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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조리부의 신입
사카라기씨와 헤어져서 계단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토리에씨의 업무실이 있는 3층으로 가기 위해 계단을 올라갔다.
본관은 세이렌부지의 정면에 위치하는 아담한 건물이다.
물론 세이렌 내부에 있는 건물 중에선 가장 거대한 건물이지만, 대체로 단층 혹은 커봐야 2층짜리 건물이 주류를 이루는 세이렌이지만 본관만큼은 4층짜리 건물로 되어있다.
주로 단체투숙객, 수학여행이나 회사 야유회, 포상여행지 등으로 사용되는 본관은 현대화와 대형화의 추세에 맞춰 새롭게 지은 건물이다.
전통적인 여관의 느낌이 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본관의 경우 정확하게는 일반건물의 형식을 보이고 있다.
전통적인 느낌은 예전에 본체로 사용하던 지금의 별관이나 기타 건물이 주로 뽐내고 있고 본관은 편의성을 위해 내부 디자인과 레이아웃 등에서만 그런 느낌을 보이고 실제로는 콘크리트로 미장된 건물인 것이다.
뭐, 이만한 인원을 수용하기 위한 건물을 목재와 전통 기법에 의해 지으려고 한다면 그것에 소요되는 비용도 만만치 않을 것이기 때문에 당연하다는 생각도 들고, 본관의 느낌도 썩 나쁜 것은 아니다.
계단을 올라 3층에 도착했다.
좌우로 늘어선 문들을 지나 사장실이 있는 복도 끝 쪽으로 걸어갔다.
마츠다씨의 말에 따르면 업무시간 중에는 대체로 사장실에 토리에씨가 계시다고 했으니, 가면 바로 만나 뵐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그런 생각을 했다.
물론 걸어오면서 미리 연락을 드리는 게 낫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지 않는 것도 아니었지만 이미 너무 가까이 와버려서 연락을 드리기엔 좀 늦은 모양새다.
복도 끝에 있는 사장실 앞에 도착했다.
큼큼하고 작게 목을 가다듬고는 손을 들어서 노크를 하려고 했다.
그런데 그 순간 문이 벌컥 하고 열리면서 안에서 검은색 무언가가 휙 하고 튀어나왔다.
뭔가 커다란 소리를 지르면서 튀어나오던 그 물체는 나와 부딪히고 나서 ‘꺄악’하는 귀여운 비명소리를 질렀다.
꽤 빠르게 부딪히면서 통증도 조금 있었지만 그보다는 물컹보다는 조금 약한 느낌이지만 꽤 부드러운 물체와 부딪히는 기분이었다.
이 부드러운 물체가 뭔가 하고 자세하게 살펴보니 토리에 미츠루씨였다.
나와 부딪히는 충격으로 뒤로 넘어지려고 하는 그녀를 양팔을 뻗어서 붙잡았다.
왠지 꽉 끌어안는 모양새였지만 넘어지는 것보다는 나리라.
끌어안은 그녀의 몸에서 여성 특유의 달콤한 체향이 살랑하고 코를 간질였다.
조그마한 몸으로도 나올 곳은 나오고 들어갈 곳은 들어갔으면서 또 말랑말랑하게 자극하는 촉감이었다.
그렇게 얼마정도 그녀의 몸을 끌어안고 즐기고 있었을까.
물론 그렇게 오랜 시간이 지난 것은 아니었지만.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인 미츠루씨가 내 귀에 속삭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으… 토베씨?”
그녀의 목소리에 정신이 들어서 바로 그녀를 똑바로 세워주고 손을 바로 떼버렸다.
고개를 푹 숙이고 얼굴이 사과처럼 새빨갛게 물들은 미츠루씨가 ‘아우, 아우’이렇게 작은 신음성을 내면서 어쩔 줄을 몰라 하는 모습이 보였다.
