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화 〉11화.
“오오! 칼질 멋있어!”
“이 정도야 뭐.”
노을이 멋들어지게 펼쳐진 저녁.
각자 꽁냥거리던 커플들은 저녁을 먹으로 게스트하우스에 도착해 저녁준비를 시작했다.
여자들은 부엌에서 낮에 사 두었던 재료들을 다듬었고 남자들은 밖에서 바비큐 준비를 했다.
인원수가 많아 다듬을 재료도 많았기에 빠른 칼질을 선보이자 두 귀요미들은 박수를 치며 좋아했다.
경쾌하고 기분 좋은 도마소리가 빠르게 울려퍼지자 게스트하우스의 다른 손님들도 저마다 사진이나 영상을 동의하에 찍어댔다.
“올~언니 SNS 스타 될 듯.”
“에이. 이런 걸로 무슨 스타가 돼?”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라며 마저 식재료를 다듬자 우주와 지현이 각자 이젠 인터뷰를 하듯 근접 촬영까지 하며 말을 걸었다.
“인터뷰 갑니다! 요리는 언제부터 했나요?”
“푸하하.”
숟가락 마이크를 옆에서 들이대며 우주가 기자처럼 말하자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 웃음이 터져버렸다.
“빨리빨리 대답해 주십시오!”
옆에 있던 지현이까지 가세하자 결국 못 말린다는 듯 입을 열 수밖에 없었다.
“어휴. 아마 5년은 가뿐히 넘었을 걸?”
군대기간 빼면 대략 맞을 거다.
“오~ 맛은 자신 있으십니까?”
반짝이는 눈으로 우주가 물어보자 나는 다듬은 재료들을 스테인리스 보울에 옮겨 담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먹어보고 판단해. 난 막입이라 어지간한 건 다 맛있어서 잘 모르겠네?”
재료다듬기가 마무리되자 뒷정리를 마친 후 재료들을 가지고 밖으로 나왔다.
밖에서는 한창 고기를 굽고 있었고, 난 옆에 테이블로 이동해 휴대용 가스버너를 키고 물을 올려 조리를 시작.
따로 육수를 만들 시간은 없었지만 우리에겐 고향의 맛이 있었다.
“아-해.”
“아-”
칼국수를 끓이느라 자리를 못 벗어나는 내게 고기쌈을 가져온 영철은 아기 새에게 먹이를 주는 어미 새마냥 입에 넣어주었다.
-찰칵.
쌈을 받아먹는 순간 찰칵이는 소리가 들려 옆을 바라보자 지현이가 씨익웃으며 말했다.
“언니는 어떻게 된 게 평소 표정은 그렇게 차가우면서 영철오빠만 옆에 있으면 표정이 풀려요?”
“에엑?!”
절대 있을 수 없는 지현의 말에 난 질색을 하며 눈을 찡그렸고, 그런 내 표정에 다른 일행들은 저마다 웃음을 터뜨렸다.
“왜 웃어?!”
“오구오구. 그래쎠여?”
“죽는다?”
다들 날 보며 웃자 또라이시키가 엉덩이를 토닥이며 아기 대하듯 입을 놀렸기에 발을 강하게 밟으며 이를 꽉 물었다.
“으아아악!”
발을 감싸며 엄살을 부리는 또라이. 어휴. 애다 애.
“보기 좋네요.”
내 앞에 고기가 담긴 접시를 내려주며 지현의 남자친구가 말했다. 이름이……김경찬이었나?
“아, 고마워요. 저거 아직 머리가 덜 자랐어요.”
“쿡쿡.”
잘 생긴 얼굴로 서글서글한 미소를 지으니 뒤에 꽃이 펼쳐지는 것 같다. 아따 지현이 화내것소. 여기서 꽃 뿌리지 말고 저리 가그라. 훠이 훠이. 남자는 멀리 떨어져버려!
“이제 국수 다 익어가니까 먹을 사람 빨랑빨랑 와서 먹어.”
알맞게 익은 국수를 그릇에 담으며 말하자 때마침 다 구운 고기들을 접시에 담아 테이블에 모두 착석했다.
“오오. 맛있어.”
“올~언니. 가게에서 먹는 것보다 맛있는데요?”
모두 후르륵 소리와 함께 면발을 흡입하며 칭찬했다.
