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2화 (62/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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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조리부의 신입

“이런 일에는 나름대로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좀 그러네요.”

니시마츠씨가 뚱한 표정으로 그렇게 말했다.

그 모습에 꽤나 웃었다.

말한 대로 이런 것에도 익숙해져있는지 그녀도 그냥 가볍게 웃고 넘어갔다.

당분간은 그런, 니시마츠씨의 어린 모습과 관련된 일화로 대화를 나누었다.

이렇게 술을 마시러 가거나 할 때 오해를 당하는 것은 기본이고 버스비를 지폐로 지불했을 때 학생요금에 맞게 거스름돈을 주는 경우가 태반이라고.

그래도 초등학생 때 까지는 주변에 비해서 월등히 큰 체격이었고 중학생 때 까지만 해도 평균치였는데… 하고 말을 흐리는 니시마츠씨였다.

“맞아, 생각해보면 분명히 중학생 때까지만 해도 보통이나 좀 큰 편이었는데… 나이를 먹어갈수록 작은 편이 되어버리더라고”

타카하시씨가 재미있다는 듯이 웃으면서 그렇게 덧붙였다.

“그야, 나는 중학생이 되고나서 부터는 정말 전ㅡ혀 키가 자라지 않았으니까.”

그렇게 말하면서 자신의 좌우에 있는 리노씨와 타카하시씨를 둘러보는 그녀다.

하긴 리노씨나 타카하시씨나 평균적으로 봤을 때 큰 키에, 몸의 라인도 두드러지는 타입이니깐….

한 때는 비슷비슷한 체형의 친구였던 세 사람이 지금은 이렇게나 달라졌다는 게 꽤 재미있었다.

그런 식으로 하하호호하면서 즐겁게 술자리가 지나갔다.

니시마츠씨는 인상만 봐서는 약간 꽁한 데가 있을 것 같은 사람이었는데 실제로 이야기를 나누고 술을 한 잔 먹어보니까 전혀 예상과는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장난도 많이 치고, 잘 웃는 재미있는 사람이었다.

타카하시씨나 리노씨야 말할 것도 없고.

가벼운 반주치고는 꽤 많이 마신 술이었지만 그래도 예상치 보다야 훨씬 적은 양이었다.

각자 돈을 나눠서 내고 가게를 나왔을 때는 열시가 조금 넘은 시간.

지금부터 버스장으로 꾸준히 걸어가면 충분히 막차를 탈 수 있는 시간이다.

조금 걸어가다가 니시마츠씨, 타카하시씨와 다른 길로 갈라지게 되었다.

주택가 쪽으로 가는 그녀들에게 인사를 전하고 다시 리노씨와 단 둘이 되었다. 

왼손으로는 칼이 들어있는 종이 백을 오른 손으로는 그녀의 따뜻하고 딱딱한 손을 잡고 버스장으로 이동했다.

전에도 종종 느꼈지만 리노씨는 술이 들어가면 성격이 약간 적극적으로 변하는 타입 같다.

그러고 보면 소치씨와 함께 술을 마셨을 때도 그렇고 지난번에도 그렇고 반쯤은 술기운에 진도가 팍팍 나가는 것 같은 느낌이다.

오늘도 방실방실한 웃음 사이에서 약간의 요염함이 느껴졌다.

버스가 도착하려면 십분 정도가 남았다.

의자에 앉아서 잠시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리노씨가 나의 어깨에 고개를 기댔다.

어깨로 그녀의 따뜻한 숨결이 느껴졌다.

나도 술기운이 조금 들어가서 그런지 어깨로 느껴지는 자극으로도 몸이 나른해지면서, 따뜻하고 부드러운 그녀의 육체가 진하게 생각났다.

격한 성교의 쾌락보다는 그저 몸을 맞대고 싶어졌다.

그것만으로도 유쾌한 기분과 충족감이 몰려올 것 같은 그런 기분.

주변을 살짝 둘러보고는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했다.

그리고 검지를 들어서 그녀의 부드러운 입술에 가져다댔다.

말랑말랑한 감촉이 손가락 끝을 통해서 전해져왔다.

탱글탱글한 것이 살짝만 눌러도 마치 텀블링을 타는 것처럼 다시 내 손가락을 밀어냈다.

그 감촉이 기분 좋아 생각 외로 몇 번이고 다시 눌러보고 말았다. 

“…?”

입술을 매만지는 감촉에 리노씨가 고개를 들어서 나를 바라보았다.

“리노씨.”

오른팔을 들어서 그녀의 목과 어깨를 감싸 안고 내 품 쪽으로 끌어당기면서 입을 열었다.

