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4화 (34/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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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물밑작업

마츠다씨에게 손가락으로 가리켜진 소치씨는 그대로 기세를 잃었다.

“빨리 토베씨에게 사과하세요. 아침부터 무슨 민폐인가요.”

다시 나긋나긋한 표정으로 돌아와서 소치씨에게 훈계하는 마츠다씨.

소치씨는 어미에게 버림받은 새끼고양이의 표정으로 나에게 사과했다.

“죄, 죄송해요.”

난 괜찮다고 이야기 하면서 웃으며 대답했다.

시계를 보니까 네 시 반이였다.

내가 평소에 일어나는 시간보다 한 시간이나 이른 시간.

생각해보니 그럴만 한게 조리부는 기본적으로 아침이 빠르다.

아침식사를 준비해야 하기 때문에 다른 부서보다 못해도 30분은 일찍 준비를 해야 한다.

아침당번인 부서는 더욱 그렇고 -직원 조식은 두 개의 조리부가 번갈아가면서 맡는다고- 말이다. 그리고 아무래도 둘 다 여자이다 보니 나보다 씻고 준비하는 데에 더 시간이 걸릴 것이다.

소치씨와 마츠다씨는 어제 먹은 접시와 빈병들을 챙겨서 자신들의 방으로 돌아갔다.

내가 빈병들은 내가 버리겠다고 했지만 집주인에게 그렇게 까지 민폐를 끼칠 수는 없다는 마츠다씨의 말과 그녀를 신봉하는 소치씨의 지원으로 마지못해 그러기로 정해버렸다.

그녀들이 떠나가자 방안이 훵한 기분이 들었다.

아직 그렇게 많은 시간을 자지 못해서 그런지 한 시간이나마 더 잘 수 있다는 것이 굉장히 크게 느껴졌다.

빨리 자야겠다.

그렇게 생각하고는 땅바닥에 늘어져있는 이불 -원래 내가 침대 위에서 사용하던 이불이다. 쓰던 이불을 빌려주기는 뭐해서 새 이불을 침대위에 올려주었다.- 을 침대위에 던지고 나도 함께 침대위로 비집고 들어갔다.

아, 다시 잘 수 있다는 게 이렇게 행복할 줄이야.

막 자려는데 베개와 이불에서 소치씨와 마츠다씨의 냄새가 나는 것이 느껴졌다.

향기라고 까지는 표현하지 못하겠지만 냄새는 좀 심한가.

체취? 아무튼 그녀들의 잔향이 침구류에 남아있었다.

그렇게 미녀 둘에게 둘러싸인 것 같은 이상한 기분을 느끼면서 잠에 들었다.

알람이 울리기 시작했다.

겨우 엉금엉금 일어나서 알람을 해제했다.

준비할 것이 있어 30분만 잤는데 그것이 오히려 독이 되었는지, 아까에 비해서 지독한 피로감이 느껴졌다.

아까는 놀라면서 확 잠에서 깼었는데 이번에는 자력으로 깨야하니까 더 힘든 것 같기도 했다.

아무튼 몸을 일으켜 세우고 샤워장으로 향했다.

요즘 어제같이 이런 저런 이유로 늦게 자는 일이 잦았는데, 이제는 좀 자제를 해야겠다.

아침마다 이렇게 일어나는 것이 힘드니….

몸가짐을 단정하게 하고나서 방을 나섰다.

오늘이야말로 나의 제대로 된 부서를 정할 날이다.

어젯밤에 결정한대로 나는 조리부에 지원할 생각이다.

마츠다씨와 소치씨가 있는….

흑심이 전혀 없다고는 이야기하지 못하겠지만 조리부에서 하는 일 자체에도 흥미가 생겼다.

견습 과정에서 다른 부서들을 돌면서 제일 크게 관심을 가지게 된 것도 역시 요리분야였고.

지금까지 자취생요리 외에는 해본 적이 없는 생 초짜지만 그래도 마코토와의 식도락여행으로 어느 정도 맛에 대한 기준은 가지고 있고, 또 자취생치고는 나름대로 밥을 직접 해먹었던 부류다.

전문적인 기술을 빠르게 습득하지는 못하겠지만, 조리보조 정도는 제대로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작은 자신감도 결정을 내리는데 한 몫을 했다.

그래, 조리부다.

제 시간 보다 조금 이른 시간에 유격부에 도착했다.

아직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그다지 많은 사람들이 유격부 안에 있지는 않았다.

많이들 아침을 먹을 시간이기는 하다.

너무 일찍 오지 않았나 하고 약간 걱정이 들었다.

하지만 다행히 마츠모토씨가 부장실 안에 있는 모습을 확인했다.

나중에 들어보니 조식은 사모님이 직접 챙겨주셔서 일찌감치 먹고 출근을 하신다고.

아무튼 다행인 일이다. 

문이 열려있기는 했지만 옆에 있는 문턱에 대고 노크를 몇 번 했다.

