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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조리부의 신입
나는------
1. 마츠다씨에게 요리를 배우고 싶다.
2. 소치씨에게 요리를 배우고 싶다.
3. 둘 다에게 배우고 싶다.
4. 둘 다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는다.
------ 나는 마츠다씨에게 요리를 배우고 싶다.
아무래도 소치씨랑 둘이 있는 것은 뭔가 불편하다.
평소에 나에게 툴툴거리면서 불만을 토하는 것 같은 그녀의 분위기도 그렇고 특히 오늘따라 왠지 모르게 그녀를 대하기가 불편한 것도 결정을 내리는 데 한몫을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마츠다씨에게 배우고 싶은 마음이 강하다.
조금이라도 그녀와 오래있고 싶은, 그런 기분이 들었다.
“저는 아무래도 마츠다씨에게 배우고 싶네요.”
내 말에 마츠다씨는 평소에 볼 수 없었을 정도로 싱글벙글을 넘어서 싱글벙글싱글벙글 웃으면서 나에게 대답했다.
“네, 감사해요 토베씨. 우리 열심히 해봐요.”
마츠다씨가 나에게 뭐가 감사한지는 잘 모르겠지만 나도 웃으면서 그러자고 대답했다.
옆에서 우리를 바라보는 소치씨가 뚱한 얼굴로 ‘쳇’하고 혀를 차는 모습이 보였다.
내가 마츠다씨와 둘이 요리 강습을 하는 것이 썩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다.
뭐 아무튼 그런 식으로 마츠다씨에게 요리를 배우는 것으로 결정됐다.
점심식사를 마치고 오후업무시간이 되었다.
이 시간이 사실상 조리부에 있어서는 제일 여유로운 시간이다.
점심의 뒷정리를 마치고 나면 저녁식사를 준비하기까지 여유로운 날은 4시간, 못해도 2시간 정도는 남게 되는 것이다.
이 시간을 이용해서 가볍게 -아침이 빠른 만큼- 오침을 즐기는 사람도 있고 차를 마시며 간식을 먹거나 아니면 TV를 시청하는 사람도 있다.
오침을 위한 수면실이 따로 존재할 정도로 대우도 괜찮은 편이다.
이제 진짜 조리부의 막내가 되었으니까 점심의 뒷정리를 자처했다.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면 시키고 나서 투덜거리면서 하는 것 보다는 먼저 나서서 하는 것이 보기에도 좋으리라.
설거지용 고무장갑을 끼고 조리도구와 쓰고 난 식기 등을 닦았다.
내가 설거지를 시작하자 선배 몇 명도 슬금슬금 걸어 나와서 함께 식기세척을 시작했다.
혼자 할 생각을 했을 때는 상당히 오래 걸릴 양으로 생각했는데 노하우가 있는 사람들이 투입되어서 그런지 금방 끝났다.
그리고 빨리 끝났음에도 남거나 번들거리는 것 없이 뽀득뽀득하게 잘 닦여 있는 것을 확인했다.
깨끗한 수건으로 남은 물기를 가볍게 닦고 살균 건조대에 집어넣었다.
설거지를 마치고 남은 식기의 정리까지 모두 마쳤다.
그러고 시계를 보자 저녁 준비까지 두 세시간정도 남아있었다.
무엇을 해야 할까 고민하던 차에 오늘부터 바로 교육을 시작하자고 마츠다씨가 나에게 제안해왔다. 그러자고 그녀의 제안을 승낙하고 조리1실로 향했다.
전에 늘 조리1실에 있는 것이 궁금해서 물어보았더니 조리1실은 부장실 같은 느낌으로 그녀가 단독으로 사용하는 주방이라고.
그때 다시 한 번 그녀에게 놀랐었다.
전용주방까지 가지고 있을 수준이구나 하고.
세계대회 수상경력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는 더욱 더 놀랐지만, 왠지 그녀라면 그럴 수 있다. 라는 생각이 들지 않은 것도 아니다.
그만큼 ‘대단하다’라는 단어를 사람으로 만들어버린 것 같은 사람이니까.
아름답다나 포근하다, 귀엽다 같은 것도 포함해서…
“일단 오늘은 기본적인 칼질부터 한 번 해볼까요?”
그렇게 말하면서 그녀는 조리용 탁자의 옆에 걸려있는 칼집에서 식칼 두 자루를 꺼내들었다.
“원래는 자신의 칼로 연습하면서 감을 익혀나가는 것이 제일 좋지만, 일단 토베씨의 칼이 없으니까 제 것을 빌려드릴게요.”
라고 말하면서 혹시 이번 주에 비번을 같이 맞출 수 있겠느냐고 물어왔다.
“네, 괜찮은데요. 혹시 무슨 용무라도?”
“아, 토베씨도 이제 조리부로 오셨으니까 칼을 한 자루정도는 가지고 계셔야 할 것 같아서요. 원래 후배의 첫 번째 칼도 멘토로 지명된 선배가 직접 골라주는 거거든요.”
‘괜찮은 것을 고르는 게 은근히 어려운 물건이 칼이기도 하고요.’ 라고 덧붙이는 마츠다씨.
나야 전혀 사양할 이유가 없기 때문에 그러자고 대답했다.
그렇게 해서 생각한 비번은 다음 주 화요일.
그날 함께 거리로 나가서 칼을 구입하기로 결정했다.
원래는 대장간에 직접 수주하는 물품이 제일 좋지만 요즘에는 장인들도 기성품같이 규격별로 제품을 치는데 그중에 꽤 괜찮은 품질로 나오는 물건도 있다고 한다.
