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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조리부의 신입
“여보세요?”
다시 마코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까보다 목소리가 약간 더 커진 느낌이다.
“어, 그래.”
“미안해, 어제 같이 출장 왔다는 여사원이 깼었거든…”
“같이 잤어?”
보통 회사에서 출장을 가는데 한 방을 잡아 줄 리가…
“그게 어제 천둥이 쳤었는데 무섭다고 하지 뭐야. 그래서…”
아무튼 그런 식으로 쓱 넘어가려 하는 분위기라 일단 넘어가 주었다.
서로 있었던 일 같은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 시간을 때웠다.
적당히 시간을 보내는 데에는 이만한 일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화를 끊었을 때의 시간은 어느새 아홉시가 조금 넘은 시간.
당장 나가야할 시간이 된 것은 아니지만, 분명히 보내기 애매한 시간을 조금이나마 잘 넘긴 것에 의의를 두자.
침대에 누워서 빈둥거리다가 아홉시 반쯤 돼서 옷을 챙겨 입었다.
평소보다 특히 좀 신경을 썼다.
추잡하지 않게, 덜떨어져 보이지 않게…
나름대로 신경 써서 의복을 갖추고는 방을 나섰다.
지금 시간은 아홉시 사십일 분.
딱 좋은 시간이다.
지나가다 만나는 스탭들에게 인사를 건네면서 셔틀장으로 향했다.
셔틀장에 도착하니 먼저 와서 의자에 앉아있는 리노씨의 모습이 보였다.
“리노씨.”
“아, 류노스케씨.”
내 이름을 부르면서 귀엽게 웃는 그녀다.
“일찍 오셨네요?”
그녀가 늘 차고 다니는 고급스러운 손목시계를 힐긋 쳐다보면서 말했다.
시간을 확인해보니 아홉시 오십분쯤.
빨리 오긴 했어도 그렇게 빨리 온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내가 빨리 온 것이면 나보다 더 빨리 온 리노씨는 엄청 빨리 온 것이 되지 않겠다.
“아뇨 거의 딱 맞춰서 온 수준인데요, 뭘.”
“겸손은요, 이쪽에 앉으세요.”
그렇게 말하면서 자신의 옆자리를 나에게 권했다.
그녀가 권하는 대로 옆자리에 가서 앉았다.
그녀의 몸에서 늘 나는 카모밀레 향이 풍겨오는 것이 느껴졌다.
리노씨도 평소보다 더 신경 써서 옷을 입고 나온 것 같았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머리모양에도 조금 더 힘을 드린 모양새고 옷도 평소에 입는 수수한 계열이 아니라 여름철에 어울리는 흰색과 하늘색이 섞인 면소재의 원피스를 입고 왔다.
새하얀 피부의 그녀를 감싸고 있는 그 원피스와 매우 잘 어울렸다.
화려하진 않지만 그녀의 외모와 더불어서 딱하고 눈길을 끄는 그런 차림새였다.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니까 약간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육욕이 느껴진다거나 하는 그런 것이 아니라 그저 아름다운, 내가 사랑하는 사람 옆에 있다는 것이 즐겁게 느껴졌다.
태양이 밝게 비추어주는 가운데에서 그녀와 나란히 벤치에 앉아 버스를 기다린다.
목적지는 시내의 가게, 일종의 데이트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날아드는 새들의 지저귐 소리도 들리고 세이렌 부지 쪽에서 아이들이 뛰어노는 소리도 들렸다.
물론 무엇보다 좋은 것은 그녀가 옆에 있다는 것이다.
그것으로 인해서 주변의 경치들이 더욱 더 행복하고 즐거운 관경으로 바뀌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녀가 있어서 다행이다.
그녀가 나에게 다가와주어서 다행이다.
그녀가 나를 싫어하지 않아서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다.
문득 그렇게 든 생각을 그녀에게도 전달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해보면 그저 두루뭉술하게 호감을 표현하고 몸을 섞었을 뿐이라는 생각도 든다.
조금 더 관계를 확실히 하지 않았던 것이다.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나는------
1. 그녀에게 확실하게 마음을 전한다.
2. 지금 이대로도 나쁘지 않다.
------
그녀에게 확실하게 내 마음을 전하는 것이 좋겠다.
이렇게 애매하게 관계를 이어나가는 것은 안 되는 일이니깐.
어떻게 마음을 전해야 할까 고민을 하다가 그녀의 무릎위에 가볍게 놓여있는 손이 보였다.
그녀의 새하얗고 부드러운 몸에서 유일하게 상처투성이이고 굳은살이 잔뜩 박혀있는 부위.
그녀의 열정과 수고, 노력과 땀이 고스란히 배어있는 그녀의 자랑거리.
내 손을 슬며시 뻗어 그녀의 손을 마주잡았다.
약간은 딱딱한 그녀의 손에서 따스함이 묻어나왔다.
갑자기 손을 잡혀서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다가 씩 하고 웃는 리노씨다.
그녀의 그런 미소가 마음에 들었다.
쭉 보여주는 저런 순진무구한 미소도 마음에 들고, 또 침대 위에서만 보여주는 그 요염한 미소도 마음에 든다.
그저 나는 그녀가 좋다. 마냥 좋다. 마냥 너무 좋다.
“리노씨.”
나의 부름에 ‘네?’하고 대답하는 그녀의 손을 조금 강하게 맞잡았다.
“좋아합니다.”
그녀는 내 말에 잠깐 벙찐 표정을 지었다가, 이내 그 표정을 얼음이 사르르 녹아내리는 것 같이 녹이며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면서 나에게 말했다.
“저도 좋아해요.”
그렇게 말하면서 나의 어깨에 얼굴을 기대어 왔다.
내 어깨에 그녀의 무게감이 실렸다.
여전히 그녀는 가볍구나. 그런 생각이 문득 들었다.
하지만 심적으로는 왠지 매우 무겁게 느껴졌다.
“뜬금없어요, 그런 거 싫어하지는 않지만요.”
그녀가 배시시 웃으면서 그렇게 말했다.
그러자 왠지 좀 부끄러운 기분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아까 정한대로 이번 기회에 확실하게 고백을 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아뇨, 지난번에 너무 급하게 지나간 일이라 확실하게 짚고 넘어가지 못했던 부분이 있는 것 같아서요.”
내말에 리노씨는 얼굴에 물음표를 띄웠다.
몸을 돌려서 착실하게 그녀와 눈을 맞추면서 입을 열었다.
“저와 교제해 주세요!”
왠지 모르게 생겨오는 부끄러움을 애써 억누르면서 그렇게 말했다.
말했다, 기 보다는 부끄러움을 억누르기 위해 외쳤다라고 표현하는 쪽이 더 맞겠지만.
내 외침을 듣고 나서 아무런 반응이 없다가 서서히 얼굴이 달아오르기 시작하는 그녀의 모습이 보였다.
“뜨, 뜬금없네요.”
그렇게 말하고는 자신의 손으로 붉어진 얼굴에 가볍게 부채질을 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래도…”
아까 나에게 지어주었던 것 보다 훨씬 밝고 마치 순진무구한 아기 같은 웃음을 나에게 지어주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다시 나의 어깨에 고개를 기대어왔다.
“그런 거 싫지는 않네요.”
좋아요, 저도. 라고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나의 귀에 속삭여오는 그녀였다.
내 어깨에 그녀의 무게감이 실렸다.
여전히 그녀는 가볍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나의 기분도 굉장히 가볍고 한결 수월해졌다.
볕이 따뜻하게 내려쬐는 셔틀 버스장의자에서 나와 리노씨는 정식으로 연인사이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