하긴 뜬금없이 뛰어나오다가 남자에게 안겨있었으니, 그럴 만도 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외모만 보고 판단하기엔 좀 무리가 있기는 하겠지만 느낌이나 풍기는 분위기가 완전히 온실속에서 자란 아가씨 같은 느낌이니까.
“뭐야, 당장 뛰쳐나갈 것 같이 굴드만, 여기서 이렇게 노닥거리고 있는 거야?”
그런 와중에 그녀의 뒤쪽, 그러니까 사장실 안쪽에서 놀리는 듯한 남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들어서 사장실 안쪽을 바라보니 토리에 아카기씨의 모습이 보였다.
방금까지 얼굴을 붉히고 있던 미츠루씨는 고개를 돌려서 아카기씨에게 빽 하고 소리를 지르고는 계단쪽으로 뛰어갔다.
그리고 돌아서는 잠깐 사이에 나에게 입모양으로 ‘죄송해요.’이런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
무슨 일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부녀간에 다툼이 좀 있었던 모양이다.
아무튼 들어는 가야 하기에 머리를 살짝 긁적이고 안에 있는 아카기씨에게 물어보았다.
“잠시, 실례해도 괜찮을까요?”
내 질문에 아카기씨는 흔쾌히 그러라고 대답했다.
조용하게 문을 닫으면서 사장실로 들어갔다.
무슨 일로 왔느냐는 그의 질문에 부서이동 신청서의 결재를 받으러 왔다고 대답하면서 서류를 꺼내들었다.
“아, 실은 연락을 받았었어요. 벌써 올 줄은 몰랐지만요.”
그렇게 말하면서 자신 쪽으로 오라는 이야기를 했다.
서류를 가지고 그가 앉아있는 의자 쪽으로 다가갔다.
아카기씨의 인상은 말 그대로 호쾌한 호상이다.
예의바르고 친절한 전형적인 여관 영업주의 모습과 호쾌한 동네 형의 모습을 고루 갖춘 아저씨.
꼼꼼한 일처리와 적당하게 시대를 타는 눈을 가져서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중소여관이었던 세이렌을 여기까지 성장시킨 역군이기도 하다.
내가 건넨 서류를 받은 그는 이리저리 훑어보면서 옆에 있는 펜 꽂이에서 펜을 뽑아들었다.
“음, 결국 조리부로 가기로 경정했네요. 여기저기서 데려가려고 신경전을 펴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었는데. 결국 마토가 성공했나 보네요.”
나는 잘 몰랐지만 나를 둘러쌓고 어느 정도 그런 일이 있기는 있었던 모양이다.
역시 전혀 모르는 일이었지만.
아카기씨는 마지막 란에 위치한 결재권자 자리에 자신의 이름과 서명을 했다.
그러고 나서 옆에 있는 서류 홀더를 펴서 깔끔하게 지원서를 수납했다.
“자, 이걸로 끝.”
그렇게 이야기하면서 껄껄 웃는 아카기씨.
“별다른 용무가 없으시면 그럼 이만…”
딱히 남은 용무도 없고 하니 재빠르게 자리를 뜨려고 하는데 그런 나를 아카기씨가 붙잡았다.
“딱히 할 거 없으시면 이야기나 좀 하다 가죠, 토베씨. 어차피 점심시간도 얼마 안 남은 시간인데.”
그리고 옆에 있는 테이블로 나를 이끌었다.
아, 이건 꽤 불편하다.
일개 고용인인 나만 그렇게 느끼는지 아니면 어느 정도 그런 아우라를 가지고 있는 건지 세이렌의 최종 결재권자인 아카기씨는 뭔가 불편한 느낌이 들게 하는 분위기를 풍겼다.
이 불편하다는 게 불쾌하다거나 하는 그런 종류가 아니라 뭐랄까, 육식동물 옆에 있는 초식동물의 기분이 들게 하는 그런 종류의? 그냥 간단하게 말하면 갑자기 교장선생님과 면담하게 된 중학생의 느낌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