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화 (6/21)

6..

초초하게 화장실로 들어간 그녀를 기다리는데.. 그녀의 구둣소리가 이내 내 귓가를 스쳐 다시 그 남자가 있는 자리에서 멈추게 된다.

앉은 그녀는 가지런히 다리를 모으고 있었기에 남들의 시선을 피해 몰래 허리를 숙여 확인을 해도 스커트 안이 잘 보이질 않았다. 하반신에 온 신경을 쓰는 그녀의 모습에 민우란 남자가 의아한 듯 그런 보영에게 어디 불편하냐는 질문을 연신하며 그녀를 살피기 시작한다.

그런 남자의 물음에 곧 정색을 하며 아무렇지 않은 듯 나온 스테이크에 능숙하게 칼질을 시작한다.

생전 처음 보는 관경이다.. 연인사이인데도 단 한마디도 하지 않은 채 식사에만 열중하는 둘의 모습에 민우라는 남자와 보영이 어떤 식사예절교육을 받고 자랐는지 궁금하게 된다.

그리고.. 저 스테이크의 가격은 분명 14만 원짜리 였다는 걸 메뉴판을 다시 확인하게 된 나였다. 이 미친것들은.. 내 한 달 보름치의 담뱃값을 한 끼로 해결하며 여유로운 모습으로 식사를 하고 있다는 것이 기가 막혔지만... 보영이 기뻐한다면 나라도 사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며 눈치를 주는 직원에게 다시 커피 한잔을 더 리필 시키는데.... 커피는 리필이 안 된단다...

어쩔 수 없이.. 5만 원짜리 샐러드를 시키게 된다...

돈이 아깝다는 생각을 머릿속에 수없이 반복하며 고급스러운 접시에 나온 샐러드에 포크를 가져다 되는데 식사가 다 끝났는지 후식으로 나온 커피를 마시는 둘의 대화 내용이 잘 들리지 않았기에 샐러드를 씹는 소리가 걸림돌이 되어 그 피 같은 비싼 음식을 멀리하며 귀를 기울이게 된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갈 때 이 고급스러운 접시라도 들고 가야 할 거 같다는 잡생각을 겨우 떨치며 둘의 대화에 집중한다.

이번에 아버님이 한번 들르라고 하시던데.. 시간 돼?

..언제요?

이번 주 토요일에 보자고 하셨어.

..예.. 괜찮아요.

첫째 누나가 당신 정장 너무 야하다고.. 이번엔 복장에 좀 신경 쓰라고 하시더군..

예..

....

'띠리링~'

그녀가 문자를 확인하더니 날 다시 노려본다.

그리곤 남자의 눈치를 보며 조금씩... 마지못해 허벅지를 벌리기 시작한다. 가늘고 긴 발목을 따라 올라간 허벅지의 안쪽까지는 보여도..그래도 정작 스커트 안은 잘 보이질 않는다. 감촉 좋을 거 같은 검은색 투명한 스타킹도 지금은 거추장스럽게 느껴진다.

내가 다시 보낸 문자 한통을 더 확인한 그녀는 연신 앞에 앉아 있는 남자의 눈치를 살피더니 내가 이번에 한 명령엔 거부하며 다시 다리를 모으는 모습을 보여준다.

'스커트를 더 올려.'

믿기지 않는다는 듯 다시 한 번 문자를 확인한 그녀였고, 다리를 모으더니 이내 민우란 남자에게 전념하기 시작한다. 무리한 요구란 걸 잘 알고 있었지만 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 그녀의 행동에 화가 나기 시작한다. 그러나 여기서 파토를 낼 순 없었다. 더 무리하게 요구하다간 그녀가 자포자기 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우선 상황을 지켜보며 민우란 남자와 일어나길 기다리게 되었다. 그러나 남자는 평소와 다른 보영의 태도에 호기심을 느끼는지 뭐라고 조용히 속삭이는데.. 심장이 터질 듯 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 보영의 얼굴이 더 붉어지며 고개를 숙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결국 참지 못하고 핸드폰을 눌러 문자가 아닌 통화버튼을 누르게 된다. 다행히 보영은 머뭇거리다 말고 민우란 남자의 눈치가 심상치 않게 변하자 전화를 받는다.

절 저번처럼 회사 동료라고 둘러 되시던지.......그런데 왜 제 명령은 안 따르십니까?

[이.. 이 시간에 웬 일이세요?]

웬일은.. 바로 앞에 있는데..

[........예??.. 결.....제 서류요??]

.....괜찮겠습니까?. 너무 티 나게 연기하시네요... 그만 하죠.. 

보영의 말이 너무도 사무적인.. 내가 보기에도 너무나 연극하는 티가 났기에 난 전략을 바꾸게 된다. 

내가 비아냥거리자 보영은 무의식적으로 날 쳐다보다간 민우란 남자의 눈치를 살피며 오히려 치마를 끌어내린다.

좋습니다.. 더 이상의 명령은 하지 않죠...대신!. 통화 끊지 마시고 핸드폰을 테이블에 뒤집어서 내려놓으세요. 안 그러시면 제가 테이블을 옮기죠....

[.........내일.. 말씀 하세요.. 저 지금 데이트 중이에요.]