“고향의 맛이니까 맛이 없을 수 없지.”
계속 되는 칭찬에 코가 하늘을 뚫을 것 같아 애써 표정을 감추고 시큰둥하니 말했다.
“아무리 고향의 맛이 들어가도 간 조절, 불 조절, 조리 방법 모르면 말짱 꽝이죠. 이건 진짜 맛있는 거예요.”
“험험. 칭찬 고맙슴다.”
오늘 봤을 때 말수가 적었던 우주의 남자친구인 원관마저 따봉을 날리자 겸연쩍게 웃었다. 모두가 만족한 식사. 마지막엔 한국인의 후식인 볶음밥으로 피날레를 장식했다.
“맛있게 먹어주니 만든 보람이 있네.”
모두가 행복해 보이는 얼굴로 식사를 하게 되었기 때문일까? 어느새 어색한 분위기는 많이 사라지고 서로 편하게 말을 하게 되었다.
“잘 먹었습니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마마!”
“망극하옵니다! 마마!”
식사 중간 중간 감탄사와 함께 사진을 마구마구 찍으며 신나게 먹던 여자 둘이 식사가 끝나자 큰 절과 함께 인사를 했다.
그런 둘의 모습에 웃음이 터진 난 부끄러우니까 그만 하라며 얼른 일으켰고, 그런 모습을 보던 남자들도 장난기 넘치는 얼굴로 똑같이 큰 절을 하였다.
“푸하하! 아오-! 빨리 안 일어나?!”
터지는 웃음을 참으며 민망해하자 절을 했던 두 커플은 실실 웃는 얼굴로 다시 일어나 뒷정리를 시작했다.
“고생했으니 정리는 우리가 할게. 앞으로 자유시간이니 둘이 꽁냥대던뭘 하던 나가버렷!”
같이 도와주려던나와 영철이를 우주와 지혜가 등을 떠밀며 마당 밖으로 밀어냈다.
“오~냐. 알았으니 그만 밀어. 그럼 부탁 좀 할게?”
“예압.”
우리를 쫒아낸 두 커플들은 빈 그릇들을 가지고 게스트하우스로 들어갔다.
“으~배부르다. 조금 걸을까?”
“그려.”
배를 쓰다듬으며 영철을 올려다보자 고개를 끄덕인 영철은 또 다시 손을 내밀었다.
“어휴.”
마지못해 손을 잡아주자 기분 나쁘게 실실 웃는다. 좋냐? 어쭈? 이제 손깍지까지? 어이없다는 듯 바라보자 이제는 맞잡은 손을 앞뒤로 흔들며 걷는다.
“참나. 잘 논다 아주.”
“부러웠거든.”
“이런 게?”
“어.”
별 게 다 부럽다.
난 피식거리는 웃음을 짓곤 영철의 어리광을 받아줬다.
해가 떨어져 달빛이 비춰지는 밤바다를 천천히 걷던 우리는 여기저기 산책데이트를 하는 커플들을 보며 우리도 저렇게 달달하게 보일까? 생각했다.
“음…….”
“왜?”
다른 커플들과 비슷하면서도 조금은 다른 우리의 모습에 내가 골똘히 생각하자 영철이 무슨 일이냐는 듯 내려 봤고, 깍지 낀 손과 놈의 얼굴을 번갈아 보다 손을 슬며시 뺐다.
“…….”
갑자기 빠져나간 내 손을 눈썹을 찡그린 채 바라보던 놈은 곧 내 팔이 자신의 팔을 감싸는 형태.
즉, 팔짱을 끼며 가까이 붙자 눈이 커졌다.
“커흠. 오늘만 기분이다. 가, 가자.”
역시 민망했다.
슬며시 얼굴이 붉어지는 것 같아 헛기침을 하며 팔을 잡아당기자 기분 나쁘게 실실 웃으며 따라왔다.
이제까지 할 짓 못 할 짓 다 했으면서 겨우 이런 거에 부끄러워하는 나나 헤벌레 웃으며 따라오는 놈이나 한심했지만 이제는 인정해야 했다. 앞으로 어떻게 되던 나와 녀석은 떨어져 살 수 없다는 것을.
“아, 그러고 보니지금에서야 느끼는 건데 막상 다른 여자애들이랑 있으니 키가 확 커 보이긴 하네.”
