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5화 (25/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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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물밑작업

역시 점심시간엔 아침시간 -치고는 좀 늦은 시간이었지만- 보다 훨씬 사람이 붐볐다. 하긴 특이한 경우를 제외하고, 세이렌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이 모두 점심을 먹는 곳이니깐.

많은 게 당연한 일이기는 하다.

                        

아까처럼 식판에 적당량에 식사를 담아서 비어있는 자리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침식사 시간처럼 아예 비어있는 테이블은 없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과 합석을 해야 했다.

                        

“우에모토씨, 이쪽에 앉아서 식사해도 될까요?”

“물론이죠.”

허락을 구하고는 자리를 잡고 앉았다.

                        

뒤이어 사카라기씨도 자신의 식판을 가지고 와서 나의 앞자리에 앉았다.

아까 있었던 센다씨의 일을 걱정하는 지 그녀의 표정이 약간 어두웠다.

뭐라고 이야기라도 해주고 싶었지만 다른 사람들이 다 곁에 있는 관계로 이야기를 꺼내기가 힘들었다.

                        

그러는 사이에 그녀도 금세 기분을 차렸는지 아까보단 밝아진 표정으로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하긴 지금 어두운 표정을 짓고 있어봐야 마음만 더 불편해지고 괜히 다른 사람들의 눈길이나 더 끌 뿐이니까.

                        

밝고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 좋은 것이다.

                        

밥을 먹으면서 소소하게 이야기를 나누다가 앞으로 어떤 부서로 가게 될지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다.

시작은 내가 사카라기씨에게 혹시 어디로 갈 건지 정했냐고 물어보면서였다.

                    

동기인 네 명중에 미무라씨는 조리부로, 미즈가와씨는 회계부로 가는 것이 벌써 결정되었다.

현재 아직 유격부에서 일을 배우고 있는 것은 나와 사카라기씨 뿐.

그러다 보니 그녀가 어디로 부서를 옮기고자 하는지 궁금해졌다.

                        

“음, 저는 유격부에 남는 것이 제일 좋은 것 같아요.”

사카라기씨는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

                        

“마츠모토씨랑도 어느 정도 이야기를 해뒀고, 한 가지를 똑 부러지게 익히기보다는 여러 가지를 배우고 그걸로 다른 사람들을 도와주는 일이 하고 싶어졌거든요.”

사실은 마땅히 정착할 만한 곳이 없기도 하고요. 라고 덧붙이면서 장난스럽게 웃었다.

“토베씨는 어디로 갈 건지 생각한 곳이 있나요?”

그녀의 질문에 잠깐 생각을 한 다음에 입을 열었다.

“음, 저는 아직 잘 모르겠어요. 다 나름대로 보람찰 거 같기도 한데 딱 이거다 싶은 곳은 아직 못 정했네요.”

우유부단하게 보일 수 있겠지만 사실 아직 못 정했지 않은가. 어젯밤에 정해야지, 하면서 그냥 자버렸으니까.

                        

“그렇죠, 이건 신중하게 고민해서 확실하게 결정하는 것이 제일 좋은 일이니까요.” 라면서 나의 우유부단한 면에 힘을 실어주는 사카라기씨.

                        

“그런데 토베씨.”

“네?”

                        

사카라기씨가 내 눈을 쳐다보다가 고개를 약간 들어서 머리카락을 보면서 입을 열었다.

“머리, 새로 하셨네요. 엄청 잘 어울려요.”

“고마워요, 아는 사람이 추천해준 미용실로 갔었는데 거기 미용사분이 정말 머리를 잘 잘라주시더라고요.”

                        

내 말에 사카라기씨는 초롱초롱하게 눈을 빛내면서 나에게 물어왔다.

“정말요? 저도 이제 머리를 다듬을 때가 됐는데 혹시 어디서 자르셨어요?”

눈을 빛내면서 묻는 그녀에게 ‘DR. HAIR’의 위치를 간략하게 설명해주었다.

