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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조리부의 신입
내가 그가 권하는 자리에 앉고 나자 아카기씨도 반대쪽 자리에 가서 앉았다.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붙잡아놓은 것일까 하고 약간의 의구심이 들었지만 그것은 금세 해결되었다.
“전에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미츠루가 공부하는 것을 봐주었다고?”
미츠루씨에 대한 이야기를 나에게 물어오는 것이었다.
“아, 네. 지난번에 관리부로 실습 파견을 나갔을 때, 잠깐 도와드린 적이 있습니다.”
“이야기 들었었네, 꽤 이해하기 쉽게 잘 가르쳐주었다고 딸이 그러더군.”
“아뇨, 그냥 따님이 영민한 덕택입니다.”
“하.”
내 말에 아카기씨는 우습다는 소리를 냈다.
“아, 미안. 왠지 내 딸이 어디서 똑똑하다는 소리를 들어본 적은 처음인 것 같아서 말이야. 그냥 조용하고 생각이 많은 아이다, 이런 소리만 많이 들었었지.”
옛날 일을 생각하는 듯 약간 아련한 눈빛을 짓다가 말을 이었다.
“아무튼 그것에 대해서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어서 잠깐 앉으라고 한 걸세.”
그의 나직한 목소리를 듣고 대답했다.
“아닙니다, 그냥 남는 시간에 잠깐 봐준 것 뿐 인데요.”
“남는 시간을 사용해서 도와줄 수 있다는 게 더 고마운 일 아니겠나? 딸이 원하는 바가 이루어지도록 조금만 더 도와주게.”
미즈가와한테도 부탁해봤지만 그녀가 설명하는 건 좀 이해하기 어렵다고 했다더군, 이렇게 덧붙였다.
하긴 전에 회계부에 파견 나갔을 때 느꼈던 점인데 미즈가와씨는 뭔가의 개념을 구축할 때 자신만의 방법으로 정리하는 경향이 있었다.
자기 혼자 뭔가를 할 때는 엄청 잘 하는데, 누군가를 가르치거나 하는 재능은 거의 없는 사람.
그런 말을 듣다가 약간의 의구심이 생겼다.
미츠루씨가 이야기하기로는 아카기씨가 늘 자신을 세이렌에 주저앉히기 위해서 여러 가지 수작을 부린다고 말하더니, 직접 만나서 이야기해보면 전혀 딴 판이 아닌가.
궁금하기는 했지만 차마 내 입으로는 말할 수가 없어서 궁금증을 속으로 꿍하고 삭히고 있는데 그 답을 곳 알려주었다.
“표정을 보니까, 미츠루가 어떻게 이야기하고 다니는지 알 것 같군, 뭐 처음엔 그냥 세이렌에 들어오라고 했던 게 진심은 맞았지.”
“그래도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이 있다고 저렇게 강하게 나오는 것은 난생 처음 보는 일이거든. 늘 시키는 대로하고 착하게만 살아와 주었었지. 그걸 늘 고맙게 여기다가, 이 나이쯤 되니까 오히려 불안한 면도 없잖아 있었었는데.”
그가 말하는 것이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래서 계속 싸고돌고 싶었던 것 같아. 밖으로 보내서 다양한 경험도 해보고 해야 하는데 오히려 그게 두려워서 말이지. 바보 같은 얘기긴 한데. 딸 둔 아빠마음이라는 것이 어떻게 마음대로 안 되더라고.”
아카기씨는 너털웃음을 지으면서 그렇게 말했다.
“그럼 사실대로 이야기하고 따님을 응원해주시는 것은…?”
문득 궁금함이 들어서 그렇게 물었다.
그녀가 자립심을 가진 모습이 보기 좋은 것이라면 굳이 세이렌에 남으라는 말을 하면서 툴툴대며 지낼 필요가 있을까?
“아니, 아니. 이것도 나름대로 재미있는 일이더라고. 20년을 순종적으로 얌전하게 살아온 딸이 저렇게 빽 하고 소리 지르는 모습도 보고 말이야. 이것도 아버지의 재미중 하나일까, 싶어서 놀리려다 보니까 이렇게 되어 버렸지.”
아, 이건 좀 알 것 같기도 하고 모를 것 같기도 하고 아리송하다.
“아무튼 그렇다는 얘기야. 아저씨가 악역을 하고 있을 때 열심히 가르쳐서 딸을 도와주라고, 필요하다면…”
‘업무시간에서 띵겨 먹어도 괜찮으니까…’라고 속삭이는 호탕한 아저씨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휴”
사장실 문을 나서면서 작게 한숨을 쉬었다.
미츠루씨의 이야기를 끝마친 다음에는 이것저것 단순한 화제들로 잠깐 이야기를 나누었다.
확실히 사람을 끌어당기는 매력이 있는 사람인지 잠깐 이야기를 나누었을 뿐인데 아까 가지고 있었던 부담감은 많이 사라져 있었다.
