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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조리부의 신입
그러겠다고 대답은 하긴 했지만 여간 부담되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고작 무를 자르는 일 가지고 뭘 그렇게까지 쪼냐고 할 수도 있는 일이지만 내가 자른 무가 리노씨의 요리에 들어가고, 그것이 바로 손님에게 간다고 생각하면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일이다.
고작 무를 자르는 것이긴 해도 내가 참여한 부분이 리노씨의 손을 거쳐 고급 요리로 탈바꿈 한 다음에 VIP에게 전해지는 것이다.
손을 덜덜 떨면서 무와 칼을 준비하는 나의 모습을 보고 그녀가 말했다.
“그렇게 긴장하실 것 없어요. 어차피 처음에는 다 그렇게 시작하는 것이니까.”
그리고 정 못쓰겠다 싶으면 제 선에서 커트할 일이니까요, 하면서 싱긋 웃는 그녀다.
하긴 그것도 그러네, 라고 생각하니까 슬슬 손에 들어갔던 과한 힘이 빠지면서 조금은 여유를 되찾았다.
현재 내가 생각하고 있는 모양은 한입에 집어넣기엔 좀 크지만 얄팍해서 베어 물어 먹어서 두, 세입에 쏙 들어가는 딱 좋은 사이즈.
대충 말하면 그냥 보통 찜 요리에 들어가는 무를 생각하면 딱 맞을 것이다.
혼신의 힘을 다 하면서도 적정하게 여유를 가지고 칼질을 했다.
크게 반 토막을 치고 한 번 더 반을 가른 다음에 넓적하게 쳐냈다.
대충 이 정도면 되었나 싶을 정도로 무를 잘라내었다.
큰 무의 반통을 다 잘라놓아서 요리 하나에 들어가는 양치고는 조금 많은 정도로 잘라놓은 것 같다.
“헤에, 괜찮네요.”
내 어깨사이로 얼굴을 불쑥 내밀고 잘려진 무들을 바라보면서 그렇게 말하는 그녀다.
“그래요? 이런 부분이 아직 좀 삐뚤빼뚤하지 않나요?”
“아뇨, 이 정도면 잘 하셨어요. 그리고 어차피 찜에 들어가서 푹 쪄질 찜무인데요 뭐.”
그렇게 말하면서 깔깔거리는 리노씨였다.
조금 당한 기분도 들지만, 덕분에 좋은 경험을 해볼 수 있었다.
그 다음부터는 그녀의 독무대였다.
생선살을 보기 좋게 자르고 가볍게 간을 맞춘 양념에 제어 놓고 부재료들을 다듬었다.
부재료의 준비가 끝나고 국물을 우려낸 다음에 준비해놓은 생선살과 양념을 모두 집어넣고 푹 쪄내기 시작했다.
“무는 식감을 약간 남겨놓을 생각이니까 조금 뒤에 넣으면 괜찮을 것 같아요.”
그녀는 그렇게 말하면서 손에 남은 물기를 수건에 닦아내었다.
정말로 감탄성이 튀어나올만한 움직임이었다.
일종의 어트랙션 요리쇼 같은 것을 만들어도 그 안에서 충분한 볼거리를 제공할 것 같은 사람이구나, 정말.
딱딱 시간에 맞춰서 움직이는 것이 일종의 춤을 추는 것을 보는 기분이 들기도 하였다.
“대단하던데요?”
냄비를 달구는 불을 한번 더 조정하고 내쪽으로 오는 그녀에게 그렇게 말했다.
“아니네요, 아직 제대로 된 한명의 요리사가 되려면 한참 남았는 걸요.”
그렇게 말하면서 한쪽 손을 볼에 가져다대고 예의 그 부끄러운 표정을 지었다.
리노씨가 아직 반틈짜리 요리사라면 과연 일인분을 하는 요리사가 세상에 얼마나 되겠느냐는 생각이 들기는 했지만 일단 입으로 올리지 않고 참아두었다.
찜이 다 쪄질 때 까지는 아직 시간이 남았고 그 사이에 딱히 할 일도 없다.
아까 무를 자른 부로 절삭법은 어느 정도 합격의 점수를 주었기 때문에 가끔씩 자습을 하는 정도로 재료를 다듬기만 하면서 실력을 유지하고 굳이 시간을 내어가면서 까지 연습할 필요는 없다고 이야기했다.
재료 다듬든 실력만 좋아져봐야 쓸데라고는 양파껍질 깎게 시키는 것 밖에 없다고 덧붙이면서 말이다.
문으로 닫혀있는 공간이고 오늘은 특별한 용무가 없다면 들어오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평소에 그녀와 함께 일하는 무츠에씨는 밖에서 저녁타임의 준비를 하고 있다.- 슬쩍 리노씨와 붙어서 알콩달콩한 시간을 보냈다.
일단 어제 막 마음을 주고받았던 사이라 어색한 부분이 좀 있을 줄 알았더니, 슬쩍 그녀를 뒤에서 껴안고 있는 것만 해도 충족감이 느껴졌다.