통화 종료버튼을 누르는 보영의 모습에 난 다시 전화를 확인하며 통화 버튼에 손을 올리는데.. 내 말대로 보영이 누르는 척만 했을 뿐 여전히 연결 되어있는 화면을 볼 수 있었다.

바짝 귀에 대고 둘의 대화를 엿듣게 된다.

누구야?

...과..장님이요.

이 시간에 왜 전화를 하느냐고?

일 때문에요.. 결재 서류를 깜빡하고 안 올렸어요.....

참나.. 그딴 회사 그만 두라고 몇 번을 말 했나...

...죄송해요.

이제 더 이상 당신을 존중하는 것도 지친단 말이야.. 당신 아직도 경험하고 싶은 게 그렇게 많이 남았나?

......

그런데.. 당신 오늘 왜 그래?

..제가.. 뭘요?

..평소답지 않게.... 밝히는 여자처럼....

예???!!!

천박하게.. 왜 자꾸 치마를 끌어 내리는데? 그러려면 차라리 그런 짧은 건 입지 말던가...

....죄송해요..................

....

. 그래도.. 이거 짧은 거 아니에요.....

......됐다.. 어차피 결혼하면 입고 싶어도 못 입을 테니까...나가자..

..예.

초조한지 마시던 커피를 입에도 대지 않는 보영은 결국 그 이후엔 커피 잔에는 손도 대지 않고 레스토랑을 나서게 된다. 난 그들이 또 모텔이나 호텔로 향할 줄 알았는데... 

엉뚱하게 차는 한강 쪽으로 향하는 모습을 내게 보여준다.. 생각지도 않은 방향에 괜한 택시비를 더 날리게 된 난 곧 주차한 둘을 태우고 있는 차 쪽으로 조심스럽게 걸어가는데..

조금씩.. 들썩이기 시작한 민우의 차에 발걸음을 멈추게 된다... 일부러 한적한 주차장을 찾은 민우의 행동이 이런 건 아닐까 생각하기도 했었는데.... 

고급 승용차의 좋은 쿠션을 말해주는 듯 조금씩.. 그러나 분명히 흔들리기 시작한 자동차의 모습에 숨을 더 죽이고 조심스럽게 그 차에 다가가게 된다. 

초여름을 막 들어선 날씨에 짙게 가려진 선탠 사이로 안의 모습이 잘 보이진 않았지만 확실한 울림과 함께 희미하게 보이는 들썩이는 흰 살결과도 같은 덩어리가 보영의 엉덩이라는 것쯤은 충분히 알 수 있던 나였고, 역시 들썩이기 시작한지 채 5분도 지나지 않아 차안은 조용해졌다......

저런 황홀한 육체이기 때문일까? 남자의 사정은 너무나 빠른 시간을 내게 보여주며 곧 드리워진 적막감에 난 서둘러 몸을 피하게 된다... 잠시간의 침묵이 흘렀고, 곧 차의 후미 등에 불이

들어오더니 이내 사라져 버린다...

택시 잡기에 어려움을 겪게 된 난 생각지도 못한 시간을 도로 위에서 허비하게 되었고 집이 아닌 그녀의 집으로 방향을 틀게 만들었다. 지금이라면... 섹스 같지도 않은 섹스를 한 보영이라면 당장이라도 내게 달려 들 거라는 생각에 그녀의 집 앞에 한걸음에 도착하게 만들었다. 다행이.. 내가 택시에서 보영의 집 골목길 앞에서 내렸을 때 방금 전까지 들썩이며 흔들렸던 낯익은 민우의 차가 날 그냥 스쳐지나가 버린다... 그리고 황급히 뛰어 도착한 보영이 살고 있는 집에 불이 켜져 있었다.

서둘러 핸드폰을 꺼내 그녀에게 전화를 건다.

[.....]

전화를 받고도 아무 대답 없는 보영이다.

여보세요.

[....예.]

나와요.

[...예?]

내기 제가 이겼잖아요. 나와요.

[..그건 당신이 일방적으로 한거잖아요.]

한입으로 두말 하는 사람이었습니까? 보영씬?

[....]

옷 아직 안 벗었죠? 그대로 나와요.

[.....]

그냥 갈까요? 지금이라면 그 민우란 남잘 쫓아갈 수 있을 거 같은데....

[알았어요!... 나갈게요...조금만 기다려요...]

팬티 입고 나올 생각하지 말고.. 그대로 나와요...그리고 아까 제 명령을 어긴 것도 저 겨우 참았습니다... 그 정도는 해주셔야 되는 거 아닌가요?

[......]

몇 분 지나지 않아 보영이 입고 들어간 복장 그대로 빌라의 엘리베이터에서 나온다. 이미 스타킹은 벗어버린 채로 맨다리의 고운 살결을 짧은 치마 아래로 보여주며 내게 아무 말도 없이 다가온다.

그러나 재킷을 하나 더 걸치고 나온 그녀였기에 난 무섭게 그녀를 노려보기 시작했다. 그런 내 행동에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재킷의 옷깃을 여미며 내 시선을 경계하며 선뜻 발걸음을 옮기지 못하고 서 있었다.

.... 그 재킷은 뭐죠?