다행히 그녀가 에벤스의 위치를 알고 있어서 꽤 설명하기가 쉬웠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전에 조리부에 파견 나갔다가, 재료를 살 일이 있어서 마츠다씨와 같이 시내로 나갔었는데 그때 목을 축이러 에벤스에 갔었다고.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에 밥을 다 먹고 일어났다.

식기를 정리하고 남은 점심시간을 어떻게 보낼까 고민하다가 매점에 가서 간단하게 목이라도 축이기로 결정했다.  

매점에 도착해서 그녀는 탄산음료, 나는 오렌지 주스를 골랐다.

계산을 치루고 나서 차양아래에 있는 의자에 자리를 잡았다.

따스하게 햇볕이 내려쬐는 가운데 그늘 안에 숨어서 시원한 음료를 마시니 속까지 후련해지는 기분이었다.

저 앞쪽에 있는 분수 옆에서 뛰어노는 아이도 보이고 그 아이와 같이 장난을 치는 엄마로 보이는 사람도 보였다.

깔깔거리면서 아이는 도망가고 그 아이를 잡으러 뛰어가는 여성도 마찬가지로 밝게 웃고 있었다.

정말로 마음이 편안해지는 평화로운 장면이다, 싶었다.

“보기 좋아요?”

사카라기씨도 그 모자를 보고 있었는지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그러네요. 날씨도 딱 좋고.”

내말에 사카라기씨는 배시시하고 웃었다.

그녀는 아까 말 한대로 약간 머리가 덥수룩해져서 전보다 정리가 제대로 안 되는 느낌이다.

그러다 보니 평소보다 더 야성미가 강해져서 정말로 검은색 암 표범 같은 느낌이 되어 있었다.

피부는 전보다 더 하얘진 거 같긴 하지만. 

그녀는 다시 고개를 돌려서 모자 쪽을 약간 아련한 눈빛으로 바라보면서 나에게 물어왔다.

“토베씨는, 달리는 거 좋아하세요?”

“달리는 거요? 음, 보통보다 조금 좋아하는 편일까요? 몸이 찌뿌듯하거나 할 때 종종 달리는 편이고 엄청 좋아한다, 뭐 그런 것 까지는 아니지만 좋아하는 편이에요.”

가벼운 운동이라면 꾸준히 해왔고 달릴 때, 특히 상당히 지쳐서 몸을 움직이기 힘들어졌을 때 다시 한 번 몸이 가벼워지는 그런 느낌이 좋았다. 엔도르핀이 뇌 속에서 풀리면서 느껴지게 되는 그런 편안함? 같은 것 말이다.

러너스하이에 들어가면서 쾌감 비슷한 것을 느낀다는 사람도 있었지만, 난 그 정도 까지는 아니었고 그저 상쾌하고 방금까지 힘들었던 것이 잊혀 지면서 ‘더 달리고 싶다.’ 이런 느낌이 들 곤 했다.

“그래요? 다행이네요…”

그렇게 말하면서 사카라기씨는 약간 말끝을 흐렸다.

“그러면 사카라기씨는… 달리는 것 좋아하세요?”

그녀에게 되물었다.

내 말에 그녀는 고개를 돌려서 내 눈을 마주치면서 대답했다.

“네, 엄청 좋아해요.”

말하는 그녀의 눈빛이 흔들리는 것이 느껴졌다.

미련, 회한, 안타까움. 그런 종류의 감정들이 그녀의 눈동자 안에 들어차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왠지 그걸 보고나자 쉽사리 말을 꺼낼 수 없는 분위기가 되어 버린 느낌이다.

그렇게 둘이 어느 정도 조용히 있었을까.

그녀는 입 꼬리를 조금씩 말아 올리면서 나에게 입을 열었다.

“그럼 다음에 같이 가볍게 조깅이라도 하러 가실래요? 이 근처를 달리면 꽤 기분이 좋아질 것 같은데.”

어느새 그녀의 눈에 차있던 우수들은 모두 사라지고 다시 밝고 장난스러운 고양이 과 동물의 눈으로 돌아왔다.

