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7화 (57/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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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조리부의 신입

리노씨의 옆에 서서 절삭법의 강좌를 받는 시늉을 계속 해나가는데 여전히 소치씨는 얼이 빠져서 헤롱헤롱하고 있었다.

하긴 리노시의 가슴이 주는 데미지가 상당하기는 하다.

그 모습을 보다 못한 리노씨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 소치씨?”

리노씨의 부름에 멍하니 있다가 다시 퍼뜩 정신을 차리는 소치씨의 모습이 보였다.

“아, 아 네.”

“혹시 무슨 용무가 있어서 오신 거 아니신가요?”

그렇게 물어보는 리노씨의 말에 제대로 정신을 차린 소치씨의 모습이다.

“아, 네 그랬죠. 마토씨가 저녁준비가 얼마나 되어 있나 확인하라고 하셔서.”

그녀의 말에 리노씨가 냄비를 열고 국자로 가볍게 휘젓고는 살짝 떠서 간보는 접시에 옮겨 맛을 보았다.

“음, 앞으로 30분 정도는 더 걸릴 것 같은데요? 생선도 아직 생각한 만큼 익지가 않았고요.”

리노씨의 말에 고개를 끄덕거리면서 알았다고 말하는 소치씨다.

“그럼 밖에서 저는 다른 분들을 도와드리고 있을 테니가 혹시라도 필요한 일이 있으면 바로 불러주세요.”

그렇게 말을 남기고 소치씨는 조리1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그녀가 나가고 잠시 후 리노씨와 함께 긴 한숨을 내쉬었다.

“휴ㅡ”

그리곤 서로 얼굴을 맞대고 키득거리면서 웃었다.

본의 아니게도 연애를 시작하자마자 사내연애의 스릴감이 어떤 것인지 알게 된 기분이다.

마츠다씨와 콩닥거리는 요리교육을 받기 시작한지도 벌써 며칠이 지나갔다.

그 사이에 절삭법의 강좌는 완벽하게 끝이 났고 양념과 재료 맛보기에 관한 강의가 시작되었다.

일단 향료와 배합되지 않은 양념들의 맛을 보고 원하는 맛을 끌어내는 것을 기본으로 삼고 교육을 시작하였는데 생각보다 진도가 쑥쑥 나가게 되었다.

원래는 이 과정에서 1~2주가 소요될 것으로 생각했던 리노씨는 3일 만에 생각보다 더 다양하고 깊게 향료와 맛에 대해서 이해한 것 같다고 나를 칭찬했다.

은근히 맛을 보는 재능은 있다고 그녀가 엄지손가락을 치켜 올려주었는데 실제로도 향신료의 맛을 보고 비교하거나 배합해서 원하는 맛을 끌어내는 게 생각 했던 것보다 훨씬 쉬웠다.

물론 만화책에 나오는 주인공처럼 가루 상태로 된 것을 맛보고 이건 뭐다, 뭐다 이렇게 맞추는 것은 물론 아직 무리였지만 입으로 맛본 맛을 다른 맛으로 전환시키는 재능은 있는 것 같았다.

마코토와 돌아다니면서 그 녀석의 미각강좌를 열심히 들은 모양인지 아니면 내가 모르고 있던 나의 재능인지.

적어도 썩어도 준치라고 없는 것 보다야 낫지 않은가.

리노씨나 소치씨 같은 괴물들이 쟁쟁한 주방 안에서 1인분이라도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찾았다는 것이 즐거울 따름이었다.

실제로 리노씨가 나를 칭찬하면서 치켜세워주자 불끈한 소치씨가 나와 즉석으로 맛보기 시합을 했었는데 -블라인드로 맛본 향신료의 종류를 맞추는 것이었다.- 내가 간발의 차이로 그녀를 이긴 것이다.

물론 내가 그 직전까지 이름을 보면서 향신료 종류의 맛을 익히고 있었기 때문인 덕도 컸지만 아무튼 기분 자체는 좋았다.

소치씨는 울상을 지으면서 벌칙을 수행하기 위해 매점에 가서 조리2부의 전원이 먹을 아이스크림을 구매해왔다.

소치씨의 말로는 졌다는 그 사실이나 아이스크림을 사왔다는 금전적 손실보다는 햇병아리인 나에게 졌다는 것이 더 충격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나에게 다시 도전하기 위해서 맛보기 실력을 다시 갈고닦고 있다고…

그때는 아마 내 쪽이 제대로 깨지겠지.

좀 서글픈 기분이 들었다. 3일 천하 같은 느낌이구나.

닦고 있던 칫솔을 내려놓았다.

입안은 이제 충분히 닦은 기분이다.

아까 한 번 입안을 닦았지만 혹시 하는 기분에 치약을 다시 칫솔에 짜서 구석구석 이를 닦았다.

현재 시간은 오전 여덟시.

비번인 날인 것을 감안하면 아무래도 약간 이른 시간이기는 하다.

