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9화 〉38화.
“아이구야. 죽겠네.”
간밤에 미친 듯이 불타오른 영철이 때문에 삭신이 쑤셔 골골대며 청소를 마치곤 소파에 늘어졌다.
누구는 열까지 올라 끙끙대며 일어나기 힘들었는데 누구는 그렇게 힘을 쏟아놓고서는 멀쩡히 일어나 아침까지 준비해두고 출근한 것을 보니 진짜 이 몸뚱이는 남자한테 보약인가 싶다.
그와는 별개로 나는 시달릴수록 체력이 달리는 기분이고.
어우 삭신이야.
“아…그러고 보니 코스프레 모드는 도대체 뭐지?”
이 몸뚱이 출신이 에로겜이었던걸 생각하면 분명 므흣한 일을 위한 서비스개념일 것이다.
그런데 달랑 모드가 해제되었다는 말만 뜨고 뭘 어떻게 사용하는지는 전혀 알려주질 않으니 궁금증만 도졌다.
애초에 이 몸뚱이 자체가 수수께끼투성이에 아직도 내가 모르는 무언가가 있을지 모른다.
영철이의 비정상적인 정력도 어제 알았으니…….
뭔가 튜토리얼도 없고 그저 생활하면서 알아나갈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으윽.”
이제까지와는 달리 좀처럼 회복이 더딘 몸을 주물렀다.
지난밤은 확실히 녀석이나 나나 상당히 무리한 건 사실이다. 근데 왜 그 인간만 멀쩡하냐고…….
진짜 오늘 아침 얼굴에 광까지 나며 출근준비를 하는 영철이를 봤을 때 기가 찼다.
휘파람까지 불며 실실 웃는 얼굴로 퇴근하고 오늘도 기대하라는 무서운 말을 하는 녀석을 보노라니 진심 성욕에 미친 괴물 같았다.
아니, 서큐버스인 나보다 성욕이 미치면 어쩌라고.
혹시 영철이 새끼는 인큐버스가 아닐까?
싶은 의문을 뒤로한 채 의미 없이 스마트폰으로 웹서핑을 하고 있노라니 영철이에게서 초코톡이 날아왔다.
-아직도 힘들어?
=ㅇㅇ죽겠음
-우리 아영이 힘들어서 우째 ㅠㅠ
=징그럽게 뭐라는겨-_-
마치 연인과도 같…아, 연인사이 맞긴 하지.
어쨌든 닭털 날리는 톡내용에 팔을 쓸고 질색했다.
-근육통?
=그런 듯?
-우리 회사 근처에 괜찮은 마사지샵 있는데 갈래?
=마사지샵?
-ㅇㅇ나도 몇 번 받아봤는데 괜찮음 이따 6시에 보자 나 퇴근하면 같이 ㄱㄱ
=어디 나가기도 귀찮은데=_=
-한 번 받아보면 너도 생각 바뀔 걸? 온 몸이 녹아내림 거기서 마사지 받고 저녁 먹고 들어가자
=오냐 근데 넌 인턴주제에 칼퇴한다?
-이 오빠가 능력이 워낙 출중해서^^
=지랄 인턴이 무슨ㅋㅋㅋ아무튼 이따 봐
-ㅇㅋ 쉬어
=ㅇㅇ
마사지는 한 번도 받아본 적 없긴 한데 언젠가 받아보고는 싶다고 늘상 생각은 했었다.
다만 언제나 생각만 하고 잊었지. 뭐, 이 기회에 한 번 받아보지 뭐. 지금이 두시니까 한 두 시간은 여유가 있다.
늦었지만 점심이라도 먹을까 했지만 뭔가 컨디션이 안 좋은 것 때문인지 생각이 없기도 했고 귀차니즘이 몰려와 거르기로 했다.
어차피 저녁에 맛난 거 먹을 테니 적당한 공복이 좋을 것도 같다고 적당히 스스로를 납득시키곤 간만에 핥짝넷에 들어갔다.
