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1화 (2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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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물밑작업

“아우, 내가 정말 못써.”

이렇게 말한 소녀는 미용사 쪽으로 와서 자연스럽게 그녀를 옆으로 밀어냈다. 미용사도 울먹거리면서 자리를 비켜주었다.

소녀는 내 뒤쪽으로 와서 머리카락을 이리저리 만져보더니 나에게 말했다.

“손님, 신경 쓰게 해드려서 죄송합니다.” 음, 이렇게 미약한 신음성을 내면서 내 머리를 조금 더 헤집고는 어두웠던 표정을 살짝 밝히고는 말을 이었다.

“저희 동생이 자격은 취득을 했는데 아직 일선에 서기엔 미숙한 점이 좀 있거든요. 그래서 살짝 실수를 하기는 했는데 충분히 커버가 가능한 정도로… 아, 물론 정당화 하려는 것은 아니고요…”

어떻게든 미용사, 동생? 에게 피해가 덜 가게하려고 고군분투하는 모습이 귀여워서 괜찮다고 말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런 말을 하면 좀 뭐하지만 여중생이 얼굴을 붉히고 팔을 파닥거리면서 변명하는 것처럼 보이는 모습이 꽤 귀엽다.

“아뇨, 괜찮습니다. 그럴 수도 있죠. 저도 직장에서 아직 견습 신분이라 많이 실수도 하고 혼나면서 배우고 있는걸요.”

작게 웃으면서 그렇게 이야기했다.

내 말에 소녀는 다행이라는 듯이 한숨을 쓸어 내렸다.

“정말 죄송합니다. 그게 음…” 

그리고 나서 피해가 난 부분을 메우기 위해 계획을 변경할 필요성이 생겼기 때문에 그에 관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난 짧아진 부분에 맞춰서 깎아도 괜찮다고 이야기 했지만 소녀는 이렇게 된 김에 살짝 분위기를 바꿔보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제안을 해 왔다.

“분위기를 바꿔요?”

나의 물음에 소녀는 짧아진 쪽의 머리카락을 가볍게 한줌 쥐고는 이야기 했다.

“네, 이 부분을 반대쪽보다 짧게 깎는 비대칭형으로 자르는 거예요. 두상이 좋으셔서 상당히 잘 어울리실 것 같은데. 이런 말 하기는 좀 그래도 아까 들어오셨을 때부터 그런 식으로 자르고 싶구나~ 이런 생각도 했었어요.”

장난인지 본심인지 모르겠지만 눈을 살짝 빛내면서 이야기 하는 것이 좀 무서웠다.

“그렇게 자르면 뭐라고 할까, 좀 인상이 가벼워 보여 지지 않을까요? 휴양촌 쪽에서 일을 하고 있다 보니까 단정하게 유지하는 것이 좋을 것 같거든요.”

내 말에 잠시 생각을 하고나서 소녀는 대답했다.

“아, 휴양촌에서 근무하시는 군요. 음, 아마 그렇게 이상해지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요. 여름이기도 하고 시원해보이기도 하고 깔끔한 느낌을 줄 거라고 생각하는데 아마…”

그리고 옆쪽에 꽂혀있던 헤어잡지를 뽑아 와서 페이지를 주르륵 넘기다가 한 페이지를 골라서 나에게 보여줬다.

“이런 느낌으로 나올 거예요, 손님이 이 모델보다 더 턱선이 갸름하셔서 아마 이쪽은 더 깔끔하게 되지 않을까합니다.”

그녀가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있는 헤어사진을 보았더니, 확실히 생각했던 모양새보다 훨씬 깨끗하고 괜찮으면서도 단정함을 잃지 않는 수준에서 딱 맞아떨어지는 느낌이었다.

“오, 정말 생각보다 괜찮은데요?”

“그렇죠? 그럼 어떻게 하시겠어요?”

소녀의 질문에 나는 그녀의 안에 따르자고 대답했다.

그렇게 소녀 쪽에게 머리를 자르게 되었다.

확실히 동생 쪽 보다는 훨씬 숙련된 솜씨가 손끝에서 느껴졌다. 머리를 자르기 시작하면서 부터는 원래 사나웠던 눈빛이 더 날카로워진 느낌도 적잖이 들고 말이다.