보통 비번 날에는 한 열시까지는 퍼지게 자고 있던 느낌이니까.

물로 이번이 두 번째 비번이라는 점은 부정할 수 없지만 말이다.

오늘이 비번임에도 일찍 일어나서 이렇게 몸치장에 열을 올리고 있는 것은 오늘 리노씨와 함께 시내에 나가서 내가 사용할 나의 칼을 구입하기로 한 날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밖에서 가지는 첫 데이트이니 만큼 더 가슴이 쿵쾅거리면서 긴장이 되었다.

부족함이 없도록 하기 위해 평소보다 더 위생상태에 신경을 썼다.

꼼꼼하게 면도를 하고 혹시라도 입냄새가 나는 경우를 방지하기 위해 입안도 구석구석 닦아내었다.

몸도 청결하게 닦았고…

음. 이정도면 완벽하다.

사실 긴장해서 너무 일찍 일어났다는 생각도 든다.

열시에 버스장에서 만나는 것으로 약속을 잡았는데 일곱 시부터 일어나서 씻고 준비하고 있으니까….

거기에 애매한 시간에 씻어서 직원식당에서 아침밥을 먹을 수 있는 시간도 아니다.

손님식당에 가면 간단하게는 먹을 수 있겠지만 역시 너무나 간단한 메뉴라는 것이 또 문제다.

보통 세이렌에서는 아침 점심 저녁이 딱 정해진 시간에 나오게 된다.

고급 여관이니까 당연한 일이다.

원래라면 딱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메뉴로 식사가 나가는 것이 기본이겠지만 그래도 혹시나 라는 상황을 대비하기 위해 손님들이 식사하는 식당에선 식사시간의 사이사이에도 간단한 요깃거리를 판매한다.

면 종류나 딱 밥과 국에 기본 찬정도.

부실하다면 부실한 메뉴지만 어디까지나 그 메뉴들은 혹시나 식사를 못했을 사람을 위한 것이고, 기본적으로는 제 시간에 나오는 정식 류가 본래 식사이므로 이해할 수 있는 일이긴 하다.

굳이 지금 식당에 가서 그 부실한 메뉴로 아침식사를 하느니 차라리 조금 있다 시내에 나가서 더 맛있는 점심을 리노씨와 함께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렇게 결정을 했다.

그렇다면 앞으로 한 시간 반 정도의 시간이 남는 다는 것인데…

어떤 일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야 할까.

나는------

1. TV를 튼다.

2. 전화기를 든다.

------

나는 전화기를 들었다.

아까 마코토의 생각도 들은 김에 전화나 한 번 해봐야겠다.

혹시 나의 맛보는 능력이 그 녀석 덕분에 배양된 것일 수도 있으니까.

감사의 인사나 근황정도는 물어봐 주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소록에서 마코토의 이름을 골라서 전화를 걸었다.

뚜우, 뚜우 하는 신호음이 가다가 카노미 물산의 CM송이 흘러나왔다.

이 녀석은 여전하구만.

그리고 CM송이 뚝 끊어지면서 그 녀석의 목소리가 들렸다.

“…여보세요?”

꼭 자다가 일어난 것처럼 웅얼거리는 목소리다.

평일 여덟시인데….

일반 직장인이 지금 시간까지 잘 수가 있단 말인가? 

“어, 나 류노스켄데. 지금 전화 받을 수 있어?”

“아, 어… 받을 수야 있지. 아함…”

작게 하품까지 하는 것이 정말로 방금까지 자고 있었던 모양이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지금 지방에 있는 분사로 약간 감찰 같은 느낌의 출장을 나와 있어서 한 열시정도까지 출근해도 되는 날이라고.

아, 이런 건 좀 부럽다.

밤새 술 마시고 놀다가 늦게 잠자리에 들고 느긋하게 일어나서 출근.

그리고 출근하면 상전처럼 모셔주는 분사직원들이 있을 테고…, 뭐 그래도 나랑은 어울리지 않는 일이다.

난 리노씨랑 알콩달콩하게 무나 자르고 생선이나 찌는 일이 더 마음에 든다.

아무튼 그런 식으로 좀 부럽다는 이야기를 했더니 술은 마시지 않았다고.

같이 온 여사원 -전에 한 번 이야기를 들었던 같이 찻집탐방을 다니는 그녀인가 보다.- 이 술을 마시지 못해서 차나 마시면서 주변을 돌아다녔다고.

뭐, 그것도 그것 나름대로 부럽긴 한 일이네.

그렇게 근황이야기나 소소하게 주고받고 있는데 수화기 반대쪽에서 약간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구…?”

“아, 아니에요. 더 주무셔도 되요…”

이런 이야기가 들려왔다.

누구지?

그래도 먼저 물어보기 좀 그래서 기다리고 있는데 문이 열렸다가 닫히는 그런 소리가 들렸다.

아마 밖으로 나온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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