-요즘 넷카마님 신작 안 올라와서 슬픔
ㄴㅇㅇ미투
ㄴ그러게 요즘 왜 신작 안 올라오냐
ㄴ지난 러브러브쎾쓰 이후 올라온 거 없지?
ㄴ그럴걸
ㄴ그거 레전드였는뎈ㅋㅋㅋ
-하 남자친구 개부럽다씨발...인생...
“저도 그 새끼가 부럽습니다.”
간만에 들어간 핥짝넷에는 날 그리워하는 글이 많았고, 들릴 때마다 보이는 영철이에 대한 부러움은 나도 인정한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아…걔가 이 몸으로 변했으면 상황은 반대이지 않았을까?
인생…….
-진짜 울여신님 어떻게 그런 몸이 가능하지? 심지어 보지도 개예쁨
ㄴㅇㅇ개쩜
-망가에서나 보던 뷰지...그거 참 귀하네요...
-진짜 초대남 한 번만...
-얼굴도 예쁠 거 같던데
-안대 썼을 때 하관이랑 마스크 썼을 때 눈만 봐도 뭐...
-피지컬보면 그냥 백인 그 자체던데 혼혈인가?
ㄴ그럴지도 모르지
-근데 초대남 절대 안 하겠지?
ㄴ안하지 근데 초대남 말고 커플섹스는 지난번에 한 번 올렸자너
ㄴ아 하악님커플이랑 같이 찍은 거 있었지?
ㄴㅇㅇ
ㄴ그것도 레전드였는딬ㅋntr느낌도 나고ㅋㅋ
아…그런 영상도 있었지…….
여름쯤 영철이와 지현이 커플의 합작으로 날 속였던 일이 떠올랐다.
어휴. 그땐 진짜 환장하는 줄 알았는데.
그 일 이후로는 커플플레이는 해본 적 없었고 다시는 할 생각이 없었지만 지금이라면 뭐…지현이와는 다시 할 의향이 있다.
불쌍한 경찬이는 둘째치고라도 사실 그 당시 우습게도 지현이가 달라붙어오는 거 보고 엄청 흥분했거든.
온갖 임신최적화몸매의집약체인 이 몸보다는 아니지만 지현이도 핥짝넷에서 봤던 사람 중에서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의 피지컬이었으니까.
슬림한 몸에 비해 넓게 벌어진 골반이 참 예뻤지…….
나도 모르게 헤벌레한 얼굴을 하며 지현이의 알몸을 상상하고 있다가 이게 뭔 추태냐 싶어 정신을 차리고 다른 커플들의 신작이 없나 한참을 뒤적이다 지현이의 아이디를 검색하니 사진 몇 개가 나왔다.
근데 어째 SM사진이 대부분이다. 그것도 인정하기 싫지만 나와 영철이의 포지션과는 다른 여S남M…….
경찬아. 네가 고생이 많다.
-하악여왕님 넷카마님이랑 또 커플쎾안하나요?
-저도 보고싶셒습니다
-핥짝 투 탑 두 분의 콜라보 응원합니다
-아...둘이 가슴 비비면서 키스하는 거 또 보고 싶다...
지현이 게시글을 들어갈 때마다 한 번씩 콜라보얘기가 나오네……. 지현이는 딱히 대꾸해주진 않지만 계속 저렇게 나오면 조금 스트레스 받지 않을까?
혹시 그래서 요즘 연락이 뜸한 건가 싶기도 하고…….
하…이래서 악질팬덤이란…야레야레.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저 유저들을 내 팬덤이라 정의하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슬슬 준비하고 가 볼까.”
지현이 게시글을 찾아서 하트(추천개념)를 눌러주고 나갈 채비를 했다.
샤워도 하고 그동안 꽤 길어진 머리를 한창 말리고 있을 때 톡이 왔다.
-예쁘게 입고 와^^
=ㅗ
-ㅠㅠ
=...보고 싶은 옷 있음?
-신도시미시룩
=;;
-^0^
점점 애교가 많아지는 녀석이 징그럽기도 하고 귀엽기도 하고 귀엽다고 생각하는 내가 미친놈 같다고 생각하며 녀석의 주문을 받아들였다.