“돌아가면… 제 방에 들렀다가 가실래요?”

그녀의 머리카락에서 뿜어져 나오는 카모마일향을 맡으면서 그렇게 이야기했다.

“아니요?”

어이구, 이건 생각지 못한 대답이었다.

몸에 힘이 빠지면서 괜히 말했나 하는 후회감이 밀려왔다.

아무래도 너무 급작스러웠나, 싶었다.

잠시 그렇게 낙담하고 있는 나에게 리노씨가 베시시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

“바로는 안돼요.”

땀 냄새도 나고, 이번에는 좀 씻고 가야겠어요.

그렇게 말하면서 얼이 빠진 나를 장난스럽게 바라보는 그녀다.

다행이다, 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은근히 그녀가 괘씸해서 버스가 올 때가지 몇 번이고 입을 맞췄다.

버스를 타고 돌아오는 길에도 다정히 꼭 붙어있었다.

세이렌 앞에서 내린 다음에도 손을 맞잡고 별관 기숙사 쪽으로 걸어갔다.

계단 앞에서 잠시 헤어지기로 했다.

“씻고 내려갈게요.”

계단을 올라가면서 리노씨가 부끄럽다는 표정으로 그렇게 말했다.

올라가는 그녀를 배웅해주고 나의 방으로 돌아왔다.

늘 그렇듯 당장 창문을 열어서 환기를 시켰다. 

지저분한 부분들을 치우고 나서 나도 화장실에서 몸을 씻었다.

혹시라도 입 냄새가 나지 않도록 이빨도 두 번이나 닦았고 성기와 몸 구석구석도 신경 써서 씻어내었다.  

수건으로 가볍게 몸에 묻은 물기를 털어내면서 나온 다음에 아직 청소가 부족한 부분을 정리하고 이불도 다시 깔끔하게 정리했다.

서랍을 열어서 콘돔 -혹시나 싶어서 미리 구입해두었다.- 이 있는 것도 다시 확인을 해보았다.

음, 제자리에 제대로 있구나.

다시 서랍을 닫고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서 한 모금 마셨다.

늘 느끼는 것이지만 이런 시간이 정말로 은근히 긴장되는 시간이다.

그렇게 안절부절 하면서 부족한 부분이 없나 정리하고 쓸고 닦고 하는 사이에 가볍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누구세요.”

이렇게 말하면서도 자연스럽게 문 쪽으로 달려가서 자물쇠를 열었다.

“안녕하세요.”

문이 열리고 나서 밖에 서있던 리노씨가 빙긋 웃으면서 나에게 그렇게 인사했다.

방금 씻고 나와서 그런지 그녀의 머리카락도 촉촉하게 젖어있고 특유의 카모마일 향이 짙게 뿜어져 나와서 침이 자동으로 꿀꺽하고 넘어갔다.

그 소리를 들었는지, 리노씨가 작게 웃음을 지었고 나는 얼굴을 붉히면서 그녀를 안으로 안내했다.

다시 문을 자물쇠로 잠그고 나도 안으로 들어갔다.

그 사이에 리노씨는 나의 침대에 걸터앉아 있었다.

짧은 검은색 반바지를 입고 왔는데 그 탓에 그녀의 새하얗고 얇은 다리가 더욱 부각되어 보였다.

평소에는 저렇게 짧은 옷을 입고 다니지 않는 그녀라서 그런지 왠지 모르게 더 마음이 훈훈해졌다.

“뭐라도 마시실래요?”

냉장고 문을 열면서 그렇게 물어보았다.

그녀는 고맙다고 하면서 어떤 게 있느냐고 나에게 물어보았다.

냉장고 안을 살펴보니…

아… 

굴러다니는 맥주 몇 캔과 물, 지난번에 리노씨와 소치씨 이렇게 셋이서 마신 날 사두었던 탄산음료 밖에 없었다.

그 흔한 과일주스하나 없을 줄이야.

살짝 긴장을 풀기위해 마실 거라도 마실려다가 지뢰를 밟아버린 기분이다.

방금 물을 마시기 위해 냉장고를 분명히 열었었는데 그새 별다른 게 없다는 것을 까먹을 줄이야.

“그, 물하고 맥주하고 탄산음료… 그렇게 있네요.”

그녀는 내 말에 눈을 쫑긋하고 뜨고는 즐겁다는 듯이 웃으면서 그냥 물로 괜찮다는 말을 했다.

으ㅡ 다음부터는 마시던 잘 안 마시던 간단한 것들은 꼭 준비를 해두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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