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화 〉19화.
“촬영 수고하셨습니다.”
“네. 강대표님도 수고하셨어요.”
촬영을 마치고 대표님께 수고했다는 인사를 끝내고 탈의실로 들어갔다.
어우. 힘들어 죽겠다. 오늘 아침까지 영철이에게 시달려서 컨디션은 최악이었지만 내색하지 않고 잘 끝낸 것 같다.
이제 매일 안 해도 되니까 며칠은 쉬자는 데도 불구하고 이 짐승노무시키는 끝도 없이 달라붙어댄다.
물론 죽음의 위협은 벗어났지만 대신 서큐버스로 변해서 다시 인간으로 돌아오려면 하긴 해야 한다.
하지만 어차피 집 밖만 안 나가면 생활하는 데엔 문제가 없기에 며칠만 쉬자고 해도 이 새키는……어후. 삭신이야. 그래도 오늘부터 출장 갔으니 다행이지.
생각해보니 아직도 하루라도 빼먹으면 죽는 상태였다면……출장지까지 끌려갔을 거 아녀. 후덜덜하네.
“아영씨 수고했어요. 참, 이번 촬영 한 것도 폰으로 보내뒀어요.”
“넵. 고생하셨습니다.”
옷을 갈아입고 나오자 강대표님이 웃으며 작별인사를 해 왔다. 흠흠. 또 이 몸의 아름다운 모습을 집에서 감상할 수 있겠군. 흐흐.
“참, 아영씨. 혹시 오늘 저녁 같이 하실래요? 전해드릴 말도있고요.”
“저녁이요?”
뭐, 따로 약속은 없으니 상관없겠지?
“그러죠 뭐.”
“그럼 사무실에서 기다리고 계시겠어요? 금방 정리하고 갈게요.”
“네.”
대화를 마치고 사무실로 돌아온 난 할 짓 없이 핸드폰만 뒤적였다.
핥짝넷도 들어가 보고 SNS댓글도 확인하고……지금 보니까 나 완전 관종이네.
하긴남자였을 때도 캐릭터 커마 자랑하면서 댓글 확인도 한 적 있었고, 내가 올린 다른 글도 댓글이 많길 바랐으니 말이다.
으음. 이건 요즘 사람들에겐 보통인 것인가 아니면 내가 유독 그런 것인지 잘 모르겠다. 다른 사람들의 SNS나 게시글 보면 나와 같은 사람도 많은 것 같긴 한데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유독 심한 것같기도…….
[뭐해?]
“뭐 하긴.”
=이제 퇴근 준비 중
멍하니 폰 화면만 보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영철이에게서 톡이 날아와 답장을 보냈다.
[사진 잘 찍었음?]
=오냐 잘 찍었다
[사진 받으면 또 나한테도 보내]
=ㅇㅇ참 오늘 여기 강대표님이랑 저녁 먹기로 했음
왠지 이런사실은 알려야 할 거 같아 톡을 보냈다. 놈 성격상 딱히 신경을 쓸 것 같진 않지만 이제 나름 여자친구인 이상……아니, 뭐라는 거야?
[둘이 감?]
=ㅇㅇ아마도?
[바람피면 죽는다]
=ㅡㅡ뒤질래?
[ㅋㅋㅋㅋ]
실없는 농을 하는 놈에게 대충 대꾸한 난 다시 핥짝넷을 들어가 보았다.
-최근 여신님의 상태가 심상치않다
ㄴㅇㅇ 점점 색기가...
ㄴㅗㅜㅑ 어제 거 봄?
ㄴㅋㅋㅋㅋㅋㅋ지림 나도 임신확정 교배프레스 하고 싶다!!!!!!
ㄴ근데 대화 연출이겠지?
ㄴ연출일 듯
ㄴ아님 영상 마지막 보면 뺐는데 남친이 강제로 넣어버림ㅋㅋ
ㄴ연출이면 어떻고 아니면 어떰 그 시츄 자체가 대꼴인 것을...강간 같아서 좋았음
-여신님 저희에게도 은총을...
ㄴㄹㅇ 제발 초대 좀...
ㄴ근데 사실 나 같아도 초대남 안 할 듯
ㄴㅋㅋㅋㅋ아 근데 진짜 무슨 느낌일까 다른 영상들도 부럽긴 한데 진짜 넷카마남친 개부럽더라
ㄴ포르노펍에도 2-3분짜리 감질 나는 영상인데도 여기랑 비슷함 댓글 장난 아니더라
ㄴ근데 거긴 누가 계속 올리는 거냐? 올리는 놈 매번 똑같은 거 같던데ㅋㅋ
ㄴ모름ㅋㅋㅋ이제 그놈이 올리면 그거 막 다른 사이트도 퍼지더라 ㅋㅋ근데 화질 똥망임 고화질은 여기밖에 못 본닼ㅋㅋㅋ
ㄴㅋㅋㅋㅋㅋ넷카마 남친께 경례!