몸에 달라붙는 연갈색의 슬림 롱원피스를 입고 커피색 롱 가디건을 그 위에 걸쳤다.
핸드백도 챙겨 거울 앞에 서서 찰칵. 톡으로 녀석에게 코디를 보내줬다.
-사진
=굿 예쁘다 빨리 보고 싶음
=ㄱㅅㄱㅅ사랑해요 김아영
=우윳빛깔 김아영
=뷰릇뷰릇 김아영
-미친새끼얔 꺼져
꼭 쓸데없는 말을 해서 매를 번다.
쯧. 모든 준비를 마치고 폰을 보니 이제 네 시 반.
이제 나가면 딱 맞을 시간이다.
“많이 기다렸음?”
“별로? 와그작!”
시간이 좀 남아 카페에서 달달한 카페모카로 목을 축이고 남은 얼음을 아그작아그작 씹고 있으니 때마침 영철이가 왔다.
“오우. 네가 이거 입으니까 파괴력 진짜 장난 아니네.”
사람들 다 보는 앞에서 품에 꽉 끌어안는 녀석 때문에 얼굴이 달아오른다.
“사람 많은 데선 쫌!”
너무 질색하면녀석이 무안할까 싶어 이를 악 물고 속삭이자 가슴에 묻힌 얼굴을 타고 쿡쿡하는 낮은 저음이 들려왔다.
아…이 포근함.
아니, 이럴 때가 아니지.
“가자고, 쪽팔리니까.”
“그려그려.”
내 손을 꼭 잡고 카페를 나서는 녀석을 졸졸 따라갔다.
“영철씨?”
“어? 외근 끝나고 바로 퇴근이시라고 들었는데 다시 오셨네요?”
“보고할 게 좀 있어서 어쩔 수 없지. 근데 옆에 이 분은?”
카페에서 나와 회사 주차장으로 들어갔더니 영철이의 상사로 보이는 두 남자가 아는 체를 해 왔다.
“아. 제 여자친구입니다. 여기는 우리 회사 장 훈 대리님이랑 선임인 오병훈 선배님.”
“안녕하세요. 김아영이라고 합니다.”
영철이의 회사 상사라는 소리에 꾸벅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예의바르게 보여야 놈에게도 점수가 좀 쌓일 테지. 군대에서도 예쁜 여자사람이 지인이면 점수를 받는 후임을 봤거든.
“네. 반갑습니다. 장 훈입니다.”
“오병훈입니다.”
내가 좀 지나치게 예를 차렸나?
조금 당황한 둘의 모습에 나도 살짝 당황했다.
진짜 너무 오바였나?
“커흠. 흠. 영철씨 엄청 좋겠네. 이렇게 예쁜 여자 친구도 있고.”
“하하. 제가 전생에 나라를 구하긴 했나 봐요.”
난 나라를 팔아먹어서 이런 걸까?
“퇴근 후 데이트?”
“네.”
“그래요. 그럼 오붓하게 잘 놀고 다음에 기회 되면 또 봐요.”
“네. 수고하셨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영철이를 따라 고개를 숙이니 또 헛기침 소리가 들리곤 잘 가라는 인사와 함께 헤어졌다.
“나 좀 에바였냐?”
“뭐가?”
“아니 너무 예를 차렸나 싶어서. 두 분 모두 당황하시던데.”
“아…큭큭. 당황 할 만하지.”
“왜?”
내가 왜 그러냐고 멀뚱멀뚱 쳐다보니 손가락으로 내 가슴을 가리킨다.
아……. 가슴이 좀 파였던 디자인 때문에 고개를 숙일 때마다 가슴이 좀 눈에 띄었나보다.
흠흠…두 분 좋은 구경해서 좋았겠습니다?
“이 여우같은 년을 어찌하지?”
내 궁둥이를살짝 그러쥐며 볼에 키스하는 놈의 옆구리를 팔꿈치로 치며 흘겼다.
