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9화 (49/62)

0049 / 0062 ----------------------------------------------

#02. 조리부의 신입

나는------

1. 그녀의 의견에 따른다.

2. 아니다, 역시 거부한다.

------

나는 그녀의 의견에 따르기로 결정했다.

마츠다씨의 상태가 걱정이 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 와서 맥주 한잔을 더 먹는 다고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다고 본다.

그리고 나를 애틋하게, 진지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는 마츠다씨가 평소보다도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답게 느껴졌다.

그리고 조금이라도 더 같이 있고 싶다고 그렇게 느꼈다.

대화를 나누면서 혹시 내가 잘못한 것이 있는지, 그렇다면 그걸 고칠 수 있는지.

…혹시라도 그녀에게 미움 받고 있는 것은 아닌지.

알고 싶기도 했다.

“그럼 잠시 들렸다가 가실래요?”

내 말에 마츠다씨는 고개를 약간 숙이면서 그러자고 대답했다.

이상하게 부끄러워하는 모습이 또 사랑스러웠다.

그녀를 데리고 다시 계단을 내려가서 나의 방을 향했다.

문득 좀 지저분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얼마 전에 치우고 나서 그다지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서 그나마 다행일까.

마음먹고 어지르면 방이야 하루아침에도 지저분해질 수 있는 것이니까. 

방 앞에서 호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어서 열쇠를 꺼냈다.

다시 제작하는데 만 원 정도 들어가는 보통의 열쇠다.

지원자에 한해서 방에 추가로 자물쇠를 설치하거나 도어락을 설치하는 사람도 있지만 난 굳이 그렇게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딱히 가져갈 물건도 없고…

지금 자체로도 편했다.

열쇠구멍에 열쇠를 밀어넣은 다음에 조심스럽게 돌렸다.

스르륵하고 긁히는 촉감이 열쇠를 타고 손가락으로 전해졌다.

가볍게 열쇠를 꺼낸다음에 문을 열었다.

불을 꺼두고 가서 방안이 깜깜했다.

아침에 창문을 닫아놓고 가서 그런지 밀폐된 방 특유의 먼지 냄새 같은 것도 조금 났다.

일단 현관 옆에 있는 스위치로 형광등을 키고 마츠다씨가 먼저 방안으로 들어가도록 했다.

“실례합니다.”

마츠다씨는 나에게 작게 웃어주면서 먼저 신발을 벗고 방안으로 들어갔다.

그녀가 들어간 뒤에 문을 잠그고 나도 따라서 들어갔다.

방안에 들어가서 먼저 창문부터 열었다.

안 그래도 아침에 준비한다고 좀 어질러놓은 방인데 탁한 냄새까지 나니까 꽤 부끄러운 기분도 들었다.

일단 창문을 열은 다음에 손님용 방석을 가져다가 앉은뱅이책상 앞에 배치했다.

“이쪽으로 앉으세요.”

그리고 그녀에게 방석에 앉을 것을 권했다.

아까 전에 나에게 받아든 가방을 조심스럽게 옆에 내려놓고 방석위에 무릎을 대고 앉는 그녀의 모습이 보였다. 

냉장고로 가서 문을 열어보았다.

다행히 안에 맥주 세 캔이 굴러다니고 있었다.

일단 두 캔을 꺼내들었다.

썩 차가운 것이 맛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맥주캔을 상위에 올려놓고 혹시 안주거리가 될 만한 것이 있을까 생각을 해보았다.

그러고 보니 그저께 혹시나 해서 구입했던 과자들에 전혀 손을 대지 않았었다.

어차피 요즘 과자 같은 걸 입에 거의 대본적도 없어서 약간은 보험 같은 느낌으로 구입해두었던 것인데 이렇게 요긴하게 쓰이게 될 줄은 생각도 못했다. 

콘소메 맛의 팝콘과자였는데 학교 다닐 때 꽤 애용하던 물건이다.

맛있는 주제에 값도 저렴하고 양도 많아서.

하긴 팝콘의 원가가 비싸봐야 얼마나 비싸겠는가 하는 생각도 들긴 하지만 말이다.

과자봉지를 길게 뜯어서 집어먹기 쉽도록 만든 다음에 상 가운데에 올려두었다.

그리고 나도 그녀의 반대쪽 자리에 배치해놓은 방석위에 가서 앉았다.

“토베씨, 이런 거 많이 드시면 안 좋아요.”

팝콘과자를 쳐다보면서 마츠다씨가 말했다.

목소리에서 술기운이 많이 빠지긴 했지만 약간 달달한 기색이 남아있는 그런 목소리였다.

눈빛도 평소의 눈빛보다는 살짝 젖어있어서 꽤 위험한 기분이 들기도 했지만 애써 참았다. 

“예, 지난번에 안주거리로 혹시 해서 구입했던 거거든요.”

내 말에 입술을 삐죽거리면서 그녀가 대답했다.

