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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물밑작업
“마츠다씨 이제 그만 마시시는 게 좋을 것 같은데.”
내가 마츠다씨에게 이야기했다.
“아… 음. 그런가요?”
마츠다씨가 내 말에 몽롱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네, 그러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소치씨도 내 말에 힘을 보탰다.
“그럼…”
마츠다씨는 주변을 둘러보면서 말했다.
“그럼…?”
“전 책이나 보고 있을게요!”
내 물음에 마츠다씨는 술 취한 사람 특유의 신난 목소리로 방방 뛰어서 침대로 뛰어올라갔다.
몸을 꼬물거리면서 이불안으로 기어들어가서 이불을 덮었다.
그러고는 가슴팍에 내 베개를 받치고 아까 내가 던져두었던 미스터리 소설책을 펴서 읽기 시작했다.
풍만한 가슴이 베개에게 꽉 눌리면서 꽤… 큼.
늘 내가 베고 자는 베개지만 베개에게 부러운 느낌도 좀 들었다.
그렇게 마츠다씨는 내 침대에서 책을 읽고, 아직 술이 덜 취한 나와 소치씨 둘이서 대작을 하게 되었다. 소치씨는 별로 술을 더 마실 생각이 없어 보였지만 마츠다씨가 침대위에서 뒹굴 거리고 있기 때문인지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한잔 두잔 맥주를 들이켰다.
침대 쪽에선 종종 마츠다씨가 콧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엎드린 자세로 한쪽 다리를 접었다가 또 내리고 반대쪽 다리를 접었다가 해서 자꾸 눈길이 갔다.
매일 봐오던 마츠다씨와 매일 봐오던 내 침대의 조합인데 은근하게 신경이 쓰였다.
음, 그 마츠다씨가 매일 봐오던 내 침대에서 뒹굴거리고 있다는 것이 큰 것 같다.
“음, 이것도 굉장히 맛있는 것 같아요. 아예 안주로 상정하고 만들어져서 그런지 술하고 먹었을 때 궁합이 상당한 것 같아요.”
내가 요리얘기를 꺼내자 마츠다씨 쪽으로 살짝 빠져있던 소치씨가 엉덩이를 당기면서 테이블 쪽으로 살짝 다가왔다.
“그래요? 급하게 한다고 기름기를 생각했던 것보다 덜 빼긴 했는데. 제가 생각했던 건 좀 더 담백한 느낌이었거든요.”
“아, 정말요? 전 이 약간 기름진 느낌이 더 마음에 들었었는데.”
“네? 그래도 좀 기름진 느낌은 별로지 않나요?”
내 말에 소치씨가 한쪽 눈을 약간 찌푸리면서 말했다.
한쪽 눈만 약간 찌푸릴 수 있다는 게 약간 대단했다.
기름진 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금세 다른 요리에 대한 이야기로 화두가 넘어갔다.
대충 나는 양념이 잘 된 요리를 선호하고, 마츠다씨는 재료 본연의 맛을 중시한다.
나는 메인 반찬이라면 고기가 절반은 차지하는 요리여야 한다고 이야기 할 때 소치씨는 메인 이든 뭐든 못해도 절반은 야채가 들어가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말을 나누어보니 서로의 음식관이 완전히 다른 것을 알 수 있었다.
서로 그런 주제로 티격태격 하다보니까 목이 탔는지 소치 씨도 맥주를 벌컥벌컥 들이켰고 금세 술이 바닥났다.
소치씨도 얼굴이 벌게져있고 앙다문 입술에 조금 더 힘이 들어간 것처럼 보였다.
뭔가 분하다는 듯한 눈초리인데 그것도 꽤 귀여원 보였다.
“아무튼 토베씨랑 저는 정말 다르네요.”
소치씨가 끝내려는 듯 이렇게 이야기했다.
“그러게요. 정말이에요.”
그렇게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면서 음주 요리토론이 끝나게 되었다.
“아 생각 외로 너무 많이 마셨네요.”
이렇게 말한 소치씨가 침대 쪽을 돌아보았다.
때마침 나도 이제 마츠다씨에게 돌아가라는 이야기를 하려고 침대 쪽을 돌아보았는데…
마츠다씨가 내 베개에 얼굴을 묻고 자고 있는 것이 보였다.
소치씨와 격렬한 논쟁을 벌이지 않았다면 마츠다씨가 졸려하는 기색일 때 깨워서 방으로 돌려보낼 수 있었으련만…
“마츠다씨?”