독일제 공산품 같은 것도 좋기야 하지만 역시 공산품은 오래 사용하기에는 제약이 있어서 단가가 좀 나가도 제대로 된 수제품을 구입하는 것이 좋다고.
그녀가 나에게 빌려준 칼은 밑에 나무도막으로 딱 손 크기에 맞는 손잡이가 달려있는 중간사이즈의 식칼이었다.
“너무 작은 건 힘을 넣기가 애매하고 너무 큰 건 섬세함이 부족해져서 딱 한 자루. 라고 한다면 이런 사이즈의 칼이 제일 적당할 거예요.”
그렇게 말하면서 그녀는 옆에 있는 소쿠리에서 무 하나를 들고 나에게 다가왔다.
흙을 간단하게 씻겨내기는 했지만 아직 거뭇거뭇한 흙들이 껍질에 배어 있는 상태의 그런 무였다.
먼저 가벼운 손놀림으로 무를 반으로 잘라낸 마츠다씨는 잘린 한 토막을 나에게 건네주었다.
“이제부터 시범을 보여드릴게요.”
싱긋 웃으면서 그렇게 말하고는 무를 다양하게 자르면서 써는 법들을 나에게 보여주었다.
몇몇 개는 그래도 자취요리수준에서도 사용하는 것들이었지만 이렇게도 잘라? 싶은 것들이나 단면의 모양이 아름답게 나오는 절삭법들도 있었다.
“일단 기본적인 것부터 한번 해보세요.”
그녀의 지시에 따라 그녀가 절삭법 강좌 초반에 보여주었던 비교적 간단한 절삭법들을 흉내 내 보았다.
원래는 애진간한 베테랑 아주머니들의 모션정도는 따라할 수 있는 정도라고 자부했었는데 아까 마츠다씨의 칼질 솜씨를 보니까 나의 동작이 굉장히 어설프고 위험하다는 걸 한눈에 알 수 있었다.
그녀는 내 옆에서 내가 자르는 모습을 보다가 그 자리에서 바로바로 부족한 부분을 수정해주었다.
난이도가 점점 높은 절삭법에 도전하게 되면서 옆에서 가르쳐 주는 것으로는 좀 힘들게 되는 수준이 되었다.
머리로는 어떤 움직임인지 대강 이해를 하겠는데 손으로 직접 움직이기에는 굉장히 어설펐다.
마츠다씨는 그런 나의 모습에 ‘실례할게요.’ 라는 말을 하면서 나의 등 뒤로 돌아가서 양 팔을 벌려서 나의 몸통을 감았다.
아니, 감았다. 까지는 물론 아니지만 어쨌든 어설프게나마 그녀가 나를 등 뒤에서 끌어 앉는 모양새가 되었다.
마츠다씨는 떨리는 목소리로 직접 나의 손을 하나씩 잡고 절삭법의 시범을 보여주었다.
확실히 말로 배울 때보다 훨씬 이해가 잘 되었지만 내 손등을 타고 느껴지는 그녀의 부드러운 손바닥이나 등 뒤에서 전해지는 그녀의 달콤한 체향에 썩 집중인 안 되었다.
특히 가끔씩 나의 등에 닿을 랑 말랑하게 스치고 지나가는 그녀의 존재감 강한 가슴도 특히 나의 집중을 방해하는 데 한몫을 했다.
“어려우신가요?”
나를 말끄러미 쳐다보며 그렇게 물어오는 그녀의 얼굴을 보았을 때는 정말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심정이었다.
“아, 아뇨 거의 알 것 같아요.”
어떻게든 정신을 가다듬으면서 칼질에 집중했다.
어느 정도 반복하니까 슬슬 감이 올 것 같은 기분도 들었다.
내가 칼질에 조금 익숙해지자 마츠다씨는 다시 내 등 뒤에서 쓱 하고 떨어져 나갔다.
좀 아쉽기는 해도… 어쩔 수 없지.
“이 정도면 음…”
그녀는 내가 썬 무 조각들을 겹쳐지지 않게 펼친 다음에 하나하나 모양을 살펴보았다.
“꽤 익히는 게 빠르시네요! 기본 썰기는 당장 오늘 저녁에 써도 괜찮을 수준인데요?”
“그런가요?”
“네, 정말이에요. 이런 걸로는 거짓말 안한다니까요.”
싱글싱글 웃으면서 대답하는 마츠다씨.
확실히 요리에 있어서 거짓말을 할 것 같지는 않은 게… 좀 무섭다.
나중에 더 어려운 기술들을 배우게 될 때 이 천사 같은 얼굴을 가진 사람에게 얼마나 혼나게 될까.
요리에 있어서만큼은 무서울 만큼 집중도를 보이는 그녀이니 내가 잘 못하거나 하는 부분도 호락호락하게 넘어가 주지는 않을 것이다.
뭐, 그만큼 다양하고 깊게 배울 수야 있겠지만.
============================ 작품 후기 ============================
작품 도중에 등장하는 번호는 현재로썬 선택지라기보다는 분기에 가깝습니다.
일종의 게임북 형식으로 구상하고 있습니다.
연재분이 부족한 지금은 원 웨이 스토리로 보이지만 어느정도 연재분량이 모인 다음에는 읽는 분이 원하는 방향으로 선택할 수 있도록요.
그때에는 선택지라고 부를 수 있겠습니다만, 현재는 루트의 가능성을 표기하는 분기라고 부르는 편이 더 맞을 것 같습니다.
선호하는 방향에 대한 피드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일단 현재 진행부분을 끝낸 다음에 어느 부분을 써내려갈까를 고민할 때 좋은 참고자료가 될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