...추,워서요.

....아직..도 제 명령을 명령으로 안 들리시나 보내요.

...그건 말이 안 되는..

예?

일방적인.. 조건이었잖아요.. 당신이 혼자 결정하고.. 제 동의는 구하지도 않았고....

확실한건 보영씨가 남자화장실로 스스로 들어 왔다는 거.. 잊으셨나요?

.,..그거야.

역시.. 보영씨도 이기적인.. 말만 번복하는 여자셨군요.

....이제 됐나요? 그거 확인하러 오신 거라면.. 저 이만 들어갈게요.

..어딜 가세요.

...

제 말 다 안 끝났습니다.

...

이번 주 토요일에 그 남자 부모님 만나러 가신다고요? 당연히 처음은 아니시겠죠.. 말씀하시는 거 보니까.. 그.. 정략결혼인가 뭔가 하시는 거 같은데..

그런 거 아니에요!..저희.. 어릴 때부터 서로 부모님들끼리 약속한 사이세요. 그런 메마른 단어로 저흴 평가하는 식으로 말하지 마세요.

.... 그런 집안은 그렇게 결혼하나요?

...

민우란 남자가 대단한 사람인건 알겠는데.. 그럼 보영씨는요?

.....

보영씨도.. 그 남자와 어울리는 집안이신가요? 하긴.. 이런 비싼 곳에 혼자 살 정도면.....

..그만 하세요. 제 호구조사 하시나요?

보영씨에 대해서 전부를 알고 싶은 건 어쩔 수 없는 거죠..

이것보세요!.. 뭔가 착각하시는 거 같은데...... 좋아요.. 제 몸이 목적이라면 그냥 말을 하세요. 어차피 당신이 약점 잡고 있으니까.. 전 당신이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네요..

그래요? 그럼 제가 여기서 오줌이라도 싸라면 쌀 건가요?

..무..뭐라고요?!

왜요? 제가 약점 잡고 있잖습니까.

........

보영이 분한지 갑자기 주먹을 꽉 쥔 채 고운 입술을 꽉 깨물며 부르르 떨기 시작한다.

날 노려보는 눈빛에 살기까지 담은 듯 매섭게 노려보기 시작했지만 강약중 강으로 지금 상황을 넘겨야 한다는 것쯤은 나도 알고 있었기에 난 똑바로 그녀의 노려봄을 감수하며 무덤덤하듯 말을 뱉어내게 된다.

아직도 거짓말만 하시는군요.

.....

속이 부글부글 끓고 있는 듯 보이시는데.. 그냥 저번처럼 인정하세요.. 혹시 화장실에서 저한테 보지 빨리고 난 후에 사무실로 들어가서 팬티를 갈아 입으셨나요? 

..이..이것 봐요.... 저도 참는데 한계가 있다는 거.. 모르세요?

....

이 정도에서 그만하세요... 저도 잘못한 게 있고... 오기를 부리기도 했지만.. 이건 아니에요.. 그러니까.. 그만 하세요.

상류층은 그런가요? 사람 감정은 무시하는 게 일상인가요? 왜 소개팅 같은 걸 나오셨습니까? 왜 절 만나서 사람 이상하게 만드냐고요!

......말이 안통하내요.

....

...필민씨....

..

제 잘못 인정했잖아요. 그리고 사과까지 했잖아요. 그럼 남자가 물러날 땔 알아야죠.

..

차라리 몸을 달라고 하세요. 그럼 더 이상 못난 남자로 기억이라도 안남을 테니까요.

크크크..... 혹시 인터넷으로 상황대처 요령 같은 거 읽으시나요? 아님 고민을 직장 동료랑 나누셨나 보내요...

이..이것 봐요!

알겠습니다.. 오늘은 그냥 돌아가 드리죠. 하지만... 또 한 번 제 명령을 어긴다면.. 저도 더 이상 참지 못합니다.

...

그대로 난 등을 보인다.

당장이라도 허락할 줄 알았는데.. 보영의 자존심과 자괴심의 벽은 생각보다도 훨씬 높아 보였다. 실망감보다 날 똑바로 노려보며, 거기에 날 무시하는 모습까지 보이는 보영의 모습에 황당함을 느끼게 된다.. 방금 전 차안에서 카섹이라는 이상적인 몸부림으로 민우의 위에서 허리를 흔들던 년이... 상대적 약자인 나에겐 이런 태도로 일괄하는 모습을 보여주자 난 부풀었던 기대를 접고, 연신 비아냥거리는 말투로 상대하기 시작했었다.. 꼭 피해의식에 사로잡힌 놈처럼 더 농락하듯 말을 뱉어내게 되지만... 기가 차다는 식의 보영의 반응은 더 이상 끌고 가봐야 내게 손해라는 생각만 들 뿐이었다.

그리고 돌아서며 난 냉정한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고개조차 한번 돌리지 않고 그대로 고급스러운 빌라 단지를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걸음으로 빠져나오게 된다. 자뻑도 이런 자뻑은 없었다... 혼자 걸어가는 난 뒷모습이 멋진 줄 알고 어깨에 더 힘을 줘 본다.. 그녀가 분명 바라보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을 하며 그대로 집으로 향하게 되는데.. 