  

 싱긋 웃으면서 나를 바라보는 그녀에게 알았노라고 대답했다.

느긋하게 시간을 때우다가 슬슬 점심시간이 다 끝날 즈음이 되었다.

사카라기씨와 아까 선풍기 날개를 걸어두었던 야외 건조장으로 향했다.

볕도 강하고 아까 물기를 어느 정도 닦은 다음에 걸어놓아서 그런지 날개는 벌써 빠닥빠닥하게 말라있었다. 

사카리씨와 같이 걸려있는 날개를 다 회수하고 아까 선풍기를 세워놓았던 곳으로 이동했다.

그 때쯤 센다씨에게 연락이 왔는데, 센다씨의 아들 일을 알게 된 토리에씨가 센다씨를 강제로 조퇴시켜버렸다고.

그는 미안하고 다음에 이 일은 꼭 벌충하겠다고 말했다.

아드님의 용태를 물어봤더니 가벼운 식중독 증상이라고, 의사가 그렇게까지 심각한 것은 아니고 며칠간만 입원해서 휴식을 취하면 좋아질 것이라고 이야기했다고 한다.

다행이네요, 등의 이야기를 전하고 통화가 끝났다. 

알맹이가 없이 껍데기만이 널려있는 선풍기들에게 다시 날개와 앞부분을 결합했다.

생각보다 작업이 금방 끝났다.

선풍기를 방으로 옮기는 것은 사카라기씨와 구역을 나눠서 옮기기로 정했다.

사카라기씨가 외각 기숙사 쪽을, 내가 별관의 숙소 쪽을 담당하기로 했다.

물론 방문이 열려있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집 앞까지만 선풍기를 배달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이 역시 그다지 오랜 시간을 소요하지는 않았다.

“수고하셨습니다.”

마지막 선풍기를 가져다놓고 다시 창고 쪽으로 돌아오는 나를 보고 사카라기씨가 인사했다.

“수고하셨습니다.”

나도 그녀에게 같은 인사를 돌려주었다.

센다씨에게 건네받은 열쇠로 창고의 문을 잠그면서 선풍기 유지보수 및 배분에 관한 업무가 모두 끝나게 되었다.

얼마나 지났나 보려고 시간을 확인하니 두 시 반.

상당히 애매한 시간이 되어있었다.

“음, 두 시 반이네요.”

“그런가요?”

그녀도 손목을 들어서 자신의 시계를 보았다.

“그러네요. 생각보다 일찍 끝났어요.”

“그렇죠? 마츠모토씨가 귀찮니 뭐니 야이기는 하셨어도 꽤 쉬운 일로 배분해주신 것 같아요.”

확실히 예초작업을 나갔던 마츠모토씨와 하라씨는 이 더운 날씨에 땀을 뻘뻘 흘리면서 잡초와의 전쟁을 치루고 있을 것이다.

자신이 나이, 경력, 직급 모든 면에서 세이렌 안에서 넘볼 사람이 거의 없기 때문에 편안하게 쉬면서 일을 해도 아무도 뭐라고 할 사람이 없으련만 마츠모토씨는 늘 환갑이 넘은 몸을 이끌고도 자신이 앞장서서 정력적으로 일을 처리했다.

쉬고 편안하게 지내는 만큼 늙고 녹슨다고.

그 말을 들었을 때는 참 감탄했다.

여전히 거칠고 다부진 검게 그을린 피부는 그렇게 정열적으로 자신의 인생을 사용해온 것에 대한 방증이리라. 

배울 점이 많은 사람이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럼 일단 유격부로 돌아갈까요?”

새로운 일이 생겼을 수도 있고 아직 남아있는 일이 있을 수도 있다.

농땡이를 피우기보다는 일단 돌아가서 제대로 일이 끝났음을 보고하고, 농땡이를 피우는 것도 할 일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 시원한 유격부안에서 피우는 것이 좋을 것이다.

사카라기씨도 좋은 생각이라고 승낙했고 함께 유격부로 발걸음을 옮겼다.

