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2화 (32/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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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물밑작업

         

나는 지금 감옥에 있다.

강간 및 폭행혐의로 기소되어, 재판을 받고 15년 형을 선고 받았다.  

         

부모님은 직장에서 쫓겨나고, 평생을 살아온 동네에서도 쫓겨나듯이 시골로 이사했다.

친구, 친척 모든 사람과 인연을 끊게 되었다고.

         

마코토는 딱 한번 나를 면회 왔었다.

너 같은 쓰레기는 친구도 아니라고, 그게 그 녀석을 본 마지막이다.

         

그런 짓은 하지 말아야 했는데, 난 그 사실을 몰랐어.

이제 와서 후회한들 뭐하리. 나는 강간범이, 되버린걸.

         

내가 제일 후회하는 것은 나의 인생에 대한 것이 아니다.

내가 소치씨의, 그 빛나는 미래로 이어질 수 있었던 모든 가능성을 부숴버렸다는 것이 제일 후회되는 일이다.

그런 주제에 나는 이렇게 멀쩡하게 살아있다.

이것이 제일 견딜 수 없는 일이다.

         

어떻게든 소치씨가 잘 살아가는지 알아보려 했지만 강간범인 내가 피해자인 그녀에 대해서 알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이렇게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감옥에 잡혀온 사람 중에 제일 병신이 강간미수라지만, 차라리 강간이 아니라 강간미수로 나의 더러운 욕망이 그저 미수로 끝났었다면.

소치씨는 덜 상처입지 않았을까?

아니 이것도 다 나의 욕심과 더러움의 결과다.

         

나는 이렇게 차가운 시멘트바닥에서 얇은 모포 한 장에 의존해 벌벌 떨다가 지쳐서 잠드는, 그런 인생이다.

         

그게 내가 앞으로 살아가야 하고 갚아나가야 할 죄의 대가이다.

물론 내가 이렇게 살아간다고 해서 바뀌는 것은 없다.

나의 죄는 사라지지 않는다. 결코 씻겨 지지 않는다.

         

         

......

         

“아저씨 여기요!”

“감사합니다.”

         

밥이 가득 담긴 낡은 식판을 들고 대충 벽돌무더기 위에 내려앉았다.

그늘 밑에 있음에도 내리쬐는 태양이 뜨겁다.

목에 둘러맨 수건으로 얼굴에 묻은 땀을 툭툭 닦아내고 수저를 들었다.

반찬과 밥을 큼직하게 퍼서 대충 목구멍으로 넘긴다.

맛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함바집의 밥답게 그냥 그런 정도의 맛.

어느 정도 식사를 하고 있을 때, 방금 식사를 퍼준 아가씨가 쪼르르 근처에 다가왔다.

“아저씨, 먹을 만해요?”

갈색으로 염색한 머리에 활발한 인상의 아가씨.

그녀는 도시의 취업난에 질려 촌으로 돌아와 근처 함바집에서 생활비를 마련하고 있다고. 

그녀는 이 지역 특유의 사투리가 없는 말투에 혹해서 나에게 물어봤다가 도시출신인 것을 알고 종종 이렇게 말동무나 해달라고 다가오곤 한다.

“그럭저럭”

“하하, 다행이네요. 아저씨 입맛이 제일 까다로운데…”

그렇게 말하며 말꼬리를 흐리는 그녀다.

“그래, 처음에 비하면 많이 늘었어.”

그렇게 말하곤 다시 수저를 들어서 밥덩이를 씹어 삼켰다.

밥을 다 삼키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살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그렇다고 당장에 죽고 싶은 마음도 없으니까.

먹고 살려면 다시 찜통 같은 더위 속에서 땀을 흘릴 수밖에.

......

벽지에 군데군데 곰팡이자국이 있는 좁은 방 한 칸.

현재 나에게 남은 전부이다.

창문에서 달빛이 비춰 들어온다.

그리고 달빛은 나를 쓸쓸히 끌어안는다.

문득 눈에서 눈물 한 방울이 흘러내려서 볼과 베개를 적셨다.

나의 인생에서 남은 것은 단 하나도 없다.

가족도, 친구도, 동료도.

나의 현재 이 생은 아무런 가치도 남아 있지 않은 것이다.

정말로, 진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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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러하다.

2. 그러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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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그러하다.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천장의 텍스를 툭하고 주먹으로 쳐올렸다.

손에 잡은 줄이 이상하게 차갑다.

전혀 차가울 일이 없는 존재인 것을.

발을 차올리기 직전의 마지막 순간.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만약 그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다시 그날 밤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하지만 이런 상상은 말 그대로 부질없는, 상상에 불과한 것이다.

죄는 결코 숨길 수도 없고, 지울 수도 없다.

발을 차올린다.

힘들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진정한 ‘죽을 것 같다.’는 기분을 느낀다.

더러운 창틈사이로 싸늘한 달빛이 들어와 굴러다니는 탁상시계를 밝게 비추는 것이 보인다.

머릿속에서 문득 함바집 아가씨의 얼굴이 스쳐지나간다.

아주 잠깐.

그리곤 어렸을 때부터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초등학교에서 친구와 싸웠던 일.

중학생 때 처음으로 여자친구를 사귀었던 일.

고등학교 입시의 기억.

대학교, 마코토, 세이렌…

실은 이렇게 죽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다.

그저 더 이상 소중한 사람과 함께 할 수 없고, 그런 일상에 지긋지긋해 견딜 수가 없을 뿐이다.

하지만… 만약에, 만약에 그런 기회가 있다면…

------나는…

1. 조리부로 가고 싶었다.

2. 유격부로 가고 싶었다.

3. 관리부로 가고 싶었다.

4. 회계부로 가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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