문제는 아저씨답게 확 다가와서 ‘그러고 보면 세이렌에 괜찮은 여성이 많지 않냐 던가, 어떤 여성이 취향인 것 같냐 던가.’ 썩 대답하기 힘든 질문들을 건네왔다.
물론 남자끼리인데 어떻냐, 하는 생각이 없는 것도 아니었지만 그렇게 남성의 정을 나누기에는 나이차이도, 신분의 차이도 존재하고 있었다는 게 문제다.
어떻게 갓 입사한 말단사원이 사장한테 직접 ‘직장에서 저 여성분이 괜찮지 말입니다, 혹시라도 기회가 된다면 사내연애라도 해볼까 싶지 말입니다.’이렇게 대답할 수가 있겠냐고.
아무튼 둘러대는 나에게 ‘남자 녀석이 쩨쩨하긴, 쳇.’하면서 진심으로 아쉬워하는 아카기씨를 겨우겨우 떼어놓고 사장실을 벗어났다.
복도로 나와서 시계를 보니 점심시간이 거의 다 되어있었다.
다른 부서는 슬슬 여유롭게 일을 마무리 짓고 점심을 먹으러 갈 준비를 할 시간이지만 조리부 기준으로 보자면 제일 바쁜 타임은 마지막 1시간을 앞에 두고 있는 그런 시간이다.
빨리 돌아가서 지금부터라도 업무를 뛰어야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발걸음을 빠르게 해서 다시 조리부건물로 돌아갔다.
건물 안에 있는 세면대에서 손을 깨끗하게 씻고 신말밑창도 소독한 다음에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조리2부는 세면장과 밖이 연결된 외문과 세면장과 안이 연결된 내문, 이렇게 2중문 구조로 되어있다.-
안으로 들어가 보니 역시 한창 바쁠 시간이라는 것이 바로 체감되었다.
무거운 식기나 정식이 차려진 상을 잔뜩 들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선배들의 모습이 보였다.
나도 대충 눈치를 보다가 인원이 부족해 보이는 부분에 투입 되서 같이 식기를 날랐다.
확실히 이런 면에서 유격부에서 실습파견을 보내는 것이 빛을 내는 것 같다.
바로 투입 되서 어버버버 하는 것 보다 대충이라도 일이 돌아가는 것을 눈으로 익혀 놓은 사람은 일단 바로 투입 되서 일손을 거들 수가 있으니까.
물론 그냥 처음부터 한 부서에 집어넣고 계속 그 계열의 업무를 시키는 것이 어떻게 보면 가장 효율이 좋은 일이겠지만 유격제도는 일단 다양한 부서의 업무를 맛보기로 라도 체험해본 다는 것이 도움이 된다.
정 인원이 부족해지면 조리부에서 관리부로 지원 나갈 수도 있고, 관리부에서 회계부로 지원을 올 수도 있는 것이니까.
식기를 나르고 찬을 나르면서 바쁘기 그지없는 한 시간을 보냈다.
손님 분들과 다른 직원들의 식사가 모두 끝나고 나서야 그때부터 다시 여유를 찾을 수 있었다. 늦은 점심식사도 이때가 되어서야 겨우 할 수 있었고.
아침 준비를 로테이션으로 진행하듯이 점심식사 시간도 로테이션으로 진행된다.
오늘 같은 경우는 조식준비를 조리1부에서 했기 때문에, 점심시간에 조리1부는 준비까지만 하고 제 시간에 점심을 먹는다, 나머지 업무는 조리2부에서 맡고.
그리고 반대로 조식준비를 조리2부에서 맡은 날은 조리1부가 점심을 늦게 먹는 식이라고.
물론 딱딱 그렇게 하는 게 아니라 정 바쁘고 인원이 부족한 날은 조식 준비를 했던 곳에서 직원식당의 식사에 관해서까지 일임하기도 한다고 들었다.
일단 제일 급한 것은 손님 분들의 식사이니깐.
수고하셨습니다, 라는 말을 서로서로 주고받고는 모두 함께 직원식당으로 향했다.
이때 내가 조리2부로 배속된 것을 알 게 된 선배들이 잘 왔다고 내 어깨나 등을 툭툭 치면서 인사를 해왔다.
암기식으로 이름과 얼굴만 외웠을 뿐 말은 나눠 본 적은 없는 사람들이었지만, 아까 짧게나마 바쁜 시간을 함께 보내면서 조금은 더 가까워진 느낌이 들었다.
서먹서먹한 분위기가 아니라 친근하게 웃는 얼굴로 선배들이 다가와주어서 그런 느낌이 더 강해지는 것도 있었고 말이다.
다 같이 식당으로 향하는 길에 나를 발견한 마츠다씨가 내 곁으로 다가오면서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