집에 들어와서도 대화가 끝나기 무섭게 이미 들어가 버린 보영이란 것도 모르고 혼자만의 자아도취에 빠져 다음날 닥칠 현실도 모른 채 침대에 누워 어떻게 더 괴롭혀줘야 스스로 인정하고 단번에 다리를 벌릴 보영일지를 고민하며 잠을 청하게 된다.

구대리!! 당장 내 방으로 튀어와!!

점심시간이 거의 다 됐는데.. 부장이라는 작자가 갑자기 날 호출한다.

영문도 모른 채 부장실로 향하게 된 나였고, 심각한 표정으로 사내 금연이라는 엄칙도 깬 채 부장이 책상 앞에 있는 소파에 앉아 담배를 꺼내선 종이컵에 재를 털고 있었기에 난 심각한 상황이 발생했다는 걸 감지하고 머뭇거리게 된다.

머릿속을 굴려보며 내가 도대체 무슨 잘못을 했는지 기억해내려 많은 고민을 하게 된다. 혹시.. 이전에 외근이라는 핑계를 대고 보영에게 찾아간 게 들킨 건가??..그것도 아니라면 요즘 실적이 너무 안 좋아서?...그러나 내 실적을 가지고 뭐라고 할 부장이 아니었다. 어차피 영업에 젬병이라는 꼬리표가 달려 내근직 겸 외근직을 겸하는 나였고, 그걸 새삼스럽게 꺼내 이런 심각한 분위기까지 조성하며 날 갈굴 부장도 아니었는데..

머뭇거리는 내 모습을 본 부장은 담배연기를 길게 뿜어내며 앉으라는 시늉을 한다.

자네 무슨 짓을 한 건가??

....예?

왕표기획에서 갑자기 우리하고 협력을 끊겠다는데!! 거기에 왜 자네 이름이 나오냐고!!

..와..왕표기획이요?

그리고!! 재나협회에는 또 무슨 짓을 한 거야?!!!!

,,,그..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재나에선 지금까지 들어간 물건만 받고 나머지는 없었던 걸로 하자고 하는데!! 위약금까지 다 물겠다면서 거래 취소를 한다는 말을 듣고 내가 위에서 얼마나 깨졌는지 알아?!!!

....부..부장님 그게 저랑 무슨 상관인지...

뭐야?!!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왕표나.. 재나 협회나.. 사실 이름도 잘 모르는...

이 사람이!!. 자네 지금 몇 년차야!?? 아니! 합쳐서 회사 연매출의 28%나 차지하는 업체들을 모른다는 게 말이 돼?!!!

.....

이 친구 큰일 날 사람이군.. 당장 찾아가봐!!

예?? 지금...말씀입니까?

뭐?!! 그럼? 밥 다 처먹고 끼질러 나간다는 말인가?

아..아닙니다... 그런데 부장님.. 전 솔직히 그 회사들이 어디 있는지도....그리고 왜 제가 그곳을 가야 하는지도 잘...

이 새끼가!!! 야!!! 너 나 짤리게 만들려고 작정했어?!!

...

에이!~~ 씨발..... 부하 직원이란 놈 하나 때문에...아침부터 재수가 없으려니까..

......죄송합니다.

이유도 모르고 사과를 하게 된다. 짐작이 되긴 했지만.. 인정할 수가 없었다. 내 죄가 이런 상황까지 처하게 될 줄은 전혀 예상도 못했었다. 협박이나.. 폭력까지 정도는 각오를 했었는데..

내 밥벌이인 회사의 목덜미를 조여올줄은 전혀 예상도 못 한 채 설마라는 생각을 하며 왕표기획이라는 거래처를 같이 근무하는 직원에게 물어 주소를 받아들고 향하게 된다.

도착한 왕표기획의 접견실에서 한참을 기다려도 아무도 들어올 낌새조차 없었다.. 뭔지 모를 불안감에 연신 물을 따라 마시며 혼자 접견실에서 시간을 축내게 되는데...5시가 훌쩍 넘어서야 상무라는 사람이 직접 날 찾아 들어온다.

안녕하십니까. 구필민이라고 합니다.

..예. 안녕하세요.

제...제가 찾아온 건..

그게 말입니다.. 저희도 곤란합니다..

..예??

아니.. 계열사가 당연히 본사 말을 들어야 하긴 하지만.. 갑자기 이런 전례 없는 지도를 받게 될 줄은 몰랐다 이거죠...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솔직히 필민씨가 어떤 사람이고 무슨 일을 하는지 관심도 없습니다만.. 저희야 위에서 까라고 하면 까는거지.. 별 수 있겠습니까...

..위..라면.. 본사 말씀하시는 겁니까?

죄송합니다.. 드릴수 있는 말씀이 여기까지인가 보내요. 그리고.. 강빈건설도 아마 조만간 연락이 갈 거 같습니다... 어차피 다 한집안 식구들이니...

자..잠깐만요...사..상무님!!

정작 그 본사에 대한 얘기는 제대로 듣지도 못한 채 먼저 나가버리는 상무의 뒷모습만 쳐다보게 된다.