“그런가? 하긴 남자 때랑 같은 키라 못 느꼈는데 너도 막상 네 친구들이랑 비교하면 크긴 크더라. 뭐, 평소에도 무식하게 크다고 생각은 했지만. 너 키가 190이었던가?”
“그랬지. 네가 175?”
“그럴걸? 확실히 지금 생각해보니 남자 키로는 별로지만 여자 키로는 큰 편이네.”
매일 보던 놈이라 그냥저냥 크다고 생각했으나 수치로 환산하니 징글징글했다. 남자였을 때는 참 많이도 부러워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그런 생각이 사라졌다.
“근데 너 모델같이 키 큰 여자가 취향이었냐?”
“키 큰 여자 멋지잖아?”
짱을 잠시 풀어양 손을허리에 얹어 모델 같은 포즈를 취하자 영철인 킥킥대며 머리를 쓰다듬었다.
“근데 실제로 네가 지금 몸 같은여자랑 사귀었으면 똑같은 키, 아니지. 하이힐로 키차이 역으로 벌어져서 자존감 떨어진다고 매일 하소연 했을걸?”
“……상상도 못하냐!”
쓰다듬는 머리를 툭 치며 신경질을 부리자 영철인 내 귀에 속삭였다.
“남자랑 여자랑 가장 잘 어울리는 키 차이가 15센티라는 소리가 있던데……너 혹시?”
“우와아아악! 저리 꺼져!”
소름 돋는 생각을 하는 녀석의 정수리에 춉을 날리고 후다닥 도망갔다.
재수 없게 웃는 소리가 들린다.
아오 빡쳐! 씩씩대며 빠르게 도망가자 어느덧 텐트에 도착한 난 가방에서 세면도구를 챙겨 게스트하우스로 향했다.
“지금 와?”
“어. 씻었어?”
“어.”
씻으러 들어가려는데 마당 앞에서 담배를 피고 있던 경찬이 말을 걸었다.
“참, 지혜가 네 폰 번호 좀 알려달라던데?”
“그래?”
“어. 여기.”
귀여운 스트랩이 달린 폰을 건네는 경찬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괜한 생각이다 싶어 번호를 찍어 주었다.
“지혜는 어디가고 네가 폰을 가지고 있어?”
“게스트하우스 식탁에 두고 왔다 그래서 심부름.”
어깨를 으쓱이며 텐트에서 기다릴 지현이를 떠올렸는지 빙글거리는 미소와 함께 대답을 한 경찬은 스트랩을 빙빙 돌리면서 내일 보자는 말과 함께 자신들의 텐트로 돌아갔다.
“역시 예쁜 여자 친구한테 남자들은 다정해지는 건가?”
과거의 날 생각하며 잠시 추억에 잠긴 난 다시 발걸음을 옮겨 욕실로 들어갔다.
마침 사용하는 사람도 없어 기다림 없이 들어가 샤워기를 틀자 따듯한 물이 내 몸을 타고 흘렀고, 하루의 피곤을 녹이는 따듯한 물에 집에서처럼 정신이 팔릴 뻔했다.
가출할 뻔한 정신을 부여잡곤 아무리 좋아도 공용 욕실이니 빨리 씻고 나가야겠다는 생각으로 평소보다 속도를 내 샤워를 마친 난 마지막으로 더위를 가실 생각에 시원한 물로 몸을 씻어내었다.
“아~시원-하다!”
뜨듯했던 몸이 한 순간에 식자 기분 좋은 시원함이 몰려와 절로 감탄사가 나왔다. 축축한 머리를 수건으로 닦으며 욕실을 나오자 마침 현관으로 들어오는 영철이 보였다.
“이제 오냐?”
“큭큭. 그래.”
“나 먼저 잔다?”
면상을 보자 갑자기 귀에 속삭이던 내용이 떠올라 얼굴이 붉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계속 서 있으면 또 뭘로 놀릴지 몰라 서둘러 텐트로 들어간 난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미리 펼쳐져 있는 이불에 몸을 뉘였다.
‘자슥. 이건 잘 했네.’
촉촉한 피부에 폭신한 이불이 닿자 저절로 눈이 감겼다.
‘아-오랜만에 푹 잘 거 같네.’
기분 좋게 밀려오는 수마에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지으며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