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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조리부의 신입
대욕탕의 뜨끈뜨끈한 온천물에 몸을 녹이고 방으로 돌아와서 잠을 청했다.
확실히 피로가 많이 풀린 기분이 든다.
아까 대충 씻고 그냥 자는 것도 나쁜 선택이야 아니었겠지만 이렇게 느긋하게 씻고 나오니까 역시 이쪽이 훨씬 좋은 선택을 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따뜻하고 포근한 이불에 둘러싸여서 편안하게 잠들었다…,
다음 날도 아침에 가볍게 씻고 출근을 했다.
오늘은 조리2부가 아침식사를 준비해야 하는 날이기 때문에 평소에 숙면을 취하던 시간에 일어나야 해서 여간 피곤한 것이 아니었다.
그래도 크게 기지개를 펴고 스트레칭을 하면서 어떻게든 잠을 쫓아냈다.
조리2부 입구에 있는 세수시설에서 손을 깨끗하게 씻고 안으로 들어갔다.
어제 급하게 내 몫으로 배정된 로커에 가서 조리복을 꺼내서 -이것역시 공용으로 사용하던 물건을 나의 주문품이 올 때까지 잠시 빌렸다.- 탈의실에서 갈아입었다.
공용사이즈의 옷이라 그런지 지난번에 입었던 옷보다는 살짝 품이 커서 몸에 감기는 느낌은 좀 부족해도 움직이기가 편했다.
아무리 견학기간이라도 아침부터 조리1실에 틀어박혀있는 것은 아무래도 눈치가 보여서 뭐라도 할 게 없나하고 이리저리 눈치를 살피면서 내부를 돌아다니는데 한 선배에게 뒷덜미가 잡혀서 조리1실로 밀어 넣어지려 했다.
“좀 쉬어, 임마.”
요토 토오루. 지난번에 나에게 옷을 빌려주었던 -마츠다씨가 빌려서 가져온 것이기는 하지만- 선배로 나보다 2살이 많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세이렌에 들어와서 벌써 근속 6년차에 달하는 선배다.
꽤 말끔하게 생겼으며 유쾌하게 다가오는 느낌이 꼭 동네 형 같은 사람이다.
지난번에 교육 파견 나왔을 때 이것저것 나를 챙겨주어서 꽤 친해진 사람이었다.
“그래도 한창 바쁜 아침부터 혼자 느긋하게 있는 것은 좀….”
“허, 진짜 말 안 듣는 녀석이네.”
그리고 내가 왜 쉬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조목조목 따지면서 설명해주었다.
여전히 전혀 공감이 가지 않는 내용이었지만 더 이상 거부하는 것은 대드는 것 같은 느낌도 들어서 일단 조용히 조리1실로 들어갔다.
조리1실 안에는 마츠다씨가 채소 몇 가지와 칼 몇 자루를 도마 위에 올려놓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여전히 범접할 수 없는 검은 아우라를 뿌리고 있었다.
그 기세에 흠칫 거리면서 그녀에게 먼저 인사를 건넸다.
“아,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다행이 어제와 같은 뾰족하게 찔러오는 느낌은 없었다.
오히려 약간 지쳐 보이고 힘없어 보이는 목소리로 그녀는 나에게 인사를 되돌려주었다.
이런 느낌의 마츠다씨는 또 처음 보는 것이었다.
어제처럼 발랄한 느낌도 없이 그저 의무적인 느낌으로 딱딱 그녀가 가르쳐 줄뿐인 기술들을 익혔다.
마츠다씨가 워낙 기운 없어 보여서 말을 걸기도 뭐했고 분위기를 전화해 보기 위해 말을 건다고 해도 평소처럼의 반응은 없었고 그냥 몇 마디까지만 이어지다가 바로 대화가 끝났다.
꽤 불편한 시간이라 생각보다 길게 느껴졌다.
그러다 점심시간이 지나고 나서 좀 한가해진 시간에 마츠다씨가 친구를 만나러 간다고 먼저 조퇴를 하고 오후시간에 일일조교로 소치씨가 나에게 붙게 되었다.
조리1실에서 소치씨에게 마저 절삭법의 강습을 받고 있는데 그녀가 나에게 물어왔다.
“마츠다씨 무슨 일 있으신가요?”
“음, 저도 잘 모르겠어요.”