28%란 수치가 절대 작은 것이란 걸 아무리 회사 일에 무능력한 나라도 알 수 있었다. 거기에 나도 들어본 강빈 건설까지 거래처를 놓친다면 다른 회사들처럼 불경기로 인해 가뜩이나 경영난에 시달리는 우리 회사는 아마도 무너질 거라는 것쯤은 충분히 인지할 수 있었다...

난 부장이 말한 재나협회로 발걸음을 옮기지 않고 그대로 보영의 회사로 향하게 된다. 인정하긴 죽기보다도 싫었지만.. 보영이 어떤 계층의 사람인지 뼈저리게 느끼며 후회라는 단어까지 머릿속에 떠올리게 되었지만 우선 보영을 만나봐야 한다는 생각에 서두르게 된다.

이미 보영의 퇴근시간이 가까워졌기에 더 서두르게 되었고, 도착한 보영의 회사 앞에서 낯설지 않은 자동차를 발견하게 되었다.

민우라는 남자의 차가 분명했다. 그 차에 막 오르려던 보영의 팔을 잡아채어 반 강제로 끌어내게 된다.

무..뭐하는 거예요?!!!

보영씨!.. 보영씨가 꾸민 일이죠?!

......

이거 너무하는 거 아닙니까?

어이~~

....

운전석에 나온 잘났다는 자신감을 한껏 얼굴에 드러낸 남자가 건방지게 날 부른다.

이제 정신 좀 차리지...

무..뭐야!!

이젠 사태파악 할 정돈 되지 않았나?

...

당신도 처신을 어떻게 했으면 이런 놈이 꼬리를 물고 쫓아다니나??

..죄..송해요.

당신이야?!! 당신이 이딴 비겁한 짓을 벌 인거냐고!!?

.. 웬만하면 그냥 말로 하려고 했는데.. 아직도 정신 못 차렸나 보네...

....

아직도 부족한가? 더 보여줘??

....이 새끼....

한대 치시게?

너무나 당당한 그놈의 언행과 태도에 이미 난 주눅이 들어 있었다.

아니 사람을 깔보는 듯 한 모습으로 오늘 하루 동안 당한 일들만으로도 이놈이 얼마나 대단한 놈인지 알 수 있었기에 감히 주먹도 쥐지 못한 채 말로만 악을 쓰게 된다......

그 정도면 이만 보영이한테서 떨어질 주제란 거 파악 안 되나?

...

듣고 보니까.. 보영이가 소개팅이란 걸 나가서 당신한테 실수한 거 같은데.. 그 정도면 그냥 넘어갔어야지.. 왜 매일 협박인데?

혀..협박?

말도 안 되는 약점 잡고.. 뭐? 나한테 까발려? 소개팅 한번 나간 걸 까발려서? 이슈라도 한번 만들어 보겠다?!!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조차 짐작할 수 없는 남자의 말투에 난 용기를 내려다 만다..

만약 이 남자가 내가 한 일을 다 알게 된다면.. 만약 단순히 소개팅에 나온걸 내가 협박하고 있다는 걸로 알고 있는데.. 이정도로 날 파멸시키려 한다면.... 모든 걸 알게 됐을 때의 상황은 내가 짐작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비참하고 참혹할 것이라는 건 눈에 뻔했기에 입을 다문 채 시선을 옮겨 보영을 노려보게 된다.

그리고....

....죄송합니다......제발.. 저 좀 살려주세요..

.....

비굴하게 빌기 시작한다. 우선 모든 걸 제자리에 돌려 놔야 한다는 생각에 난 무릎이라도 꿇을 정도로 고개를 숙인 채 곧바로 민우의 말에 겁먹은 듯 빌기 시작한다.

어쩔 수 없었다.... 내가 건드려서는 안 되는 여자를 건드리려 한 죄를 이 남자에게 사과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는다면 나 혼자만이 다치는 선에서 결코 끝이 나질 않을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되며 고개를 숙여 사죄하게 된다.

그런 큰 범죄를 저지른 나이면서도.. 지금까지 함께 동거동락과도 같은 생활을 했던 동료와 친구들의 원망섞인 시선을 떠올리게 되자 자연스럽게 고개를 숙이게 된다.

너무 빨리 사과를 시작한건 아닌지...돌변한 내 행동에 의심할지도 모른 다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민우란 남자는 이런 버러지들에 너무나 익숙해 보인다..

몇 번의 사과를 더 하고 나자 민우란 남자가 하찮다는 듯 혀를 차며 내게 말을 한다......

...정신이 좀 드나?

..예.. 죄송합니다.

...

.....

보영아 타라.. 가자.

저..저기..그..그럼 전....

내일 출근이나 하시오... 다시는 우리 보영이 앞에 그 낯짝 보일 생각하지 말고..

..

송충이는 솔잎을 먹고 사는 이유가 다 있는 거라는 거.. 왜 허황된 꿈을 꾸며 사는지 당최 이해가 안 간다니까.... 가자고!! 뭐해!!

..예.

날 그대로 도로가에 남겨두고는 차가 사라져버린다.

자존심이란 걸 잊게 된 나였지만... 마지막 민우의 말은 내 없는 자존심에도 무릎을 꿇게 만들기 충분했다.. 힘없이.. 집으로 향했고, 난 힘없이 컴퓨터를 켜게 된다.