내가 노크를 하자 문 쪽을 바라본 마츠모토씨는 나에게 ‘무슨 짓을 하는 거야, 멍청아. 들어올 거면 빨리 들어오든가.’ 하는 눈빛을 보냈고 쓱 안으로 들어갔다.

대충 앉으라는 턱짓에 어제 앉았던 자리에 조용하게 앉았다.

마츠모토씨는 사무테이블의 의자에 앉아 있다가 회의용 테이블 쪽으로 나오면서 나에게 물었다.

“커피 마시냐?”

“아뇨, 괜찮습니다.”

내 질문에 그는 약간 인상을 찌푸리면서 다시 물었다.

“단거 안 단거.”

“안 단걸로 먹겠습니다.”

“그래, 너무 사양하는 것도 예의가 아니지.”

그리고 부장실 밖에 있는 탕비실 쪽에서 휙휙 하고 금방 커피 두 잔을 끓여오는 그의 모습이 보였다.

이상할 정도로 빠른 속도에 약간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내 얼굴에 그 생각이 묻어났는지 마츠모토씨가 입을 열어 설명했다.

“원래는 마사유키 녀석이 부탁한 건데, 내가 그 녀석 커피 끓여줄 짬밥인가. 준비해놓고 보니까 괘씸하더라고. 그냥 너 마셔.”

흠, 그렇게 된 것이 구만.

대선배의 커피를 뺏어먹게 된 것에 입맛이 썼다.

무슨 일로 왔느냐고 물어보는 마츠모토씨에게 조리부로 가고 싶다는 의사를 전했다.

“하아, 아쉽구만.”

그의 뜬금없는 말에 내가 멍하니 가만히 있자, 그걸 보던 그가 말을 이었다.

“마사유키가 꽤 괜찮게 보고 있는 꼬맹이가 너였단 말이지, 조리부로 간다고 하면 꽤 배 아파  할 거야. 나야 금방 자리를 비워줄 노인네지만 그 녀석은 앞으로 못해도 10년은 더 이 팀을 꾸려가야 할 테니까.”

그리고 뜨거운 커피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그래도 하고 싶은 일로, 가고 싶은 곳으로 가는 것이 이치에 맞는 일이지.”

이렇게 말하면서 지난번에 슌베이씨가 면담을 할 때 보고 있던 서류철을 꺼내서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 장의 서류를 꺼내들고는 펜으로 찍찍 무언가를 적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 적고 나서 종이를 돌려서 내쪽으로 향하게 하면서 나에게 펜을 쥐어줬다.

“자, 부서이동 신청서. 거기 발 자 옆에 조리부라고 적고 밑에 서명하면 돼.”

그가 시키는 데 로 서류를 작성했다. 몇 번 정도의 서명을 하고 나면 서류에서 내가 적을 부분은 모두 끝이 났다.

다시 서류를 마츠모토 씨에게 돌려주었다.

그는 서류 하단부에 있는 3인의 서명 부분 맨 위에 있는 인계처장 부분에 유격부장 마츠모토 고로라고 적고 서명과 가져온 유격부장의 도장을 찍었다.

“이걸 노리코한테 가져가서 인수처장 서명을 받고 아카기씨한테 가져가면 서류제출 끝이야, 일단 노리코한테 서명을 받는 순간부터 효력은 발생하는 거니까 오전 업무는 거기에서 보고 점심시간에 찾아가는 게 좋을 테지.”

그렇게 서명을 하면서 나에게 서류 처리과정에 대해서 설명을 해주었다.  

노리코씨, 마토 노리코씨는 조리1부의 부장이다. 조리2부도 독립적인 부서이기는 하지만 실상 조리1부에 속하는 것으로 치기 때문에 서류관련 업무는 조리1부의 부장인 마토씨가 총괄적으로 맡아서 처리하고 있다고 들었다.

“그동안 신게 많이 졌습니다.”

신청서를 받아들면서 고개를 푹 숙이며 마츠모토씨에게 인사를 전했다.

아직 배우고 싶은 점이 많이 있는 사람인데 이렇게 헤어지는 것도 아쉽긴 하다.

마츠모토씨는 알았다고 하면서 앞으로 어떻게 일을 해나가고 살아갈지에 대해서 몇 가지 충고를 해주었다.

보통 늙은이, 꼰대의 잔소리라고 하면서 쉽게 넘겨 버리기 쉬운 상황이지만 그의 말을 잘 새겨들어 두었다.

충분히 그럴 자격이 있는 사람이다, 라는 생각으로.

그리고 마지막으로 인사를 건네고 부장실을 나서려는데 뒤에서 마츠모토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사유키한테도 제대로 인사를 해둬. 일단 인사계열에 있어서는 나보다 그 녀석이 더 전임이고 그리고… 정말로 기대를 많이 하고 있기는 했으니까.”

알았다고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 유격부를 벗어났다.

이젠, 유격부를 떠나서 조리부의 정식 일원으로서 일을 시작하는 날이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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