슬쩍 그녀의 머리에 코를 대고 그녀의 몸에서 풍겨 나오는 카모밀레 향을 즐기는 것도 썩 즐거웠다.
어제 내가 사용하는 샴푸와 바디워시의 향을 풍기는 그녀도 상황 상 충분히 섹시하게 느껴졌지만 역시 카모밀레 향이 그녀 본연의 향처럼 느껴져 더 좋았다.
부드러운 그녀의 육체를 조금 더 품안으로 당기면서 부끄럽다는 그녀의 반응을 즐기고 있었는데 갑자기 턱하고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당황해서 그녀와 떨어지려고 했지만 너무 깊게 품고 있어서 서로 떨어져 나가려다가 부딪혔다.
이대로라면 누군가에게 이 이상한 관경을 목격시켜버릴 것 같아서 재빠르게 도마 위에 올려 있는 칼을 집어 올렸다.
내 행동에 그녀도 내가 무슨 일을 하려는 것인지 알고 그에 맞춰왔다.
문이 다 열리고 안에 들어온 사람은 소치씨였다.
“…!”
딱 달라붙어있는 우리를 보고 소치씨가 경악하는 표정을 지으면서 재빠르게 들어와 문을 닫았다.
굉장히 부끄럽고 당황한 것은 나 역시 마찬가지였지만 애써 그런 기분을 무시하고 칼을 들어 아까 자르던 무를 계속 잘랐다.
여기서 과하게 신경 쓰는 모습을 보여주면 실패다.
최대한 평정을 가장해서 칼질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내 칼질하는 손에 슬쩍 자신의 손을 올려오는 리노씨다.
“여기서는 그렇게 하지 않고 이쪽으로 써는 것이 좋아요.”
당황한 내가 칼질을 하면서 실수를 하자 아무렇지 않게 평소의 웃음을 지으며 내 손을 잡고 있는 손에 힘을 줘서 교정을 해주는 그녀다.
꺅하고 소리를 지르려다가 이상한 표정을 지으면서 우리 쪽으로 걸어오는 소치씨의 모습이 보였다.
“…안녕하세요?”
그리고 앙다문 입술을 벌려서 인사를 해왔다.
여전히 눈초리에 덕지덕지 의심이 달라붙어 있는 모습이 보였다.
“아, 안녕하세요. 소치씨.”
리노씨는 그녀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웃으면서 인사를 건넸다.
그녀의 표정을 보고 정말 아무 일도 아닌가? 라는 생각을 했는지 슬쩍 조금 더 다가오는 소치씨다.
“절삭법하고 계신가 봐요?”
그리고 고개를 푹 숙이고 칼질에 집중하고 있는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아, 네. 해도, 해도 익숙해지지가 않아서 리노씨의 도움을 받고 있네요.”
하하 거리면서 그렇게 말했다.
“어제 봤을 때는 기본 썰기 정도는 다 잘하셨던 것 같은데…”
그녀는 그렇게 말하면서 의심의 눈초리를 더 짙게 만들었다.
“그게 하룻밤 자고 일어나니까 또 잘 안되더라고요.”
실없는 웃음을 지으며 하는 내 말도 안 되는 변명에 뭐가 꼬투리를 잡은 모양새다.
“이상하네요… 한 번 감을 잡으면 쉽게 잊히지가 않는 기술인데.”
그리고 그렇게 딱 붙어서 할 필요가 있나요? 그리고 보통 토베씨가 앞에서 하는 게 맞지 않나요? 이렇게 쏘아붙이는 그녀다.
하긴 보통 자르는 사람이 앞에 서고 필요하다면 보조해주는 사람이 뒤에서 도와주는 것이 더 효율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방법이지, 이렇게 직접 자르는 사람이 뒤에 있으면 뭔가 애매해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내가 어떻게 변병하고 넘어가야하나 하고 고민하고 있는데 리노씨가 입을 열었다.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에요. 제가 팔이 짧아서…”
“마츠씨처럼 팔다리가 쭉쭉 긴 여성이 무슨…”
슬쩍 내 품에서 벗어난 그녀가 소치씨를 뒤로 돌아들어가서 그녀를 끌어안았다.
“?!”
그녀가 뒤로 돌아오자 무슨 일인가 하는 표정을 짓다가 안기고 나서 얼굴을 확하고 붉히는 그녀다. 마치 전구에 불이 들어오듯이 목부터 귀 끝가지 바로 피가 오르는 것이 눈으로 훤히 보였다.
“마, 마츠다씨?”
그녀가 경악을 담은 목소리로 외칠 때, 리노씨가 풍만한 가슴으로 그녀의 등과 뒷목을 자극하면서 입을 열었다.
“어때요? 제 팔이 짧다는 게 무슨 뜻인지 알겠죠?”
그녀의 물음에 소치씨는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이고 말도 없이 연간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해하셨다니까, 다행이네요.”
그렇게 말하면서 쓱 하고 내 곁으로 돌아오는 리노씨의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반쯤 얼이 빠져서 하얗게 탈색된 소치씨의 모습도.
굳이 말하자면 흰색보다는 빨간색이 되었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