소치씨가 침대위에 누워있는 마츠다씨의 머리맡에 가서 조그만 목소리로 마츠다씨를 불렀다.
하지만 마츠다씨는 전혀 소치씨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는 모습이었고 소치씨는 더 큰 목소리로 그녀를 부르거나 작게 흔들거나 이내 좀 강하게 흔들기까지 하였다.
하지만 마츠다씨는 전혀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고 작게 인상을 쓰고는 이불을 머리끝가지 올려 버렸다. 그리곤 낮잠자는 고양이처럼 둥그렇게 몸을 말아버렸다.
아마… 깨우긴 힘들 것으로 보인다.
“어떻게 하죠?”
내가 소치씨에게 물었다.
그녀는 약간 당황한 표정을 지으면서 나에게 대답했다.
“음, 마츠다씨는 여기서 재워야할 것 같은데요?”
일단 서로 알고 있는 상황을 재확인했다.
하지만 문제는 그것이 아니라 마츠다씨가 내 침대에서 잔다고 가정했을 때, 그 다음의 일들에 대한 정리가 필요한 것이다.
내가 마츠다씨와 한 침대에서 한 이불을 덮고 자는 것을 보고 소치씨가 “그럼 안녕히 주무세요, 밤이 많이 늦었네요. 빨리 주무셔야겠어요.”하면서 자신의 방으로 돌아갈 리가 없지 않은가.
마찬가지로 내가 굳이 저 침대에서 자지 않더라도 소치씨가 나와 마츠다씨를 이 방에 둘이만 남겨 놓고 떠날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소치씨도 자연스럽게 그 상황을 인지하고 있는지 귀여운 눈썹에 조그마한 쌍심지를 켜면서 음, 하는 신음성을 냈다.
그러면 남은 선택안은 셋이서 이 방에서 함께 잠을 자거나 아니면 내가 방을 비워주는 것이 남는다.
물론 소치씨가 생각했을 때 가장 좋은 것은 내가 방을 비워주는 것이겠지만 방을 비워준 방 주인이 갈 곳이 없는 것 또한 문제이리라.
현재 시간은 한시가 좀 넘은 상황.
아침이 빠른 세이렌이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미 잠을 자고 있으리라.
지금 남자동료의 방문을 두드리고 들어가서 재워달라고 부탁하는 것만큼의 민폐도 또 없으리라.
또 남자 동료 중에 동기가 없기 때문에 그 선택지에 들어오는 것이 무조건 선배들일 것이라는 것 또한 거슬리는 점이다.
“어쩔 수 없겠네요.”
결국 결정을 내렸는지, 소치씨가 이렇게 이야기했다.
고개를 돌려서 나와 눈을 맞추고는 말을 이었다.
“토베씨, 오늘 하루만 신세져도 괜찮을까요?”
“네, 그러셔야 할 것 같네요.”
먹은 술병과 음식접시들을 치우고 테이블도 한쪽 벽으로 밀어두었다.
방바닥에 내가 집에서 혹시나 해서 가져왔던 이불을 깔고 그때 함께 가져온 베개도 소치씨에게 건넸다.
소치씨는 사양하려고 했지만 그녀에게 강제로 쥐어주었다.
마츠다씨와 소치씨는 나의 침대에서 그리고 나는 땅바닥에서 베개도 없이 쓸쓸히 잠을 청하게 되었다.
소치씨의 숨소리도 어느새 점차 고르게 바뀌었다, 좀 과하게 마신 모양새이더니 벌써 잠든 모양새다.
하아, 나도 생각보다 좀 더 마시긴 했다.
끽해야 맥주 두 병 정도를 나눠 마시나 싶었더니 안주가 리필 되면서 술 역시 상당히 들이키고 말았다.
뭐, 안주가 맛있다보니까 술도 술술 들어가서 즐겁긴 했지만.
마츠다씨나 소치씨랑 노는 것도 즐거웠고.
팔을 베개 삼아 머리 뒤쪽에서 포개어 벴다.
나도 슬슬 잠이 드는 것 같은데…
잠이 들기 전에 마지막으로 한 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아… 어느 부서로 갈지 정해야 하는구나.
빨리 정해야 할 텐데….
졸린 마음에 빨리 선택해야지 어쩌지 하다 보니 의외로 바로 결정하게 되었다.
나는------
1. 조리부로 가야겠다.
2. 유격부로 가야겠다.
3. 관리부로 가야겠다.
4. 회계부로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