너무 안일 했다.. 보영이 민우란 남자의 스펙을 들먹였을 때 최소한 알아보기라도 했어야 하는데..

'강빈건설'

'왕표기획'

'재나협회'

이 세 개의 키워드를 치자 어렵지 않게 하나의 회사명과 연관 지을 수 있었다.

'대공중공업'........ 세계 5위 안에 드는.. 자연스럽게 구씨 일가라는 파벌적 가족싸움까지 이슈가 되는 그런 회사라는 걸 사회에 무관심한 나조차도 이름만 듣고도 알 수 있는 회사가 컴퓨터의 화면에 띄워진다.. 계속 여러 장의 페이지를 넘기던 중..어렵게 보영의 사진까지도 발견할 수 있었다. 민우라는 남자와 함께 찍힌 사진은... 그러고 보니 보영이 입고 있던 스타킹의 감촉은 희은이가 입었던 스타킹과는 질적으로도 틀린 부드러움과 매끄러움을 느끼며 날 즐겁게 만들어 줬다는 생각을 이제야 하며 천천히 페이지에 나와 있는 뉴스를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창파공 강백 구씨 58대손 구민우의 약혼자로서 이미 20여 년 전부터 신부 수업을 시작한 오씨손 22대의 오보영은 일찍이 천부적인 미적 감각으로 해외의 유명 디자이너로 발 돋음 하려다 돌연 국내의 중소기업에 취직하여 화제가 되었다. 보다 한국적인 미를 세계에 알린다는 취지로 교사출신인 아버지의 반대에도 세상을 더 알아야 한다며 오피스텔로 나와 혼자 생활을 하며 현대사회의 진정한 여성상으로서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그의 약혼자인 구민우씨의 말을 빌려 결혼 전까진 최대한 자유롭게 놔주고 싶다는 생각으로 상관하지 않으려 노력하지만 너무나 아름다운 예비 신부가 수많은 늑대들로부터 지켜낼 수 있을지 걱정을....'

난 기사를 읽다말고 핸드폰을 꺼내 든다.

뭔가가 단단히 잘 못 됐다는 생각에 김대리에게 전화를 걸게 되었다.

여보세요!!

[..구대리?? 야! 너 어떻게 된 거야?!! 회사에서 부장이..]

그건 됐고.. 너 제수씨랑 같이 있지?

[응?? 응.. 왜?]

잠깐 바꿔봐!

[뭐? 갑자기 내 마누라는 왜??]

지금 급해!! 빨리 바꿔죠!

[아..알았다.. 잠깐만.......... 여보세요..]

여보세요.. 아..안녕하세요.. 저 구필민인데요..

[..예...안녕하세요.]

혹시. 보영씨요.. 보영씨 집안이 어떤 데인지 알고 저 소개시켜 주신 거예요?

[예?? 집안이라뇨? 그렇지 않아도 오늘 퇴사한다고 사직서 제출하던데.. 무슨 일 있었어요?]

퇴사요?

[예.. 결혼할거라고.. 그런데 집안이라니 무슨 말씀이세요?]

회사 앞에서.. 보영씨 기다리던 남자 분 혹시 아세요?

[그..건 죄송해요... 보영씨가 헤어졌다고 했었는데.. 다시 만날 줄은 생각도 못했어요... 크게 싸우고...]

......

[그런데 무슨 말씀이세요? 집안이라니요?]

아..아닙니다.. 모르시면 됐습니다.

[....]

밤늦게 죄송했습니다.. 그럼 쉬세요.

[여..여보세..]

전화를 끊고 손을 떨게 된다. 미련하게 내 욕구를 채우기 위해 가당치도 않은 상대를 협박하고 취중 강간을 했다는 생각을 하며.. 돼지도 않는 생각을 정리하기 시작해 본다.

구민우라는 남자야 그렇다 쳐도... 보영에 대해 더 많은 걸 알아봐야 했기에 계속 관련된 뉴스나 얘길 찾게 되는데.. 찾을수록 한심스럽게 느껴지기 시작한다. 사실상 이미 민우와 보영은 결혼이라는 단어만 적용이 안 될 뿐 거의 부부나 마찬가지였다. 자연스럽게 민우를 위해 키워진 보영처럼 뉴스에 가끔 보이는 양가의 관계에 대한 글들은 너무나 재미없게 둘의 결혼을 인정하는.. 그리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있는 사람들은 우리와는 전혀 다른 생활을 하고 있다는 충격을 받는 것도 잠시.. 이대로 물러나야 하는 건 아닌지... 아까 비굴하게 사과 했듯 그냥 넘어가주는 것만 해도 고맙게 여겨야 하는 건 아닌지 답없는 고민을 하게 된다..

하지만 이미 답은 머릿속에 정해져 있었다..그녀의 몸을 먹어보질 못했다면...그리고 이렇게 끝낸다면 정말로 평생 찌질하다 못해 병신이라는 이름을 내 이름 앞에 달고 살아야 할 거 같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어차피 가지질 못할 여자였던 건 예상했던 일이 아닌가 말이다... 단지 그 눈높이의 높이를 한참 잘못 파악한 나일뿐이었다...아직까지도 옷을 벗지 않은 나였기에 그대로 발걸음을 옮겨 보영의 빌라로 향하게 된다.