“그 눈은 뭐야? 꼬시는 거야?”
“째려보는 게 무슨 꼬시는 거야?”
“아니. 그렇게 흘겨보는 게 너무 섹시하길래 꼬시는 줄 알았지.”
“참나.”
내 손가락에 자신의 손가락을 얽혀 깍지를 끼더니 손등에 입을 맞추는 느끼한 모습을 보니 헛웃음만 나온다.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느끼함 한가득 들어간 놈의 달달함 폭발하는 태도에 뇌가 녹을 것 같다.
“쨌든 가자. 마사지 받으면 좀 늦을 거 같은데 밥부터 먹을래?”
“너 배고파?”
“지금은 딱히? 너는?”
“나도 뭐. 살짝 고프긴 한데 이따 끝나고왕창 먹지 뭐. 끝나면 피자 먹자 피자.”
“피자로 되겠어?”
“피자가 뭐. 어제도 칼질 했는데 뭘. 밖에서 먹으면 뭐든 맛있는 법이니까 그냥 가자.”
“그래.”
깍지 낀 손을 흔들며 차에 도착한 우리는 곧 주차장을 빠져나와 마사지샵으로 향했다.
버스로 두~세정거장 거리인데도 퇴근시간+불금이 겹쳐 조금 답답한 시간을 수다로 삭제시키고 마사지샵이 있다는 건물에 도착했다.
“나 마사지는 처음 받아봐.”
“그랬나?”
“어. 막 티비에서 보면 엄청 아파보이던데 진짜 아픔?”
“그건 스포츠마사지고. 여긴 좀 달라. 에스테틱이라.”
“엥. 에스테틱은 여자만 받는 거 아냐?”
“요즘은 남자도 많이 받는다.”
“그런가?”
“커플로 같이 받는 사람도 많아. 참. 여기 마스크.”
손수 내 얼굴에 마스크를 걸어주는 놈에게 의문을 표하자 자신도 마스크와 선그라스를 끼고 씨익 웃었다.
“들어가면 알아.”
뭐가 들어가면 안다는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일단 녀석을 따라 들어갔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마사지샵에 입성.
느긋한 클래식이 작게 울리며 부드러운 향기가 느껴지는 매장은 꽤 고급스러웠다.
참…남자였을시절엔 이런 곳은 꿈도 못 꿨는데. 별에 별 경험을 다 한다.
“어서 오세요.”
“안녕하세요. 예약했던 넷카마입니다.”
“아. 환영합니다. 고객님.”
안내데스크에서 환한 웃음으로 맞는 아리따운 직원분의 미소는 예전의 나였다면 당장 결혼해서 아이 둘 낳는 상상까지 했을 정도로 정말 아름다웠다.
와. 일반인 중 눈앞에서 앞으로 지현이보다 예쁜 사람은 볼 일 없을 줄 알았는데 저 정도면 배우를 해도 될 얼굴인 것 같다.
“여기 이건 샤워 후 닦으실 타월이고 이 긴 타월은 몸을 가리실 타월이에요. 7번 커플룸으로 들어가시면 됩니다. 샤워는 커플룸에 비치한 샤워실에서 하시면 되고 준비되면 벨을 눌러서 알려주시면 됩니다.”
친절히 알려주는 직원의 안내에 영철이를 따라 쭈뼛쭈뼛 따라갔다.
“VIP?”
“여기 7번부터 10번까지는 VIP거든.”
“뭘 얼마나 이용했길래 VIP야?”
“여긴 많이 이용한다고 VIP가 되는 것이 아니란다.”
“그래? 근데 여기 예약한 거면 아까 밥 먹고 왔으면 민폐였겠네.”
“아냐. 여기 VIP는 예약한 날에만 오면 언제든 이용 가능해서 상관없어.”
“엥. 그런 게 어딨어?”
“선입이거든. 취소 안 되고. 그리고 그거 외에도 따로 이유가 있고.”
무슨 이유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일단 도키도키한 가슴을 안고 룸에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