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9화 (59/62)

0059 / 0062 ----------------------------------------------

#02. 조리부의 신입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아 셔틀버스가 들어왔고, 리노씨와 요금을 치루고 안쪽에 있는 2인용 좌석에 나란히 앉았다.

꼭하고 나란히 마주잡은 손에서 그녀의 따뜻한 체온이 흘러들어왔다.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에 버스가 사와자카 역전 쪽으로 들어왔다.

내가 내릴 준비를 하는데 그녀가 몇 정거장 더 들어가야 한다고 해서 다시 의자에 앉았다.

세 정거장 더 들어가서 버스에서 내렸다.

상업지구보다는 주택지구에 좀 더 가까운 느낌이었다.

나름대로 널찍한 아케이드에 둘러싸인 곳은 없지만 그래도 곳곳에 작은 상점도 보이고 아파트나 빌라같은 것도 종종 보였다.

“이쪽으로 가시면 되요.”

리노씨가 맞잡은 손을 잡아끄는 방향으로 걸어갔다.

조금 후미진 곳으로 들어가는 길이었는데 그 방향으로 5분정도를 쭉 걸어 들어갔다.

“저쪽이에요.”

그녀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곳을 보니 조그마한 가게가 보였다.

살짝 후줄근한 느낌이기는 한데 낡았다 뿐이지 깨끗하게 정리를 해두었는지 더럽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유리로 되어 있는 문을 조심스럽게 열면서 안으로 들어갔다.

생각보다 안쪽으로 꽤 넓은 가게였다.

아니 밖이 작아서 그랬지 내부크기만 보면 애진간한 문구전문점의 반 정도 크기일까?

안에는 수없이 많은 칼들이 진열되어 있었는데 조그마한 과도부터 고기를 뼈 체로 잘라낼 수 있을 것 같은 묵직한 식칼까지 다양한 종류들이 얼추 비슷한 분류끼리 모여 있었다.

칼만 이정도가 모여 있다고 할 정도면 규모가 장난이 아니라는 것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와, 굉장하네요.”

“그렇죠? 이름 있는 공방에서 직접 떼어오는 물건들도 있고 해외 공장에서 직접 들여오는 물건도 있어 가짓수도 많고 가격도 꽤 좋은 곳이에요.”

이렇게 말하면서 화사하게 웃는 그녀다.

확실히 둘러보니 -정확하게 어느 곳인지는 물론 모르지만- 어느 공방메이커의 브랜드가 적혀있는 곳은 특별부스처럼 차려서 그 브랜드의 칼들만 따로 모여 있는 곳도 있었다.

물론 그쪽에 모여 있는 칼들은 가격대가 다른 칼들에 비해서 눈에 띄게 달랐지만 말이다.

‘그냥 이름값만 비싼, 어떻게 보면 명품백이랑 비슷한 물건들이에요.’

그렇게 속삭이면서 내 팔을 잡아끄는 그녀다.

칼은 보통 수준이상으로 만들면 연마와 관리의 문제지 찍어내는 것 자체는 크게 차이가 없다고.

그녀가 인도하는 쪽으로 걸어가 보니 그녀가 빌려주었던 -무난하게 다용도로 사용하기 좋은 식칼- 것과 유사한 형태의 식칼들이 잔뜩 걸려있었다.

칼날을 손가락으로 툭툭 건드려보기도 하고 비벼보기도 하면서 이것저것 물건들을 살펴보는 그녀의 모습이 보였다.

“류노스케씨는 나름대로 근력이 있는 편이지요?”

“네, 뭐 보통 수준은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녀의 질문에 그렇게 대답하였다.

“무게가 훨씬 무거운 편이고 관리가 까다로워서 그렇지 무쇠 칼이 스테인리스에 비하면 날 관리는 편리하거든요.”

나의 손에 비슷하게 생긴 칼 두 가지를 쥐어주는 그녀다.

그녀에게서 그 칼들을 받아들었는데 확실히 거의 외형이 같은 칼임에도 받아들었을 때 무게감이 몇 배는 되는 것 같았다.

“특수 합금 제는 날 관리 걱정도 적고 가볍지만 가격이 만만치 않아서요.”

그렇게 손잡이 재질이나 모양 같은 나의 기호를 꼼꼼하게 따져가면서 예상 품목을 줄여나가다가 결국 마지막 두 자루만이 남았다.

가격대, 재질, 손잡이, 날, 무게감 다양한 요소에서 그녀가 합격점을 준 물건들 이었다.

한 자루는 특수 플라스틱으로 된 손잡이를 가진 합금강 식칼.