ㄴㅋㅋㅋㅋ나 집에 있던 야동들 다 처분했음ㅋㅋㅋ넷카마 영상보다 쩌는게 없더라
ㄴ야 너두? 야 나두!
얼마 전에 복귀(?) 영상이후 반응들이 장난 아니다.
이제까지 올렸던 영상 중 최고 조회수를 달성. 댓글과 추천도 최고치를 달성했다.
그 때문에 사이트에 들어가면 무시무시하게 1:1대화가 걸려오는 통에 항상 오프라인표시를 해 두는 설정을 걸어 둔 상태.
쪽지함을열어보면 수백 개가 쌓이는 수준이다.
내용도 참 다양하다.
초대남은 물론 꽤 유명한 여자유저들도 같이 플레이하자는 쪽지를 매번 보내는 중이고 다짜고짜 욕하면서 대달라는 도라이들도 있다.
그리고 내 기억에 최고의 도라이는 임신테스트기 인증 해 달라는 놈이 도라이 오브 도라이였지. 저기서 댓글 쓰는 사람들은 양반이지. 쪽지함은 진짜…….
“미안해요. 많이기다렸죠?”
“네? 아, 아뇨. 폰 가지고 노느라 별로 기다린 것도 없어요.”
준비를 마쳤는지 사무실로 들어온 대표님의 사과를 받아 넘기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녁은 제가 살 테니 따로 먹고 싶은 거 있으세요?”
“사주신다면야 뭐든지 감사합니다. 가리는 것도없어요. 전 뭐든지 잘 먹습니다.”
자고로 사주는 사람이 왕이다.
“하하. 그럼 제가 잘 아는 곳으로 갈게요. 하긴 국밥 그렇게 맛있게 드시는 분이니까 부담은 없네요.”
국밥? 웬 국밥?
“국밥이요?”
“어? 모르셨어요? 요즘 국밥녀로 꽤 유명하신데?”
“에엑?!”
국밥녀? 내 요상한 감탄사에 쿡쿡 웃은 대표님이 자신의 핸드폰을 열어 보여줬다.
“헐.”
요즘 인터넷이라곤 SNS, 뉴스, 핥짝넷, 피치몰 정도가 다였던지라 커뮤니티쪽은 전혀 둘러보지 않았더니 어느새 내 사진과 영상들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게시글을 보니 내 모음집이라도 되는 듯 여러 가지 내 사진과 영상들이 있었다. 바닷가에서 지현이가 저번에 찍었던 걸로 보이는 요리영상과 PC방에서 알바하던 시절 찍힌 사진, 그리고 국밥을 드링킹하는 영상 등 별 게 다 찍혀있다.
“SNS에서도 유명해요.”
폰을 다시 대표님께 드리자 그는 미소 띤 얼굴로 말했다.
“저 SNS 하긴 하는데 제거만 보고 SNS에 제 얼굴사진은 없거든요. 주변에선 저 SNS하는지도 몰라요. 아무도 안 가르쳐 줬거든요.”
“아하. 혹시 남자친구분도 몰라요?”
“아뇨. 걘 알아요.”
“아, 하긴……같이 핥짝넷에서도 활동하니 모를 리가 없죠. 하하.”
정답인지는 모르겠지만 왠지 부럽다는 기색으로 말하는 대표님의 심정이 이해갔다. 나도 사실 그녀석이 부럽거든. 아오.
“일단 나가죠.”
대표님의 안내에 스튜디오 직원 분들과 작별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와 대표님의 차를 탔다. 뜨헉.
“헉.”
“하하. 덥네요.”
완전 찜질방급 더위. 오래 방치된 여름과 겨울의 자동차는 진짜 헬이다.
아니, 올해 날씨가 미친 거지.
9월이 넘었는데 아직도 여름 날씨라니……. 내 손부채질에 대표님이 서둘러 에어컨을 켰다. 으어~시원하다.
“쿡쿡. 귀엽네요.”
“예?”
내가 에어컨이 나오는 곳에서 얼굴을 붙여 바람을 즐기고 있을 때 대표님이 웃으며 말했다. 으억. 닭살이야.
“대표님. 여기 닭살 보이죠?”
“하하하하.”
내가 오소소 돋은 팔을 보여주자 대표님은 크게 웃더니 차를 몰았다. 영철이가 저런 말을 해도 소름이 돋는데 걔보다 안 친한 남자한테 직접 들으니 아주 미치고 팔딱 뛰겠다. 아, 얼굴 빨개졌네. 미쳤나.
“자. 다 왔습니다.”
한 레스토랑에 도착하며 대표님이 말했다. 어……이거 꽤 비싼데 아닌가? 칼질은 놈하고 처음 갔을 때 말고는 안 해봤는데.
“여기 비싸지 않아요?”
“아뇨. 겉은 비싸 보여도 안 그래요. 가족이나 커플들도 많이 오는 장소에요.”
이런 곳을 와 본적이 있어야지. 미리 예약까지 해 두었는지가게직원의 안내에 따라 우린 2층의 창가 근처에 앉았다.
