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2화 (42/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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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조리부의 신입

마츠다씨에게 정신없이 절삭법을 지도받다보니 어느새 네 시 반이 넘어가고 있었다.

네 시 반이면 보통 저녁식사의 준비를 슬슬 시작해야 할 시간이다.

마츠다씨야 직급도 있고 따로 수행하고 있는 일이 있었으니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세이렌의 간판 숙수이다 보니 VIP손님으로부터 직접 지명을 받거나 하는 일이 있다고- 굳이 저녁식사를 준비하는 데에 참여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나 같은 경우는 완전 말단에 초짜.

사실 도움이 될지 안 될지조차 애매한 상황이기는 하지만, 내가 갈까말까를 결정할 수 있는 그런 입장도 아닌 것이다.

                        

그래서 마츠다씨에게 말을 꺼내보았다.

“마츠다씨, 저는 이만 저녁준비를 하러 가봐야 하지 않을까요?”

“아, 그건 괜찮아요.”

그렇게 말한 그녀는 ‘원래 유격부에서 건너온 조리부원은 1:1 교육기간 중에는 조리에 참여하지 않는 것이 보통이에요.’라고 덧붙였다.

                       

“그래도 잡일 같은 부분은 할 일이 있을 텐데…”

내 사족에 그녀는 입가에 미소를 띠면서 나에게 말했다.

                       

“괜찮다니까요? 원래대로면 처음 2주일은 아무것도 안하고 견학만 시키는 게 보통이에요. 유격부에서 교육파견을 나오기는 해도 그건 어디까지나 지원을 나온 사람의 입장이니까, 일을 보는 관점이 다를 수 있거든요. 그래서 적응기간에는 아무것도 안 시키는 게 전통이랍니다.”

아까 하신 게 기특한 일이었어요. 라고.

                       

그래도 막내가 막내 일을 하지 않는 다는 점은 좀 애매했다.

내가 가만히 있고 바로 윗선의 선배들이 움직인 다는 것은 꽤 불편한 일이 아닌가.

                       

내가 이런 생각을 얼굴로 다 내보내고 있었는지 마츠다씨는 나에게 다시 이야기해왔다.

“정말이지 토베씨는 사람이 너무 곧다고 해야 하나 그런 면이 있네요. 조금은 편하게 가도 될 텐데…. 어차피 다음 사람이 올 때까지 막내는 토베씨인 거니까요.”

밝게 웃는 표정으로 무서운 말을 하는 마츠다씨의 모습에 조금 얼어붙었다.

                       

아무튼 결국 마츠다씨의 설득에 넘어가서 그녀의 제안을 받아들여 남은 일과시간을 수련에 매진하도록 결정했다.

어차피 애매하게 기웃거리면서 서로 불편해질 바에야 차라리 조금이라도 더 기술을 익혀서 실전에서 조금이나마 써먹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말이다.

                       

남은 시간을 전부 마츠다씨의 지도하에 절삭법을 연습하는 데 사용했다.

여전히 애매하고 삐뚤삐뚤하기는 하지만 처음보다는 장족의 발전을 이루었다고 자부할 수 있을 정도는 된다.

아예 못하던 것을 조금은 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

                  

일과시간이 모두 끝나고 마츠다씨와 조리1실을 정리했다.

오늘은 오전에 마츠다씨가 작업한 것을 제외하면 썰린 무와 칼만 닦으면 되는 일이었기 때문에 그다지 오래 걸릴 만한 일은 아니었다.

                       

그리고 오늘은 부장인 온다씨가 비번이었기 때문에 그녀가 맡는 부의 조율 같은 것을 마츠다씨가 대신 수행해야 했기에 오전에 특히나 별다른 일은 하지 않았다고. 거기에 나의 서류처리까지 해주어야 했었고.

그 덕에 일찌감치 뒷정리가 끝나고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조리1실을 나오자 몇몇 선배와 미무라씨가 마무리 정리를 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미무라씨 같은 경우에는 다이렉트로 조리부로 스카우트된 인원이라고 들었다.

그래서 일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시점에서도 뒷정리나 잔업을 도맡아서 하고 있었던 거구나.

나와 동기인데 나는 일이 끝나고 룰루랄라 돌아가서 휴식을 취한다는 것이 썩 마음이 편치는 않았다.