완전히 명품 급은 아니지만 충분히 괜찮은 칼이라 잘 관리한다면 십년 이십년은 계속 사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또 한 자루는 목재로 쌓인 손잡이로 된 무쇠 식칼이었다.

무게감은 좀 있긴 하지만 이 역시 관리만 잘 해주면 평범한 스테인리스 식칼보다 훨씬 더 세워놓은 날의 수명이 길게 가 관리가 편리할 것이라고.

두 자루를 이리저리 들었다 놨다를 반복하다가 그녀가 먼저 내밀었던 합금강 칼로 골랐다.

아무래도 어려운 관리를 요하는 무쇠 칼보다야 훨씬 가볍고 관리가 편한 칼이 입문용으로 적합할 것 같았다.

내가 선택한 칼을 보면서 ‘사실 저도 이게 조금 더 좋긴 했어요.’라고 배시시 웃어준 그녀는 내가 내민 칼을 받아들고 주변을 한 바퀴 휙 돌았다.

그러면서 동 메이커에서 나온 같은 라인업의 다른 종류의 칼들을 한 자루씩 뽑아들었다.

그리고는 카운터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앗, 하는 사이에 계산을 끝마치려는 그녀의 어깨를 붙잡았다.

“…리노씨?”

“살 때 한 번에 구입해두는 편이 좋아요. 어차피 나중에 더 높은 실력을 가져갈수록 칼의 분화는 당연하게 필요한 일이니깐. 차라리 단종 되거나 하기 전에 같은 라인에서 품목을 갖춰서 손에 익히는 것이 더 칼하고 빠르게 가까워질 수 있는 일이기도 하고요.”

그렇게 말하면서 나의 제지를 만류했다.

“그러면 저도 보탤게요. 이 비싼 칼들을…”

한 자루 일 때도 사실 그녀가 사준다고 한 것이 마음에 걸렸는데 무려 다섯 자루나 된다니.

내 월급을 기준으로 보면 거의 1/3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내 말에 고개를 절래절래 저은 그녀는 씩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

“어차피 나중에 후배가 들어오면 다시 그 사람에게 사주면 될 일이에요. 그리고…”

가끔은 누나가 사주는 대로 받으라고 내 귓가에 속삭인 다음에 빠른 걸음으로 카운터로 걸어갔다.

한 시간 정도 걸린 칼의 쇼핑이 끝났다.

고급스러운 종이봉투에 각각 포장된 칼 다섯 자루가 들어가 있는데 묵직한 것이 알게 모르게 뿌듯한 기분이 들었다.  

“묵직한 것이 기분 좋죠?”

내 표정을 보고 그런 기분을 읽었는지 그녀가 그렇게 말해왔다.

“네, 이게 이렇게 들고 있으니까… 솔직히 좋네요.”

이제부터가 제대로 된 시작이라는 그런 느낌이 든 것이다.

“아직 자기 칼이 없었던 사람에게 칼을 사준다고 하는 건 그런 느낌인 거예요. 새롭게 시작하는 사람의 길을 밝혀주는 그런 거죠.”

말하면서 자기도 부끄러운지 약간 얼굴을 붉히는 그녀다.

조금 늦은 시간이기는 해도 같이 점심을 먹으러 가기로 했다.

이 근방에서 나고 자란 그녀이기에 그녀가 추천하는 가게로 가서 점심을 해결했다.

평소에는 먹기 힘든 서양식의 평범한 패밀리 레스토랑처럼 생긴 가게였는데 생각보다 상당히 맛이 좋았다.

패밀리 레스토랑답게 가격도 나름대로 괜찮은 수준이고 패밀리 레스토랑답지 않게 나름의 손맛이 느껴졌다.

“어떤 것 같아요?”

슬쩍 눈을 장난스럽게 뜨면서 리노씨가 나에게 물어왔다.

“괜찮았어요. 맛있던데요.”

내말에 짓궂게 한쪽 눈만 찡그리면서 말을 잇는 그녀다.

“그런 거 말고요. 좀 제대로, 배운 대로 맛을 표현 해봐요.”

“음, 스프에 들어간 후추가…”

“여긴 후추가 아니라 육두구였어요.”

“아, 그럼 이 맛이…”

그녀의 장난에 꽤 고생을 해야 했다.

식사 후에도 자연스럽게 계산을 하려는 그녀를 억지로 의자에 끌어 앉히고 계산을 끝마쳤다.

‘제가 내도되는데.’ 하면서 입술을 삐죽이는 그녀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