“알러지나 따로 못 먹는 거 없다고 그러셨죠?”
“네.”
“그럼 제가 알아서 시킬게요.”
“네.”
직원을 불러 따로 이런저런 말을 하던 그는다시 내 얼굴을 보며 미소 지으며 말했다.
“맛있을 거예요.”
“네. 그럴 거 같네요.”
뭔가 어색한 기분에 물만 홀짝였다. 참, 그러고 보니 전해줄 말 있다고 그러지 않았나?
“근데 전할 말 있다고 하셨는데 어떤 거죠?”
조심스레 묻자 대표님은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별건 아니고 혹시 해외로케 같은 것도 가능한지 물어보고 싶어서요.”
“해외요?”
“네. 사실 회사일 말고 개인적으로 외주도 받고 있거든요. 자주 외주 주던 회사에서 해외촬영 일거리가 들어 와서요.”
해외라……. 나야 가면 좋지만 문제가 있지. 서큐버스화 때문에 남자와 자야 된다는 것. 그러려면 나 말고도 영철이 하고도 가야 되니 어쩔 수 없나.
“저도 가고 싶지만 조금 힘들 거 같아요. 어라. 그런데 이런 말이면 굳이 저녁 안 사주셔도 됐을 건데.”
어차피 다른 모델들도 많은데 저녁까지 먹으면서 할 얘기는 아니지 않나?
“하하. 사실 외주 준 회사에서 아영씨를 콕 찍었거든요.”
“저를요?”
“네. 이번 일거리가 같이 여행 간 여자 친구 컨셉의 사진집을 찍는 건데 얼굴 공개 안 되는 모델이라 그랬는데도 상관없으니 꼭 같이 하고 싶다 그러더라고요. 그러니 꼭 좀 부탁할게요.”
간절한 표정까지 지으며 말하는 대표님의 표정을 보자 난처했다.
“에……그럼 남자친구한테 한 번 물어 볼게요. 사정이 있어서 혼자서는 먼데를 못 가거든요. 아, 가게 된다면 일정은 어떻게 되요?”
“길진 않아요. 3일정도 걸릴 겁니다.”
“그래요? 그럼 저 잠시 전화 좀…….”
전화를 하기 위해 의자에서 일어나 화장실로 향하려던 날 대표님이 제지했다.
“내일 전화로 알려주세요. 지금은 일단 아무 생각 없이 저녁이나 먹죠. 말은 꼭 부탁한다고 했지만 안 되는 건 어쩔 수 없는 거고 아영씨가 못 간다고 제가 그렇게 피해 보는 것도 아니니까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마침 주문한 요리까지 나오는 차라 나는 슬쩍 다시 자리에 앉았다. 오. 맛있겠다.
“필요한 거 있으면 말하세요.”
“하하. 네. 감사합니다. 잘 먹을게요.”
감사의 인사를 표하고 나온 음식들을 하나하나 맛보았다.
조금씩 나오는 요리를 보아하니 코스인 거 같은데 이거 음청 비쌀 거 같은데.
에이. 가격 생각하지 말고 먹자. 놈이랑 먹었을 때도 코스는 아니었지만 가격대는 꽤 나갔었다. 이런 거에 일일이 주눅 들면 내 손해지.
“진짜 맛있네요.”
말 그대로 맛있다. 고오급스런 느낌이 물씬 나는 플레이팅과 그에 걸맞은 맛에 자동적으로 맛있다는 말이 나왔다.
“부족한 거 있으면 또 시키세요. 마음껏 먹어요.”
하하. 아무리 그래도 일을 같이 할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상황에 그것까진 염치가 없어 안 되겠습니다.
디저트까지 맛있게 먹은 나는 가게를 나오며 대표님께 다시 한 번 감사의 인사를 표했다.
“정말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아니에요. 맛있게먹어주니 저도 좋네요. 참, 집이 어디세요? 괜찮으면 데려다 드릴게요.”
“하하. 아무리 그래도 거기까진 제가 너무 죄송해서 안 되겠어요. 밥까지 얻어먹었는데 그건 좀…….”
미안한 마음에 어색한 미소와 함께 말하자 대표님은 더 권하지는 않고 순순히 물러났다.
“그래요. 그럼 잘 들어가고 내일 좋은 소식 기다릴게요.”
“네. 감사했습니다. 안녕히 가세요.”
차를 끌고 사라지는 대표님께 손을 흔들어 인사를 하고 집으로 발걸음을 향했다. 음……그래도 분위기 때문에 그런 가 뭔가 허전한 느낌이다.
분명 입에 아까 먹었던 요리들의 맛이 떠오를 정도로 맛있었고, 보통 때라면 충분히 배가 찼을 양인데도 조금 부족한 느낌? 집 가는 길에 간식거리 좀 사갈까? 하고 잠시 고민하기 무색하게 내 발걸음은 자동적으로 편의점을 향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