자르는 동안 거울로 본 내 머리는 확실히 전보다 눈에 띄게 좋아져있었다. 누군들 거울로 자기 얼굴을 봤을 때 ‘음, 중간은 가는구나.’하지 않겠냐마는 이건 정말로 얼굴과 두상에 맞춤 머리라고 할 만큼 잘 어울렸다.

머리를 자르면서 그녀와 소소한 이야기를 계속 나누었는데, 키가 작은 쪽이 네 살 터울 언니였고 성숙한 쪽이 동생이었다.

그러고 보면 저 사진 속에서 언니는 체격의 변화가 거의 없이 계속 지금의 몸이랑 비슷한데 동생 쪽은 꾸준히 성장하는 게 눈에 보일 정도라 차이가 있었다. 일찌감치 훅하고 자라고 나서 성장이 멈추어버린 그런 케이스리라.

친구들 중에도 어렸을 때는 키가 컸음에도 점차 나이를 먹으면서 점차 작은 축에 속하게 되는 아이들이 많이 있더라. 다행히 난 키가 작은 편에 속하다가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로 넘어가는 사이에 키가 많이 자랐지만 말이다.

또 이야기를 들어보니 동생 쪽 머리는 언니가, 언니의 머리는 동생이 해준 것이라고.  미용기술의 차이는 있어도 사이좋게 잘 지내는 자매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몇 가지 이야기를 더 나누는 동안 머리를 다 자르게 되었다.

“자, 어떠세요?”

언니가 작은 거울을 내 뒤통수 쪽에 대어서 뒷머리도 확인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와, 엄청 잘 어울리네요. 감사합니다. 정말 솜씨가 좋으시네요.”

내 말에 그녀는 약간 쑥스러운 듯 고개를 약간 숙이고 미소 지었다.

“괜찮다고 하시니까, 다행이네요. 그럼 샴푸해드리고 마무리 정리 해드릴게요. 이쪽으로 오세요.”

그녀는 내가 두르고 있는 포를 제거해주고 나를 머리감는 곳으로 이끌었다.

“여기 앉아주시겠어요?”

그리고 나를 미용실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검은색 눕는 의자에 앉기를 권했다.

목 받침대에 목을 올리고 편하게 누웠다.

내 얼굴에 물이 튀지 않도록 스펀지 같은 것을 올려준 다음에 샤워기로 물을 트는 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어느 정도 물 온도를 조절하고 나서 내 머리에 샤워기로 물을 뿌리면서 물었다.    

“물 온도 괜찮으세요?” 

미지근하다고 느낄 온도보다 약간 더 따뜻한 물에 딱 기분이 좋아 그렇다고 대답했다.

처음에는 곳곳에 물을 뿌리고 가볍게 헹구어낸 다음에 손에 샴푸를 짜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약간 차가운 느낌의 샴푸가 머리에 발려지는 느낌이 들었다. 샴푸를 바르면서 구석구석 경락마사지를 해 주듯이 마사지를 해주는데 굉장히 오묘한 기분이 들었다.

샴푸가 발려서 매끈매끈해진 더할 나위 없이 부드러운 손이 꾹꾹하고 나의 머리 구석구석에 강한 자극을 줬다. 평소에 그런 자극을 느끼기 힘든 것이 두피여서 그런지 정말 묘하게 신경이 쓰였다. 그리고 기분도 꽤 좋았다.

“아프지는 않으시죠?”

“네, 적당한 것 같아요.”

내 대답에 그녀는 약간 더 강하게 머리 곳곳을 눌러주었다.

이젠 살짝 아프다는 느낌도 들었지만 손가락을 떼고 나면 확하고 시원한 느낌이 들었다. 은근히 이런 경락마사지에도 소질이 있는 것 같다.

어느 정도 두피마사지를 계속하고 나서 다시 샤워기를 트는 소리가 들렸다. 아, 지금 끝난다니 좀 아쉬운 기분이 들 만큼 기분이 좋았는데…. 딱히 내색할 만한 일도 아니기에 조용히 내 머리에 묻은 샴푸를 닦아내 주는 그녀의 손길을 즐겼다.