회사에 사직서까지 낸 그녀라면 얼마 지나지 않아 거처도 옮길게 확실했기에.. 당장 내일이라도 사라져 버릴 거라는 생각에 서둘러 보영의 빌라로 향하게 된다.

고급스러운 빌라는 들어가는 입구부터 지문 인식 시스템으로 내 발걸음을 멈추게 만들었다.

고개를 들어 보영의 집을 확인하는데 다행이 불이 켜져 있었고, 난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민우의 차를 찾게 된다. 주차장과 골목에서도 민우차가 없음을 확인 한 난 이제는 이성의 끈이 끊어진 채로 전화기를 들고 보영의 번호를 누른다.

전화를 받지 않는 그녀다.. 예상대로 내 전화는 받지 않았지만 윗 층에서 나는 벨소리로 안에 있는걸 확인할 수 있었던 난 몇 번의 착오를 거쳐 보영의 집 번호를 찾아 벨을 누를 수 있었다.

접니다.

..경찰 부를까요?

그러시던가요. 저.. 오늘 회사에서 잘렸습니다. 어차피 쫑친 인생인데 뭔 짓을 못하겠습니까..

..내일 회사에서 연락 올 거에요.. 민우씨가 용서해준다고..

아직도 모르시내요.. 사회에서 한번 낙인 찍히면 어떻게 되는지..

....

좋습니다. 어차피 이렇게 된 거 혼자 못 죽죠.. 보영씨 의도는 너무도 잘 알겠습니다.. 그리고 지금에서야 확실히 알았네요.. 보영씨가 말한 그 사람들도 계층이 있다는 걸 말입니다.

...

그런 사람인 줄 도 모르고.. 그동안 죄송했지만.. 어차피 사회에서 매장되는 거 혼자는 도저히 못 끝내겠네요..

.......

그럼 전 경찰서로 향할테니 나중에 뵙죠...

.....피..필민씨...

왜요?

...내일 회사 가보세요.. 꼭 가보세요.. 제가 다시 민우씨한테 말을..

이런 인터폰으로 얘기 할 거면.. 그만 두십시오.. 어차피 저 마음 굳혔습니다...

.....

걱정 마세요.. 비록 협박을 하고 녹음테이프를 돌린다고 해도..보영씨한테는 해코지 할 놈 저 아닙니다..

내..내려갈게요.. 내려가서 얘기해요.

...

전혀 이치에 맞지 않는 내 말에 그녀가 움직일지도 확신이 서지 않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보영은 몸에 잘 맞는 흰색 추리닝을 입고 나온다.

날 경계하는 눈빛으로 빌라의 유리문을 열어주길 망설이긴 했지만 고개 숙인 채 가만히 있던 나였기에 결국 문밖으로 나와 그래도 내게 미안한 듯 말을 꺼낸다.

미..민우씨가.. 그렇게까지 할진 몰랐어요...

대공중공업.. 거기에 보영씬 오씨 22대손.....

...예?

그렇게 대단한 분들인 줄은 전혀 예상도 못했네요.. 그런데.. 정말로 궁금해서 물어보는 건데요..

..

왜 소개팅 같은 걸 나왔습니까? 아니.. 왜 그딴 회사에 다니십니까??

그딴 회사라뇨.. 저한텐 소중한 경험이었어요.

소중..한 경험??..크크... 남은 살기위해 일하는데.. 경험해 보고 싶어서 회사를 다니셨군요.

...

..대단히 죄송했네요... 제 주제도 모르고.. 이렇게 높은 분들인 줄도 모르고.. 찝쩍대고... 생해 최대의 영광이었군요.. 보영씰 안은 제가요..

...다.른데 가서 얘기해요.. 여긴 보는 사람이 너무 많아요.

그리고 도착한 커피숍에서 나와 보영은 아무 말도 없이 고개를 숙인 채 한동안의 시간을 보내게 된다.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점원의 시선을 의식한 보영은 주문을 한다며 일어났지만.. 마지막은 내가 쏘게 해달라는 알량한 자존심을 세우며 카운터로 향한다. 그녀의 입맛까진 몰랐던 나였기에 그냥 나와 같은 원두커피를 주문했고, 시럽을 넣는 모습을 보여주며 등을 돌리게 된다..

난.. 집에서 준비해온 가루로 만들어 온 수면제를 조심스럽게 그녀가 마실 커피에 넣고는 시럽을 잔뜩 넣게 되었다.

그녀가 첫 입을 대고는 역시 인상을 찡그린다.

난 아무렇지도 않게 커피를 마시며 어렵게 입을 때는 척을 해 그녀와 대화를 나누기 시작하는데.. 한 모금 마시곤 커피 잔에 손도 대지 않는 그녀였다.

그렇군요...제가 사드린 커피조차 더럽게 여기시는 거죠?

그게 아니고.. 너무 달아요..

제 취향입니다.. 전 커피에 설탕 네 스푼이라고요.. 그게 서민 입맛입니다..

..

이렇게 달은 커피도 마시는 놈이 있다는 걸... 마지막으로 기억해 달란 말입니다.. 한낱 스쳐지나가는 쓰레기일지라도 말입니다..