그래서 미무라씨에게 다가가서 혹시 도와줄 것이 있냐고 물어보자, 그녀는 이번에는 유격부에서 지원 온 것이 아니라 정말로 넘어온 것이니까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일이라고 딱 잘라 거부했다. 2주 뒤에 보자면서 흐흐거리기도 했지만 어디까지나 장난스런 말투였고 자신의 일로 남에게 폐를 끼치고 싶어 하지 않아하는 눈치였다.

정말로 썩 편치 않은, 꽤 불편한 기분이 들었다.

그냥 깨끗하게 도와주고 일을 시켜주면 좋을 것을.

그렇게 속으로 구시렁거리고 있는데 미무라씨가 나에게 입을 열었다.

“아차차 모레 밤에 확정된 거 아시죠?”

동기끼리 술을 마시는 것을 말하는 것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 네. 사카라기씨한테 들었어요.”

“하하, 재미있을 것 같네요. 다음날 딱 일을 할 수 있을 정도까지로 꽉 채워서 술을 먹일 거니까 그 때까지 몸을 잘 간수해두는 게 좋을 거예요.”

그렇게 말하면서 호쾌하게 웃는 그녀의 모습이 보였다.

“네, 그럼 수고하세요.”

그녀와 인사를 나누고 손을 흔들면서 헤어졌다.

주변의 다른 선배들에게도 인사를 건네고 먼저 조리부건물을 벗어났다.

나의 옆에서 함께 걷고 있던 마츠다씨가 나를 보고 말을 걸었다.

“모레에 무슨 일이 있으신가 봐요?”

“네, 사카라기씨랑 미무라씨랑 미즈가와씨랑 저 이렇게 넷이서 동기끼리 한잔하기로 약속을 잡았거든요.”

“헤에…”

그렇게 말하면서 살짝 오른쪽 볼을 부풀리는 마츠다씨.

볼을 부풀려…?

그렇게 생각하는 사이에 부풀어져 있던 오른 볼이 쏙하고 다시 들어갔다.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이.

“재미있겠네요. 동기끼리 약속도 잡고 술도 마시고…”

왠지 평소와 다름없는 그녀의 미소와 말투임에도 왠지 모르게 차가운 느낌이 들었다.

으스스하고 떨려온다고 해야 할까.

“네, 네에. 그렇죠.”

“뭐, 재미있게 놀다오세요.”

이상하게 평소의 따뜻한 웃음인데도 툭툭하고 찔러오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끝까지 서릿발을 뿌리는 것 같이 뾰족하고 따끔한 그녀에게 몰리다가 겨우 헤어져서 방에 돌아왔다.

마츠다씨의 방도 소치씨와 마찬가지로 별관 2층이라서 계단 앞에 까지 와서야 겨우 헤어졌는데 그 잠깐 사이에 너무나 많은 심적 에너지를 소비한 그런 기분이 들었다.

“와, 지친다.”

그렇게 말하면서 침대에 풀썩 엎어졌다.

막판에 마츠다씨에게 쪼아진 것도 있지만 오늘 이리저리 바쁜 일도 많았고 새로운 것을 배우고 익히느라 정신을 많이 소모했다.

마츠다씨의 육탄공격에서 정신 줄을 똑바로 잡고 있어야 했기도 하고 말이다.

정말 지친다. 이런 말이 입에서 자동으로 나왔다.

당장 누워서 침대위를 굼벵이처럼 기어다니고 싶다.

이미 누워있지만 더 적극적으로 누워있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그래도 제복을 입고 있는 것이 생각나서 구겨지지 않도록 일단 다시 일어나서 옷을 제대로 옷걸이에 걸어두었다.

내일부터는 조리부로 출근해서 거기서 바로 조리복으로 갈아입게 될 것이기 때문에 아마 당분간은 세이렌의 정복제복을 입을 일이 별로 없지 않을까. 하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좀 아쉬운 기분이라고 해야 하나 그런 것이 들었다.  

한달 조금 넘는 시간이었지만 유격부의 일원으로 이곳저곳에서 다양한 일들을 도왔었는데…

그래도 내가 선택한 길이니까.

                       

이렇게 생각하면서 다시 한 번 힘을 내었다.

지친 만큼 가볍게 씻고 쉬고 싶은 마음이 없는 것도 아니지만 오늘은 제대로 대욕탕에서 씻고 체력을 비축하는 것이 좋은 생각일 것 같다.

대욕탕이용 시간까지는 약간의 시간이 남는다.

일단 가볍게 책이라도 읽으면서 시간을 때우다가 준비를 해서 씻는 것이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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