샤워기가 꺼지고 뽀송뽀송한 타월이 내 머리위에 얹어졌다. 타월이 내 머리에 묻은 물기를 부드럽게 털어주고 나서 ‘이제 일어나 주시겠어요?’ 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말에 허리를 세워서 앉았다. 이제 머리 전체를 타월이 감싸고 툭툭 가볍게 털어내는 느낌이 들었다.

그녀가 이끄는 대로 다시 의자로 돌아와서 머리를 말렸다.

“다음부터 머리 말리실 때는 이쪽을 좀 신경 써서 옆으로 넘기면서…” 그리고 머리 말리는 법에 대해서 강습을 받았다. 꽤 가볍게 훅훅 드라이어로 뜨거운 바람을 뿌리고 손으로 슬슬 잡아당기는 것뿐인데 머리모양이 확 살아나는 게 눈에 보일 정도였다.

다 말리고 나서 삐져나온 머리만 살짝 정리하고 이발이 다 끝나게 되었다.

단순 커트에 드라이만 했을 뿐인데 학교 졸업 사진 찍는다고 미용실에서 웃돈을 주고 머리를 맡겼을 때보다 더 괜찮은 느낌으로 완성됐다. 굉장히 마음에 들어서 절로 기분이 좋아졌다.

계산을 하기 위해 지갑을 꺼내려는데 그것을 제지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기들 실수가 있었으니까 돈을 받지 않겠다는 이야기였다.

“아뇨, 그럴 수야 있나요. 망친 것도 아니고 머리도 굉장히 마음에 드는 걸요?”

내가 몇 번이나 사양했으나 언니 쪽도 결단코 거부를 했다. 거기에 동생도 동참해서 자기들은 받을 수 없다고 떼를 놓았다. 이만한 서비스를 받아놓고 입을 딱 씻기도 불편한 일인데…

아, 그러다 딱 얼마 전에 받은 명함이 생각났다. 아직 확실히 부서도 정해지지 않아서 당장 만들 생각이 없었는데 유격부의 부부장인 슌베이 마사유키씨가 이런 건 원래 선배들이 해주는 것이라면서 명함 가게에 데려가서 명함 오백 장을 주문해주었다.

꽤 고급명함이라 명함 집에 담아서 받았을 때는 왠지 모르게 뿌듯한 기분과 성취감이 느껴졌었다. 그 중에서 20장만 따로 뽑아서 들고 다니고 있었는데 지금이 딱 처음으로 명함을 사용할 적기라고 느껴졌다.

지갑대신 명함 집을 꺼내서 나의 명함을 한 장 꺼내들었다. 그리고 명함을 언니에게 건네면서 말했다.        

“제 명함입니다, 다음에 세이렌에 찾아오시면 제가 그때 섭섭지 않게 대접하겠습니다.” 아직 뭔가 팍팍 제공하고 그럴 수 있는 짬은 아니지만 직원가 할인정도는 받을 수 있으리라…

명함을 받는 것도 꽤 힘들게 설득시켜서 받게 만들었다. 그녀는 정중하게 내 명함을 받고나서 카운터에 있는 명함 꽂이에서 명함을 한 장 가져와서 나에게 건넸다.

“네, 감사히 받겠습니다. 여기 제 명함입니다.”

나도 정중하게 예의를 지켜서 그녀의 명함을 받았다.

학원에서 배울 때나 세이렌에서 선배들에게 ‘명함은 이렇게 주고받는 거야, 임마.’라고 배울 때를 제외하면 처음으로 예의를 갖춰서 명함을 교환해본 것이라, 드디어 제대로 된 사회인이 되었나 하는 기분도 약간 들었다.

명함을 살펴보니 언니 쪽의 이름은 니시마츠 나츠메, 니시마츠 씨였다. 그렇게 소소한 기쁨들을 뒤로하고 인사를 건네고 미용실을 나서려고 할 때 동생이 문까지 따라와서 나에게 말을 건넸다.

“정말 죄송해요. 제가 계속 연습해놓았다가 다음에 다시 오시면 꼭 제대로 잘라드릴게요.”

그녀 -동생 쪽은 이름이 아키코, 니시마츠 아키코라고 이야기 했다.- 의 귀여운 토끼 같은 눈망울에 알았다고, 다음에 신세를 지겠다고 이야기하고 거리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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