“.....”
“어라! 아까는 억지로 끌려오더니.. 지금은.. 욱!!”
빼쪽한 보영의 팔꿈치가 내 허리 깊숙한 곳까지 파고 들어왔다.
“으윽.. 진짜 아프다.”
“엄살 피지 말아요...”
“큭큭큭~.. 가요.. 저 지금 꼴려 미치겠어요.”
“놔..놔요..”
“아잉~~”
“징그럽게 왜.. 이래요.”
“크크크크~. 정말 징그러운 게 뭔지 가르쳐줘요?”
“...”
“지금 들어가서.. 보영씨 스타킹 신은 발가락부터 쪽쪽 빨면서 보지까지..”
“조..조용히 좀 해요..”
“왜요? 싫어요? 다 적시면서 그 이쁜 스타킹을 빨아먹어버린다니까?”
“더..더럽게 스타킹은 왜 빨아요..”
“그거야~~ 아름다운 입구로 향하는 계곡인데 더러운 게 어디 있어요!”
“증..말 미쳤..어..”
“가요. 빨리!”
“미..미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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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음~~.. 음~~.. 남편이 자신감 있게 말하더니.. 정말 프론가 봐요.”
“..프로는요.”
“아~.. 시원해.. 우리 인사도 했으니 말 놓죠.”
“....”
“으음~~.. 거..거기에서.. 아아~~~.. ”
김검사의 와이프는 내 생각보다도 꽤 괜찮은 여자였다.
보영이란 여자를 알지 못했다면 지금 벌어진 상황에서 더 충실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수영으로 다져진 괜찮은 몸매와 외모의 여자임엔 확실했다.
어제 보영과의 질퍽한 섹스를 나누고 난 후 새벽에 걸려온 받기 싫은 전화는 불길한 예감대로 김검사란 놈의 번호였다.
두 번이나 보영이와의 뜨겁고 격렬한 거사를 치른 후였기에 혹시나 하는 걱정에 준비 해온 약까지 먹었는데.. 이정도면 약은 필요 없었을 거란 생각이 들게 된다.
이 여자는 말 그대로 섹을 아는 여자였다.
미희랑은 다른 음란함을 무장한 몸과 웃음으로 불려간 호텔방안의 침대 위에서 엎드려있다.
“그런데.. 이런 경험이 많으신가 봐요.”
“뭐~.. 많은 건 아니고..”
“검사님이 이런 쪽에 각별한 취미가 있으신가 봐요.”
“취미? 호호호호호호~.. 말 재밌게 하네. 그리고 검사는 남자 아닌가? 고추 달린 놈은 범죄자나 검사나 다 똑같아.”
“하긴...”
“아음~~... 어머!”
이미 커다래진 내 물건이 엉덩이를 마사지하기 위해 숙인 자세로 여자의 팔꿈치에 닿게 되었다.
“죄송합니다.”
“....”
“그럼 바로 누우시면 앞쪽을..”
“으음~... 자기 진짜 잘..한다.”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뭘 잘한다는 건지..
처음엔 걱정을 많이 했었다.
김검사란 놈이 도대체 어떤 제안을 해 올지.. 어떤 꼬투리를 잡아 나와 보영이를 괴롭힐지 불안하기까지 했는데..
엉뚱하게도 자신의 부인을 제대로 죽여 달라는 김검사의 부탁에 난 솔직히 내 귀를 의심했었다.
“으음~.. 자기.. 더 깊이.. 해 줘...”
“그럼.. 올라타서 해드릴까요?”
“응??.. 으..응!!!!”
고개까지 끄덕이는 사모님의 행동에 피식하고 웃은 난 팬티를 입은 채 여자의 오일로 범벅이 되어 미끈거리는 허벅지 위에 올라탔다.
“어..머... 물컹한 게...”
“네?”
“아..니야.. 자기 진짜.. 손 맛 좋다...”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어.. 팬티.. 다 젖겠다...”
“괜찮습니다.”
“그래도.. 벗어야지.... 괜히 옷 버리겠어..”
“그럼.. 그런데 검사님은 같이 안하시나요? 보통은 같이 하시는데..”
“으응~~.. 빠..빨리..”
내 덜렁거리는 자지가 모습을 드러내자 더 안달이 난 여자는 손을 뻗어 내 허벅지를 잡아끈다.
“너무 급하시네요.”
“아잉~...”
“검사님은 어디에 계세요?”
“무슨 상관이야.. 또 계집이나 껴안고 있겠지.. 아응~~”
역시나 내 예상이 맞았다.
저번 마사지 숍에서도 느낀 점이었지만 이미 이런 경험이 다분히 많았던 게 확실했다.
문제는 이 검사놈이란 새끼가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가 중요했다. 이렇게 넘어가준다면야 얼마남지 않은 보영과의 이별을 앞둔 나야 고맙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