그렇게 대답했더니 다시 소치씨의 표정이 약간 뚱해졌다.
“그래요? 저런 모습은 처음 보거든요. 늘 약간 멍하니 있는 것 같아도 밝고 명랑하셨는데 저런 기운 빠진 모습은 정말 처음이었어요.”
요즘에 쭉 토베씨랑 같이 있어서 아실 줄 알았었는데 모르시는 구나…. 라고.
둘이서 마츠다씨에 대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에 업무시간이 모두 끝났다.
이야기를 나누면서 느낀 것인데, 정말로 소치씨가 마츠다씨를 존경하고 본받고자 노력한 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소치씨 먼저 돌려보내고 나서 조리1실의 뒷정리를 실시했다.
썰어놓은 것 중에 쓸 수 있는 것은 추리고 도무지 다시 사용할 수 없게 된 것들은 랩을 씌워서 냉장고에 집어넣었다.
나중에 기본적인 요리를 시작할 때 사용하면 딱 좋을 것이라고 마츠다씨…가 이야기했었다.
마츠다씨….
아마 내가 무언가 잘못해서 그녀의 기분이 상한 것일까.
아니면 그렇게 생각하는 건 조금 오버하는 것인가, 마츠다씨와 나는 아무런 사이도 아니니까 사실 그렇게 큰 실수를 하지 않는 이상에야….
음, 잘 모르겠다.
일단 정리를 마저 끝내고 밖으로 나왔다.
오늘은 미무라씨와 다른 선배 한 명이 뒷정리의 거의 마지막 부분을 처리하고 있었다.
다가가서 인사를 건네면서 옆에서 일손을 거들었다.
“아이참, 토베씨는 정말로 말이 통하지가 않는 사람이네요?”
미무라씨가 그런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아뇨, 어차피 이제 끝나면 같이 마시러 갈 것 아닌가요. 기다리느니 조금이라도 빨리 끝내는 것이 낫죠. 지금은 조리부의 막내가 아니라 세이렌 입사동기로서 도와주리는 것인데요.”
이렇게 대답하면서 그녀가 들고 있는 밀걸레를 빼앗아서 바닥을 밀었다.
나를 찌릿한 눈빛으로 쳐다보던 그녀는 이내 한숨을 쉬면서 다른 일을 정리하기 위해서 움직였다.
남은 부분이 그리 많지도 않았고 셋이서 힘을 모으니까 빠르게 조리부의 정리가 모두 끝나게 되었다.
선배에게 인사를 하고 헤어져서 밖으로 나오는데 나의 핸드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액정에 떠오른 이름을 보니까 사카라기씨였다.
녹색버튼을 밀어서 전화를 받고 수화기를 든 오른손을 귀 쪽으로 당겨 올렸다.
“여보세요?”
사카라기씨 특유의 목소리가 수화기를 타고 들려왔다.
“네, 토베입니다.”
“아, 저 사카라기에요. 혹시 조리부쪽은 일이 모두 끝났나요?”
“네, 방금 뒷정리 다 끝나고 지금 미무라씨랑 나왔어요.”
“헤에, 다행이네요. 오늘 밖에서 마실 생각인데 괜찮으시죠?”
나는 물론 괜찮다고 대답하고는 고개를 돌려서 미무라씨에게도 물어보았다.
“네, 저도 괜찮아요.”
“미무라씨도 괜찮다고 하시네요.”
“그럼 버스장 쪽으로 나오세요. 지금 미즈가와씨도 저랑 같이 있으니까.”
“네, 알겠습니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지금 사카라기씨와 미즈가와씨가 버스장쪽에 있다는 이야기를 해 주었더니 방에 들러서 조금만 준비를 하고 오겠다고 미무라씨가 이야기했다.
나는 알았다고 이야기를 하면서 나는 어떤지 생각을 해보았다.
지갑도 있고 핸드폰의 배터리도 충분하다.
아직 완전히 여름이 된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밤 바람이 그렇게까지 쌀쌀하지도 않으니 아침에 입고 나온 옷으로도 충분히 버틸만 할 것이다.
“그럼 저는 먼저 버스장에 가 있을게요.”
“금방 갈 테니까, 저 버리고 먼저 가버리면 안돼요?”
그렇게 말한 미무라씨는 빠른 걸음으로 외곽기숙사쪽으로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