유격부로 돌아가니 중앙 테이블에서 슌베이씨가 대기를 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에게 일이 끝났다고 이야기하고 혹시 다른 남아있는 일이 있는지를 물었다.

“음, 몇 가지 남아있게 있긴 한데 오늘 하기는 좀 그런 것들이야. 당장 급한 일들도 아니고 천천히 하면 될 일들이라. 오늘은 이만 쉬워도 괜찮을 것 같은데?”

슌베이씨는 장부하나를 꺼내서 뒤적거리며 우리에게 말했다.

“그렇다네요.”

사카라기씨가 옆에서 웃으면서 작게 이야기했다.

유격부가 좋은 점은 이런 것이 좋은 것 같다.

일이 고정되어 있지 않고 유동적으로 존재하기 때문에 바쁠 때는 엄청나게 바쁘지만, 또 이렇게 쉴 때는 쉴 시간이 생긴다.

아직 방에 들어가거나 할 만한 시간은 아니기 때문에 유격부 대기라는 명목으로 휴식을 취하기로 정했다.

학교에서 땡땡이치는 기분이네요, 하면서 쿡쿡 웃는 사카라기씨.

뭐라도 마시죠. 하면서 마실 거리를 준비하려는 찰나에 슌베이씨가 나에게 말했다.

“아, 토베군. 면담.”

“네?” 

“앞으로의 진로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자고 잠깐 들어와.”

그렇게 말하면서 안쪽에 있는 부장실로 들어갔다.

“잠깐 다녀올게요.”

“네, 다녀오세요. 아, 슌베이씨 커피 따뜻한 걸로 해드릴까요 차가운 걸로 해드릴까요?”

방 안쪽에서 차가운 것으로 부탁한다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토베씨는 요?”

“저도 차가운 것으로 부탁드릴게요.”

‘네, 알겠습니다.’라고 기쁜 듯이 대답하는 사카라기씨를 뒤로하고 부장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나무로 된 여닫이문을 열고 안쪽으로 들어갔다.

문을 닫고 나자 가운데에 있는 유리를 얹은 테이블의 상석에 앉은 슌베이씨가 반대쪽 자리를 손으로 가리키면서 자리를 권했다.

실례합니다. 라고 말하면서 그 자리에 앉았다. 

면담의 내용은 말 그대로 앞으로의 진로, 어느 부서로 들어가길 희망하느 냐는 이야기였다.

“일단 나머지 동기들은 전부 희망하는 부서를 정했고, 그 부서와도 이야기가 되어있으니까. 남은 건 토베군 뿐이야.”

“네.”

여기서 잠깐 뜸을 들이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각 부서에서 너에 대한 보고서… 까지는 아니고 그냥 업무 적응도에 관한 자료들이 올라왔는데, 모든 부서에서 OK사인이 나왔어. 어느 부서에서나 토베군의 업무능력을 원하고 있다는 이야기지.”

“아, 그렇군요.”

“즉, 토베군 같은 경우는 자신이 원하는 부서를 선택해서 들어갈 수 있는 입장이야. 올라운더형이지. 아예 없는 케이스는 아니지만 희귀한 타입인 것도 맞아. 나로서도 무슨 일을 시켜도 보통이상은 뚝딱해치우는 친구는 데리고 있으면 굉장히 편하니까 말이야.”

“그러니까 곰곰이 생각을 해보고 결정을 해봐 급할건 없으니까, 조리부, 회계부, 관리부 그리고 유격부에서도 원하고 있는 인재니까, 후회하지 않을 선택을 해서 세이렌에 큰 힘이 되어 달라구.”

그렇게 말하면서 슌베이씨는 오른손으로 나의 어깨를 툭툭 건드렸다.

확실히 나도 빨리 들어갈 부서를 정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이 들었다.

그때 문에서 똑똑 하는 노크소리가 들려왔다.

슌베이씨가 들어오라고 이야기를 하자 쟁반에 커피 잔을 올려서 들고 있는 사카라기씨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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