그녀는 내 말에 마지못해 커피잔을 비우기 시작했다.

인상을 연신 찡그리며 어느새 반쯤 마신 커피에 그녀가 졸음이 쏟아지는 듯 하품을 하기 시작했다.. 내가 들고 온 수면제는 효과가 그리 좋지 않은.. 제대로 된 수면제를 구입해올 시간도 없었기에 신경안정제보다 조금 더 윗 단계인 이걸로 그녀를 농락하려 시도하게 되었다. 그래도 효과는 있어 보인다....

그녀가 힘겹게 눈을 뜨려 노력해본다...

내..가.... 왜 이러지.......

많이 피곤하셨나 보내요..

.....이럴 리가.... 없...는......

으~~..읍읍!!!!

이제야 깨어난 보영이다... 이미 모텔의 시계는 오전 11시를 가리키고 있었고..보영이 일어날 수 있었던 건 꼬박 12시간이나 지난 후였다.... 사실 보영이 미동조차 안하고 자는 모습을 보여주자 걱정까지 되어 한숨도 못 잔 나였다.. 막상 옷을 벗겨놓고 눕혀놓고는 겁을 먹고 잠도 오지 않았지만...

알몸인 채로 사들 고온 굵은 면테이프에 손과 입을 묶인 채 침대의 양 머리맡에 있는 침대다리에 연결되어진 끈으로 팔을 대짜로 들어 오린 모습으로 보영이 정신을 차리더니 너무나 놀랐는지 발버둥을 치기 시작한다. 이미 모텔 값으로 이틀 치를 계산한 난 그런 보영의 반항을 조금 떨어진 컴퓨터 책상에 앉아 연신 핸드폰의 섬광을 터트리며 담기 시작했다.

심하게..

격렬하게 발버둥을 칠수록 드러난 가슴은 더 크게 출렁이기 시작했고,, 허벅지를 허우적거리다가 터지는 핸드폰의 후레쉬 섬광 빛에 다시 조이며 손가락을 꼼지락 거려 테이프를 풀어보려 안간힘을 써보지만.. 이내 제풀에 지쳐 날 노려보기 시작했다. 

내가 다시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던 건 회사에 전화를 걸고서였다. 오늘 하루만 몸이 안 좋아 쉰다고 말을 하는데.. 대답하는 여직원의 목소리가 냉랭하다 못해 냉소했기에.. 난 끊어진 전화를 한참을 더 들고 있었다. 다행인지..아니면 불행인지 더 이상 나올 필요 없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보영의 말대로.. 모든 것이 되돌려진 듯 했지만.. 달라진 건 없었다. 아직도 민우라는 남자가 내게 했던 말과.. 그리고 날 버러지 쳐다보는 듯 내려 보던 시선은 이미 내 머릿속에 각인 되어 침대위에서 몸부림치던 행동에 숨을 헐떡이기 시작한 보영에게 고스란히 돌려주게 된다. 그리고... 이미 난 건널 수 없는 강을 건너게 되었다.

이미 보영을 수면제로 재워 납치까지 했고, 알몸인 채 테이프로 속박시켜 놓은 상태였다.. 

그런 내 행동에 경멸의 눈빛으로 보영이 날 노려보기 시작했다.

이렇게 될 거란 거... 그 민우란 남자한테 말할 때 이미 예감 한 거 아닙니까?

...읍읍!!

발버둥 치지 말라고.. 어차피 회사에는 휴직계를 냈고.. 아!~ 당신이 혹시나 민우씨를 걱정 할 거 같아서.. 문자 날려놨어... 참... 부자들의 사고방식은 이해할 수 없겠더군.... 확인 전화도 안 오고 말이야..

...!!!!!!!.

하루 동안.. 같이 즐기자고.. 평생 잊을 수 없도록 길고 긴 스물 네 시간을 보내 보자....... 질퍽하게 싸질러 줄 테니까...

!!!!!!!!!!!!!!!!!!!!!!!!!!!!!!!!!!!!

내가 아제야 와이셔츠를 벗고 허리띠를 풀기 시작하자 멈췄던 발버둥을 다시 시작한 보영의 모습이다. 처음도 아니면서.. 거세게 더 반항하며 날 거부한다..

아직 준비한 것이 너무 적었지만.. 우선 그녀를 범하려 한다. 

처음이 아니지만 처음처럼,, 그리고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르게 예의란 단어나 매너란 단어는 잊은 채 거칠게 그녀의 발목을 잡고는 침대 시트에 누르며 낮에 당했던 수치스러운 상황을 돌려주듯 그녀의 몸을 하찮다는 듯 내려다보며 천천히 다가간다. 

그녀의 발목에서 느껴지는 떨림까지도 상관없다는 듯.. 아니 당연하다는 듯 낮의 비굴했던 내 표정을 생각해내며 보영에 대한 일말의 죄책감을 지우곤 잡은 손에 더 힘을 준다.

보영의 인중에 주름이 생겨나며 고통에 얼굴을 찡그리기 시작했지만 난 천천히 그녀의 발목을 들어 올려 엄지발가락부터 핥기 시작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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