“안주거리가 필요하면 말씀을 하시지, 맛있는 걸 얼마든지 만들어 드릴 수 있는데.”

이렇게 말하면서 엄지와 검지로 팝콘을 하나 집어서 입에 넣고 오물거리기 시작하는 그녀의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눈을 크게 뜨면서 놀랐다는 목소리로 말했다.

“음, 생각보다 맛이 괜찮네요?”

“그렇죠? 학생 때 자주 먹었던 거예요.”

“그래도 자주 먹으면 건강에 안 좋은 거는 맞잖아요? 다음부터는 말씀만 하세요, 정말로 애진간한 거는 다 만들 수 있으니까.”

그렇게 말하는 그녀와 캔 맥주의 뚜껑을 잡고 부드럽게 비틀었다.

폭하는 소리와 안에서 맥주의 탄산이 부스스스하고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가볍게 한 모금 들이마셨는데 시원하게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는 감촉이 굉장히 좋았다.

“시원한 게 맛있네요.”

나의 말에 정말 그러네요, 하고 받아치는 마츠다씨.

그냥저냥 그다지 쓸모없는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별 영양가 없는 이야기들이었지만 그녀가 다시 나에게 웃어주는 것 자체로도 너무나 좋은 일이었다.

술이 들어가서 그런지 평소보다 좀 위험한 화제의 이야기들도 나왔지만 부드럽게 넘어갔다.

그러는 사이 어느새 둘 다 캔에 든 맥주를 다 마시고 말았다.

500ml정도 되는 긴 캔으로 된 맥주였는데 시원한 게 맛이 좋아서 벌컥거리면서 마시다보니 금방이었다.

술을 다 마시고 나서 말이 없어진 체 로 나를 빤히 바라보는 마츠다씨의 모습이 보였다.

왜 그럴까.

“한 캔 더 드실래요?”

혹시 해서 그녀에게 물어보았지만 그녀는 약간 인상을 쓰면서 고개를 도리질 쳤다.

아까까지만 해도 부드럽게 웃다가 다시 약간 볼을 부풀리고 입술을 삐죽거리는 것이 영 불안했다.

그새 기분을 상하게 할 만한 일이라도 있었던가?

그렇게 얼마간 서로 말없이 눈을 말똥말똥 쳐다보기만 했다.

나는 의문을 몰라서 그렇게 했지만 그럴수록 점점 더 그녀의 표정은 일그러져갔다.

그러다가 그녀가 한숨을 푹 쉬고는 못 말리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무슨 일이지, 하고 생각하는 데 그녀가 앞에 있는 앉은뱅이책상을 옆으로 밀어내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팔로 무게를 지탱하면서 슥 하고 앞으로 밀고 나왔다.

그녀가 가까워지면서 술 냄새와 그 안에 섞여있는 그녀의 체취가 확하고 밀려왔다.

얼굴과 얼굴이 거의 맞닿을 거리까지 다가온 그녀의 얼굴을 보니까 왠지 부끄러운 기운이 들었다.

마신 술기운이 확 얼굴로 올라와서 붉어지는 느낌까지 들었다.

그런 모양을 말없이 못마땅한 표정으로 바라보던 마츠다씨가 결심한 듯 고개를 작게 끄덕거리면서 입을 열어 나에게 말했다.

“그, 토베씨는…”

“네.”

“그… 뭐라고 해야 하나.”

우물쭈물하는 그녀의 모습이 보였다.

왠지 긴장이 되어서 침을 꿀꺽하고 삼켰다.

그러다가 마음을 굳힌 듯이 물어왔다.

“여자를 사귀어 본적이 없나요?”

생각지도 못한 물음이었다.

“네, 네.”

내 멍청한 대답에 그녀는 몸을 살짝 더 내 쪽으로 당기면서 다시 입을 열었다.

“아니, 그렇잖아요. 모르는 척 하는 거예요. 아니면 정말로 그러는 거예요?”

그녀의 질문에 멍해져 있던 내가 ‘정말로 모르겠어요.’, 라는 표정을 짓고 있었는지 그녀는 작게 한숨을 쉬면서 말을 이었다.

“그제 우리 키스했었죠?”

그녀가 그렇게 물어왔다.

그러고 보면 그랬다.

저 앵두같이 매끈매끈하고 탄력 있게 생긴 붉은 입술과 입술을 맞대었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입술이 열리면서 달콤한 과실이 내 혀에 얽히면서 달짝지근한 과실을 넘겨주었던 감촉도 남아있고.

그 생각을 하니까 나도 모르게 군침이 넘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그 맛있었던 입술이 바로 나의 코앞에서 숨결을 뿜어대고 있는 것이다.

술기운에 다시 한 번 저 입술을 탐하고 싶다고 요동치는 마음을 진정시키는 데 그녀가 먼저 고개를 쑥하고 내밀었다.

하고 가볍게 입술이 닿았다가 떨어졌다.

얼굴을 붉게 물들인 그녀가 계속 말을 이었다.

“입술만 쳐다보지 말고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